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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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사고는 지리와 분리되지 않는다
중국과 인도를 예로 들어보자. 엄청난 인구를 보유한 이 두 대국은 상당히 긴 국경을 마주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정치나 문화는 공통점이 많지 않다. 물론 이 두 공룡 국가 간에 몇 차례 마찰이 있었던 것도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다. 다만 1962년 국경 분쟁으로 한 달간 지속했던 전쟁 이후로 두 나라는 부딪힌 적이 없다. 왜 그럴까? 그 이유는 바로 지구상에서 가장 높은 산이 두 나라 사이에 자리 잡고 있다는 데 있다. 군대가 히말라야를 관통하거나 넘어서 진격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 [책 내용 중에서]

[북스저널=정이신목사] 지리의 힘 » 팀 마샬(Tim Marshall) 지음, 김미선 옮김, 출판사: 사이 » ‘우리 삶의 모든 것은 지리에서 시작됐다!’라고 저자가 말했는데, 저는 책에서 전 세계의 풍수지리(風水地理)를 보는 것 같았습니다. 제가 태어난 환경과 그 안에서 체득한 경험이 저를 사로잡고 있는 게 현실입니다. 문제는 우리에게 이런 사실을 제대로 인정하는 용기가 부족하단 것입니다. 남북을 가로지른 거대한 철조망으로 여태 허리가 잘린 한반도인으로 사는 우리에게, 허리를 질끈 동여맨 아픔을 헤아리지 않고 세계를 논하는 건 무지개를 좇는 환상과 같습니다. 또 지리를 음택(陰宅)을 위해 명당을 찾는 문제로만 이해하는 것도 정도가 지나친 편협함입니다.
깜짝 놀랐던 건 영국인인 저자가 한반도의 지리와 이게 일으킨 사건에 대해 너무 잘 알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저자는 한반도의 문제가 38도선으로 인해 시작됐지만, 이제는 한반도 주변을 둘러싼 미국ㆍ중국ㆍ일본ㆍ러시아의 4파전 양상으로 진행되고 있다고 했습니다. 한반도에 전쟁이란 위급상황이 발생했을 때 북한의 평양과 달리 남한의 서울은 전쟁의 피해에 취약한 지점에 있습니다. 이는 제가 서울에 살면서도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외국인이 본 한반도였습니다. 이걸 외면한 채 우리의 눈으로 한반도를 봐달라고 외국인에게 요구할 수 없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남아메리카의 지리에 관한 이야기를 통해 저자는 포르투갈ㆍ스페인ㆍ미국의 정치적 개입이 낳은 국경선과 그 지역 국민이 처한 현실을 말했습니다. 그리고 그 틈새를 노리고 남아메리카에서 세력을 넓히고 있는 중국의 발걸음을 말했습니다. 아프리카의 처지도 비슷합니다. 아프리카에 벨기에ㆍ영국ㆍ프랑스가 저지른 만행이 있었고, 이로 인해 아프리카가 여전히 어려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곳에도 중국의 전략적 진출은 여전히 진행 중입니다.
아프리카를 저렇게 만들어 놓고 그때 얻은 이익으로 현재의 부를 누리고 있는 유럽을 보면 화가 치밀어 오르지만, 이게 제가 사는 지구촌의 현재입니다. 현재라는 이 시간에서 지리가 가진 영향력을 무시할 수 없습니다. 예를 들어 브라질에 아마존의 열대 우림 없었다면, 브라질이 현재의 경제 수준에 머무르지 않았을 것입니다. ‘아마존은 지구의 허파’라는 미명으로 포장해 브라질에 그곳을 개발하지 말라고 유럽의 여러 나라와 미국이 거세게 압박합니다. 그러나 아마존은 개발하기 힘든 난수표를 그곳의 토질이 지니고 있습니다. 그래서 브라질의 성장 동력에는 늘 족쇄가 등장합니다.
유럽이 잉크로 그려서 만든 국경이 넘실대는 중동에도 이런 문제가 있습니다. 중동은 이슬람교의 수니파와 시아파라는 종교 이념 분쟁이 있었지만, 국경은 모래 둔덕에 불과했던 곳이었습니다. 인도와 중국처럼 히말라야라는 거대한 산맥이 가로막은 게 아니었기에, 모래를 밀어버리면 국경은 물리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곳이었습니다. 지금의 국경도 실제로는 사막에 금을 그은 이론상의 국경이 많습니다.
그런데 여기에 서구 열강이 아랍 부족 지도자들에게 한 약속을 여러 번 뒤집은 사건이 보태지자, 불안정과 극단주의를 배태한 지역으로 변모했습니다. 예를 들어 영국이 사막에 일궈낸 사우디아라비아와 요르단, 이스라엘의 현재 모습이 그러합니다. 한 지역에 모여 사는 게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을 그들의 의사와 상관없이 특정 지역으로 모은 후, 임의로 민족 국가를 만들어 그들에게 나눠준 일은 서구가 입에 침이 마르도록 말하는 정의와 평등, 안정을 위한 방안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지리ㆍ정치ㆍ경제적 이권이 결합해서 이런 일이 벌어졌고, 그 병폐를 이곳 사람들이 지금껏 앓고 있습니다.
이 책에는 지리가 지배하는, 지배하고 있고, 앞으로도 인간을 지배할 사고방식의 다양한 유형이 나옵니다. 저자의 말처럼 정치ㆍ경제뿐만 아니라 인간의 사고는 지리와 분리되지 않습니다. 우리가 지구에서 사는 한 이런 사고는 계속 유지될 것입니다. 그러니 지리를 명당을 찾아내는 방편으로만 생각하지 말고, 세계와 지구인의 숨겨진 속살을 헤아리는 개안(開眼)의 방편으로 활용하는 것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 책은 1ㆍ2권이 있고, 여기서는 1권만 소개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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