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지혜가 내민 초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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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저널=정이신목사] 18. 지혜가 내민 초청장 »
바른길로 가라는 책망에 이스라엘 백성은 이를 싫어하다
<1:22∼33>은 지혜가 외친 말씀입니다. 그런데 <1:22∼23>을 보면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말씀을 싫어하는 이유가 나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바른길로 가라는 책망이 들어 있기에 이스라엘 백성은 이를 싫어했습니다(1:23).
성령님이 인도하시는 길에서 인간이 예수님의 십자가가 보여주신 은혜를 체험하지 못하면, 다윗이 갔던 길을 보여줘도 그 길로 가지 않고 가인의 길로 갑니다. 다윗의 길로 가기 위해서는 예수님이 문밖에서 두드리실 때 빨리 문을 여는 게 좋습니다(요한계시록 3:20).
예수님이 문밖에서 마음의 문을 열어달라고 두드리고 계시는 모습과 비슷한 장면이 <1:20∼21>에 나옵니다. 사람이 지혜를 찾아간 게 아니라 지혜가 사람을 초청했습니다.
큰 시장에 가보면 점포를 가진 사람은 점포 앞에서 구경하는 사람에게 물건을 소개합니다. 점포 없이 행상이나 노점상을 하는 사람은 자신이 팔 물건을 알리기 위해 사람의 눈길을 끌 수 있도록 소리를 지르거나 퍼포먼스를 벌입니다. 이런 모습이 <1:21>에 나옵니다.
사람이 다니는 길머리에서 지혜가 바른길로 가라고 외치지만, 사람은 지혜의 목소리를 그냥 한 번 쳐다보고 지나갑니다. 너무 흔해서 보지 않으려는 것인지, 관심이 없어서 일부러 무시하는 것인지 알 수 없습니다. 그렇지만 지혜가 길거리에서 이렇게 사람에게 자신의 목소리를 들려주는 풍경은, 이스라엘 백성이 그들에게 아주 흔했던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지 않고 있었던 모습이었습니다.
<1:22∼33>은 지혜가 외친 말씀입니다. 그런데 <1:22∼23>을 보면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말씀을 싫어하는 이유가 나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바른길로 가라는 책망이 들어 있기에 이스라엘 백성은 이를 싫어했습니다(1:23).
하나님은 인간에게 자꾸 무엇을 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이는 세상의 흐름이 기본적으로 하나님을 배척하는 속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입니다. 아담ㆍ하와가 타락한 후로 인간이 만든 세상은 겉으로만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는 척하고, 기저에서는 주님이 세우신 창조질서를 늘 배척합니다. 예를 들어 ‘행복이 최고’라고 하면서 하나님이 말씀하신 ‘거룩하게 살라’는 말을 무시합니다. 하나님은 이를 바로 잡으시려고 세상에서 말한 성공의 길로 가기 전에 먼저 성경을 따르라고 하셨습니다.
인간의 삶에서 거룩함을 앞세우지 않은 행복은 한계가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세상의 길을 따라가기 전에 먼저 성경으로 자신이 가려고 하는 세상의 길을 비춰보라고 하셨습니다.
성경이 제시한 길을 가겠다고 세상의 길을 모두 무시하고 산속으로 들어가 자연인으로 사는 게 아닙니다. 세상 사람과 더불어 살면서 그들에게 성경이 제시한 길의 위대함을 알려주는 게 크리스천의 사명입니다.
어리석은 사람은 자신의 어리석음을 보고 행복을 느끼고, 교만한 사람은 자기가 잘났기에 세상에서 성공해서 그렇게 산다고 생각하며, 자신의 교만을 보고 만족해합니다. 그래서 둘 다 굳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자신을 바꿀 필요가 없다고 주장합니다.
저들을 깨우쳐 주시는, 저들이 틀렸다고 알려주시고, 저들의 어리석음과 교만을 책망한 게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을 알아듣기 위해서 성령님이 필요합니다(고린도전서 2:11). 그러므로 성령님의 은혜를 받은 우리는 저들과 더불어 살면서 저들에게 성경을 들려줘야 합니다.
하나님은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에게 주님의 영(히브리어: 루아흐)을 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1:23). 이는 예수님이 말씀하신 성령님입니다(요한복음 14:26). 하나님의 영인 성령님이 우리에게 강림하셔서 나타나는 변화의 최종적인 모습은 우리의 삶이 바뀌는 것입니다.
성령님의 강림은 인간의 마음만 바뀌는 게 아닙니다. 십자가를 앞두고 같이 기도하자고 했지만, 졸고 있었던 제자들을 보고 예수님은 “마음은 원하지만 육신이 약하다”라고 했습니다(마태복음 26:41). 이 말씀을 근거로 마음은 변했지만, 행동이 아직 변하지 않고 있다고 궤변을 늘어놓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성령님이 강림하시면 마음만 변하는 게 아니라 몸도 변합니다. 시차가 있을 뿐 몸도 변합니다. 그리고 이때 이런 변화를 이끌기 위해서는 예수님 안에서 두렵고 떨림으로 자기의 구원을 이뤄가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빌립보서 2:12∼13). 일주일에 한 번씩 룸살롱에 가면서, 마음은 변했는데 몸이 안 변한다고 주장하는 건 완전히 궤변입니다.
부모가 자녀에게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사랑을 줘도 자녀는 불만이 있습니다. 그리고 부모의 한없는 사랑에 불평하던 자녀가 성장해서 결혼하고 스스로 부모가 된 후, 돌아가신 자신의 부모님을 기억하면서 눈물을 흘립니다. 이게 인간입니다. 이런 후회를 막을 수 있는 길은 성령님이 자식에게 강림하시도록 기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이 있어야 사랑이 제대로 피어나기에, 부모의 사랑과 더불어 성령님의 은혜가 자식에게 임하기를 기도해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말씀을 <잠언>으로 받아들이고 오해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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