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베르 쉬르 오아즈(Auvers-Sur-Oise)-고흐를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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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생명은 짧았다. 하지만 예술은 길다.
오베르 수르 오아즈를 떠날 무렵 비가 뿌렸다. 마을 입구에 흐르는 강, 다리를 그렸던 장소에 안내판이 서 있다. 그저 평범하기 짝이 없는 모델을 대상으로 작품을 남겼지만, 그의 시선이 닿았던 곳, 그의 손길로 남겨진 그림들은 하나같이 없어서는 안 될 세기의 명소가 됐고, 명작이 됐다.
[에디토리알=이창배 목사] 오베르 쉬르 오아즈(Auvers-Sur-Oise)-고흐를 만나다 » 지나는 가녀린 바람에 잎새가 파르르 떤다. 마주 본 두 잎새의 대화가 그렇게 시작이 된다. 살포시 수줍은 듯, 하고픈 말은 많은 데 다 할 수 없다. 잠깐의 바람이 지나간 뒤 이윽고 침묵이 다가온다. 떨리던 몸도 차츰 진정이 된다. 아쉽다. 조금 더 할 말이 남았을 텐데 바람은 왜 지났는가. 다시 불어와 주기를 바라는 마음, 그 마음이 저마다의 잎새 가득히 아쉬움을 담아내는 이른 아침이다.
한여름의 아침이라고는 너무도 선선한 8월의 첫날이 아닌가. 모처럼 회색 구름 사이를 뚫고 햇살이 비쳐온다. 어제 무섭게 쏟아져 내리던 장대비도 무색하게 투명하게 쏟아져 들어오는 아침 햇살에 온몸이 사르르 녹아든다. 날마다 이런 아침을 맞이했으면 좋겠다.
두 손을 어깨 위로 쫙 뻗고 크게 기지개를 켜본다. 왜 이리 움츠러들었을까? 그러고 보면 최근에 한껏 두 팔을 들어 올리고 기지개를 켜 본적이 언제인지 가물거린다. 허 참, 기지개 한번 켜 보지도 못하고 살았구먼 하는 씁쓰레한 생각이 올라온다. 그래도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지금 건강을 회복한 일이 보통 일은 아닐 텐데, 괜한 허사를 부리는 것만 같다. 참 감사하다. 몸이 다른 아무 느낌도 없이 편하다는 것이 이렇게 좋은 것을 왜 미처 몰랐을까?
지난달에는 모처럼 가족과 함께 여름 여행을 인근 프랑스로 다녀왔다. 멀게는 전설의 섬 몽생미셸(le mont-saint-michel)에서 시작해 영화 남과 여의 무대인 도빌(deauville)을 거쳐서 모네가 사랑했던 코끼리 바위가 있는 해변마을 에트르타(etretat)를 보고, 고흐가 생애 마지막을 보낸 오베르 쉬르 오아즈(auvers-sur-oise)를 둘러보았다. 고흐 형제의 무덤과 그 가까운 곳의 밀밭, 작품의 무대가 되는 황량한 벌판의 한 가운데를 가보았다. 가난하고 배고팠던 그래서 더욱 비쩍 말라 뼈만 남은 듯한 고흐의 동상을 보면서 마음이 아팠다. 아마도 걷기조차 힘이 들었을 기진맥진한 체력에 무거운 화구를 등에 걸머메고 걸었을 동네의 이곳저곳을, 그리고 교회당을 따라 비탈길을 오르며 밀밭이 펼쳐진 산등성에 오르기까지 그는 얼마나 힘이 들었을까 생각해 봤다.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
문득 지난해 갑작스레 탈진과 함께 찾아온 자가면역 결핍의 병세로 인해 걷는 것이 얼마나 힘이 들었는지를 경험해 봤던 일이 생각이 났다. 그때 완전히 체력이 고갈되어서인지 열 걸음 걷기가 얼마나 힘이 들던지, 몇 발짝 걷고 숨을 몰아쉬고 또 걷던 그때가 겹쳐졌다. 당시로는 무명의 화가로, 한 끼니 음식조차 제대로 먹을 수 없었던 지독한 배고픔과 삶의 비애가 한꺼번에 폭발이나 되듯 그의 작품에는 갈가리 찢기는 듯한 숱한 파편 조각마냥 그렇게 물감을 찍어댔던 것은 아닐지 마음이 아렸다. 하지만 그의 예술에 대한 열정만큼은 누가 따를 수 있을까 싶다.
그는 생애에 남아있는 한 움큼의 힘까지 모조리 작품에 쏟아부었고, 그의 생명은 짧았다. 하지만 예술은 길다. 그 후로 빛을 본 고흐의 작품, 정작 본인은 단 한 순간도 누려보지 못했던 최고의 가치를 인정받는다. 참기 어려운 아이러니가 아니고 또 무언가? 이러려고 그는 화가의 길을 걸었던 것일까?
지금 걷는 나의 길이 또한 그럴까, 우습지만 그건 아니다. 비교의 대상도 아니다. 오베르 수르 오아즈를 떠날 무렵 비가 뿌렸다. 마을 입구에 흐르는 강, 다리를 그렸던 장소에 안내판이 서 있다. 그저 평범하기 짝이 없는 모델을 대상으로 작품을 남겼지만, 그의 시선이 닿았던 곳, 그의 손길로 남겨진 그림들은 하나같이 없어서는 안 될 세기의 명소가 됐고, 명작이 됐다. 예술의 힘은 지대한 것이다.
그길로 복잡한 교통체증을 뚫고 파리 시내로 들어와 오르세 미술관을 찾았다. 세계적인 작품들이 전시되어 항상 찾는 이들의 발걸음이 끊이질 않는 미술관에 웬일인지 이날 따라 그다지 기다리는 시간도 없이 입장했다. 그리고는 곧장 인상파 화가들의 작품이 전시된 5층을 찾았다. 고흐의 실제 작품을 보기 위해서였다. 역시 예상했던 대로 수많은 사람이 몰려있다. 사진 찍을 공간조차 찾기 어렵다. 그나마 잠깐의 틈새에 사진 찍을 수 있는 것도 다행이다. 한 작품, 한 작품을 대할 때마다 마치 물감이 살아있는 것처럼 생생한 색감을 발산해 왔다. 밝은 빛이던지, 어두운 빛이던지 그의 눈에 잡힌 빛은 바로 물감으로 재구성되었고, 해석되었다. 경이로움이 내 온 영혼을 사로잡는 듯한 충격과 감동을 맛보았다.
해바라기인가 주 바라기인가?
한때 복음의 열정에 불탔던 젊은 목사, 고흐의 신앙은 어디로 가고 말았는가? 탄광촌 그 가난한 마을의 목사로 목회에 정열을 쏟았던 그가 왜 돌연 목회의 길을 접고, 화가의 길로 들어섰을까? 급작스레 바뀐 그 인생의 항로로 말미암아 그가 겪은 수많은 시행착오와 인간적 갈등과 좌절, 극한 가난에 몰리는 절망에 이르기까지 말로는 다 할 수 없는 이야기를 담았을까? 비록 오르세미술관에서는 볼 수 없었지만, 고흐의 대표적 작품인 해바라기를 떠올렸다. 꺾여지고 비틀어진 해바라기가 황금색의 찬연한 아름다움을 거부하고 초라하고 비루하게 화병에 꽂혀있다.
노란색의 바닥 그리고 역시 자신의 이름 빈센트를 써놓은 옅은 노란색의 화병, 그 어떤 하나에도 부티가 나는 것은 없다. 말년의 자신을 생각한 것인지 한창 영화를 꽃피우고 시들어가는, 아니 이미 시커멓게 죽은 해바라기까지 마구 헝클어지게 꽂아놓은 정물화를 그렸다. 누군가가 했다면 지독히 실력이 없는 꽃꽂이이다. 원 그렇게도 볼품없이 꽃을 꽂아놓았을까?
이 꽃을 꽂은 누군가가 궁금하다. 그 손길의 주인이 자신이라면 빈센트라는 화병에 꽂힌 해바라기는 모두 하나님을 등진 채 자기 멋대로 피었다가 끝내 시들고 비참하게 죽어가는 자신의 삶을 표현하고자 한 것은 아닐까, 아마도 자신의 모습을 그렇게 담아 보려 했던가 싶다. 빼빼 메말라버린 자기 영혼의 실존을, 그 갈증을 그렇게 남긴 것만 같다는 생각에 왠지 마음이 숙연해진다. 비록 지금 세계 최고의 작품으로, 최고가를 기록한다고 할지라도 그렇다. 한 사람의 짧은 생애에 담긴 극과 극을 달리하는 이 엄연한 사실 앞에서 목사로서 나 자신을 돌아보았다.
우리는 세상을 바라보는 해바라기로 살 것인가 아니면 하나님을 바라보는 해바라기로 살 것인가? 오늘날 교회가 세상을 따라가는 교회가 될 것인가 아니면 예수님의 십자가를 지고 따르는 교회가 될 것인가? 그것을 정해야 한다.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마 16:24). 곧 십자가의 의미는 하나님의 뜻을 행함으로 오는 고난이다. 지금은 이러한 십자가의 의미가 사라지고 없다. 오히려 우리가 경건하여지면 모든 것이 형통할 것으로 생각한다. 정말 그러한가? 십자가의 길, 그 길을 다시 돌아본다. ◙
글 이창배 목사/ 본지 발행-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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