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전쟁 2백여일… 참담함 속에 피어난 기적의 간증
[유크라이나, 키이우=권영봉 목사] 우크라이나 전쟁 2백여일… 참담함 속에 피어난 기적의 간증 »
전쟁의 고통과 고난 가운데 피어난 하나님의 열매 발견, “감사의 시간”
우크라이나 전쟁은 –
200여일…
성도들이 기도와 눈물과 아픔으로 보냈던 시간을 뒤로하고 우크라이나에 입국하였습니다
폭격을 받아 파괴된 아파트들, 약탈 당하고 불태워버린 슈퍼마켓, 끊어진 육교들, 탱크와 장갑차의 싸움과 차량들이 불에타서 도로조차 까맣게 그을려 있습니다.
가는 곳마다 초소들이 있어 얼마나 삼엄하게 국가를 지킬 애국심으로 지냈는지 생생히 다가 옵니다.
여기 우크라이나에 머무는 동안 전쟁의 고통과 고난 가운데 피어난 하나님의 열매를 찾아내어 하나님께 감사하며, 하나님의 뜻을 찾아보는 시간들을 기도하시는 여러 성도님들과 연재로 나누고 싶습니다.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시는 하나님께 감사 영광을 올려드립니다.
<첫 번째 서신> 전쟁 중에 역사하신 하나님 간증 –
꼬멘단트 목사님 사모님께서 들려 주신 간증입니다.
안젤라가 우크라이나로 왔다가 돌아가면서 일어난 일입니다.
비행기를 타려면 폴란드 바르샤바로 가야했습니다. 국경에서 16시간을 서서 기다려 겨우 통과를 하고 우크라이나 피난민들이 모여있는 난민촌으로 갔습니다.
가서 나는 이르핀 성경 교회에서 왔다고 자기를 소개했습니다.
사람들이 말합니다. 우리도 이르핀 성경교회 지하실에서 500여명이 함께 한달간 피해있었습니다.
서로 감사하며 감동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안젤라는 그곳에서 복음을 전하고, 함께 기도하자고 제안 했습니다.
그때 한 중년부인이 말합니다. 아들이 7년 전에 폴란드로 일하러 갔고, 바로 소식이 끊어졌습니다. 그 어디에서도 소식을 들을 수 없었고 찾을 수 없습니다. 울면서 말하는 그 어머니에게 안젤라는 물었습니다 “당신은 하나님께 기도했나요?” ” 녜, 당연히요. 성당에 가서 초를 피워 꽂았습니다 “
“아니요 당신 입으로 직접 하나님께 아들을 찾게해 달라고 기도했나요? ”
“아니요. …..”
“그럼 우리가 입을 열어 하나님께 기도합시다…”
기도가 시작된지 사흘여만에 그 아들을 잃은 엄마에개 한통의 전화가 왔습니다.
“알로~~~ 에따 야 마마 ~~(여보세요. 엄마 나예요. ~~~~)“
할렐루야!!!
이런 간증들이 계속 이땅에서 들꽃처럼 피어나고 있어요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 정교회에서 초를 꽂는 대신 입술을 벌려 직접 전능하신 하나님께 기도하여 응답밥는 놀라운 일들이 지금도 일어나고 있음을 믿습니다.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하리니 (민수기 14장 28)
<두 번째 서신> 전쟁 속 간증 – 두 목사님의 간증 –
마리우폴 지역의 어려움은 뉴스를 통해 잘 알려져 있습니다. 100,000명 이상의 사람들이 죽었고, 교회들은 점령군들의 부대시설로 빼았기기도 했지요.
동부 지역의 A 사역자 간증입니다.
참으로 난감하고 치열했던 마리우폴 지역에서 사역하는 분입니다.
전쟁이 시작되고 그는 여러가지 형편으로 피난을 갈 수 없었습니다 .
교회가 있는데 목사가 그곳을 떠날 수 없었구요.
점령군들이 그 지역에 들어 왔습니다
시민들은 지하로 몸을 감추고, 건물들은 폭격을 당하고, 거리는 탱크들이 즐비한 상황에 목사라는 이유로 그를 체포했습니다.
A 목사를 점령군들은 감옥에 가두고 고문을 하고 미국의 스파이라고 핍박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굴하지 않고 감사하게 한달만에 풀려났고, 그는 교회 내에서만 사역하는 조건으로 풀려났습니다. 감사한 것은 많은 사역자들이 체포 당해서 총살들을 당했는데, 그는 살아있다는 것입니다.
여전히 그는 점령군 치하에서 부여된 조건 하에서도 복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예배당 밖에서는 복음 전하는 것이 안되니 예배당 안으로, 가정 교회로 사람들을 초청하여 여전히 복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할렐루야.
블라지미르 목사님 이야기 입니다.
루한스크 지역 셀로 흘리봅까 지역 목사님입니다.
점령군들이 쳐들어왔습니다. 총을 들고 와서 목사님들을 색출하여서 총살을 하게 되었습니다.
블라지미르 목사님도 총살현장에 있었습니다.
점령군 청년이 블라지미르 목사님을 향하여 방아쇠를 당겼습니다.
총알이 나가지 않았습니다. 두번째 또 방아쇠를 당겼습니다. 여전히 총알은 침묵을 지켰습니다. 이러기를 여러번하며, 총을 점검했는데도 총알은 나가지 않았습니다.
블라지미르 목사님은 천천히 그 청년 점령군에게 말합니다. ” 젊은이. 나는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을 모시고 사니 지금 죽으면 천국에 갈텐데, 젊은이는 어떻게 하지? 젊은이에게는 예수님이 없잖은가?
나에게 시간을 좀 주게나 “, “내가 자네를 위해 기도해도 되겠는가?”
그 젊은 점령군은 놀랬고, 울기 시작했답니다.
자기는 엄마도 아버지도 없는 고아였습니다.
군대에 끌려 나와 총한자루 들고 사람을 죽이라는 명령을 받고 왔는데 블라지미르 목사님이 그를 위해 기도해주겠다는 진심어린 말에 그의 맘이 녹아버렸답니다.
그 젊은이를 위해 기도해 주고 블라지미르 목사님은 그 지역에서 탈출해 나왔습니다
지금은 뽈따바라는 지방에서 또 교회를 개척하여 섬기고 있습니다. 할렐루야.
전쟁 중 하나님은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많은 모습으로 보여 주고 계십니다.
<세번째 서신> 꼬멘단트 그리고레비치 목사님
꼬멘단트 목사님의 간증입니다.
목사님의 사역센터도 민간인 학살로 유명해진 이르핀에 위치하였기에 피해를 많이 봤습니다.
주차장 한복판에 폭탄이 떨어져 폭발하며 건물들도 손상을 입었고 그 주변이 그렇듯 많은 피해를 입었습니다
그러나 온 교인들이 자원봉사로 수고하여, 저희가 방문하였을 때는 거의 복구를 완료한 상태였습니다.
센터에는 많은 피난민들이 거주하고 있었습니다.
7개월의 전쟁을 겪으며, 2차 세계대전 때보다 더 악랄한 전쟁의 참화를 본 두분은 많이 쇠약해 있었습니다. 두분다 천국 문턱까지 갔다가 돌아오셨다고 하니 헤어지고 만남이 얼마나 소중한지…
그날 아침에 있었던 일입니다.
우크라이나 군인들의 맹 공격과 승전으로 기쁘지만 그 곳 주민들은 급히 피난을 나와야 했습니다.
시장으로 살던 키가 크고 멋진 사람이 목사님께 다가와 하는 말
“날씨가 추운데 따뜻한 외투를 주시요.”
목사님은 아무 말씀도 않으시고 입고 있던 외트를 그냥 벗어줬습니다.
“어쩜 이리도 따뜻하고 가볍지~~~”
감탄하며 감동하였습니다. 그는 자기가 누구에게 외투를 벗어달라고 요청하는지, 아무 것도 모르지만 과거에 시장으로 지낸 사람이 지금은 모든 것을 다 잃고 교회의 도움을 받으며, 작은 것에 감사하는 사람으로 하루 하루를 살아가고 있답니다.
전쟁은 많은 것을 변화시킵니다.
<네 번째 서신> 공습 경보!! –
현지 목사님 가정을 방문하고, 키이우 시내에 볼일이 있어 나왔습니다.
자동차에 부착해놓은 핸드폰 거치대를 러시아 군인들이 없애버려 구입하려고 가게에 들어 왔습니다.
애앵~~애앵 ~~
공습 경보 사이렌이 울립니다. 안내 방송이 나옵니다. 속히 모든 사람들은 지하철역으로 대피하라고 합니다. 급히 계산을 하고, 사람들은 건물에서 속속 빠져 나갑니다. 많은 사람들이 지하철역의 지하로 이동을 하였습니다.
공주 옷을 입고 있는 행복한 소녀가 있습니다.
딸의 생일을 맞아 딸의 친구들과 생일 잔치를 하다 말고 지하로 내려왔군요.
커피와 빵을 먹던 예쁜 언니도 지하로 내려와서 먹던 빵과 커피를 끝냅니다.
지하로의 대피는 이들에게 이미 익숙해진듯 합니다. 땅바닥에 편안히 앉아 노트북을 꺼내어서 일을 하고, 끊임없이 정보를 찾고, 가족들에게 전화해서 뭔가를 구입하라 합니다.
꼬맹이의 생일잔치는 거인과 함께 계속되고 있습니다.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지하를 우울하지만은 않게합니다.
가게는 문을 닫고, 지하철에서 내린사람들은 여기저기를 기웃거리며 모여듭니다.
무심한 표정으로, 핸드폰을 보고, 통화하고, 아이들을 보고 웃습니다.
삼삼오오 모여 이야기를 나누기도 합니다.
공습경보 사이렌에 익숙해진 이들의 모습이 제게는 참 익숙해 지지 않습니다.
순간 드는 생각!!!
핸드폰이 없었으면 어떤 모습으로 이 공습경보 대피 시간을 보내고 있을까요?
빨리 해제경보가 내리길 기다립니다.
<다섯 번째 서신> – 전쟁 중 쟌나와 빠샤의 빛나는 아이 사랑.
오늘은 쟌나와 빠샤 부부 이야기 입니다.
쟌나는 우리 신학교 여성사역자학교 졸업생입니다. 쟌나와 아이들이 보고 싶고, 전쟁 중 어떻게 지냈는지, 얼마나 힘들었을 쟌나와 빠샤를 격려하고 도와줘야 할 것 같아서 방문을 하였습니다.
쟌나는 남편 빠샤와 함께 본인의 아이 둘과 9명 아이들을 데려와 키우고 있습니다.
큰딸 베로니까는 의대에 들어가서 공부 중에 있습니다.
집에는 네명의 아이들이 온라인으로 공부를 하고 있었고, 나머지 6명은 학교에 가고 없었습니다.
쟌나에게 그동안 어떻게 지냈는지 물었습니다.
지방 정부 기관에서 돌보던 아이들을 쟌나와 빠샤가 믿음과 꿈을 가지고 데려와 돌보고 있는 상황입니다. 전쟁이 터지자 정부는 이 아이들을 데리고 폴란드로 대피해야 한다고 아이들을 데려가려 하였답니다 .
그러나 쟌나와 빠샤는 아이들을 내어주지 않았답니다.
이 아이들을 감당하는 것은 아주 집중적인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데, 많은 아이들을 수용하는 시설에서는 감당하기 힘들것이기 때문입니다.
5학년인 니끼따는 심각한 인지, 정서 장애가 있습니다. 그에게 내린 의사들의 진단은 그가 걷지도 못하고, 자기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을 것이고, 의사소통도 안 될 것이라 말했습니다. 그런 아이를 쟌나가 8년전 데려왔을 때, 아이는 가만히 망부석처럼 앉아 있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쟌나와 빠샤는 니끼따가 화를 내며 울고 분노하는 것조차 감사했습니다.
아이가 자기를 표현하는 것이니까요.
니끼다가 많은 장애를 지니고 있지만, 자신의 일을 미비하게나마 관리할 수 있다는 것에 감사했습니다. 니끼따가 버스를 타고 장거리를 가는 것, 특히 쟌나 없이 장거리 버스 여행은 거의 불가능합니다. 차안에서 계속 비명을 질러댈 것이기에 쟌나는 니끼따를 내어주지 않았습니다.
안젤리까도 마찬가지 입니다. 6살 짜리 안젤리까가 이 집에 처음 왔을 때는 듣지도 말하지도 못하는 아이였습니다. 그 아이는 태어났을 때 몸무게가 800그램이었고, 의사도 부모도 완전히 포기한 아이였습니다 . 이런 아이를 데리고 와서 재작년 청력을 위한 수술을 받게 하고, 지금은 머리에 장치를 달고 있으면서 소리를 듣고 말을 하게 되었고 심지어는 우리에게 노래를 불러 주었습니다.
쟌나는 정부 관계자에게 말했습니다.
안젤리까가 달고 있는 저 장치는 아주 조심히 다뤄야 합니다.
습기가 차면 안됩니다. 그러면 저 아이가 듣지 못하고 다시 혼자이게 됩니다.
이렇게 쟌나와 빠샤는 전쟁 중, 음식이 부족해도, 잘 입히지 못해도 아이들과 함께 지냈습니다.
쟌나와 빠샤가 말합니다. 우리가 바라는 것은 단 한가지 입니다.
이 아이들이 예수를 믿는 믿음 안에 살아가는 것과, 그들의 부모들이 마약과 술, 범죄로 인하여 아이들과 같이 살아갈 수 없는데, 이 아이들이 부모와 다른 삶을 살아가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공습경보가 울리고, 폭격이 있을 때는 어떻게 대피했냐고 물었습니다.
쟌나는 대답합니다. 지금 아이들과 있는 집에 지하실이 없기에 처음에는 집 중앙에 위치해 있는 욕실에서 대피를 했습니다. 그러나 그 곳이 너무 좁고 힘들었습니다. 그래서 거실 창문들을 검은 천으로 다 가리고, 아이들과 거실에 모여서 기도했답니다. 니끼따는 계속 검은 천을 잡아당겨 치우려 했지만, 아이들과 함께 거실에서 기도 할 때에 아이들도 안정을 찾아갔다고 합니다.
쟌나와 빠샤는 진정 그리스도의 참 제자임에 분명합니다. 어린아이들, 특히 그 부모가 알콜 중독, 마약 중독, 교도소 재소자이기에 돌볼 능력이 없을 뿐 아니라, 장애가 있음에도 마다 않고 예수님 이름으로 사랑하고, 예수 안에서 키워 나가는 참으로 귀한 분들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런 귀한 분들과 함께 하게 해 주셔서 참으로 감사합니다.
하나님께서 이분들에게 이 전쟁 중에서 예수님의 사랑과 믿음으로 아이들을 지키게 해 주셔서 참으로 감사합니다.
이아이들이 쟌나와 빠샤가 기도하는 제목대로, 예수 안에서 살도록, 그 부모들과는 전혀 다른 삶을 살도록 함께 기도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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