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잠언과 부모 공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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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언>은 어머니를 가르침의 주체로 아버지와 같이 언급해…
<잠언>에 창녀의 유혹을 경계하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여자와 달리 어머니를 언급함으로써 어머니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하는 통로가 된다고 했습니다. 솔로몬이 살았던 시대가 지금으로부터 약 3천 년 전인데, 그때 어머니를 이렇게 생각했다는 게 아주 놀랍습니다.
[정이신 칼럼] 13. 잠언과 부모 공경 » 하나님이 모세에게 십계명을 주시면서 네 부모를 공경하라는 다섯 번째 계명에 이스라엘이 가나안에서 받을 복을 연결하셨습니다. “너희 부모를 공경하여라. 그래야 너희는 주 너희 하나님이 너희에게 준 땅에서 오래 살 것이다.”(출애굽기 20:12)
부모 공경의 윤리는 다른 종교에서도 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겉으로만 보면 십계명에 이 말씀이 들어간 이유가 뚜렷하게 드러나지 않습니다. 이는 당시의 상황으로 돌아가 봐야 그 의미가 제대로 드러납니다.
<1:8>에 “아버지의 훈계(히브리어: 무사르)”와 “어머니의 가르침/법(히브리어: 토라)”이란 표현이 나옴
당시에는 종이가 없었고, 문자를 아는 사람도 매우 적었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말씀은 주로 부모를 통해 구전(口傳)됐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주변 민족과 구별되는 복인 하나님의 말씀이 풍성하게 주어졌는데, 이걸 일상에서 전해주는 사람이 부모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학교나 교회에 가서 따로 배웠던 게 아니고, 먼저는 가정에서 부모를 통해 배웠습니다. 따라서 ‘부모를 공경하라’라는 십계명의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이 전달되는 통로를 존경하라는 뜻이 내포돼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부모들이 앞선 조상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배워서 살아 본 경험이 있었고, 또 조상 때부터 전해 내려온 말씀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이걸 그들의 후손들에게 가르쳤습니다. 그래서 <1:8>에 “아버지의 훈계(히브리어: 무사르)”와 “어머니의 가르침/법(히브리어: 토라)”이란 표현이 나옵니다.
당시는 가르침의 주체가 남자요, 아버지였던 시대였지만 <잠언>은 어머니를 가르침의 주체로 아버지와 같이 언급했습니다. 이게 우리가 구약성경에서 새겨봐야 하는 여자에 대한 시각입니다. 구약시대에 여자 선지자가 존재했던 건, 하나님이 남자와 여자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계셨는지 우리에게 생생하게 알려주는 것입니다.
<잠언>에 창녀의 유혹을 경계하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여자와 달리 어머니를 언급함으로써 어머니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하는 통로가 된다고 했습니다. 솔로몬이 살았던 시대가 지금으로부터 약 3천 년 전인데, 그때 어머니를 이렇게 생각했다는 게 아주 놀랍습니다.
구약성경은 선지자와 제사장 전통이 양립하는데, 이 둘은 굉장히 이질적입니다. 지금으로부터 몇천 년 전인데도 선지자 전통에서는 여자 선지자도 있었고, 선지자들의 직업이나 족보를 따지지도 않았습니다. 아모스처럼 농사를 짓던 사람이었는데 하나님이 선지자로 세우신 이도 있고(아모스 7:14∼15), 호세아처럼 제사장과는 결혼이 금지된 사람과 결혼했던 이도 있으며(호세아서 1:2∼3), 예레미야처럼 결혼하지 못했던 이도 있습니다(예레미야서 16:2).
이는 모두 제사장 전통을 벗어나는 일이었습니다. 제사장은 세습직이었기에 결혼하지 않은 제사장은 없었고, 여자가 제사장이 될 수도 없었습니다. 이 두 그룹이 두드러지게 활동했던 시기도 다릅니다. 구약성경에는 바빌로니아에 포로로 끌려가기 전까지 활동했던 선지자들의 메시지가 많이 나옵니다. 제사장들이 했던 말은 <에스라기, 느헤미야기>에 조금 나옵니다.
예수님은 선지자와 제사장 전통을 통합했습니다(히브리서 1:1∼2). 따라서 <잠언>과 더불어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한 우리는 세상을 제사장과 선지자의 위치에서 봐야 합니다.
이런 이질적인 흐름을 통합한 분이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은 선지자와 제사장 전통을 통합했습니다(히브리서 1:1∼2). 따라서 <잠언>과 더불어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한 우리는 세상을 제사장과 선지자의 위치에서 봐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잠언>에 나온 “어머니의 가르침/법(토라)”이란 말이 어색해집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가르침을 주는 존재가 아버지가 아니라 어머니라고 명기돼 있는데, 이걸 무시하고 아버지의 훈계(히브리어: 무사르)만 따르라고 하는 건 유대인에게 구약성경은 놔두고 탈무드만 읽으라고 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는 성경을 한쪽으로만 읽는 것입니다. 성경을 양쪽으로 읽어야지 한쪽으로만 읽으면 안 됩니다.
우리나라는 여름철에 종종 소나기가 쏟아집니다. 예전에 장독대를 집에 두고 살았을 때는 여름에 소나기가 오면 어머니가 장독대로 달려가서 급하게 장독 뚜껑을 닫곤 했습니다. 아무리 거센 소나기가 와도 장독 뚜껑을 닫아 놓으면 그 안에 있는 장은 안전하게 보관할 수 있기에, 항아리에 비가 들어가지 않도록 어머니가 부랴부랴 장독대로 달려갔습니다.
그런데 이와 반대의 상황이 나타나는 경우가 있습니다. 소나기와 같은 하나님의 말씀이 내려와도 내가 마음의 문을 꽉 잡고 열지 않으면, 주님의 말씀이 전혀 내 마음에 담기지 않습니다. 장맛비처럼 하나님의 말씀이 쏟아지는데도, 문을 걸어 잠그고 그 말씀에 귀를 기울이지 않으면, 가뭄이 들었을 때 나만 손해를 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무조건 받아 두는 게 좋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아무리 차고 넘쳐도 본인이 듣기 싫어서 마음의 문을 걸어 잠그고, 자기가 가고 싶어 하는 세상의 길로만 가면, 주님의 말씀이 전달되는 통로인 부모와 자식이 서로 원수가 됩니다.
글 정이신 목사/ 본지 칼럼니스트/ 아나돗 공동체 위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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