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이란 것
자살이란 것 – 사전에서 영원히 지워야 할 추악한 단어
세상이 어려울 때 어김없이 찾아오는 현상은 자살이라는 극단적 선택을 도모하는 일이다. 얼마 전에 40대 남편이 4살, 7살 난 자녀들 앞에서 아내를 칼로 공격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이런 일은 특정한 국가만이 아니라 온 세계 사람들이 어렵다는 이유로 자살이라는 극단적 행동을 취한다.앞으로 살아갈 날이 많은 젊은이들도 이 대열에 뒤질세라 합류하고 있다. 나는 더 이상 소망이 없다고 스스로를 평가 절하 하기 때문이리라.
[목양저널=한평우 목사] 자살이란 것 » 목숨을 버리는 사람들이 하루 평균 47명이라니! » 지금 로마는 무척 덥다.
항상 로마는 7월에서 8월 중순까지는 더위가 결코 사정을 보아주지 않는다.처음 로마에 도착했던 1982년 8월 6일 밤에는 너무나 더워서 잠을 이룰 수 없었다.
대리석 바닥이었는데 그 곳에 눕기도 했고, 그래도 더위는 사정 없이 파고들어 화장실의 욕조에 물을 채우고 수시로 들어갔다 나오기를 반복했던 기억이 오롯이 남아 있다.
이태리는 7월과 8월은 시민 대부분이 휴가를 떠나서 텅 비게 된다.이런 오랜 전통이 금년에는 코로나로 휴가를 떠나는 사람들이 그리 많지 않다.
어떻게 아냐고? 아파트 주변의 차 파킹장의 비어있는 모습을 보면 된다.
로마는 공무원들이 많기에 다른 도시보다는 그래도 낫다고 한다.
밀라노처럼 경제 중심도시는 더 어렵다고 한다.
패션매장들은 열려있지만 사람들은 관심을 기우리지 않는다. 그 고운 옷들이지만, 세상이 어려우니
사람들은 지레 겁을 먹고 지갑을 열려고 하지 않는다.
7월에는 항상 세일이 시작되어 30-50% 깎아 준다고
하지만 별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세상이 어려울 때 어김없이 찾아오는 현상은 자살이라는 극단적 선택을 도모하는 일이다.
얼마 전에 40대 남편이 4살, 7살 난 자녀들 앞에서 아내를 칼로 공격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이런 일은 특정한 국가만이 아니라 온 세계 사람들이 어렵다는 이유로 자살이라는 극단적 행동을 취한다.앞으로 살아갈 날이 많은 젊은이들도 이 대열에 뒤 질세라 합류하고 있다.나는 더 이상 소망이 없다고 스스로를 평가절하하기 때문이리라.
아리스토텔레스는 목적론적 세계관을 언급했다.
즉,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지향점이 있고, 존재의 가치가 있다는 것이다.
사물의 존재 자체가 목적이 있다는 말이다.
세상은 항상 유명인이나, 성공한 사람들을 주목하고 찬양한다.
그러나 우리를 지으시고 세상에 일정기간동안 살도록 섭리하신 하나님은 그렇지 않다.성공했다고 사랑하고 성공하지 모했다고 덜 관심을 두지 않으신다.
아니 오히려 성공하지 못한 사람, 낮고 별 볼일 없는 사람들을 주목하고 위로하셨다.
이 사실을 마음에 기억하고 살아가야 한다.
그래서 사람들이 인정하지 않아도 절망하거나 낙심하지 말아야 한다.
나를 세상에 보내주신 분은 변함없이 나를 사랑하시고 인정하신다는 믿음을 붙잡고 말이다.
요즘 하루 일과로 아침에 일어나 공원을 한 시간 정도를 걷는다.
현재 공원은 비가 내리지 않아 무척 메마르다.
나무들도 더위에 힘겨워하고 있다.
건초를 위해 기계가 지나간 너른 들녘에는 남은 그루터기 풀들이 빨갛게 타버린 모습이다.
삭막한 중에도 거칠게 돋아난 가지 끝에 자주 빛 꽃을 피운 이름 모를 들풀들이 있다.건성으로 지나갈 때는 보이지 않지만 머물러 설 때 눈에 들어오는 꽃들—
작렬하는 태양아래서도 아름다운 꽃을 피워내는 그 치열한 인내 앞에 뜨거움이 올라온다.
하찮은 들꽃도 이토록 질긴 생명력으로 존재의 목적을 성실하게 수행하는 데, 만물의 영장이라는 사람은 그렇지 못한 경우가 있다.
사업에 실패했다고, 사랑을 이루지 못했다고, 부부 싸움을 했다고, 입사 시험에 떨어졌다고,
무시를 당했다고, 인정받지 못했다고, 한창 자라나는 아이들을 두고 한강을 찾아간다.
하루에 그 귀한 목숨을 버리는 사람들이 평균 47명이라고 한다.47명이 목숨을 버린다면 그들 대부분이 가장이라고 할 때, 그에 연관된 가정은 47가정이고, 관계된 사람들을 헤어 본다면 엄청난 숫자이다. 2019년도 자살자는 총 1만3천799명이다.
불치병에 걸려 세상을 떠나는 남편이나 아내들도 있다. 그것은 청천벽력 같은 슬픔이고, 고통이다. 하물며 얼마든지 살 수 있는 사람이 정신적 병이 들어 스스로 삶을 마무리 한다면 그 여파는 상상할 수 없이 크다 싶다.
우린 어떤 모습으로 존재하던지, 존재 그 자체에 목적이 있음을 알아야 한다.
오늘 힘들어도 결코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
내일은 이 모든 고난을 돌아보며 웃게 될 날이 올 수 있기 때문이다.
자살이란 우리 사전에서 영원히 지워야 할 추악한 단어다 싶다. ◙
글 한평우 목사/ 본지 목양저널 칼럼니스트(로마한인교회 원로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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