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석, 인문학을 말하다
[출판/서적] 김형석, 인문학을 말하다 »
김형석, 인문학을 말하다-그가 말하는 인문학은 어떤 방향도 없고 목적도 없으며 허공의 뜬구름처럼 생겼다가 사라지는 학문인가? 그렇지는 않다. 정확하게는 더 많은 사람의 인간다운 삶에 기여하는 것이라 싶다…
인문학의 역사를 더듬어보면 인문학의 과제는 다양하면서도 통일된 방향이 있었고, 주관적인 해석이 무한정으로 용납된 것은 아니다. 지나치게 추상적일 때는 과학적인 방법론이 계속 모색되었고, 고정되거나 주어진 목표는 없어도 통합된 하나의 방향과 이념은 존재했다.
인문학이 항상 그 역사성을 떠나지 않으며 진리와 진실에 대한 인식을 포기하지 않은 것은 학문으로서의 책임과 자부심을 견지해 왔기 때문이다. 언제나 역사적 고찰을 앞세우며 언어학 해석학 현상학 등이 꾸준히 연구되는 것도 그런 맥락에서였다. 주관성이 강하기 때문에 객관적 가치 추구를 지향했으며, 역사적 인과관계를 배제하지 않았던 것이다.
인문학적 자세는 다음 두 가지로 설명할 수 있다. 하나는 모든 사물을 관찰할 때 사실을 제대로 파악함으로써 진실을 찾고 그 근거에서 가치판단을 내리는 자세이다. 그것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사실을 전체적으로 관찰하지 못하고 근원적인 인과관계도 모르면서 가치판단을 내리는 것은 지성인의 자세가 아니다.
오래전 나 자신도 경부고속도로 건설을 반대했던 사람 중 하나였다. 야당 지도자들의 주장을 옹호했었다. 그러나 지금은 당시의 내 판단이 옳지 못했음을 뉘우치고 있다. 진실을 모르면서 가치판단을 내렸던 것이다.
얼마 전 야당 지도자들과 종교단체는 물론 일부 교수들까지 4대강 사업을 반대한다는 기사를 읽었다. 반대할 수 도 있고 찬성할 수도 있다. 그러나 사실을 직시하고 진실을 알고 난 뒤 판단한다면 그 판단은 고려와 수용의 대상이 된다. 그러나 무엇이 진실인지 모르면서 정치적 목적이나 이해관계 때문에 판단을 내린다면 그것은 지성인의 자세가 못 된다. 차라리 침묵을 지키는 것만 못하다.
다른 하나는 모든 사물을 판단할 때 절대적인 것은 없다는 자세를 갖는 것이다. 4대강 사업에서 이득을 얻는 쪽이 손해를 보는 쪽보다 많으면 그 선택은 수용될 수 있어야 한다. 4대강 문제는 구체적인 사안이기 때문에 어느 정도 객관적인 판단이 가능하고 그것이 지닌 진실도 객관적이다.
어떤 정책은 그것이 지닌 진실과 가치판단 기준이 모호한 경우가 있다. 그럴 때는 무엇을 기준으로 판단을 내리게 되는가. 인문학적 사유의 지향점이 무엇인가를 생각해 보는 것이다.
다행스러운 것은 인문학이 지향하는 바는 막연한 듯 싶으면서도 뚜렷하다. 그것은 인문학의 주체와 중심에 휴머니즘이 있기 때문이다. 휴머니티에 관한 사상을 연구하는 것이 인문학의 중심과제이다. 내가 재직하던 대학에서 연구지 인문과학(人文科學)〉을 발간했는데, 영어로는 ‘The Journal of Humanities’라고 표기했다. 바로 인간 중심의 학문이라는 의미이다.
그렇다면 인문학의 목표는 무엇인가, 더 많은 사람의 인간다운 삶에 기여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더 멀리 더 넓은 안목으로 그런 책임을 다하려는 노력이 인문학이 나아가야 할 방향이다. 인간에 목적을 둔 가치관이라는 뜻으로 이해하면 좋을 것 같다. ©아이앤유크저널
저자_김형석
1920년 평안남도 대동에서 태어났다. 일본 조치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하고, 연세대학교 철학과 교수, 시카고대학교와 하버드대학교의 연구 교수를 역임했다. 대한민국 1세대 철학자인 저자는 철학 연구에 대한 깊은 열정으로 많은 제자를 길러 냈으며, 평생 동안 학문 연구와 집필에 심혈을 기울였다.
1960~70년대에는 사색적이고 서정적인 문체로 《고독이라는 병》, 《영원과 사랑의 대화》 외 다수의 베스트셀러를 집필했으며, 건강한 신앙과 삶의 길을 제시한 《예수》, 《백 년을 살아보니》, 《선하고 아름다운 삶을 위하여》, 《왜 우리에게 기독교가 필요한가》, 《교회 밖 하나님 나라》 등도 많은 독자의 사랑을 받고 있다. 저자는 연세대학교 철학과 명예 교수로, 100세가 넘었음에도 방송과 강연, 집필 등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 ◙ Now&Here©유크digitalNEWS
출처: 그리스도인에게 왜 인문학이 필요한가?/ 김형석/ 두란노서원/ 2020, 30-33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