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받는 자의 형성 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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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주님이 인도하시는 대로 사는 것…
나는 젊었을 때 나는 나 스스로 인생을 사는 것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아니다. 나의 인생은 주님이 인도하시는 대로 사는 것이다. 나는 그것을 알았기에 오늘의 설교 제목을 구원받는 자의 형성과정이라고 한 것이다. 여러분은 주님께서 여러분의 인생을 인도하심을 느끼는가? 우리들 그리스도인의 삶은 주님이 미리 정하신 예정과 섭리하심 속에 진행된다. 믿어라. 정말 믿어라.
[교육저널=조용선 선교사] 구원받는 자의 형성 과정 » (행 20:24, 개역)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1장
8시간
나의 스승이신 최창업 목사님께서는 목사를 포함하여 하나님의 사람이 가는 인생길을 하루 8시간의 근무로 본다면 7시간은 어두움과 비바람과 고통과 슬픔의 시간이고 한 시간 정도 흐린 날 어둠 속에서 터져 나오는 빛을 볼 수 있는 것과 같다고 했다. 내가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을 보니 과연 그 말씀이 맞는 것 같고 대다수 진실한 하나님의 사람들이 살아가는 인생길이 그러한 것 같다.
2장
1절 공군참모총장
나는 1991년에 총신대학교 신학과와 신학대학원에서 7년 동안 공부하고 공군 목사가 되었다. 공군 목사로서의 삶은 너무 좋았다. 처음 부임한 곳은 전라북도 부안의 레이더 부대였다. 공군참모총장이 헬리콥터를 타고 오셔서 참모 회의를 했다. 나는 비록 중위계급이었지만 군종실장이기에 참모로서 회의에 참석했다. 총장께서 낮은 계급의 사람이 참석하니까 “자넨 누구인가?” 하고 물으셨다. 나는 “예 군종실장입니다.” 하고 대답했다. 그러자 대장계급의 총장께서 자세를 바르게 하시더니 “아, 목사님! 부대의 안전을 위해서 기도 많이 해주십시오.” 하는 것이었다. 놀라웠다. 그 총장님은 로마 가톨릭 신자였다. 그런데 개신교의 목사에게도 깍듯이 예의를 갖추셨다. 나중에 보니 공군의 문화가 다 그러했다. 나는 공군이 너무 좋았다.
2절 표면장력
1995년의 일이었다. 16전투비행단에서 레이더 관제대대를 위문하는데 중령 집사님이 레이더를 보더니 동해에서 전투기가 추락했다는 것이다. 나는 땅이 아니고 바다니까 조종사가 살 가능성이 더 있지 않느냐? 고 했더니 그 집사님이 나를 쳐다보면서 바다에는 표면장력이 있어서 비행기가 추락하면 땅과 마찬가지로 산산조각이 난다는 것이었다. 그 날 밤 12시가 넘은 시간에 비행단 교회를 나와 퇴근하면서 밤하늘의 별을 보며 나를 진짜 공군 목사가 되게 해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했다. 사실 그 동안은 공군 조종사에 대해서는 마음이 크게 가지 않았다. 왠지 교만한 것 같기도 했기 때문이다. 90년도 당시 육국 정보장교를 양육하는데 1억 원이 들었다. 그런데 공군 조종사는 4억 5천만 원이 든다. 그들이 타는 전투기는 당시 F-16이 5백억 원이었고 F-15인가 F-18은 1천억 원이었다.
3절 자살 충동
나는 그 이후로 당시 1년에 1만 5천 명씩 바뀌는 공군 병사들은 내게 달라고 주님께 기도드렸다. 나는 공군 목사들을 예리한 검처럼 벼릴 수 있도록 계획을 짰다. 그리고 공군장기 목사가 되어서 그것을 실천하려고 했다. 그런데 장기 목사가 되려면 돈을 바치란다. 나는 돈을 주면 설교를 할 수 없을 것이라고 했다. 결국 그 거절로 인해 나는 공군을 떠나야 했다. 그때 나는 자살할 생각을 했었다. 사람이 하고 싶은 일을 하지 못하게 될 때 정말 죽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하루는 마포대교를 건너는데 귀에서 핸들을 꺾으라는 소리가 계속 들렸다. 그때 그 소리를 따라 핸들을 돌렸다면 나는 아마 죽었거나 많은 상처를 입었을 것이다.
3장
1절 바람난 목사
공군을 제대한 후에 나는 여러 가지 일을 겪으면서 중국 선교사로 나가게 되었다. 그런데 후원을 하던 목사가 돈을 빌려 달란다. 돈을 빌려주지 않았더니 나중에는 후원을 중단했다. 나중에 알고 보았더니 어떤 교인 여자와 바람이 났는데 그 여자가 하도 낭비벽이 심해서 여기저기 돈을 빌렸다고 한다. 지금은 죽고 이 세상에 없다.
2절 분노와 두려움
나는 분노에 휩싸였다. 또 한편으로는 두려움에 사로잡혔다. 새벽 2시에 일어나 잠 못 이루고 고통과 번민에 사로잡혔다. 나는 하나님을 이해할 수 없었다. 분명히 성경 말씀을 보면 나는 하나님의 뜻을 따라 잘 행동한 것이었다. 그런데 왜 나는 이 세상의 삶에서 더욱더 힘들게 되고 이제는 먹고 사는 것조차 염려해야 하는 상황이 되어야 하는가? 나는 그 하나님을 이해할 수 없었다.
3절 비교적 괜찮은 목사
그런데 나중에 깨달은 것이 있었다. 그것은 공군을 떠날 때 하나님의 말씀대로 뇌물을 주지 않은 것으로 인해 공군 목사로서의 나의 인생 계획이 다 무너졌을 때 나는 속으로 “하나님을 절대적으로 믿을 필요는 없어. 사람들에게 비교적 좋은 목사라는 평판을 들으며 살면 되는 거야”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런 생각으로 선교사가 되었으니 정말 하나님이 계신다면 이런 사람을 선교사로 놔둘 수 있겠는가? 그럴 수 없다. 그러니까 생활비까지 다 끊어놓으신 것이다. 나는 나중에 그것을 알게 되었다.
4장
1절 하나님 살려주세요.
하루는 중국의 랴오닝성 선양시 랴오닝 대학에서 선양 남역으로 가는 길을 자전거로 가고 있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에도 많은 사람이 자전거를 타고 다녔다. 나 역시 자전거를 타고 다녔는데 사거리 도로에서 빨간 불이어서 멈춰 섰다. 그런데 이상하게 그 빨간 불이 나의 인생에 켜진 적신호와 같이 느껴졌다. 나는 자전거를 붙잡고 서서 그 빨간 불을 보며 하나님께 기도했다. “하나님, 살려주세요.” 불은 어느샌가 파란 불로 바뀌었고 나는 다시 자전거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이상하게 그때부터 나는 선교사로의 일을 더욱 더 많이 하게 되었다. 중국인 가정교회에서 지도자가 될 만한 사람들을 내게 보내 설교자로 양육해달라고 부탁해왔다. 나는 본격적으로 주님의 일을 했다.
2절 창밖의 어둠
내가 선교사로 변하게 된 사건이 하나 있었다. 선배 선교사가 내게 며칠 동안 성경 활용법을 가르치라고 해서 10시간 정도 기차를 타고 가야 하는 곳에 가서 가르치고 돌아왔다. 그런데 돌아오는 기차에서 새벽 4시에 깼다. 커피를 한 잔 타서 마시며 창밖을 보았다. 깜깜했다. 그런데 문득 그것이 현재 중국의 영적 상황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그 어두운 창밖을 내다보면서 만일 중국의 상황이 정말 어두운 것이라면 나의 삶을 드려 복음을 전하는 것도 가치 있는 일이라고 여겨졌다.
나중에 생각해보면 이 시간이 내가 중국 선교사로 거듭날 때였다. 선교사는 거듭나야 한다. 그것은 마치 세상 사람이 예수님을 믿고 거듭나듯이 선교사는 그가 속해 있는 민족과 나라와 땅에서 선교사로서 다시 거듭나야 한다. 나는 이것을 ‘선교적 중생’(Missionary regeneration)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내가 선교사를 양육해야 할 경우가 있으면 이것을 꼭 말해준다.
5장
1절 세 번 닫힌 철문
18년 동안 중국 땅에서 중국 선교사로 활동하던 일을 마쳐야 하는 일이 발생했다. 2018년 1월 8일 중국 안전부의 사람들이 와서 나를 체포했다. 나는 철문이 세 번 닫히는 곳으로 끌려갔다. 겁이 났다. 저 문을 다시 열고 돌아갈 수 있을까? 나는 복음을 박해하는 사회주의의 땅에서 나름 순교할 각오를 하고 있었다.
2절 사스(SARS)의 상황에서
2003년의 일이다. 당시 중국에 사스(SARS)가 유행했다. 내 집에서 1.4km 떨어진 곳의 베이쓰 병원에서 환자가 발생해 그 병원이 그대로 폐쇄되었다. 2km 떨어진 랴오닝 대학에서도 환자가 발생했다. 중국 기독교인들은 나에게 잠시 한국으로 돌아가 있으라고 했다. 잠시 피해야 하는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중국 기독교인들도 언제 감염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한국인 선교사가 그것을 피해 한국으로 돌아간다는 것은 올바른 행동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나는 그들과 함께 남아있기로 했다.
이것은 잘한 행동이었다. 나중에 중국인들은 나를 진심으로 그들의 목사로 알아주었다. 당시 나는 신앙이 좋아서 남았던 것이 아니다. 최소한 선교사라는 체면과 명예를 생각해서 떠나지 않았다. 그러나 그 일로 인해서 나는 선교사가 무엇인가? 하는 것을 깊이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고 서서히 순교를 각오하는 선교사로 나의 의식이 자라났다.
3절 한국식 이별
중국 안전부 사람들은 나에 대한 조사를 마치고 열 손가락의 지문을 다 채취했다. 그리고 열흘의 정리할 시간을 주었다. 나는 그 열흘의 시간 동안 중국인 지도자들을 마지막으로 가르쳤다. 어떤 날은 12시간을 가르쳤다. 그리고 2018년 1월 18일, 중국 선양의 타오씨엔 공항에서 배웅을 나온 중국인 형제자매들에게 “이것이 한국식 이별이오.”라는 말을 하고 땅바닥에 엎드려 큰절을 했다. 형제자매들도 나를 따라 땅바닥에서 큰절했다. 눈물이 쏟아졌다. 나는 일어나 어린아이처럼 소리 내어 엉엉 울면서 비행장 입구로 걸어 들어갔다.
나는 지금도 중국인 지도자가 내게 해준 한마디 말을 기억한다. 그것은 내가 검은 머리로 중국에 들어와 이제 흰머리가 되어 중국을 떠난다는 것이었다. 중국 기독교를 위해 청춘을 바친 것에 대해 깊은 감사를 표한다고 했다. 생각해보니 정말 그랬다. 30대의 젊은 나이에 중국에 들어와서 나는 약 20년의 세월을 바쳤다. 만일 중국 안전부가 나를 추방하지만 않았다면 나는 지금도 중국에 있을 것이다.
6장
1절 최후의 경고
한국으로 돌아온 나는 몇 달을 울었다. 사람들이 함께 있으면 웃으며 함께 있었지만 혼자 있게 되면 그냥 눈물이 났다. 중국어 복음성가를 듣거나 부르게 되면 참을 수 없었다. 그러나 그렇게 계속 있을 수는 없었다. 나는 한국에서 중국 선교를 위한 전략을 글로 써서 인터넷에 올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중국어 설교와 강의를 녹음하고 녹화하여 유튜브에 올렸다. 중국과 미국 등 아는 사람들에게 보내고 선교사들에게도 보냈다.
2020년 2월 28일 아침 8시 30분에 국제전화가 내게 걸려왔다. 나는 무심코 그 전화를 받았다. 그 전화를 받고 나는 심장이 얼어붙는 줄 알았다. 전화는 중국 안전부에서 온 것이었다. 내용은 나의 안건에 대해 최후로 경고한다는 것이었다. 두 번을 반복해서 말한 후에 전화가 끊겼다. 저들은 내가 한국에서 중국 선교를 위해 하는 행동들을 모두 알고 있었다. 정말 두려웠다. 내가 이 일을 계속할 경우 저들은 나를 해칠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뿐만 아니라 내 가족들도 함께 해코지를 받을 수 있다고 여겨졌다.
2절 눈물의 성찬
나는 주님께 기도했다. 5월 17일 주일날 나는 내 가족들에게 물었다. 부모가 선교사이기에 만일 자녀들이 그것으로 인해 생명을 잃는 일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받아들이겠는가? 하고 말이다. 나의 두 아들은 받아들이겠다고 했다. 그 응답을 받고 내 가족은 주님의 빵과 포도주를 먹고 마셨다. 2008년 중국에서 나는 북한 가족에게 몰래 세례를 주고 성찬을 거행했다. 그때도 울었다. 목숨을 걸고 세례를 받고 주님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는 자매와 그 딸을 보며 나는 세례와 성찬의 참된 감동을 할 수 있었다.
7장
1절 선배 선교사의 눈물
내가 중국에서 추방되었을 때에 나하고 이름이 비슷한 선배가 GMS 총회 세계선교회의 선교 총무를 담당하고 있었다. 나는 이분에게 선교보고서를 올렸다. 그런데 이 선배는 나의 보고서를 보고 울었단다. 왜 울었는지 나는 그 선배에게 묻지 않았다. 들리는 이야기로는 내가 18년 동안 중국 선교를 했는데 기독교 지도자 4명을 양성했다고 하니까 울었단다.
나는 다른 일도 했다. 북한 사람을 양육하여 세례를 주기도 했고 가정교회를 만들기도 했고 지하신학교 강의도 했고 대학생들도 양육했다. 그러나 선교사로서 내가 한 가장 중요한 일은 나와 같이 순교를 각오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 4명을 양육한 것이었다. 그 선배는 내가 보고한 그 말이 무엇인 줄 알기에 운 것이었다. 선교사가 무엇을 하는 것인 줄 후배인 내가 알고 있기에 운 것이었다.
2절 조직신학 공부
나는 그 선배에게 내가 쓰는 글들을 보내주었다. 그런데 하루는 내게 전화를 하더니 “조 선교사, 조직신학을 공부해라” 하는 것이었다. 원래 이 선배는 나를 선교 신학 박사로 만들려고 했다. 그런데 선교 신학 박사가 아니라 조직신학을 공부해야 한다고 여겼다. 나는 그 말을 듣고 직감했다. 그것은 내가 중국 선교를 하는 동안 알게 된 하나의 길이었다.
중국 선교에는 여러 가지 위험요소들이 있다. 그것을 피하며 선교하기 위해서는 마음이 영적으로 온전한 가운데 들려오는 소리를 듣고 그것을 따라가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것이 그 선배 선교사의 음성에서 느껴졌다. 나는 그것이 주님께서 내가 해야 할 일이라고 말씀하심을 느꼈다. 그래서 2021년에 총신대학교 일반대학원 조직신학 박사과정에 입학했다. 나는 원래 역사신학을 전공했다. 석사학위를 1997년에 받았다. 24년 동안 학위 공부가 없이 있다가 눈도 침침한 상태에서 공부를 시작했다. 그런데 재미있다. 엄청 재미있다. 하나님의 말씀을 깊이 있게 깨달아가는 것이 너무나 감사하고 재미있다.
8장 결론
1절 타협하지 마라.
나는 현재 여기까지 와있다. 이제 말씀을 맺으며 결론적인 것 몇 가지 말씀을 드린다. 첫째 내가 깨달은 것은 세상이 유혹하거나 협박할 때에 그것이 달콤하게 여겨지거나 두려워서 타협하지 말라는 것이다. 뇌물도 주지 말고 죽이겠다고 하면 그냥 죽을 생각을 해라. 나의 설교가 힘이 있는 것은 내가 돈을 주지도 않았고 협박이 있었어도 세상에 타협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타협하지 않아도 세상은 충분히 살 수 있다. 나는 중국 형제자매들에게 말했었다. 만일 네가 명문대학을 나왔는데 예수님을 믿는 것으로 인해 출세하지 못한다면 그냥 그대로 출세하지 마라. 길거리에서 과일 장사를 한다고 하더라도 그렇게 살아라. 그것이 하나님께 영광이다. 만일 모든 기독교인이 그렇게 한다면 이 세상은 빠른 속도로 뒤집어진다. 그런데 그렇게 하지 않으면서 기독교인이라고 하며 위선자로 있기 때문에 이 세상은 여전히 마귀가 공중의 권세를 잡고 있다.
2절 당신의 인생길과 주님이 주신 사명은 같은가? 다른가?
말씀에서 볼 것은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 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에서 첫째 우리가 가는 인생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이 같은지 다른지를 살펴보라는 것이다. 기독교인이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는 것이다. 그 영광을 위해 사는 것이 사실은 인생을 가장 행복하고 풍요롭게 한다. 나는 공군 목사일 때에 뇌물을 주었다면 아마 군종감이라고 하는 최고 지위까지 올라갔을 것이다. 그러나 천국은 가지 못한다. 그것은 내 양심이 안다. 나는 그 유혹을 거절했기에 세상에서는 이름이 없는 사람이 되었다. 그러나 나는 하나님께서 나의 이름을 기억해주는 사람이 되었다고 확신한다.
3. 배영: 예정과 섭리
끝으로 나는 젊었을 때 나는 나 스스로 인생을 사는 것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아니다. 나의 인생은 주님이 인도하시는 대로 사는 것이다. 나는 그것을 알았기에 오늘의 설교 제목을 구원받는 자의 형성과정이라고 한 것이다. 여러분은 주님께서 여러분의 인생을 인도하심을 느끼는가? 우리들 그리스도인의 삶은 주님이 미리 정하신 예정과 섭리하심 속에 진행된다. 믿어라. 정말 믿어라.
나는 수영에서 배영을 못했었다. 도무지 믿어지지 않았다. 어떻게 가만히 있는데 몸이 뜰까? 개구리헤엄도 익혔고 속도는 안 나도 자유형도 한다. 그런데 도무지 물에서 아무것도 안 하고 있는데 뜬다는 것이 잘 믿어지지 않았다. 많은 기독교인이 나와 같이 생각할 것이다. 믿는다고 하는데 배영은 못하고 스스로 손과 발을 저어 나아가는 자유형, 버터플라이 형 등등 그런 것만 하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거참 피곤하다. 에너지도 많이 쓴다. 그런데 배영을 알면 ‘널널’ 해진다.
뭐 지금도 배영을 잘 아는 것이 아니라 이제 가만히 있어도 뜬다는 것을 알게 된 정도이다. 우리가 모두 믿고 주님의 예정과 섭리 속에서 은혜와 평안을 정말 느끼는 그런 삶이 되기를 바란다. ©아이앤유크저널
(행 20:24, 개역)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행 20:24, NKJV) “But none of these things move me; nor do I count my life dear to myself, so that I may finish my race with joy, and the ministry which I received from the Lord Jesus, to testify to the gospel of the grace of God.
我却不以性命为念,也不看为宝贵,只要行完我的路程,成就我从主耶稣所领受的职事,证明神恩惠的福音。
글 조용선 선교사/ 본지 칼럼니스트/ GMS 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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