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 하나님께 내놓을 수 있는 열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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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저널=정이신목사] 22. 하나님께 내놓을 수 있는 열매 »
지혜가 길거리와 광장에서 사람을 부른다
“오직 내 말을 듣는 사람”은 지혜의 말씀을 경청하는 사람입니다(1:33). “오직”이라는 표현 때문에 이 말씀을 ‘오직 성경만 읽어야 된다’란 뜻으로 이해하면 안 됩니다. <1:20>을 보면 지혜가 길거리와 광장에서 사람을 부른다고 했습니다.
지혜는 남들이 보든지 보지 않든지 상관하지 않고 열매를 맺습니다. 동물이 와서 먹든 새가 와서 먹든 전혀 상관하지 않습니다. 때로 동물이나 새가 와서 먹지 않고 열매가 땅에 떨어져도 염려하지 않습니다. 열매가 땅에 떨어져 거름이 되면 땅을 비옥하게 만들기에 이걸 그대로 받아들입니다.
지혜를 거부한 채 자신의 꾀로 열매를 가꾼 사람은 왜 자신이 애써서 가꾼 열매를 동물이나 새가 와서 먹지 않느냐고 화를 냅니다. 이건 모순되는 언행입니다. 식물의 열매는 동물이나 새를 위해 열린 게 아닙니다. 자신의 유전인자가 담긴 씨앗을 널리 퍼뜨리기 위해 열리게 한 것입니다. 따라서 동물이나 새가 먹지 않아서 땅에 떨어져도, 자신의 씨앗만 퍼뜨리면 됩니다(빌립보서 1:12∼18). 굳이 열매를 맺어 놨는데 사람들이 오지 않는다고 노심초사할 필요가 없습니다.
자신의 열매에 취해 사는 사람을 <잠언> 기자는 “어수룩한 사람”이라고 합니다(1:32). 저들의 특징은 절대 자신이 퇴보하는 게 아니라고 착각하며 산다는 것입니다. 실제로는 퇴보하고 있는데, 저들은 자신들이 다른 사람보다 더 빨리 가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사람이 하나님께 멀어지면 퇴보할 수밖에 없기에, 자신의 꾀로 배가 부른 사람은 제대로 된 속도를 내지 못합니다. 저들은 하나님의 복으로 채우지 못한 배를 채우려고 세상의 복을 추구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복으로 배를 채운 사람은 굳이 세상의 복으로 배를 채우려고 하지 않습니다.
세상의 복은 하나님 앞에 갔을 때 없어집니다. 하나님이 주신 복은 주님 앞에서도 그대로 있지만, 세상의 복은 그때 없어집니다. 그동안 자신이 엄청 배부르게 살았다고 생각했는데, 하나님 앞에 가보니 그게 모두 허상이라는 걸 알게 됐을 때 인간은 무슨 생각을 하게 될까요?
하나님이 주신 열매는 믿음을 가지고 고난을 통과해야 열립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 가도 이 열매가 그대로 있습니다. 그러나 자기의 고집과 세상의 위로로 만든 열매는 성화 과정에서 다 사라집니다. 그래서 성경은 하나님 앞에서 내놓을 게 없는 일에 매달리는 사람을 미련한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이런 사실을 종합해 보면 <잠언>에서 말한 지혜가 복잡한 게 아닙니다. 하나님 앞에 갔을 때 내놓을 수 있는 열매를 가꾸는 게 성경에서 말한 지혜입니다. 이런 열매를 성경은 성령님이 주신 것이라고 했습니다(갈라디아서 5:22). 성령님의 열매는 주신 분이 성령님이시기에 하나님 앞에 가서도 사라지지 않습니다.
“오직 내 말을 듣는 사람”은 지혜의 말씀을 경청하는 사람입니다(1:33). “오직”이라는 표현 때문에 이 말씀을 ‘오직 성경만 읽어야 된다’란 뜻으로 이해하면 안 됩니다. <1:20>을 보면 지혜가 길거리와 광장에서 사람을 부른다고 했습니다.
박사 학위 논문에 나온 게 아니라 길거리와 광장에 있을 만큼 하나님이 주신 지혜는 평범한 것인데, 이를 알아듣는 사람이 별로 없습니다. 그래서 <잠언> 기자는 이런 하나님의 말씀을 알아듣는 사람에게 복이 있다고 했습니다. <잠언> 기자가 이야기한 복은 ‘안심하며 사는 것’, ‘재앙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 ‘평안히 사는 것’입니다.
이 말씀에서 “안심”은 히브리어 ‘베타흐’인데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님과 옳은 관계를 맺은 사람만 안전하게 거할 수 있고, 교만에 취해서 방심하지 않아야 안전합니다. 둘에서 모두 전제가 되는 건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입니다.
성경에 따르면 죄인인 인간은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유지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유지하려면 의인이 돼야 하는데, 인간에게는 주님과 올바른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의가 없기에 필연적으로 예수님의 의가 전가(轉嫁)돼야 합니다.
나의 의가 아니라 예수님의 의가 내게 전가됐기에 우리가 그분 안에서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을 수 있게 됐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고 났더니, 그때부터 성령님이 주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다고 허락하셨습니다(로마서 8:15). 그래서 크리스천은 예수님 안에서 성령님의 인도하심에 따라 하나님 아버지께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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