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적 시 읽기의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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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제대로 읽기 위해 ‘이 강을 건너가겠다’ 의지가 필요할수도
좋은 전망을 위해 얻기 위해, 그리고 그 전망을 마음껏 즐기는 사치를 누리기 위해선 다소 험준하고 높은 곳에 오르는 수고를 마다해서는 안 됩니다. 인문학의 장르 중 가장 험하고 고도감이 높아 사람들이 쉽게 오를 수 없는 분야가 바로 시와 철학일 겁니다. 시와 철학은, 오르기만 하면 그래서 그 고도감에 적응하기만 하면, 시인과 철학자 자신의 삶뿐만 아니라 우리 삶의 거의 모든 것을 조망할 수 있는 시야를 제공하는 빼어난 산과 같습니다. 또한 이런 비유가 적절하다면 수많은 시인과 철학자들은 각각 하나의 봉우리에 견줄 수도 있을 겁니다. – [ 책 내용 중에서]
[북스저널=정이신 목사] 철학적 시 읽기의 즐거움 » 철학적 시 읽기의 즐거움 | 강신주 지음 | 출판사: 동녘 » 총 21편의 시(21명의 시인)와 <강신주>가 생각해낸 철학자들을 엮은 책 » 제가 처음 완독했던 시집이, 대학교 2학년 때 읽었던 <박인환>의《목마와 숙녀》였습니다. 그 책을 읽고 대체 무슨 말인지 도무지 알 수 없어서, ‘왜 이렇게 글을 써야 하는지 모르겠다’라고 노트에 끄적였었습니다. 지금이야 <박인환>이 말하고자 했던 게 뭔지 어렴풋하게나마 알지만, 당시에는 시집을 읽고 그가 말하는 게 뭔지 알아내기 힘들었습니다.
군에 사병으로 입대한 후 졸병의 외로움에 시를 알게 됐고, 노트에 다른 사람이 볼세라 두려움을 간직한 채, 군인으로서 저의 생각을 ‘시도 아닌 시’로 기록했었습니다. 그래서 책에 나온 <강신주>의 말이 가슴 깊이 다가옵니다. 그의 말처럼 오르기만 한다면, 고도가 주는 높고 아찔한 현기증에 적응만 한다면, 시와 철학은 삶을 새롭게 바라보는 지평을 열어주는 값진 보석이 됩니다. 그러나 이 산봉우리에 오르지 못하고, 현기증으로 멀미하며 도중에 내려간 이들도 꽤 많습니다.
시에는 주관적이고 함축적인 표현이 많습니다. 그래서 시를 제대로 읽으려면 시가 말하는 낯선 이미지가 뭘 의미하는지 헤아려야 합니다. 또 그 시를 썼을 때 시인이 어떤 마음이었는지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시의 이런 서술방법은 철학도 결단코 밀리지 않습니다. 철학은 ‘철학자의 주관’이라 불리는 개념을 논리적으로 서술한 추상적인 용어들이 곳곳에 지뢰처럼 숨어 있습니다. 따라서 철학 용어를 읽고 철학자와 그가 본 세계의 어떤 모습을 논리적으로 서술하려 했던 것인지 찾아내지 못하면, 철학이 비문법적인 말들을 끝없이 나열한 암호문으로 보입니다.

이런 면에서 시인과 철학자는 일반적인 인간에게 친숙하지 않은, 원초적으로 낯선 세계를 표현하는 사람입니다. 그들이 사는 세계도 분명히 사람이 사는 세상입니다. 그렇지만 ‘낯설게 하기’와 ‘사유 의식의 뿌리 탐험’을 통해 시와 철학은 새로운 느낌과 절벽 같은 위험이 가득한 세계로 우리를 이끕니다. <강신주>는 이런 면에서 시와 철학이 맞닿아 연결된 부분을 찾아냈습니다.
책을 다 읽으려면 <루드비히 비트겐슈타인(Ludwig Wittgenstein)>의 말처럼 ‘의지의 문제’가 먼저 다가올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책을 제대로 읽기 위해서는 시와 철학이 만나 향연을 벌인 미지의 세계를 먼저 이해하려고 하지 말고, ‘이 강을 건너가겠다’라고 나의 의지를 표방하는 게 더 낫습니다. 모두 21편의 시가 수록돼 있으니 하루에 한 편씩 건너다보면, 채 한 달도 다 되지 않아 강 건너편으로 건너가 있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21명의 시인과 <강신주>가 중매 선 철학자들의 궁합에 대해서는 동의하지 않아도 됩니다. 예를 들어 강신주는 <정현종>과 <메를로 퐁티(Merleau Ponty)>를 엮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문둥이라는 몸’으로 말하고 살았던 <한하운>과 <퐁티>를 맺어주고 싶습니다. 그는 한센병에 걸린 사람을 <조르조 아감벤(Giorgio Agamben)>이 말한 ‘호모 사케르(homo sacer: 사람들이 범죄자로 판정해 살해하는 건 가능해도, 희생제물로까지 바치는 건 허용하지 않는 존재)’로 해석했습니다. 그렇지만 ‘문둥이는 문둥이라는 그의 몸이 곧 사유방식’이 되기에, <퐁티>로 <한하운>의 시를 읽는 게 더 나을 수도 있습니다.
글 정이신 목사/ 아나돗학교 및 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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