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회자 되는 “내 탓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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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와 사회의 위기는 곧, 국가의 위기이다
“내 탓이오.” 이 말을 기억하는가? 오래전 IMF 위기 때, 우리 사회를 휩쓸던 말이 떠오른다. 그땐 자신의 가슴을 치는 지도자가 있었다. 국가와 사회의 중추 역할을 감당하는 그런 작은 지도자들은 어디에 있는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 없는 그런 성실한 지도자들, 맡은 바 작은 일일지라도 사회 각 분야를 책임질 줄 아는 그런 일꾼들이 앞장서는 나라가 나라답다…
[에디토리얼=이창배 목사] 다시 회자 되는 “내 탓이오” » 정치와 사회의 위기… 크고 작은 리더십, 그 망가진 흔적들을 보면서 » 최근 유럽지역에서 사역을 마치고 귀국한 은퇴 목회자와 자리를 함께해 식사를 겸한 교제를 나눴다. 이따금 SNS를 통해 대화할 수 있었기에 이분이 가진 생각과 성향을 필자는 조금 안다. 현 정부에 대해서는 우호적 성향이 두드러진 편이다.
그런 그가 필자에게 뜬금없이 조금 과격한 글을 보내왔다. 그 글의 내용을 함축해보면 대략 이렇다. 우리 국민의 정치의식 수준이 후진국형이라는 취지의 글이다. 정치 지도자의 선택은 그가 국가의 경영을 그릇됨 없이 할 것이고, 그로 말미암아 국가의 미래를 담보할 수 있느냐에 대한 평가가 중요하다. 그러므로 지난 과정을 살펴보고, 과실을 따져보고, 또한 지도자다운 인격과 도덕성을 가졌는지 살피고 검증한 후에 후보로 세우고 또 선택해야 한다. 그래야 국민적 총의를 모을 수 있게 된다. 소위 컨벤션 효과라는 게 나타난다.
그런데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당리당략과 파벌에 따른 흑백논리에 이끌려 무조건적 지지를 보내는 일방통행식 선거풍토에 머리가 흔들린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진정 국가 지도자로서 일점일획 부끄러움이 있는지, 없는지에 대한 관심은 보이질 않는단다. 지도자 한 사람의 됨됨이와 청렴결백, 진실함과 능력에 대한 구분을 굳이 중요치 않게 여기는 것 같아 무척 실망을 느꼈다 한다.
분명 문제점이 있는데도 한편이라 해서 무조건 옹호하고 감싸는 열렬 지지층의 정치의식은 정치 후진국 국민성인데 오히려 이러한 지적을 하면 죄인 취급 당한다면서 조금은 심한 표현을 썼다. 그의 글은 짙은 회한이 서려 있다. 그럴 수밖에 없을지도 모른다. 오랜 해외 생활에, 특히 유럽의 정치와 선거문화에 익숙해져 있었기 때문이다. 역시 오랜 세월 동안 해외 생활을 마치고 귀국한 필자에게도 느껴지는 바는 비슷했기에 얼른 수긍이 됐다.
전 세계적으로 대한민국 K 신드롬 현상이 날로 대단한 위세를 떨치는데, 유독 정치문화는 후진성을 면치 못할까 알 수 없는 분노가 치솟는다. 권력이 날개나 되는가? 일반 서민들에게는 억 소리만 들려도 경기가 날 정도인데, 수천억 그 이상의 막대한 이익을 챙기도록 했는데도 당당하다. 인허가권이란 권력의 비호 없이 이런 일이 될 수 있겠는가? 누구에겐 막대한 이익이 되겠지만, 누구에겐 피눈물 나는 강탈이 동전의 앞뒷면처럼 엮여있다. 지도자로서 응당 책임질 마음도, 가책도 없는 그 뻔뻔스러움에 기가 질린다. 이런 이가 어찌 국가의 지도자로 국민의 신망을 얻고, 또한 국가를 이끌 수 있겠는가? 뻔히 알면서 대선 후보로 밀어제치는 그런 정당의 오만함에 분노하지 않는 국민은 또 누구인가?
역대상 12:32 절 말씀이 떠오른다. “잇사갈 자손 중에서 시세를 알고 이스라엘이 마땅히 행할 것을 아는 우두머리가 이백 명이니 그들은 그 모든 형제를 통솔하는 자이며”라는 대목이 나온다. 마땅히 행할 것을 아는 우두머리라 했으니, 잇사갈 족속 가운데 개개인이 두드러지도록 드러나지 않았지만, 이를 개의치 않고 이름도 빛도 없이 민족과 나라에 충성했다. 최소한 사리사욕에 눈이 어두워 작은 일에 충성한 간부들은 아니었다.
오늘날 우리 사회는 어떤가? 진정한 지도자가 없음을 안타까워하는 목소리가 여기저기 터져 나온다. 이백 명의 지도자는 고사하고 단 한 사람의 지도자라도 아쉽지 않은가? 씁쓸한 이 현상의 이면에는 이상 열풍이라 할 만큼 정말로 쓸데없는 일에 열광하는 사람들이 넘쳐나 보인다. 닥치고 성취와 성공이라는 번영 키워드가 교회를 비롯해 사회 전반을 뒤덮어왔다. 그러다 이제는 등산, 트로트, 먹방, 오락과 유흥으로 사회 곳곳에 풍요가 넘친다. 정치는 한낱 희화화된 패러디의 소재로 전락하고, 일반 대중의 정치 무관심은 언택트(untact) 뉴노멀(new normal) 시대로 접어들면서 더욱 가속화된 듯하다. 바꿔 보자면, 정치와 사회의 위기 곧, 국가의 위기이다. 그 근저에는 크고 작은 정치 결탁 부패와 권력 남용의 추한 그림자가 어지럽게 널려져 있다.
“내 탓이오.” 이 말을 기억하는가? 오래전 IMF 위기 때, 우리 사회를 휩쓸던 말이 떠오른다. 그땐 자신의 가슴을 치는 지도자가 있었다. 국가와 사회의 중추 역할을 감당하는 그런 작은 지도자들은 어디에 있는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 없는 그런 성실한 지도자들, 맡은 바 작은 일일지라도 사회 각 분야를 책임질 줄 아는 그런 일꾼들이 앞장서는 나라가 나라답다. 먼저는 교회로부터 시작해, 우리나라 전 영역에서 진정성과 실력을 갖춘 지도자를 찾고, 또한 세워야 한다. 그게 지금 당면한 과제이다. ◙
글 이창배 목사/ 발행-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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