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전쟁 2백여일… 참담함 속에 피어난 기적의 간증(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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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크라이나, 키이우=권영봉 목사] 우크라이나 전쟁 2백여일… 참담함 속에 피어난 기적의 간증(마무리) »
신학교 통하여, 여러 후원자 통하여 일하고 계시는 하나님…
우크라이나에서 떠나고 싶지 않았습니다.
학교와 형제들과 함께 함이 얼마나 좋고 감사했는지..
이 귀한 형제들을 주신 하나님께 너무나 너무나 감사했습니다.
이들을 위해 기도하시고 후원을 아끼지 않으시던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했습니다.
<여섯번째 서신> 구호 사역이 약속된 날 –

구호 사역이 약속된 날입니다. –
200여 킬로미터를 달려와 교회 앞에 주차를 하는데 곧 이어 차 한대가 따라 들어 왔습니다 .
우리 차 옆에 주차를 하고 중년의 부부가 차에서 내려 근심된 얼굴에 담배를 연신 피웁니다.
고향이 있는 동부지역은 전쟁으로, 폭격으로 집을 잃었는지, 무엇을 잃었는지 알수 없는 표정입니다.
속 앓이를 담배연기로 뽑아 내려는듯 두사람이 눈을 마주하고 있습니다.
그들을 뒤로하고 걸음을 옮겨 구호 사역을 준비합니다.
예배실 가득 하나님을 믿지 않는 피난민들이 앉았습니다.
눈이 보이지 않는 할머니는 집이 폭격에 맞았고 부셔졌다고 도와줘야 한다고 연신 말을 쏟아냅니다.
가방끈이 다 낡아 스카치 테이프로 둘둘감아 수리한 가방을 든 할머니가 부끄러운 듯 한쪽의자에 자리했습니다.
그들에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한국교인들이 당신들과 우크라이나 전쟁이 속히 끝나기를 기도한다고 말해주었습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소망되심을 전했습니다. ‘내 주를 가까이~~’ 찬양을 피리로 연주를 하였을 때, 이들의 눈빛이 조금이나마 따뜻해짐을 보게 되었습니다.
등록을 하고, 겨울 신발과 옷들을 이리저리 뒤적이며, 사이즈를 찾아 내는 분주한 엄마들의 모습은 동서양이 다 똑같은가 봅니다. 한참을 뒤지고 챙겨서, 식료품 보따리를 받아 밖으로 나갑니다. 무거운 보따리들을 끙끙거리며 고향이 아닌 이 지역의 어딘가로 사라지는 모습에 맘이 짠합니다.
빨리 전쟁이 끝나면 좋겠습니다. 젊은 부부가 겨울을 준비하는 양, 구호 의류를 뒤적이며 서로 조언을 주고 받는 모습도 참 아름다워 보입니다.
가로수 아래에 선 그 젊은 부부가 무거운 짐들을 어찌 들고 갈 것인지 긴 회의를 하는 것 같습니다.
추위는 다가오는데….
<일곱번째 서신> 할아버지~~~~ 살려 주세요~~~

꼬로스첸 , 3월 초….
칠흑 같이 어둔 밤.
아이들 5명이 지르는 피끓는, 눈물의 비명입니다.
아이들이 갇혀 있었던 지하실을 가리키며 설명을 하는 미하일 할아버지는 눈물을 감출 수 없었습니다
곧 러시아 군인이 이 지역을 점령하러 올 것이라는 소식에, 온 주민들은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 날 밤도 역시.
93세 할아버지는 집안의 제일 중앙에 위치한 방에 자리를 하고 주무시고, 미하일 할아버지는 가장 바깥 벽쪽 침대에서 잤습니다.
당연히 가장 보배인 손주들은 차고 지하실에 잠자리를 만들어 놓고 잠들게 하였습니다.
등화관제가 있었고 모두 잠드는 시간 공습 싸이렌이 울렸습니다
애앵 앵앵 ~~~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터지는 소리와 화재와 집이 무너지는 소리와 함께 아이들의 목소리가 들립니다.
할아버지 ~~~살려 주세요~~~
할아버지~~~~살려주세요~~~~
바로 집앞 15미터 거리에 비행기에서 떨어진 폭탄이 터졌고, 그곳에서 가장 가까이 있는 손주들을 대피 시켰던 지하실이 있는 차고에서 불이 났습니다.
미하일 할아버지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합니다.
돌아서서 한참을 눈물을 훔친 뒤 말을 이어 갑니다
차고에 불이 너무 활활 타고 있어 손주들을 꺼내러 갈 수가 없었답니다.
1차대전을 경험하신 할머니가 전쟁대비로 필요한 물건들을 충분히 사다가 그 차고를 창고삼아 보관해 뒀는데, 그것들이 화력을 더 돋우었습니다.
아이들의 비명은 거의 45분이나 지속 되었고 화기가 약해질 쯤 태울 것을 다 태운 화마는 불을 끄는 사람들에 의해 사그러졌습니다.아이들의 몸은 무사했습니다.
그러나 아이들이 45분간 겪었을 두려움과 공포와 그 화기는, 생지옥이었을 겁니다. 생지옥을 경험한 아이들을 떠올리며, 그 상황이 할아버지와 아버지와 할머니 가슴속에 남아서 눈물로 그 아픔을 사그리듯 훔쳐내기에 바쁩니다.

아이들의 아버지 루슬란은 저희에게 말합니다
이 차고 지하를 만들 때, 벽을 60센티미터 두께로 두껍게 만들었고, 지하실 천장은 콩크리트를 두껍게 하여 만들었는데 그것이 아이들을 살렸다고 합니다 .
이렇게 두껍게 만든 것에 얼마나 감사한지 모른다고 대견스레 말합니다.
미하일 할아버지와 마리아 할머니는 집 안의 파괴된 곳을 보여 줍니다. 어느 한곳도 멀쩡한 곳이 없었습니다. 미하일 할아버지가 주무시던 방 창문 반대쪽 벽에는 그날의 유리 파편 조각 몇개가 벽에 박혀 있으면서 그날의 비참함을 말해주고 있었습니다. 이 유리 조각이 미하일 할아버지나 누군가의 어딘가를 찔렀다면…. 생각하기도 끔찍하였습니다.
6개월이 흐른 지금 조금씩 수리를 해 나가지만 이 겨울을 어떻게 지낼 수 있을까… 염려가 되었습니다.
폭탄 두개가 주변에 떨어져 15채의 집을 무너뜨렸습니다.
그때 썰물처럼 밀려왔던 취재진들을 마리아 할머니는 기억하며 말합니다.
너도 나도 앞다투어 취재를 하여 갔지만 그 누구도 어떤 도움도 받을 수 없었다고 합니다
한번은 도움이 왔다고 하여 가보니 누군가가 할머니의 이름을 대고 그 돈을 가로채 갔다고 할머니는 한탄을 합니다.
폭격이 있은 후 빠벨 목사님은 새벽같이 달려가 상황을 보았고, 은혜교회의 자원봉사자들이 이 가족들을 위로하고 도와 주고 있습니다.
밖으로 나오니 그날 밤에 홀랑 타버린 자동차가 말합니다. 공포와 비명의 끔찍한 밤이었다고..
집 앞에 있는 폭탄이 만든 구덩이는 지난 밤 내린 빗물을 잔뜩 머금고 침묵을 지킵니다.
구조를 받은 아이들은 지금 엄마와 함께 안전한 곳으로 피난을 떠났습니다.
그 아이들을 하나님께서 만져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여덟번째 서신> 실향민 사역에서 만난 형제의 간증

주일 실향민 사역에서 만난 형제의 간증입니다. –
그는 스뱌또 고르스크에서 이곳 꼬로스첸으로 피난을 왔습니다.
스뱌또 고르스크는 러시아군인의 점령으로 거의 모든 집들이 파괴되었고, 물도 전기도 가스도 아무것도 없는 곳이 되었습니다. 거의 막차로 이곳으로 피난을 왔다고 합니다.
그 형제는 정교회 사원에서 허드렛일을 하던 사람입니다.
폭탄이 비오듯 쏟아지던 그날도 그는 사원에서 허드렛일을 하며, 사원의 지하실에서 벌써 몇개월을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8살쯤 되는 딸아이와 임신 6개월의 아내와 함께.
3개월 전 새벽 5시경 폭탄이 터지는 소리와 함께 피난해 있던 지하실에서 사내 아이가 태어났습니다
그 아이의 이름을 ‘이그리’ 라고 그 사원의 사제가 이름을 지어 주었습니다.
오늘도 형제는 아내를 대신하여 딸 아이의 겨울 준비를 위해서 교회에서 나눠주는 구호품 중 겨울 외투를 찾으러 왔습니다. 빨간 외투가 아이에게 맞지 않는지 들고 갔다가 다시 들고 옵니다.
교회는 형제를 위해 이것 저것 도와 주지만 그의 염려는 없어지지 않습니다.
우리 아이(폭격중에 태어난 아들)의 출생신고를 해야 하는데, 아이가 병원에서 태어난 것이 아니고 그냥 지하실에서 태어나서 출생신고를 못한답니다. 의사의 서명과 병원 도장이 있어야 출생신고가 가능한데, 출생 신고가 안되니 아이가 아파도, 병원 진단을 받아 보고 싶어도 법적인 아무런 근거가 없어 더 진행을 못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아빠가 간절한 눈으로 말합니다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이들이 교회 안으로 들어와 도움을 받을 수 있어 감사합니다.
교회가 이들을 더 도와 줄 것을 함께 의논하고 좀 더 지속적인 도움을 주기로 하였습니다.
<아홉번째 서신> 위장막 짜는 아낙네들(^^)

교회 2층에 있는 아낙네들의 손들이 분주하기만 하다.
소예배실을 가로지르는 두 그물망 앞에 한여름 밤 모기장 밖에 붙은 모기들마냥 들러붙어 부지런히 손들을 놀린다.
한쪽에는 전자 가위로 먼지를 풀풀 날리며 낡은 녹색 계통의 천들을 자르고 있다.
가지고 간 선물들을 나누고 하나님 말씀을 전하고자 이들을 모았다.
20여명의 이 예쁜 아낙네들이 모여든다 .
와아~~어쩜 한결같이 이렇게 예쁘고 사랑스러운지…
피난오기 전의 출신지를 물으니 마리우폴, 헤르손 , 하르키우, 도네츠크, 니꼴라예브, 쿠피얀스크….
한결같이 격렬한 전투로 집들과 시내가 피해를 입어 거의 모두 폐허가 된 지역에서 고생하다가 온 분들이었다. 그 파랗고 예쁜 눈에 눈물을 달고 고향 얘기들을 한다.
남편이 군에 가고, 아들이 군에 가고 자기들은 딸들과 어린 아이들을 데리고 피난 왔단다. 여기서 나라를 위해 남편과 자식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일로 군에서 필요한 위장막을 만들고 있다고 자랑스레 말한다.
학교 선생님이었던 한 여자는 폴란드로 피난을 갔었단다. 거기서 지내며 전쟁 소식을 들으니 자신이 뭔가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단다. 돌아가야지…돌아가야지…
돌아와서 교회의 도움을 받고자 은혜교회에 왔는데 여자들이 모여 위장막을 만들고 있는 것이 아닌가!!
위장막을 만드는 팀이 있는 것을 보고 자기도 동참을 하여 매일 와서 위장막을 만들고 있다면서 온 얼굴을 환히 밝히며 말한다 .
여기 이 예배실은 전쟁 발발 싯점부터 지금까지 아침부터 저녁까지 한여름밤 모기장 밖 모기처럼 자신의 손들을 헌신하고 있는 여자들로 붐빈다.
냉난방기를 교회에서 설치해 주어, 정말 지금은 따뜻하고, 여름엔 시원한 좋은 환경을 만들어 주어서 감사하는 마음들로 입모아 표현한다. 발레라 목사님은 주 1회 직접 에어컨 필터 청소를 하는데 1주일만 지나면 필터에 먼지가 꽉끼어 청소하지 않으면 이들이 이 먼지를 다마시게 된다고 이들의 수고와 헌신에 감사해 한다.
타찌아나 아르카지로브나를 만났다. 그녀는 정교회의 독실한 신자였고, 대학에서 역사학 교수이면서, 스스로 정교회당 건물을 지어서 헌납한 사람이기도 하다. 역사학 교수로서 한국 전쟁을 잘 안다고 말했다. 이 사람이 위장막을 만들러 교회에 왔다가, 이제는 은혜교회에 다니게 되었다고 고백한다. 은혜 교회에 와보니 이 교회는 진짜 예수믿는 사람들인 것같다고 말한다.
여기서 처음 그리고 두번째 예배를 드릴 때, 예배시간 내내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고 자신이 받은 은혜의 경험을 나누어 주었다. 자기의 맘은 이제 이 은혜교회에 있고, 이 교회야 말로 진정 나라를 사랑하고 하나님을 믿는 교회라고 입이 닳도록 자랑한다.
자기는 많은 친구와 동료들이 있었지만, 그들은 피난가고 함께 하지 않으니, 이 전쟁 중 함께하며 새로이 사귄 이 교회 목사님들과 성도들과, 위장막을 함께 만들고 있는 이 친구들이 정말 목숨을 나누는 진정한 친구로 자리매김 했다고 고백한다
팀장인 리지아는 한 회사의 책임자이었고, 이 교회의 성도가 아니다. 그러나 25여명 여성 난민들로 구성하여 위장막을 만들고 군인들이 요청하는 위장 덮게용 옷들도 만들고 있었다.
그녀도 고백한다. ‘전쟁 전에 우리는 전혀 알지 못하던 사람들이었어요. 그러나 지금은 아주 아주 친한 친자매들이 되었지요’. 오늘은 니꼴라예브에서 온 따찌야나의 생일인데 함께 축하해 달라는 요청을 받아 참석했다. 피난 살이 중이었지만 , 집에서 준비해온 수박과 차, 케익, 피자조각으로 생일을 성대히 차려주는 모습에 그들의 서로를 향한 사랑스런 눈빛이 정말 따뜻하고 눈물이 보석이 되어 반짝이고 있었다.
예수 믿지 않던 아낙네들이 교회의 그늘 아래서 남편들과 아들들과 나라의 안전과 승리를 기원하며 한맘으로 위장막을 짜고, 여기서 예수님을 만나고 있다.
이 자리에 함께 역사하시는 하나님께 감사 영광을 돌린다.
이 전쟁 중에도 하나님의 구원하시는 역사가 구석구석에 보석처럼 박혀있음에 감사를 드린다.
<열 번째 서신> 시간은 정말 로켓탄처럼 빨리 날아가…

우크라이나에서의 시간은 정말 로켓탄처럼 빨리 날아갔습니다.
사역자 가정들을 만나서 위로, 격려 하려 했는데… 시간이 넘 모자랄 지경이었습니다.
쉬지를 못하고, 만남을 계속 하다보니 체력이 떨어져서 집에 돌아오면 퍼지기가 일수였습니다.
오순절 총회장이신 발레리 목사님을 이번 방문에 두번을 만났습니다.
예배드리느라 주일예배 때, 그리고 구호사역팀 격려에 또 한번.
발레리 목사님은 2008년부터 함께한 목사님이고, 다른 분들께 우리를 가족이라 소개하며, 늘 가족처럼 잘해 주신 분입니다.
2월 24일 전쟁이 터지고, 목사님의 구호 사역에 협력하여, 한국 교회의 헌금을 보내며, 교단 교회에서 장애우 난민 사역과 지역구호, 군인들 돕기를 함께하였습니다. 평소에도 마약 알콜 중독자들의 재활 갱신을 위해 애쓰는 분이십니다.
발레리 총회장님은 물리학 박사이지만, 전쟁 전에도 연약한 사람들에게 맘을 많이 두고, 어린이 사역과, 장애아동 사역과, 알콜,마약 중독자 사역에 생에 많은 힘을 기울이시고 있다.
강제 출국 이후, 7개월만에 목사님을 만나 포옹을 하며 반가이 인사를 나눈 것이 어제 같은데, 이제 돌아갈 때가 되어 바쁜 목사님께 인사문자를 보냈습니다.
목사님은 10월 한국에서 있을 오순절 교단 세계모임에 초청되어, 말씀을 전하기로 되어있었는데…(도움을 드리려 준비했지만) 지금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4개주에서 정복지를 러시아 땅으로 편입하는 투표를 하고 있어, 한국 방문을 포기했다고 문자를 보내 주면서 다음과 같은 말을 첨언했습니다.
“9월 30일부터 10월 2일까지 집중해서 우크라아나를 위해 함께 기도해 주세요.”
이번주에 투표가 끝나면,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에서 점령한 지역을 자기들의 땅이라 선포하고, 이 지역을 공격하면 핵으로 대응한다는 협박을 하고 있어 10월 초까지는 제발 이땅을 떠나 있으세요”라는 간곡한 부탁의 글을 보내왔습니다. 그의 글을 읽으니 눈물이 납니다.
나라가 이리 어려운 시기에 있으니 본인은 교회를 떠날 수 없으나, 우리더러 떠나라는 간곡히 쓴 그의 사연에 체구만큼이나 큰 사랑을 다시한번 느낍니다.
사실 발레리 목사님은 전쟁이 터진 후 집에도 안가고 계속 교회에서 지내면서 지방에서 오는 난민들을 받고, 그들을 도와 서부쪽에 열어놓은 난민센터로 보내고 구호품을 전달하는 사역을 계속했습니다.
그의 교회사랑과, 교인들 사랑이 참 대단합니다. 꼬질꼬질한 잠바를 입고 교회의 크고 작은 일들을 처리하고, 교회안의 책임자들을 만나고, 교회 밖 소방대장의 면접을 반가이 맞이하는 그의 지친듯 하면서도 힘껏 응대하는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
함께 기도해 주십사하여 발레리 목사님의 기도 요청문을 올립니다.

“친애하는 그리스도의 교회들이여!
친애하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예배자들과 기도자들이여!
9월 24일은 러시아 연방이 우크라이나 영토를 대규모로 침공하여 우크라이나에서 수십만명이 죽임을 당했고, 도시와 민간 기반 시설들이 파괴된 지 7개월이 되는 날입니다.
천 여명의 아이들이 피를 흘렸고, 전세계는 러시아 군인들이 우크라이나 땅을 점령하고 그들의 손으로 행한 잔악한 행위로 충격을 받았습니다. 이 모든 일은 악한 푸틀러와 제국의 야망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진실의 편에 서 계십니다.
하나님은 우크라이나 편에 계십니다. 전세계가 이미 그것을 보았습니다.
이번 전쟁은 보이지 않는 영적 전사들이 큰 공헌을 하였습니다.
모든 기도자들의 기도에 무한 감사를 보냅니다.
여러분의 기도가 많은 상황들 (영적, 정치적, 외교적, 군사적) 을 변화시켰습니다.
지금 러시아는 30만명의 군인을 강제동원하고 있고, 핵으로 전세계를 협박하고 있습니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호소합니다.
9월 30일부터 10월 2일까지, 에스더와 모르드개처럼 기도해 주시기를 감하 청합니다
러시아의 30만 군인 강제동원이 멈춰지고, 핵전쟁이 일어나지 않고, 우크라이나가 1991년의 영토를 회복하는 승리가 있도록 기도해 주십시요. “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교회를 사랑하며, 우크라이나를 너무나 사랑하는 믿음의 거인 발레리 니콜라이예비치 목사님을 이 우크라이나 땅에서 만나게 하시고 함께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동역하는 은혜를 주신 하나님께 참으로 감사드립니다.
<열한번째 서신> 국경에서 미하일 목사님의 도움으로, 몰도바 공항에서 출발하여 –

두근거리는 심장으로 우크라이나로 들어 올 때는 신학교 졸업생이자 몰도바에서 사역하는 미하일 목사님의 도움으로, 몰도바 공항에서 출발하여 학교에 도착하니 밤 9시 45분이었습니다.
샤블린스키 목사님과 안드레이목사님, 꼴랴 형제, 보바형제가 우리를 반가이 맞아 주었습니다 . 반가움과 감사와 기쁨과 위로의 종합세트 포옹을 하고 함께 식탁에 둘러 앉아 늦은 저녁을 먹고, 차를 마셨습니다.
늦은 밤, 잠이 오지 않았으나, 사택이 아니라 학교내 게스트하우스에서 잠을 청했습니다.
아침햇살에 학교 정원의 싱그러움은 “하나님 감사합니다”를 연신 고백하게합니다.
부서진 건물 일부를 수리했고, 아직 유리를 못 구하여 비닐로 창문들을 막아뒀고, 부서진 문짝들은 더 튼튼한 것들로 교체되었습니다. 발코니와 선교관 2층 계단 등의 부서진 방풍막들은 다 교체되어 예전의 깔끔함을 볼 수 있어 너무나 감사했습니다.
그동안 꼴랴와 안드레이 , 블라지미르 형제들이 참으로 수고를 많이 하였습니다.
2월 24일 전쟁이 발발 하면서 직원 가족 17명이 신학교로 피난을 들어왔습니다. 신학교에는 수업 준비를 해 놓은 상태라 충분한 음식과 장소가 있으니 피난 오라고 말해두고 저희는 떠나왔습니다.
전투기 한대가 요격을 받아 신학교를 향하여 떨어지고 있는 것을 본 꼴랴형제는 주님~~, 주님~을 외치며, 학교 건물을 피해 추락하기를 기도했습니다.
추락하던 전투기는 학교 건물을 지나 앞쪽 넓은 땅에 쳐박히고 불이 났다고 합니다. 그 전투기가 학교로 들어 오는 송전선을 끊는 바람에 그 이후 신학교에 대피한 사람들은 추운 2월에 전기없이 난방도 없이 지내게 되었습니다 .
꼴랴 형제가 말합니다.
“지금부터 40분간 발전기를 돌려서 잠시 난방기를 켜고, 온수기를 켜니 샤워를 할 수 있습니다. “
인나 사모는 얼른 딸 마가리따를 부릅니다. “마가리따 속히 내 머리카락을 짧게 잘라다오. 추운 날 샤워 후 찬기운에 젖은 머리카락으로 지내면 감기에 걸리니 …”
2월 28일 아침 땅을 가르는 듯한 소리에 모두들 조심스레 창 밖을 내다 봅니다. V와 Z가 그려진 러시아 탱크들이 셀수도 없이 키예브 쪽으로 가고 있었습니다.
저 탱크에 타고 있던 군인 중 한명이라도 신학교건물을 보고 탱크를 사용했더라면 무슨 일이 있었을 지… 인나 사모는 눈물을 흘리며 그 당시의 공포스러움을 전합니다.
<3월 7일에 학교에 피난해 있던 직원들은 중대한 결단을 하였습니다>.
러시아 군인들이 인근지역을 점령하여 마을 주변으로 총기를 난사하며 집들을 뒤지고 있었기에, 신학교에 남아있는 것도 위험하고, 신학교를 떠나는 것도 위험한 상황이었습니다. 학교 앞 고속도로를 달리던 많은 차들이 러시아 군인들의 총격을 받아 죽고 자동차는 파괴되었기 때문입니다 .
17명의 사람들은 기도와 의논 끝에 성찬식을 거행하고, 우크라이나어로 된 가족 성경에 비장한 맘으로 서명을 했습니다. 다시 학교로 돌아올 수 있을지 모르는 절실한 상황에서 이들은 눈물로 기도하며, 애굽을 떠나는 이스라엘 민족처럼 가족들이 무사히 피난을 나갔답니다. 이제 신학교는 텅 비어 있었습니다. 직원 가족들이 무사히 탈출한 이후 7일만에 러시아 군인들이 신학교로 들어 왔고, 도적질을 하고, 학교에 세워둔 차들을 훔쳐 타고, 심지어 학교 건물을 그들의 통신기지로 삼고 점령하여 있었습니다.
형제들이 러시아 군인들이 점령할 즈음의 상황의 긴박성을 말할 때는 상기되는 모습과 얼굴에 힘들었던 시간들이 고스란히 드러났습니다.
맘이 너무 아팠고 , 이들의 살아있음에 얼마나 감사했는지 모릅니다.
도착 다음날 선교관 2층 사택으로 올라가 보았습니다. 형제들이 대충 치워뒀지만 너무나 감사했습니다. 러시아 점령군이 얼마나 험하게 살림살이들을 뒤졌는지..그림이 그려집니다.
러시아 점령군이 부셔버린 금고도 다시 두개 구입하여 제 자리를 잡았습니다
학생들과 교수님들만 와서 공부를 시작하면 딱 될 것 같은데…..전쟁이 우리를 아직도 갈라 놓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감사한 것은 직원으로 섬기는 형제들이 제 자리에서 신실하게 살아가고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멀리 계시던 빠벨 목사님 내외도 초청하여 함께 찬양하며, 예배를 드리고, 대면 회의를 하였습니다. 점심식사는 미역국을 진하게 끓여서 오랜만에 김치와 함께 밥을 먹으며 정말 그리운 밥이고 김치, 미역국이라며 정말 신나게들 먹었습니다.
우크라이나 전쟁을 겪으며 교회가 변화된 것이 무엇인지 물어봤습니다.
이번 전쟁 사건으로
1) 교회가 믿지 않는 자들에게 엄청 가까워졌다는 것입니다.
교회에 가면 맘이 편해지고, 도움을 받을 수 있고, 기도해 준다는 생각으로 바꼈답니다.
2) 교회의 예배 회집 숫자도 늘고, 무엇보다 찬양과 기도에 신령과 진정이 있다고 합니다.
3) 이제껏 교회가 하던 사역에 더 넓은 영역으로 확장되었다는 것입니다.
교회 건물은 거룩한 곳이니 거기는 세상적인 것이 들어오면 안된다고 생각하던 성도들이, 예배당 내에 구호품을 가져다 쌓고, 나눠주고 , 복음을 전하는 생각의 전환이 있었습니다.
비록 전쟁으로 힘는 가운데 있지만 교회는 하나님의 일을 대신하는 손과발이 되어주어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지난 8월에는 3주에 걸쳐 온라인으로 <전쟁트라우마 치료>에 대한 강의를 진행하였습니다 .
오는 10월 25, 26, 27일에도 2차로 대면 수업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현재 너무나 절실히 필요한 과목인 “전쟁 트라우마 치유”를 위한 수업을 전문인들을 초청하여 수업을 진행합니다.
전국민의 70%가 전쟁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다는 유엔 통계를 증명이라도 하듯 만나는 사람마다 그들을 바라보는 맘이 아립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대면으로 세미나 형식으로 진행하려 합니다. 대면 수업을 진행하기에는 준비할 것이 많지만 , 힘껏 해 보기로 하였습니다. 직원 보충을 위해 기도하기로 했습니다. 왜냐면 직원들 중 몇명과 학생들은 국외로 피난을 가 있는 상황이라, 학교에 스탭들이 보충이되어야 합니다 . 행정 일을 도와 줄 신실한 자매가 필요해서 찾다가, 결국 해결하지 못한채 국경에 도달하였습니다.
주님께서 가장 적합한 자매를 세워주시기를 기도로 소원합니다.
<화상회의>
10월 25,26,27일에 있을 수업을 준비하면서 학생들과 화상회의를 했습니다
학생들이 학교에 오고 싶어서 설레임으로 기다리며 준비하겠다고 합니다.
이를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기도 밖에 없음을 깨달았습니다.
우크라이나에서 떠나고 싶지 않았습니다.
학교와 형제들과 함께 함이 얼마나 좋고 감사했는지..
이 귀한 형제들을 주신 하나님께 너무나 너무나 감사했습니다.
이들을 위해 기도하시고 후원을 아끼지 않으시던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했습니다.
어느 노 목사님이 말씀하십니다. 많은 목회자들이 이 전쟁으로 피난을 갔지만 신학교가 물심 양면으로 적극적인 도움을 줌으로, 적지 않은 목사님들을 우크라이나에 머물게 했고, 교회로서 봉사할 수 있도록 해 준것이 참 놀랍고 감사하다는 말을 해 주셨습니다
할렐루야!!!
하나님께서 신학교를 통하여, 여러 후원자들을 통하여 우크라이나에서 일하고 계심을 믿습니다.
우크라이나 복음주의 신학교에 머물며 교수님들과 학생들이 올려 드리는 예배와 찬양과 웃음 소리가 신학교 캠퍼스내에 가득 채워질 그 시간을 기다리며, 기도와 후원의 끈을 놓지 않으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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