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방기독교의 오해와 진실 (1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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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방기독교의 오해와 진실
동방기독교의 오해와 진실 <1회> » 고대 기독교 역사탐험가이자 광신대 Silk Road 고대 기독교 연구소 소장 및 유물관 관장인 김규동 박사가 역사 속에 묻혀버린 동방 기독교라 일컫는 네스토리우스파의 실크로드 지역 유적과 문헌 자료 등을 수집하고 분석해 온 가운데 방대한 작업을 통해 얻게 된 소중한 정보들을 특별기고로 연재하게 된다. 독자들의 많은 관심과 구독을 기대한다. (편집자 주)

(1) 동방기독교의 주축, 토대가 된 네스토리우스는 431년 에베소 공의회에서 이단으로 정죄되었다. 이에 대해 신학교에서는 보통 3차 공의회의 결과만 가르치고 무시되어 왔다. 이에 대한 평가를 어떻게 보는가? 그리고 기독교 역사에서 네스토리안에 대한 신학적 판단은 어떻게 진행되었는가?
앞서 언급된 질문은 그동안 신학교에서 배워왔던 고대 기독교사의 일부이다. 다만 이에 대한 질문에 현대 복음주의 신학자들의 입장이 여전히 각기 다른 온도차를 보이고 있고, 좀처럼 해결하려는 의지나 실마리조차도 없이 강단에서 학자 나름대로의 소신에 의한 정의가 내려지고 결말 지어졌다.
말하자면, 네스토리우스의 이단설에 관한, 신학적 재검토와 논란에 대한 정확한 대답이 없었다. 물론 네스토리아니즘(Nestorianism)은 당시 서방교회 즉 오늘날의 로마가톨릭에 의해 이단으로 규정된 것이 일반적 사실이다.
그러나 그 점에 대한 반론이 끝없이 제기되어왔으며, 이러한 네스토리아니즘이 갖는 기독교 교리 상의 오류를 살펴보고 반론을 검토, 수정 보완이 꼭 필요한 일이다. 또한, 한걸음 더 나가서 네스토리우스가 파문된 과정의 전모를 밝혀 그에 대한 올바른 견해를 갖는 것 역시 의미 있는 일이다.
이에 대해, 필자는 그동안 실크로드 선교 현장에서 자연스럽게 좀 더 확실한 해답을 찾고자 했고, 조심스러우면서도 흥미로운 결론을 얻을 수 있었다.
1. 서방교회는 비성경적인 방법(정치적)으로 상대방인 동방교회의 네스토리우스를 이단으로 정죄했다.
“사람의 모든 악에 관하여 또한 모든 죄에 관하여는 한 증인으로만 정할 것이 아니요 두 증인의 입으로나 또는 세 증인의 입으로 그 사건을 확정할 것이며 만일 위증하는 자가 있어 어떤 사람이 악을 행하였다고 말하면 그 논쟁하는 쌍방이 같이 하나님 앞에 나아가 그 당시의 제사장과 재판장 앞에 설 것이요 재판장은 자세히 조사하여 그 증인이 거짓 증거 하여 그 형제를 거짓으로 모함한 것이 판명되면 그가 그의 형제에게 행하려고 꾀한 그대로 그에게 행하여 너희 중에서 악을 제하라 그리하면 그 남은 자들이 듣고 두려워하여 다시는 그런 악을 너희 중에서 행하지 아니하리라” (신명기 19장 15~20)
에베소 공의회는 말씀에 기인하지 않고 성급한 판단을 내리게 되었다.(일명 도적회의) 회의는 항상 쌍방이 서로 얼굴을 맞대고 결과에 도달해야 하고, 증인을 세워 확실한 증거를 채택하여 결과를 돌출해야 하는데 당시 서방교회는 날치기식으로 회의를 통과시켰다. 이 사건이야말로 기독교사의 희대의 사건임이 틀림없다.
2. 마틴 루터(Martin Luther)의 입장을 들어보자.

마틴 루터도 네스토리안주의가 정통 기독교 교리와 큰 차이가 없다고 보았다1. 1539년 종교개혁 당시 그는 종교회의 및 교회론(1539)에서 네스토리우스가 이단이 아님을 명확히 밝히며, 여러 방면에서 그를 변호하며 말하기를 “네스토리우스는 신학 적으로나 교리적으로 결코 파문의 이유가 없다” 2 했다.
또한, 당시 신학적 이론의 대립은 결국 정치적인 권력대립으로 인한 것이기에 네스토리우스를 이단이 아닌 기독교의 새로운 교파의 견해로 받아들여야 할 것이라며, 에베소 공의회의 부당한 처사에 대해서 환멸을 표명했다. 로마가톨릭 신학의 관점으로 보았을 때, 네스토리우스는 확실히 이단이다. 마찬가지로, 현대 기독교 교회를 바라보는 그들의 관점 역시 같은 맥락으로 이해되어야 할 것이다.
3. 451년 칼케톤 공의회에서는 네스토리우스의 학설에 손을 들어줬다.
451년 칼케돈 공의회에서 네스토리우스의 학설인 신인양성설이 승인되고 키릴이 주장한 신인단성설이 배척되는 결의가 있었음에도 아직까지도 네스토리우스를 이단으로 여기는 것은 또 무엇인가? “네스토리우스는 알렉산드리아 학파와 안디옥 학파의 타협을 성립시키고 평화를 유지시키기 위한 희생양에 불과하다”3.
4. 서방교회와 동방교회의 비교
이를 토대로 “키릴과 당시의 서방교회”의 신학을 살펴보면 오늘날의 로마 가톨릭 신학의 원형이 분명하다. 네스토리우스 이단 판명은 곧, 로마 가톨릭 신학으로 인해 정죄 된 것이다,
5. 당시 당사자들 간의 분쟁 종식이 이미 이뤄졌는데도, 아직 개신교는 이러한 역사적 사실조차도 인지하지 못하고 과거의 사건에 매여 있다.

1994년에 동방 아시리아교(Assyrian of the East)와 로마 가톨릭 사이에 공동협의4가 이루어졌다. 이 회의를 통해 양자 간의 역사적 기독론 분쟁의 오해를 종식시키게 되었다.
이날 로마 가톨릭은 과거 에베소 공의회의 판결을 철저히 부인하고, 네스토리우스의 기독론인 마리아에 대한 칭호로 “우리의 하나님 구세주 그리스도의 어머니(the Mother of Christ our God and Savior)”와 그리스도의 어머니(Mother of Christ)를 인정하고 지지했다. 이로 인해 동방기독교는 마침내 이단이라는 비난과 오해에서 벗어났다.
6. 네스토리우스의 역작 발견과 해석 그의 기독론 입장
1910년 시리아의 주교 Paul Bedjan에 의해 네스토리우스의 생전 시리아 번역본인 역작 “헤라클레이데스의 거리(The Bazaar of Heracleides)”5가 발간되었다. 이를 통해 그의 생전의 신학사상이 학자들 사이에 폭넓게 연구되기 시작되었다.
헤라클레이데스의 거리에 나타난 네스토리우스의 기독론
(Nestorius’ Christianism in The bazaar of Heracleides)
기독론에 관한 논쟁은 네스토리우스(Nestorius)가 주장하는 것이 무엇인지, 또 무엇을 반대하는지? G. R. Driver와 Leonard Hodgson의 헤라클레이데스의 거리(The Bazaar of Heracleides)를 통해 다음과 같은 6가지의 “반대”와 3가지의 “주장”을 정리하였다6.
✚ 6가지 반대
1.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의 연합은 외적인 창조자의 의지를 통한 양성(두 개의 성)의 결합된 자연적 조합을 반대한다.
2. 성육신(Incarnation)으로 변화되어 그리스도의 신성이 인성에 들어가는 것을 통해 나타나는 것을 반대한다. 반대로 양성(two persons)의 결합으로 인해 제3의 위격(prosopa)이 나타나는 것을 반대한다.
3.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으로 임재하는 방식으로 성도 안에 직접 임재 할 수 있다는 것을 반대한다.(죄인 된 성도는 오직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임재가 가능하다)
4. 그리스도의 신성이나 인성이 허구(Fictitious)이거나, 상상(Phantasmal)적인 것, 그리고 진실되지 않은 것을 반대한다.
5. 성육신(Incarnation)이 신성의 변화를 포함하고 있다는 것을 반대한다. 신성한 말씀(Logos)의 어떤 부분에 고통이 있다는 것을 반대한다. 왜냐하면, 말씀의 신 성은 무통감성(無痛感性)이라고 주장한다(Impassible).
6. 한 분 그리스도 안에서 양성(two persons)의 결합은 이중적 아들의 신분을 포함 한다는 것을 반대한다.
✙ 3가지 주장
7. 그는 신성과 인성의 결합은 자발적인 것이라 주장한다.
8. 연합의 원칙은 신성과 인성의 위격에서 찾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 두 개의 위격이 그리스도 성육신의 하나의 위격과 연합한다.
9. 이러한 관점이야말로 진정한 성육신의 교리라고 주장한다. 이런 관점은 믿음을 통해 진정한 구원에 이를 수 있고, 교회 성례(Sacrament)의 기본적 교리를 제공해 준다고 주장한다.
이상은 헤라클레이데스의 거리(The Bazaar of Heracleides)에 언급된 9가지 관점을 통해 네스토리우스의 성육신 사상이 정통 기독교 신앙을 따른 것으로, 자신 스스로가 네스토리주의를 만들었다는 오명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2) 불교의 심벌인 만(卍) 자가 경교(景敎)에서도 사용되었다. 만(卍)자가 불교 용어인가? 아니면 이에 대한 바른 해석은 어떻게 할 수 있는가? 경교의 만(卍)자는 어떤 의미를 내포하는가?

그동안 고대기독교 “경교”에 관련된 부정확한 편견들에 대해 고고학적 입장에서 좀 더 쉽게 이해를 돕고자 한다. 경교(景敎)의 “景”은 “비추다”라는 뜻으로 “널리 두루 비추는 종교” 즉, 동서남북 창조주의 섭리를 두루 선포하고 전파하는 동방교회의 사명을 그대로 반영한 명칭이다. 그래서 경교비 원문 서두 부분에 나타난 “判十字以定四方”을 직역하면 “동서남북 사방을 나누어 정했고”, 즉, 엘로힘 하나님의 천지창조에 이어, 지면을 동서남북으로 정했다는 창세기의 내용에 근거한 내용인 것이다. 특히 이 기호는 그들이 소유하고 다녔던 신앙인의 표식인 청동 십자가에 자주 등장하는 “卍✥✣✜✚∇□○❮❯∧∨⊢⊣⊤⊥”이 자주 등장하는데, 이것은 고대 어느 특정 종교의 심벌이 아닌 문화, 예술, 종교 등 석기시대부터 이미 자주 사용되어온 “빛”과 “동서남북” 방향을 가르키는 상징적인 표현이다. 이렇듯 자칫 지금의 안목으로 고대사를 평가한다는 건 참으로 위험스런 일이다.
당태종이 페르시아로부터 전래해 들어온 동방교회에 “경교”란 칭호를 하사한 것은 동방교회가 그동안 실크로드 상에서 얼마나 헌신적인 사역을 해왔는가에 대해 여실히 보여주는 대목이다. 그들은 “복음과 의술”을 민간에 베풀어 주변국에서 명성이 자자했던 것으로 파악된다. 즉 빛과 소금의 사명을 잘 감당했던 소문이 당나라 수도 장안성의 태종의 귀에까지 들려 온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고대 동방기독교는 안디옥교회의 전통과 사명을 이어받아 복음전파를 최우선 사명으로 받아 고대부터 자연스럽게 이 로고를 사용했으며, 7세기 이후부터 시작된 이슬람의 팽창과 이단&사이비 사이에서 자신들의 신앙의 정체성을 수호하기 위한 증표로 사용했다.
(3) 학계에서 자주 들먹이는 ‘네스토리우스파’라는 명칭은 옳은 것인가?
‘네스토리우스파’란 ‘네스토리우스’를 이단교주로 여기며 그의 가르침을 따르는 세력을 두고 칭하는 경멸적인 뜻을 가지고 있다. 그럼 누가 이런 칭호를 붙여 사용하기 시작했는가? 즉, 로마가톨릭 진영에서 비롯된 것이다. 앞으로 우리가 이 교파를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시리아, 걸프만, 페르시아, 중앙아시아와 중국 등지를 선교한 ‘동방교회’로 부르는 것이 정확하다. 다만 ‘경교’라고 칭할 때는 당대(635-907) 활동했던 ‘동방기독교’를 두고 말함이요, 전체적인 틀을 두고 말하자면 ‘동방기독교(동방교회)’로 통칭하여 사용함이 맞다 여겨진다.
그럼 왜 네스토리우스의 추종자들은 ‘네스토리우스파’라고 불리는 걸 달갑게 여기지 않는가? 이유는 네스토리우스가 생전에 시리아어를 전혀 알지 못했으며, 시리아 교회와도 실제적인 관련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자신들을 ‘동방교회(The Church of East)’ 혹은 ‘아시리아 동방교회(The Assyrian Church)’라고 불리기를 원한다”라고 밝히고 중국 경교와 관련된 네스토리우스파 교회에 대한 기존의 선입견을 재고할 것을 요청하고 있다.
“‘네스토리우스파’란 명칭은 중국을 선교한 ‘동방교회’가 이단이라는 선입관을 주어 중국의 경교마져도 폄하하는 관점에서 평가하기 쉽다.”
이 같은 견해에 비추어 보아서라도 앞으로 학계는 천년의 세월 동안 전체 아시아권을 상대로 선교한 ‘동방교회’를 ‘네스토리우스파’로 칭하며 연관짓는 우를 범해서는 안될 것이다. 이번 기회에 이에 대한 그릇된 오해와 선입관이 교정되기를 바란다.
<각주>
1. Martin Luther on Nestorius and Eutyches in On the Councils and the Church (1539) (Luther: Von den Konzilli und Kirchen). 종교회의에도 잘못이 있을 수 있다.
2. 佐伯好郎,(景教の研究), 東方文化學院东京研究所, 1935. p.275-285.
3. Bethune Baker, (Nestorius and his Teaching), Cambridge Press University, 1908, p.122,175,207.
4. 기독론을 둘러싼 네스토리우스 논쟁으로 갈라서 있던 로마가톨릭 교회와 동방 아시리아 정교회(The Assyrian Church of The East: ACOE)는 1994년 11월 11일 바티칸에서 당시 양 교회 수장인 교황 요한 바오로 2세(Pope John Paul II)와 마르 딘카 4세(Mar Dinkha Ⅳ) 총대주교가 ‘기독론에 관한 공동합의문(Common Christological Declaration Between the Catholic Church and the Assyrian Church of The East)’에 조인하면서 1600년 만에 두 교회가 화해를 했다.
5. 1889년에 발견, 1897년 Heinrich. Goussen(1863-1927)이 로마로 가져와 알렸고, 1910년 Paul. Bedjan이 고대 시리아어로 출판했다. 1925년 G. R. Driver와 Leonard Hodgson에 의해 영문으로 발간됨. Nestorius, (The bazaar of Heracleides), newly translated from the Syriac and edited with an introduction, notes & appendices by G. R. Driver and Leonard Hodgson, New York, AMS Press, 1978
6. Nestorius, (The Bazaar of Heracleides), xxxii.
저자 김 규 동 Ph.D.
Silk Road 고대기독교 연구소 소장, Silk Road 고대기독교 유물관 관장, 광신대학교 초빙교수, 中國 사이비&이단 대책 연구소 소장, 고대기독교 역사탐험가, GMS/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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