쉐마와 라마의 신앙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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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저널=조용선 선교사] 쉐마와 라마의 신앙교육 »
쉐마와 라마의 신앙교육이 왜 필요할까? 지금 왜 한국 교회에서 젊은 사람들이 교회에서 자꾸 적어지고 있습니까? 교회가 이 교육에 대하여 소홀히 했기 때문입니다. 지금 한국교회는 이 부분에 대해서 혹독한 결과를 받고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이라도 미래를 위하여 우리는 교회의 교육에 헌신해야 합니다.
신명기 6장 4-9절 마태복음 27장 46절
(신 6:4)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유일한 여호와이시니(신 6:5)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신 6:6) 오늘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신 6:7)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을 갈 때에든지 누워 있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신 6:8) 너는 또 그것을 네 손목에 매어 기호를 삼으며 네 미간에 붙여 표로 삼고(신 6:9) 또 네 집 문설주와 바깥 문에 기록할지니라
(신 6:4) “Hear, O Israel: The LORD our God, the LORD is one!(신 6:5) “You shall love the LORD your God with all your heart, with all your soul, and with all your strength.(신 6:6) “And these words which I command you today shall be in your heart.(신 6:7) “You shall teach them diligently to your children, and shall talk of them when you sit in your house, when you walk by the way, when you lie down, and when you rise up.(신 6:8) “You shall bind them as a sign on your hand, and they shall be as frontlets between your eyes.(신 6:9) “You shall write them on the doorposts of your house and on your gates.
4.以色列阿,你要听。耶和华我们神是独一的主。5.你要尽心,尽性,尽力爱耶和华你的神。6.我今日所吩咐你的话都要记在心上,7.也要殷勤教训你的儿女。无论你坐在家里,行在路上,躺下,起来,都要谈论。8.也要系在手上为记号,戴在额上为经文。9.又要写在你房屋的门框上,并你的城门上。
마 27:46) 제구시쯤에 예수께서 크게 소리 질러 이르시되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니 이는 곧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는 뜻이라
(마 27:46) And about the ninth hour Jesus cried out with a loud voice, saying, “Eli, Eli, lama sabachthani?” that is, “My God, My God, why have You forsaken Me?”
46.约在申初,耶稣大声喊着说,以利,以利,拉马撒巴各大尼。就是说,我的神,我的神,为什么离弃我。
1. 우리는 무엇을 가르치겠다는 것인가?
저는 교사 헌신예배의 강사로 초빙을 받아 이렇게 여러분 앞에 섰습니다. 대개 이 맘 때에 여름성경학교가 있으니 여름 성경학교를 시작하면서 하나님 앞에 교사로서 마음을 강하게 하기 위하여 이 예배를 드립니다. 그러면 교사로서 우리는 어떻게 어린 학생들에게 주님을 증거 할 것입니까? 주님이 말씀하시는 것은 먼저 ‘들으라.’입니다.
가. 들으라.
교사는 먼저 주님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즈음의 교사들 가운데 어떤 사람들이 자신의 생각과 사상을 주님의 말씀인 것으로 착각하여 전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여기서 아주 중요한 것이 우리의 생각과 사상이 주님의 말씀으로 인하여 정확하게 형성된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만일 우리의 생각과 사상이 주님의 말씀으로 인하여 형성된 것이라고 하더라도 그 생각과 사상을 다른 사람에게 전할 때에는 다시 한 번 돌아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겸손하게 주님의 말씀을 전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린 학생들이라고 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경홀히 대하고 어린 학생들에게 경솔하게 전할 때가 있을 수 있습니다. 교사는 이것을 경계해야 합니다. 교사인 우리는 정말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귀가 되어 있는가? 를 돌아보아야 합니다.
들을 귀가 된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이 사람을 구원에 이르게 하는 진리와 능력임을 믿을 때에 들을 귀가 됩니다. 만일 하나님의 말씀을 세상의 철학이나 교양 정도의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교사가 되어 어린 학생들에게 성경을 가르친다면 그 어린 학생들이 정말 그 교사가 전하는 것을 통하여 살아계신 하나님과 사람을 구원에 이르게 하는 진리의 말씀인 성경을 알 수 있을까요? 교사는 자신이 세상을 살면서 갖게 된 자신의 사상과 철학을 하나님의 말씀에 섞어서 마치 그것이 진리인 양 전하게 됩니다. 이것은 마치 생명의 양식에 독약을 섞어서 어린 학생들에게 먹이는 것과 같습니다.
사랑하는 교사 여러분! 한국 교회가 초기에 부흥 성장 할 때는 하나님의 말씀을 정말 진리로 여겼습니다. 사람을 구원에 이르게 하는 진리의 말씀에 그들은 삶 전체로 무릎을 꿇었습니다. 그리고 부흥사경회를 통해 그들의 삶 전체가 변했습니다. 사랑하는 교사 여러분! 여러분은 지금 그런 경험을 갖고 계십니까? 하나님의 말씀이 여러분 삶 전체에 모든 것을 결정하는 진리이며 절대이며 생명입니까?
교사가 이 마음을 갖고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읽을 때에 주님이 말씀해주십니다. 오늘 본문에서 말씀하는 ‘들으라. 이스라엘아!’ 하는 것은 바로 그 마음으로 들으라는 것입니다. 그 마음이 아닐 때에 하나님의 말씀이 어떤 작용을 할까요? 아주 오랜 옛날 어느 목사님이 감옥에서 죄수들에게 성경의 내용을 전하니까 성경이야기를 듣고는 ‘서양무협지 이야기 잘 들었습니다.’ 하더랍니다. 동양에서는 무협으로 하늘로 날아오르는 경공술이라든지 장풍 같은 이야기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죄수들은 성경에서 모세가 홍해를 가르고 엘리야가 불 병거를 타고 하늘로 승천하는 것을 ‘서양 무협지’라고 이야기 한 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그 죄수들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서양무협지’처럼 보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나.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유일한 여호와시니
(1) 우리 하나님
이 말씀에서 우선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나의 하나님’ 이란 개인의 하나님을 말하지 않고 ‘우리 하나님’이란 공동체의 하나님을 말씀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은 지금 계속해서 개인주의를 말합니다. 혹은 개인주의를 넘어서서 이기주의를 말합니다. 그래서 ‘나의 하나님’이란 단어가 기독교에서도 많이 사용됩니다. 그러나 성경을 주의 깊게 보십시오. 그러면 하나님을 개인의 하나님으로 말하지 않고 이스라엘 공동체의 하나님으로 말씀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현재 개신교는 문예 부흥 이후에 계몽주의와 산업혁명을 거치면서 지나치게 개인주의의 문화 속에 노출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신앙을 개인화 하는 성향이 너무 강합니다. 제가 볼 때에 이것은 매우 걱정스러운 현상입니다. 신앙은 공동체에서 발현되어야 합니다.
(2) 오직 유일한 여호와
기독교인이신 당신에게 여호와 하나님은 오직 유일한 신(神)이십니까? 사람들 가운데는 자신들이 처한 삶의 환경에 따라 많은 신들을 섬기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절에도 가고 만신집에도 갑니다. 그런데 교회를 다니면서도 점집에 가는 사람들이 있다고 합니다. 삶의 상황이 얼마나 다급하면 그렇게 하겠습니까? 개인적으로 그 마음을 이해하면서도 하나님을 믿으면서 그런 마음이 되면 안 됩니다. 하나님은 전능하십니다. 세상의 모든 것은 주님이 창조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오직 유일하게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에게서 바로 이와 같은 마음을 보시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살 때에 모든 신자들에게는 하나님이 정말 유일한 하나님으로 믿어지는지를 시험하는 기간이 있습니다. 이것을 잘 통과해야 합니다.
다.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라.
(1) 마음과 뜻과 힘의 의미
마음과 힘은 영어에서 heart와 strength를 사용합니다. 중국어에서 심(心)과 력(力)자를 사용합니다. 그런데 뜻에 대해서는 영어단어에서 soul을 사용하고 중국어로는 성품, 성질, 생명, 목숨을 뜻하는 성(性)자를 사용합니다. 이것을 보면 사람이 어떤 뜻을 품는다는 것은 그의 영혼과 연결되는 것이고 성품이나 성질, 생명, 목숨과 연관됨을 알게 됩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을 사랑하는데 어떻게 사랑하는가? 하면 마음을 다하고 힘을 다하는데 그것이 뜻이 의미하는 영혼, 목숨을 다해 주님을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2) 왜 그렇게 마음과 뜻과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해야 하는가?
그렇게 하지 않으면 우리가 죽으니까요. 이 세상에서 공중의 권세 잡은 자 마귀가 우리를 할 수만 있으면 지옥으로 우리를 끌어가기 위하여 얼마나 많은 간교한 술책과 행위들이 있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제가 앞서 우리들이 하는 생각조차도 비록 기독교인이기는 하지만 항상 매우 조심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사탄은 정말 간교하게 우리의 마음을 산산이 부수며 우리의 의지를 파괴하며 우리의 힘을 무력하게 합니다. 만일 하나님의 긍휼히 여기심이 없다면 우리는 얼마나 이 세상에서 견뎌낼 수 있을까요? 우리 스스로의 의지로 주님을 믿는다는 것은 아마도 얼마 버티지 못하고 사탄의 계략에 빠져 죄악의 노예가 되어 이 세상을 살게 될 것입니다. 그것은 비록 육체의 생명이 있다고는 하지만 양심이 파열을 당한 것이고 영혼을 사탄에게 빼앗겨 버린 상태가 될 것입니다.
라. 오늘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겨라.
(1) 오늘
주님의 말씀은 언제 듣나요? 어제 들었으면 되었나요? 과거에 아주 뜨겁게 잘 믿었으면 되나요? 옛날에 성경 공부를 열심히 해서 성경의 맥을 잘 알고 있으면 되나요? 아니요! 선줄로 생각하는 자는 항상 넘어질까? 조심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과거에 익숙한 것이 조금 도움이 될는지는 모르지만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는 항상 지금 접해야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진리는 과거에만 필요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적지 않은 신자들이 과거에 잘 믿은 것을 기억으로만 갖고 회상의 신앙생활을 합니다. 그런 분들의 현재 모습은 어떠합니까? 과거처럼 여전합니까? 그렇지 못한 경우들이 종종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을 때에 가장 중요한 것이 지금 어떠한가?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살아계신 하나님이시며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은 바로 오늘을 사는 우리와 함께 하며 우리를 구원으로 인도하는 것입니다.
(2)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명령하신다는 것입니다. 명령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절대로 순종해야 합니다. 일반적으로 전쟁 중에 상관의 명령은 절대입니다. 만일 명령을 불순종한다면 죽음을 각오해야 합니다. 지금 우리가 영적으로 마귀와 전쟁을 하는 것이라면 주님의 말씀은 우리에게 절대명령입니다.
(3) 마음에 새겨라
주님은 말씀은 단지 듣는 정도가 아니라 마치 조각을 하듯이 마음에 새겨져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교사인 여러분들은 이 말씀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어린 학생들을 가르치는 여러분들의 마음에 주님의 말씀이 새겨져 있습니까? 매일의 생활 속에서 마음에 새겨진 말씀을 따라 생활하십니까?
마.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1) 네 자녀에게
교사의 마음이 어떠해야 하는가? 하는 것은 이 말씀에 잘 나와 있습니다. 주일학교의 교사는 학생을 가르칠 때에 단지 학생이 아니라 자신의 자녀로 보아야 합니다. 만일 이 학생이 나의 아들이나 딸이라면 나는 무엇을 말할 것인가? 그리고 자녀는 항상 함께 살면서 부모의 모든 것을 보고 따르며 자라납니다. 그러므로 사실 가르침이라는 것은 부모가 자녀에게 행하는 모든 것이 가르침일 수 있습니다. 교사가 교회의 학생들에게 무엇을 말하고 가르칠 수 있습니까? 그것은 교사가 학생을 대하는 마음이 부모가 자녀를 대하는 마음으로 가르치는 것을 뜻합니다.
(2) 가르침의 정도는 어떠한가?
본문에서는 부지런히 가르치라고 했습니다. 그 부지런함을 표현할 때에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에 행할 때에든지 누웠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언제나 주님의 말씀을 강론하라고 했습니다. 강론하라는 것은 그 말씀을 이야기로서 서로 나누라는 것입니다. 뒤의 것은 더 말씀드리지 않겠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손목에 감아 하나의 사인(sign)으로 삼고 이마 사이에 표로 만들어 달고 집 문설주와 바깥문에 기록하라고 하는 것은 삶의 모든 정황 속에서 주님의 말씀과 함께 하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사실 오늘날의 의미로 보면 모든 그리스도인이 이와 같이 주님의 말씀이 삶의 모든 분야에 적용되는 그 친밀함 속에 살아야 함을 말합니다.
2. 쉐마와 라마의 뜻
가. 쉐마의 뜻
우리가 지금까지 살펴본 신명기 6장 4-9절의 말씀은 ‘이스라엘의 교육헌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향한 원리는 철저하게 ‘들으라’입니다. 이것을 히브리어로 ‘쉐마’(שמע)라고 합니다. 문법으로는 ‘히필(hipil)형’으로 능동사역형이 됩니다. 이것은 이스라엘로 하여금 듣게 하라는 것입니다. 사람이란 원죄를 짓고 난 이후에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가는 것을 근본적으로 즐겨 따라가려고 하지 않습니다. 쾌락과 이익이 있는 것을 따라가는 것을 좋아합니다. 그러므로 쉐마는 이스라엘 사람들로 하여금 주님의 말씀을 따라가도록 시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어떻게 철저히 해야 하는가? 하는 것이 앞서 말씀드린 내용입니다.
나. ‘라마’의 뜻
그런데 이스라엘의 교육법에는 쉐마와 정반대의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라마’ 라고 합니다. 일단 신약성경에는 헬라어로 ‘왜’ 라는 뜻을 ‘ινατι’ 라고 합니다. 히브리어로 라마는 ∽을 위하여 라는 뜻의 전치사로 ‘레’(ל) 가 있습니다.
거기에 ‘무엇’이란 뜻의 히브리어 ‘마’(מה)가 합성되어 ‘라마’(למה)가 된 것입니다. 영어로 하면 ‘what for’의 뜻이 됩니다.
우리는 이스라엘의 교육법이 암기를 위주로 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런데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물론 암송도 매우 중요합니다. 그런데 암송 이전에 그들은 ‘정말로 그러한가?’ ‘왜 그러한가?’ 하는 것을 철저히 토론합니다. 누가복음 2장 46절에 예수님이 12세 때에 예루살렘에 가셨을 때에 예수님은 랍비들에게 듣기도 하시고 묻기도 하셨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듣기도 하시고 묻기도 하셨다’는 말씀을 주목하십시오. 이것이 바로 ‘쉐마와 라마’의 교육입니다.
3. 교사의 사명
12세의 어린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의 랍비들에게 듣기도 하시고 묻기도 하시듯이 우리는 지금 자라나고 있는 작은 예수가 될 학생들에게 주님의 말씀을 가르치기도 하고 질문에 답을 해주기도 해야 합니다. 거기에 우리가 세상의 철학과 학문을 섞어서 이상한 말씀을 넣어주겠습니까? 그럴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교사 스스로가 먼저 하나님의 말씀에 철저하게 서고 주님의 말씀을 따라 세상을 살려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또한 우리 교사들은 교육을 할 때에 마치 나의 자녀에게 주님의 말씀을 교육한다는 심정으로 해야 할 것입니다. 이 일을 위하여 우리는 우리에게 얼마나 중대한 사명이 맡겨져 있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한 가지 우리가 우리 스스로를 비평하겠습니다. 지금 왜 한국 교회에서 젊은 사람들이 교회에서 자꾸 적어지고 있습니까? 교회가 이 교육에 대하여 소홀히 했기 때문입니다. 지금 한국교회는 이 부분에 대해서 혹독한 결과를 받고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이라도 미래를 위하여 우리는 교회의 교육에 헌신해야 합니다. 이 교회의 모든 교사와 성도는 자녀의 교육을 위하여 헌신하시기 바랍니다. 주께서 우리에게 사명을 주시고 그 사명을 이루어 나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Now&Here©유크digitalNEWS
글 조용선 선교사/ INUC 전문인 칼럼니스트/ GMS 선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