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
엄마의 추정: 비극을 겪은 후의 삶
“딜런 클리볼드는 내 아들이다. 그날 일어난 일을 되돌릴 수 있다면 내 목숨을 바칠 것이다. 그날 죽은 사람 한 명의 목숨과 내 목숨을 바꾸자고 하더라도 기꺼이 그렇게 할 것이다. 하지만 그런 일은 있을 수 없다는 것도 안다. 내가 무슨 짓을 하고 무슨 말을 하더라도 학살을 속죄할 수는 없다. 그 끔찍한 날 뒤로 16년이 흘렀다. 그 열여섯 해를, 나는 아직도 여전히 알 수 없는 일을 이해하려고 애쓰는 데에 바쳤다. 어떻게 창창한 아이의 삶이 그렇게 한순간에, 바로 내 눈앞에서, 재앙으로 바뀔 수 있는가 하는 문제 말이다.” – [책 내용 중에서]
[북스저널=정이신 목사] 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 » 수 클리볼드(Sue Klebold) 지음, 홍한별 옮김, 출판사: 반비 » 한국어로 된 책 제목이 가진 의미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책날개에 있는 저자에 대한 소개를 읽어야 합니다. “수 클리볼드(Sue Klebold)는 1999년 열세 명의 사망자와 스물네 명의 부상자를 낸 콜롬바인 총격 사건의 가해자 두 명 중 한 명인 딜런 클리볼드의 엄마이다. 딜런 클리볼드는 총격 후 자살했다. 수는 대학에서 장애인 학생을 가르쳤고, 지역 활동에도 활발히 참여했던 평범한 엄마였다. 현재는 우울증 조기 발견 및 자살 예방에 관한 활동을 적극적으로 펼치고 있다.”
A MOTHER’S RECKONING: Living in the Aftermath of Tragedy(엄마의 추정: 비극을 겪은 후의 삶). 지은이 <클리볼드>에 대한 소개를 읽은 후 책의 원제를 보면 책이 말하려는 게 뭔지 대충 밑그림이 그려집니다. 한국어로 된 책 제목은 지은이가 말하려는 본질과 너무 멀리 떨어진 채, 한국인 독자의 호기심을 자극해 판매 부수를 올리려는 상업성을 많이 고려했습니다. 출판업계의 생존 전략으로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해도, 마음에 썩 내키지는 않는 번역입니다. 지은이는 한국어로 번역한 이런 책 제목을 허락했을까요? 이런 상황을 우리가 고칠 수 없다면, 외국에서 들여와 번역한 책은 반드시 원제를 확인하는 독서습관을 들여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왜곡이 생깁니다.
멀쩡하다고 착각했던 자기 아들이 학교에서 벌어진 총기 난사 사건의 가해자로 자살을 택한 후, 남겨진 사람으로 이 과정을 도망가지 않고 담담하게 맞서서 알린 그녀의 용기에 먼저 찬사를 보냅니다. 그녀가 보여준 용기처럼 비극은 알리지 않으면, 은밀하게 다른 이에게 수시로 전염됩니다. 만약 지은이가 이 글을 쓰지 않았다면, 또 적극적으로 자신에게 일어난 비극에 대해 맞서지 않았다면, 책에 있는 것처럼 더 많은 아이가 같은 비극을 겪게 됐을 것입니다.
이 책이 훌륭한 점은 딜런의 행동을 합리적으로 설명하려고 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클리볼드>는 이 일을 집단 괴롭힘이나 학교, 아들의 건강 상태 탓으로 돌리지 않습니다. 책의 원제에 나오듯이 자신도 알 수 없었고, 쉽게 설명할 수 없는 사실이지만, 이미 벌어진 일이라는 걸 받아들여야 한다는데 초점을 맞춥니다. 그래서 <클리볼드>는 ‘악(惡)’과 ‘병(病)’ 사이의 확정할 수 없는 경계를 명료하게 밝히지 않습니다. 이걸 밝혀낸다는 것 자체가 신의 영역이기 때문입니다.
아쉬운 점은 <딜런>과 같이 사건을 저지른 <에릭> 쪽에서는 이에 관해 말한 게 없다는 것입니다. “에릭이 사람을 죽이러 학교에 갔고 그러다 자기가 죽어도 상관없다고 생각한 반면, 딜런은 죽으러 학교에 갔고, 그러다 다른 사람이 같이 죽어도 상관없다고 생각한 것 같습니다.” 자신의 아이가 <에릭>과 같이 저지른 총기 난사 사건을 조사한 FBI에서 자문을 맡았던 사람의 의견을 <클리볼드>가 책에 인용했는데, 이런 면에서 <에릭>의 입장을 우리가 알게 된다면 이런 비극을 많이 줄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물론 불가능한 이야기겠지만요.
“우리는 딜런이 완벽하다고 믿고 싶었다. 우리는 그 믿음에 갇혀 딜런의 분노와 좌절의 징후는 보지 못했다. 나 자신을 용서할 수 있을 것 같지 않다. 너무나 많은 일이 후회스럽다.” 사람들은 대개 자식은 부모가 가장 잘 안다고 생각합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착각합니다. 그런데 아이들은 의외로 자기 속마음을 아주 잘 숨깁니다. 이게 우리가 이 책을 읽으며 마음에 깊이 간직해야 할 교훈입니다.
글 정이신 목사/ 본지 칼럼니스트/ 아나돗공동체 위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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