나는 또 새 꿈을 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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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토리얼] 나는 또 새 꿈을 꾼다 »
나는 또 새 꿈을 꾼다. 유럽크리스챤신문 종간호를 마치는 지금, 이 순간에도 이 척박한 땅, 유럽을 향하신 하나님의 선하신 뜻이 이뤄지기를 빌며 마음을 추스른다. 유크가 씨를 뿌리는 자로, 복음의 씨를 뿌렸으니, 이제는 거두게 될 때라. 알곡으로 거둬질 그 열매들을 머리에 그려보니 감사함이 절로 난다.
그때가 언제이던가? 아득한 옛날처럼 느껴진다. IMF를 만난 조국과 가족을 뒤로하고 1999년 1월 14일, 암스테르담 스히폴 공항을 거쳐, 독일 뒤셀도르프 공항으로 향하는 KLM 비행기 편으로 독일 땅에 도착했다. 초등학교 5학년, 중학교 1학년인 아직 어리기만 한 두 딸과 아내가 유럽 땅에 도착했다는 기대와 소망을 가득 담았다. 각자 트렁크와 큰 이민 가방에는 잔뜩 싸 온 생활용품들로 가득했다. 하지만 김포국제공항을 출발할 때 비싼 짐값을 따로 물었어야만 했다. 무게 초과에 대한 비용이 상당했다. 비록 아깝고, 억울하기 짝이 없었지만 그렇다고 달리 방법도 없었다.
이렇게 도착한 뒤셀도르프에서 마중 나온 아헨 김익진 목사님의 배려로 단기 임대아파트를 얻어서 독일에서의 첫날을 보낼 수 있었다. 그래서 지금도 아헨은 우리 가족에게는 잊을 수 없는 마음의 고향과 같다. 이곳에 숙소를 두고 나는 벨기에 브뤼셀을 오가며, 유학 생활을 시작했다. 그러다가 학교 기숙사를 배정받고 가족들이 다시 벨기에 브뤼셀로 이주하게 됐다.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타국의 설움이라는 것을 경험했다. 외국에서 돈 없는 서글픔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것임에야 달리 무슨 말이 있을까 싶은데, 거기에서 보낸 10개월, 끝내 우리 가족들은 기적이랄 수밖에 없는 주님의 살아계신 은혜를 체험하며 독일 땅 하이델베르크로 올 수 있었다. 전혀 기대할 수 없는 상황에서 독일로 오는 선교사 비자를 발급받게 된 것이다.
이러한 과정의 은혜와 성령의 인도하심이 없었더라면 지금까지의 유크도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독일 땅으로 다시 올 수 있었다는 것만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니었다. 무엇보다 생활의 문제는 곧, 가족의 생존이 달린 일이었다. 무슨 일이든 필요했고, 그때 접하게 된 일이 본에 있는 한인 인쇄소에서 출판에 관련된 작은 프로젝트를 맡게 된 것이 바로 유크를 발행하는 출발점이 됐음이다.
옹달샘에 샘물이 솟듯이
지나서 온 과정을 어찌 다 필설로 형용할 수 있겠는가. 결단코 순탄치 않은 수많은 우여곡절을 겪었고, 쓰러지고, 부대끼고, 일어서고 하는 과정의 반복됨 가운데 어느덧 23년의 세월이 흘렀음이라.
이렇게 살아오면서, 쓰게 된 일기이며, 살아계신 하나님을 증거하는 간증이 유럽크리스챤신문 20년 역사이다. 매달 신문을 발행한다는 것 자체가 기적의 연속이었다. 솔직히 털어놓자면, 무슨 가진 돈이 있어서 매월 신문을 인쇄하고, 또 인쇄비를 훨씬 넘는 발송비용을 감당해 왔겠는가. 우리 가진 전부를 몽땅 신문 관련한 모든 사역 비용으로 쏟아부어야 했다. 물론 여기저기서 모이는 후원의 손길이 큰 도움이 됐다. 마치 옹달샘에서 바가지로 물을 퍼내고 나면 다시 또 샘이 채워지는 반복된 역사로 지속하여온 20년이다.
한 달 한 달을 옹달샘 곁에 바가지를 들고 선 심정으로 살았다. 단 한 순간의 평안도 없는 긴장의 연속이랄까, 이제 이 샘물의 근원이 마르게 되면 여기까지가 끝이란 생각에 마치 피가 마르는 것 같은 고통도 따랐다. 물론 미안하게도 이런 절박한 고통은 나보단 아내가 훨씬 더 많이 짊어졌다. 운명공동체인 가족들의 삶이 사역과 묶여 한치 만큼의 여유도 누리질 못했다.
인내는 연단을 이룬다고 했던가. 사실, 그동안 얼마나 많이 살아계신 주님의 역사를 체험하며 살았는지 모른다. 이러한 산 체험들이 있었기에 전적인 헌신도 가능했다. 어디 누가 시킨다고 해서, 억지로 해야 한다고 해서, 마지 못해 가며 사역을 감당하겠는가? 분명히 지나서 온 시간을 통해서 확실하게 배운 것이 있다. 그것은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 란 히브리서 11장 1~2절 말씀이다.
그렇다. 믿음이 없다는 것은 미래를 바라볼 비전이 없다는 말씀이다. 여기서 끝이란 생각을 하는 사람에겐 미래가 없다. 그래서 꿈을 꾸는 사람, 내일에 대한 꿈을 꾸는 사람을 하나님은 들어 쓰신다고 믿어진다.
난 또 새 꿈을 꾼다
그러고 보면 유크를 통해 내가 얻은 가장 소중한 자산은 다름없는 꿈이다. 아무튼 두 손에 가진 것이 없으니 날마다 할 수 있었던 가장 쉬운 일은 내일을 향한 꿈을 꾸는 일이었을지 모른다. 그래서 내 가진 꿈만큼은 부자라 할 수 있다. 그게 될는지 아니 될는지는 그다음의 일이다. 그 꿈을 꾼다는 것은 나에게 기쁨이고,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자유이다.
야곱의 꿈을 꾸고, 요셉의 꿈을 꾼다. 유크도 꿈을 꾼다. 그 꿈이 없으면 죽은 것이다. 내일과 미래를 포기한 것이다. 아니 하나님이 위에서 주시는 비전을 아예 깔아뭉개고 모른 체 하는 불신앙이다. 그래서 나는 또 새 꿈을 꾼다. 이 꿈이 유크의 종간이며, 새로운 시작이다. 어제, 오늘, 내일, 영원히 동일하신 하나님이 계시고, 그분이 바라시는 일이 있으니 그저 또 나아갈 뿐이다. 75세에 하란 땅을 떠난 아브라함이나, 80세에 미디안 광야를 떠난 모세보다는 그래도 한참 젊고, 어려서인가. 망설이지 말고 가라 하신다.
유크는 처음부터 내 것이 아닌 그분의 것이고, 내겐 그 소명을 따라 충성을 했던 사역이다. 그래도 막상 이제 유크를 종간하려니 아쉽다. 눈비가 오고 바람이 불고, 추위로 손이 얼고, 더위에 땀을 쏟았어도, 유크를 인쇄한 뒤 근처의 큰 마켓 주차장에서 아내와 함께 신문을 봉투에 넣고, 우체국을 두르던 지나온 그 많은 세월이 주마등 스치듯 지난다. 매달 반복되는 일이었고, 때론 힘겹다 싶을 때도 있었지만 그도 마지막이려니 허전함도 깃든다. 앞으로 언제 또 이런 기쁨과 보람을 맛볼 수 있으려나…
종간호를 마치는 지금, 이 순간에도 이 척박한 땅, 유럽을 향하신 하나님의 선하신 뜻이 이뤄지기를 빌며 마음을 추스른다. 유크가 씨를 뿌리는 자로, 복음의 씨를 뿌렸으니, 이제는 거두게 될 때라. 알곡으로 거둬질 그 열매들을 머리에 그려보니 감사함이 절로 난다.
이달의 말씀: 시편 126:5-6
눈물로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라.
울면서 씨를 가지고 나가 뿌리는 자는
단을 가지고 기쁨으로 돌아오리라. ©아이앤유크저널
글 이창배/ INUC 발행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