샬롬은 어떤 평화인가?
매우 구체적으로 가난한 자들, 억울한 자들을 돌보라는 교훈
샬롬은 어떤 평화인가? 하나님이 포로로 끌려간 땅에서 돌아온 유대인들에게 주는 평화다. 나라를 뺏기고, 자유를 뺏기고, 인권을 유린 당하고, 신앙의 자유를 뺏기고, 가족을 뺏기고, 언어를 뺏기고, 모든 것을 빼앗긴 데서 모든 것을 찾은 기쁨의 평화다.
[목양저널=오대환 목사] 샬롬은 어떤 평화인가? » 샬롬이라는 말은 히브리어로 평화라는 뜻을 가진 말이다. 헬라어인 70 인역을 작성하는 과정에서 히브리어 샬롬은 헬라어로는 25 가지 이상의 뜻으로 번역하였다고 전해진다. (70 인역은 70 명이 번역한 성경책이다. 히브리어로 되어 있는 구약 성경을 헬라어로 번역한 성경으로 BC 약 200 년 전에 작성되었다. 이스라엘 12 지파의 대표 72 인이 모여서 작성했는데 보통 70 인역이라 부른다. 당시 이스라엘은 예루살렘 성전을 중심으로 민족의 정통성과 신앙을 지켜왔지만 국가는 소멸되고 민족은 흩어져 여러 국가에 살고 있고 당시 헬라어를 쓰는 유대인이 많다 보니 히브리어 성경을 헬라어로 번역할 필요가 있어 70 인역본을 작성하였다)
샬롬은 70 인역에서도 다양하게 번역하였지만 오늘날에도 다양한 뜻으로 해석을 하고 있다. 평화, 평강, 정의, 질서, 조화 다섯 가지의 뜻이 있다고 하는 설명도 있다. 2 일전 영국 교회 협의회가 주최한 성지(이스라엘 지리) 세미나에서 강사가 마무리 말에서 “샬롬은 평화다” 라고 설명을 하였다. 강사는 히브리 대학에서 박사를 한 분이다. 히브리어 헬라어, 아람어 등 성경을 기록한 언어에 대해서 실력을 인정 받은 분이라고 소개를 받았다. 강의가 끝나고 질의 시간이 있었는데 아무도 질의를 하지 않아서 내가 질의를 하였다. 나는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평화가 무엇입니까 ?” 강사는 내 직설적인 질문에 대한 의도를 어느 정도 파악한 것 같았다.
보통 질의를 하는 경우는 정말 몰라서 묻는 경우와 자신에게 답이 있으면서 하고 싶은 말이 있는 경우다. 나는 후자의 경우에 해당했고 강사도 그것을 알고 논쟁을 하고 싶지 않다고 하였다. 내가 이런 질문을 하게 된 것은 바로 지난 주 내가 덴마크 한인교회 성도들을 상대로 설교를 할 때 성경 본문에 나오는 말에 “내가 이곳에 평강을 주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라는 구절이 나왔고 평강은 영어성경은 평강을 peace 라고 번역하고 있다. “내가 이곳에 평강을 주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라는 말이 나오게 된 배경이 있다.
이스라엘(정확하게 말하면 유대인)백성이 바벨론에 온 국민이 종으로 끌려간 지 70 년이 다되어 그 땅의 주인인 파샤(페르샤)의 왕이 이스라엘 백성이 자기 땅에 돌아가 성전을 다시 건축하라는 명령이 있었고 그 명령에 따라 이스라엘 백성들이 돌아와 성전을 건축 했을 때이다.
나는 설교를 준비할 때 왜 하나님이 성전 건축이 끝날 때를 기다려 너희에게 평화를 주겠다고 했는지 깊이 묵상하였다. 나름대로 깨달음이 있었고 우리 성도들과 은혜를 나누었다. 나도 그렇지만 평화는 전쟁의 반대 개념으로 생각하는 것이 일반적인 경향이다.
앞서 70 인역을 작성할 때 샬롬을 25 가지로 해석하였고, 다섯 가지로 요약해서 설명하였고, 강사도 샬롬을 말했지만 하나님께서 샬롬을 말한 참된 뜻을 이해하고 있는가 혹시 강사는 그 뜻을 내가 이해하고 있는 뜻으로 설명을 해 줄 수 있을까 해서 나는 단도직입적으로 평화가 무엇인가 하고 물은 것이다. 나는 한편으로 내게 시간을 준다면 내가 이해하고 있는 평화에 대해서 말하고 싶었다. 나는 오래전 나에게 교회사를 가르친 교수님과 대화를 할 기회가 있었는데 거의 항의 조로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교회사 책을 쓴 분들은 객관적 사실만 기록하지 말고(객관적이지도 않지만) 사실이 이러니 이렇게 살아야 한다는 말을 왜 안 하나…”
역사나 교회사를 단순한 지식을 심는 도구로 삼지 말고 시대를 개척해 나가는 교훈집으로 만들 수 있지 않습니까 라고 항의 하였다. 그 교수님은 나의 말도 안되는 항의에 대해서 “용기가 없어서지” 라고 우문 현답을 하셨다. 옆으로 샜지만 나는 강의 교수가 어차피 샬롬을 말했으면 일반 사람들이 이해하는 샬롬이 아닌 성경이 말하는 샬롬을 말했어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샬롬, 평화는 하나님이 포로로 끌려간 땅에서 돌아온 유대인들에게 주는 평화다. 나라를 뺏기고, 자유를 뺏기고, 인권을 유린 당하고, 신앙의 자유를 뺏기고, 가족을 뺏기고, 언어를 뺏기고, 모든 것을 빼앗긴 데서 모든 것을 찾은 기쁨의 평화다.
그러나 그 해석으론 부족하다. 이스라엘 백성이 왜 바벨론으로 끌려갔는가 들여다 보아야 한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수없이 반복적으로 “너희가 불순종하면 이민족에게 종으로 끌려갈 것이다” 라고 경고했다. 가장 많이 이스라엘 백성이 바벨론으로 끌려갈 것이다 라고 예언한 성경은 구약 선지서들이다.
구약성경에는 17 권의 선지서가 있고, 12 개를 소선지서, 5 개를 대선지서라고 하는데 이 선지서의 내용은 불 순종 하면 종으로 끌려갈 것이다. 그리고 돌아와 성전을 다시 지은 기록이다. 이사야서를 비롯한 대선지서의 내용에서 가장 강조한 것이 고아, 과부, 나그네를 돌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대소선지서의 가장 큰 교훈은 국가 사회의 약자들을 돌보라는 것이며, 그들을 돌보지 않은 것이 이스라엘이 포로로 끌려간 이유이며, 그렇게 해서 예루살렘 교회는 70 년 동안 황폐화 되었다가 70 년 후 하나님이 예루살렘 성전을 복원하도록 하시고, 그 성전의 완성이 된 즈음에 평화를 주시겠다고 하였다. 그럼으로 이스라엘은 돌아온 땅 복원된 교회의 사명은 평화인데, 그 평화는 가난하고, 소외되고, 억울한 자들을 돌보라는 하나님의 뜻에 귀결되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이스라엘 남북 조 모든 민족이 종으로 끌려간 것을 설명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평화는 전쟁의 반대 개념이나 자유나 인권이 아니라 매우 구체적으로 가난한 자들, 억울한 자들을 돌보라는 교훈이다. 교회가 서 있는 이유도 평화 샬롬인데, 그 샬롬은 여유 있는 사람들의 하이파이브가 아니라 가난한 자를 돌보는 것으로부터 출발해야 한다는 말이다. 이 말이 맞다 하면 오늘 교회가 어떤 모습으로 서 있어야 하는가에 대한 해답이 될 것이다. ◙ Now&Here©유크digitalNEWS
글 오대환 목사/ INUC 전문인 칼럼니스트/ 덴마크한인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