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내 길을 내 속도로
하나님이 주신 자신의 길을 제대로 찾아가라고 권면...
명철한 사람은 <잠언>을 통해 “지혜(히브리어: 타흐불라)”를 얻습니다(1:5). 이 단어는 <1:2>에 있는 “지혜(히브리어: 호크마)”와 다릅니다. 그래서 <개역개정성경>은 이를 “지략(智略)”으로 번역했는데, 직역하면 ‘지도ㆍ지시ㆍ상담ㆍ조언’을 뜻하는 말로 전쟁의 전략에 해당합니다. …
[정이신 칼럼] 9. 내 길을 내 속도로 » 자기 자식이 어리석은데 그 자식을 똑똑하게 만들어 주는 곳이 있다면, 어느 부모든지 그곳에 자식을 보낼 것입니다. 사람이 어리석게 사는 이유가 여러 가지 있습니다만, 일단 자신이 내야 할 속도를 잘 모르고 남의 속도를 따라가면 어리석은 사람이 됩니다.
빠르든지 늦든지 내가 내야 할 속도가 있습니다. 그걸 상대와 비교할 필요가 없습니다. 내가 소(牛)인데 말(馬)처럼 달릴 필요가 없고, 사자인데 굳이 풀을 먹을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내게 주신 특성대로 살면 됩니다. 문제는 하나님이 내게 주신 특성이 뭔지를 잘 모른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공부가 필요합니다.
성경공부를 통해 내가 누군지 알게 되면, 그때부터는 내야 하는 속도를 알게 됩니다. 굳이 소가 말을 부러워하지 않게 되고, 양이 ‘나는 왜 육식을 하지 못하느냐?’라고 탄식하지 않게 됩니다. 어리석음을 벗어나는 첫 번째 길은 내가 누구인지, 하나님이 나를 어떤 존재로 만드셨는지 성령님의 은혜로 아는 것입니다.
예수님 안에서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 깨닫게 되면 자신의 가치를 알게 됩니다. (예수님 밖이 아닙니다.) 그리고 이렇게 되면 그때부터 비로소 똑똑한 사람이 되기 시작합니다. <새번역성경>의 <1:4>에 각주가 달려 있듯이 <잠언>에서 말한 “어수룩한(어리석은)” 사람은(히브리어: 프타임) 도덕적 방향 감각이 없어서 악으로 기울어질 수 있는 사람입니다(1:22ㆍ32). 그래서 <잠언> 기자는 이 말씀을 젊은이들에게 적용했습니다.
젊은이들이 헛된 망상과 정욕에 빠지면 인생을 탕진하고 어리석은 사람으로 전락할 가능성이 큽니다. <잠언> 기자는 젊은이들에게 이런 어리석음을 따르지 말고, 하나님이 주신 자신의 길을 제대로 찾아가라고 이 말씀 후반부에 그들에 대한 권면을 추가했습니다(1:4, 시편 119:9∼11).
하나님의 말씀은 한 번 듣는 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길을 가고 있는 사람에게, 복음의 증언에 따라 예수님 안에 있는 사람에게 <잠언>은 강력한 엔진을 추가해 주는 것과 같습니다(1:5). 우리가 하나님이 주신 복의 길을 가기 위해서는 계속해서 이 길을 갈 수 있도록 에너지를 공급받아야 합니다.
사람들이 하나님이 주신 길을 가다가 바꾸는 건 지치거나 새로운 게 있다는 말에 속기 때문입니다. <전도서>의 말씀처럼 해 아래 세상에 특별히 새로운 게 없는데(전도서 1:10), 사람들은 하나님이 주신 길이 너무 고답적이라고 하면서 새로운 걸 찾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했을 때 결과는 늘 ‘꽝’입니다. 새로운 길을 찾겠다고 변덕을 부려 하나님이 주신 길에서 그동안 씨 뿌려놓은 게 열매를 맺을 때쯤, 갑자기 다른 길로 가서 다시 씨를 뿌립니다. 그러면 평생 씨만 뿌리다가 끝납니다. <잠언>은 하나님이 주신 길을 가는 사람에게 지치지 않고 그 길을 갈 수 있는 에너지를 제공합니다.
명철한 사람은 <잠언>을 통해 “지혜(히브리어: 타흐불라)”를 얻습니다(1:5). 이 단어는 <1:2>에 있는 “지혜(히브리어: 호크마)”와 다릅니다. 그래서 <개역개정성경>은 이를 “지략(智略)”으로 번역했는데, 직역하면 ‘지도ㆍ지시ㆍ상담ㆍ조언’을 뜻하는 말로 전쟁의 전략에 해당합니다.
전술은 상황에 따라 달라지지만, 전략은 바뀌지 않습니다. 전략은 어떤 목표를 정해 놓고 거기에 대해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 큰 틀을 잡는 것이고, 전술은 전략을 세우고 그걸 행하면서 발생하는 여러 가지 일을 상황에 맞춰 대응하는 것입니다.
전략은 ‘무엇을 할 것인가(what to)’로 목적이고 효과의 문제며, 전술은 ‘어떻게 할 것인가(how to)’로 방법이고 효율의 문제입니다. 전술은 자주 바뀌지만, 전략을 굳건히 지키는 장수는 계책이 뛰어나다고 합니다. 또 전략을 자주 바꾸는 장수는 전술이 아무리 뛰어나도 쓸모없는 장수라고 합니다.
전략처럼 하나님이 주신 길을 가면서 변치 말아야 하는 게 영원한 생명에 대한 간구입니다(요일 2:25). 우리가 구원받아야 하는 대상이고, 영원한 생명을 간구해야 하는 존재라는 걸 놓치고 자꾸 새로운 방법만 찾으면 엉뚱한 길에서 헤매게 됩니다.
도로에서 운전하다 보면 내가 차선을 지키지 않아 교통사고가 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런 경우는 전술이 잘못된 것입니다. 내가 지켜야 할 차선을 지키지 않은 것이니 전술이 잘못된 것입니다. 그런데 나는 차선을 지키며 가고 있는데, 옆에서 차로를 벗어난 차가 내 차로 달려들어 교통사고가 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런 경우는 전략이 잘못됐다고 하지 않고 전략적인 시야가 좁아졌다고 합니다.
지켜야 할 차선을 지키고 있었으니 내가 잘못한 건 아닙니다. 다만 전략적인 시야가 좁아져서 상대가 나를 공격해 오는 걸 못 봤습니다. 이처럼 우리가 하나님이 주신 전략적인 시야를 가지고 다른 사람이 내게 가하는 위험한 행동에 대비할 줄 알아야 합니다. 나와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의 반응을 이해하지 못하고, 내가 바른길을 가고 있으니 모든 게 잘 될 것이라며, 자기도취에 빠져 있으면 안 됩니다.
글 정이신 목사/ 본지 칼럼니스트/ 아나돗 공동체 위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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