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어서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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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속의 시대에 적응하기 위한 낙관주의자의 안내서
나는 가속의 시대에 사람들에게 안정감과 추진력을 줄 수 있는 태풍의 눈은 ‘건강한 지역 공동체’라고 주장합니다. 이 공동체는 사람들 가까이서 충분한 신뢰를 얻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서로 연결돼 있고 보호받고 존중받는다고 느낄 수 있는 기반이 되지요. <중략> 이는 사람의 가슴과 가슴을 이어주는 일이 거대한 산업이 될 수 있다는 걸 말해 줍니다. 앞으로 사람들의 정신을 채워주는 일은 엄청나게 큰 비즈니스가 될 것입니다. – [대담: ‘장경덕이 묻고 토머스 프리드먼이 답하다’에서 발췌]
[북스저널=정이신 목사] 늦어서 고마워 » 토머스 프리드먼 지음, 장경덕 옮김, 출판사: 21세기북스 » “미국인들은 미국이 얼마나 많은 사람에게 마지막 희망이자 최선의 희망이며 대체할 수 없는 질서의 원천인지 인식해야 한다.” 망치로 머리를 맞은 듯한 충격을 준 문장을 접하면서도 책을 덮을 수 없었습니다. 미국과 더불어 민주주의와 자유 시장 경제의 거대한 중심인 유럽연합이 약해졌기 때문입니다. 이로 인해 전 세계에서 이런 가치들을 유지하는 미국이라는 나라에 대한 갈망이 더 커졌습니다. 천연가스 수출을 통한 러시아의 압박 앞에 유럽이 바짝 긴장하고 있기에, 일부 국가에서 미국에 요구하는 게 이러저러한 국제 정치 상황으로 인해 더 많아졌습니다.
“이제 그렇게 할 수 있다.”가 저자가 책에서 말한 내용의 기저에 흐르는 생각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현실에서 이게 쉽지 않은 일이기에 저자는 <웰시>라는 사람의 말을 빌려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신뢰는 저절로 나타나지 않습니다. 그것을 얻으려면 노력이 필요합니다. 수많은 사람이 계속해서 참여하며 끈질기게 노력해야 하지요. 그건 그저 마법처럼 일어나는 일이 아닙니다.”
많은 사람의 참여와 끈질긴 노력을 요구하기 위해 저자가 사용한 저술 방법은 해당 분야의 사람을 인터뷰하고, 그들의 의견을 책 곳곳에 편집해 넣는 것입니다. 저자의 생각이 있지만, 그만 그렇게 생각하지 않고 비교적 많은 사람이 그의 생각에 동의하고 있다는 걸 인터뷰를 통해서 보여줍니다. 그리고 사회의 변화상을 이렇게 해야 한다는 선언으로 표현하지 않고, 직접 그 지역에서 살면서 문화 충격을 통해 현실을 바꾸고 있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들려줍니다.
예를 들어 인종차별과 같은 사안에 대해서는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의 인터뷰를 인용했고, 그들의 목소리를 통해 이게 왜 나쁜 것이고, 앞으로 미국이 나아가야 할 길이 어디인지 독자 스스로 생각하게 만듭니다. ‘지역 공동체’의 필요성을 말할 때도 비슷한 방법을 썼습니다. 이러 저러하니 지역 공동체가 21세기의 대안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연방제를 택한 미국의 정치적 특징이 지닌 장점을 말하면서, 이걸 통해 그들이 만들어내야 하는 모델이 뭔지를 독자에게 묻습니다. 훨씬 더 높은 상호 의존성을 갖게 된 세계에서는, 소속된 부족이나 연방이 어떤 존재이고 뭘 해야 하는지 다시 정의해야 밤이 물러가고 새날이 온다고 합니다.
저자는 주로 미국에서 수집한 자료를 사용했고, 그래서 다분히 미국의 앞날을 준비하자는 책입니다. 그런데 이런 유(類)의 책을 읽을 때마다 한국인으로서 꽤 부럽습니다. 한국인이 쓴 책은 이런 주제를 다룰 때 사뭇 윤리적이거나, 책 전체에 윤리적 판단이 짙게 깔려 있습니다. 그런데 한국인 저자들이 보이는 윤리의식은 대개 광장에 나온 사람의 잘못일 뿐, 골방에서 글을 끄적이고 있는 자신은 전혀 문제가 없다는 투입니다. 그래서 진영논리로 귀결되는 게 많고, 널리 공감을 얻지도 못합니다. 이런 식으로 현장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를 저자가 들려주고, 독자가 직접 판단하며 결정하도록 이끄는 서술방식이 때론 더 낫습니다.
저자의 말처럼 ‘틀림없이’ 세상에는 악이 존재하고, 범죄가 발생하며, 기술적인 진보를 이용해서 공동체나 이웃 또는 낯선 이들을 속이는 사기꾼이 생겨납니다. 우리가 이런 악한 행동을 완전히 없앨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이런 악을 허용해 주는 기준치의 잣대를 사회적 합의를 통해 더 높여야 합니다. 아무리 악이 흥왕해도 몇 프로 이상은 악이 넘쳐나지 않도록 공동체를 통해 신뢰를 강화해야 합니다.
책에서 저자가 말한 사회적 혁신은 어렵지만 한 번에 하나씩 벽돌을 쌓는 것입니다. 저자는 미국인에게 집단을 이루는 모든 사람에게 주어진 하루하루를 배움의 과정으로 이해하며, 이 벽돌을 같이 쌓아가자고 권합니다. 한국인인 저는 무슨 벽돌을 어떻게 쌓아야 할지, 책을 덮고 나서 한참 생각했습니다. ◙
글 정이신 목사/ 본지 칼럼니스트/ 아나돗공동체 위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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