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년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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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저널=김학우 목사] 70년 역사
“중국 왕조의 평균수명이 70년이다.”
70년 역사-바벨론 70년 포로생활은 이스라엘에 대한 징벌과 안식의 성격이 담겨 있다. AD 70년 예루살렘의 멸망은 예견된 징벌로, 이스라엘의 종교관이 성전 중심에서 회당 중심으로 바뀌게 했다. 그리고 볼셰비키 혁명이 낳은 소련의 공산주의가 70년 만에 붕괴됨으로 오늘의 동구권이 독립할 수 있었다. 선지자 다니엘은 바벨론 포로 70년의 의미를 깨닫고 크게 통곡했다.(단9:2-3)
70년 바벨론 포로, 징벌과 안식의 기간이다.
선지자 예레미야는 이스라엘이 바벨론에 의해 70년 동안 포로가 될 것을 예언했다. “이 민족들은 칠십 년 동안 바벨론의 왕을 섬기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렘25:11) 이스라엘(남유다)이 포로로 잡혀간 것은 주전 605년, 597년, 586년 세 차례에 걸쳐서 이루어졌다. 포로귀환 또한 주전 538년, 458년, 445년 세 차례에 걸쳐서 이루어졌다. 보통 바벨론 포로귀환이라고 말할 때에 제 1차 귀환시기인 주전 538년으로 본다. 그것은 고레스가 이스라엘의 포로들을 귀환하도록 칙령을 내린 해이기 때문이다. 제 1차 포로로 잡혀간 주전 605년부터 주전 538년까지 계산하면 67년이 된다. 그러나 성경은 포로기간보다 포로가 된 의미를 중요하게 말하고 있다.
많은 선지자들(이사야, 예레미야, 에스겔, 호세아, 아모스, 미가, 나훔, 스가랴 등)이 이스라엘이 바벨론 포로가 될 것을 수차례 경고했다. 모든 선지자들은 포로가 된 것은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범죄하고 반역한 것에서 그 원인을 찾고 있다. 특히 예레미야는 “그들이 내 언약을 깨뜨렸음이라”(31:32)고 이스라엘이 언약을 파기한 것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바벨론 포로 70년은 이스라엘이 언약을 파기한 결과임을 보여 준다. 그러나 정작 이스라엘이 바벨론 포로가 되어 고난을 받고 있을 때에 대부분의 선지자들의 메시지는 이전과 전혀 달랐다.
역대하 저자와 예레미야는 70년 바벨론 포로생활은 이스라엘에게 내린 형벌이 아닌 “땅의 안식년”으로 해석하고 있다. 즉 예레미야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빌론의 포로로 끌려가 있는 동안 황폐되었던 본토의 땅이 오히려 안식하게 되는 기간(대하36:21)이라고 했다. 에스겔은 바벨론 포로 생활 70년은 이스라엘을 풀무 속에 집어넣고 그들의 죄악을 정결케 하시기 위함이라고 했다. 그리고 이사야는 바벨론포로 70년의 생활은 이스라엘이 노역(복역)기간으로 간주했다.(사40:2) 반면 이스라엘이 70년 포로생활을 마친 것은 복역기간이 끝남으로, 그들의 죄악이 사함 받아 원래 상태로 회복되었음을 뜻하고 있다. 70년 바벨론 포로생활에 대하여 선지자들은 이스라엘의 불신앙에 대한 하나님의 징벌(기간)인 동시에 안식과 회복의 기간으로 해석하고 있다.
AD 70년 예루살렘의 멸망, 예견된 징벌이다.
AD 70년 7월, 유대인 달력으로 아브월 8일, 4개월 동안 성을 포위하고 있던 로마 황제 베스파시아누스의 아들 티투스는 다음날 새벽, 성전을 공격할 것을 전 군대에 명령을 내렸다. 아브월 9일은 약 650년 전(BC 587년) 바벨론의 느부갓네살이 예루살렘을 파괴했던 날과 공교롭게도 동일한 날이다. 당시 전쟁에 참가하며 “유대전쟁사”를 남긴 요세푸스는 그 때의 처참했던 상황을 생생하게 기록해 놓았다. “군대가 성을 포위하는 기간에 사람들은 서로를 잡아먹기도 하고, 아이 엄마가 살기 위해서 애를 잡아먹기도 했다.” 그로부터 5개월 후에 예루살렘이 함락되었다. 예루살렘성과 성전과 도시는 완전히 불탔고 성전의 기명들은 모조리 약탈당했다. 포로들은 건축하는 노예가 되거나 광산에서 평생 일하다 죽거나 검투사가 되어 싸우다 죽거나 로마인들이 보는 앞에서 맹수의 밥이 되어 죽었다. 이스라엘은 참혹하고도 비참하게 멸망했다. 문자 그대로, 예루살렘은 돌 위에 돌 하나도 남기지 않겠다는 주님의 예언이 그대로 이루어짐으로 거룩한 성전은 죽음의 터가 되었다. 요세푸스는 약 6개월 동안 약 130만 명이 죽임을 당했다고 덧붙이고 있다.
이후 1,900년 동안 유대인들은 평화의 땅 예루살렘에 거주할 수 있는 아무런 권리를 가지지 못한 채 지구상 도처에서 방황하게 되었다. 1948년 이스라엘이 건국되기 전까지 폐망한 예루살렘은 바벨론, 페르시아, 아랍인, 십자군, 무슬림 등에게 수 세기 동안 짓밟히며 피로 얼룩졌다.
AD 70년 예루살렘의 멸망은 이스라엘의 역사에서 중대한 의미를 갖는다. 예루살렘의 함락과 파괴는 그들의 종교적 삶의 구심점을 빼앗아 갔을 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 흩어진 디아스포라가 되게 했다. 특히 솔로몬 때부터 시작된 성전중심에서 회당중심의 종교로 바뀌었다. 이스라엘에게 성전은 “내가 그들 안에서 거주하겠다.”(출25:8)라는 말씀 그대로, 성전은 하나님을 직접 만날 수 있는 절대적인 공간이었다. 성전 파괴와 함께 제사의식이 중단된 것이 더 큰 문제였다. 제사야말로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유일한 통로였기 때문이다. 반면에 예루살렘의 폐망은 성전을 중심으로 온갖 사리사욕과 기득권을 행사하던 사두개파와 바리세파 등 종교지도자들의 세력이 사라지게 되었고, 유대교 안에 형성되었던 여러 종파들 간의 알력들이 사라졌다. 성전의 파괴는 그토록 잔인했던 유대교 지도자들의 횡포와 양의 옷을 입고 “불법을 자행하는 자들”(마7:23)마저 조용히 자취를 감췄다. 주님(성경)은 예루살렘의 멸망에 대해 세 번이나 반복하며 경고하셨다.(눅11:50), (마24:1-2), (마23:37-38)“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보라 너희 집이 황폐하여 버려진바 되리라.”
70년 공산주의 붕괴, 필연적이다.
1991년 12월 25일 오후 7시 정각,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 대통령은 2억 8000만 소련인을 상대로 다음과 같이 소련 해체를 공식적으로 선언했다. “친애하는 국민 여러분, 본인은 독립국가연합 창설에 관한 정국상황에 따라 소비에트 공화국 연방 대통령으로서의 활동을 마칩니다.” 고르바초프 연설이 끝나자마자, 당일 저녁 7시 35분경에 크렘린에 게양된 붉은 소련 국기는 3색의 러시아 국기로 교체되었다. 1917년 볼셰비키 혁명을 통해 1922년 12월 30일 시작된 일인 독제체제 소련 사회주의 연방공화국은 70주년을 앞둔 1991년 12월 25일 저녁 7시에 붕괴되었다. 이후 소련의 공화국은 15개 나라로 독립하였다. 1921년 2차 혁명으로 소련 다음으로 세워진 몽골 공산주의 또한 러시아의 지원을 받아 중국으로부터 독립을 쟁취한 후 1991년, 70년 만에 공산주의체제를 종식하였다. 몽골은 소련이 해체된 후 1992년의 선거를 통해 공산주의를 사실상 폐기하였고, 대신 민주공화제를 채택하여 국민이 직접선거를 통해 대통령을 선출하는 헌법을 채택하였다. 그런데 소련과 몽골의 공산주의는 모두 70여년에서 종말을 맞이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일인독재와 공유재산제도 위에 세워진 공산주의가 인간의 자유와 권리 나아가 소유욕을 항구적으로 억압할 수 없다는 점에서 소련과 몽골의 공산주의의 폐망은 필연적일 수밖에 없었다.
1917년 볼셰비키 혁명으로 소련이 공산주의 체제로 바뀐 것에 고무된 중국지도층과 지식인들은 집권 국민당과 8년의 투쟁을 거치면서 1949년 10월 1일에 중화인민공화국을 수립했다. 그러나 중국공산당은 소련과 몽골 공산주의와 차별화 했다. 특히 중국은 문화대혁명 이후 인민의 불만을 다소나마 해소하기 위해 사회주의 시장경제체제를 도입했다. 그 결과 중국은 경제개방을 통해 일인독제체제를 강화할 수 있었지만 소련의 공산주의는 붕괴되었다. 중국 공산주의 입장에서 경제개방이 특효약이 된 셈이다. 그러나 경제개방은 시간이 흐를수록 공산주의를 위협하는 부메랑이 되었다. 홍콩 사태가 보여주듯이 중국의 GDP가 올라갈수록 중국 공산주의는 위협을 받게 된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게 되었다.
2020년 중국은 공산당 수립 70주년 기념식을 성대하게 치렀지만 소련 공산주의가 70년 만에 붕괴되었다는 사실에 촉각을 곤두세우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그것은 중국 공산주의가 과연 71년을 넘길 수 있을 것인가 궁금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많기 때문이다. 그 가운데 미국의 하버드대 왕유화 교수는 중국을 지배한 49개 왕조의 역사를 분석한 결과를 다음과 같이 정리했다. “중국 왕조의 평균수명이 70년이다.” ◙ Now&Here©유크digitalNEWS
필자: 김학우/ 스페인, 마드리드 사랑의 교회 담임목사/ 2070czmk@daum.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