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 지혜가 주는 유익
[교육저널=정이신목사] 24. 지혜가 주는 유익 »
지혜는 항해술처럼 ‘숙련된 기술’을 뜻할 때가 더 많아…
고대 이스라엘에는 하나님의 말씀이 많았습니다. <잠언>에 나온 것처럼 길거리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사람을 초청할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이 많아도 사람들이 그 말씀을 붙들지 않자 이스라엘은 멸망했습니다.
인간의 바닷길 개척은 시행착오를 통해 축적한 지식을 바탕으로 얻은 것입니다. 오늘날과 달라 해도(海圖), 망원경, 나침반이 없고 하늘에서 바다를 측정할 수도 없었던 시대에 바다로 나간다는 건 죽음을 각오한 일이었습니다. 일단 육지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연안을 중심으로 했던 항해 경험을 통해 사람들은 해도를 그려나갔고, 이후 여러 사람의 희생을 통해 축적된 정보를 퍼즐을 맞추듯이 하나씩 이어 붙인 게 근대까지의 해도였습니다.
이렇게 해도를 완성해 갔기에 바다로 나갔을 경우 그 지역에 대한 경험은 누구보다 중요한 생존 조건이었습니다. 바다의 어느 지역에 대해 풍부한 정보를 알고 있는 사람이 없으면, 배는 항구를 떠날 수 없었습니다. 이런 정보에는 해적선이 출몰했던 특정 바다에 대한 정보도 포함돼 있었습니다.
그런데 바다는 예측할 수 없는 세계고, 인간이 발붙이고 있는 육지와 아주 다릅니다. 또 배를 타고 항해하는 건 지상에서 여행하는 것과 전혀 다릅니다. 일단 배가 항구를 벗어나 바다로 나가면 육지와 달리 바람이 불고 풍랑이 쳐도 반드시 배 안에만 있어야 합니다.
육지의 경우 폭풍우를 피해 다른 곳으로 갈 수도 있고, 타고 있던 마차에서 내려 걸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바다는 그게 불가능합니다. 폭풍우가 몰아칠수록 반드시 배 안에만 있어야 하다 보니, 멀미가 나서 제대로 서 있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폭풍우까지 불게 되면 파도에 휩쓸려 배가 뒤집히거나 암초에 부딪혀 침몰하기도 합니다.
이때 중요한 게 훈련입니다. 훈련을 통해 노련한 항해 기술을 습득한 사람은 아무리 바람이 불고 파도가 쳐도 배를 능숙하게 운전해서 항구로 돌아옵니다. 그래서 오늘날도 특정 지역에 대한 정보와 배를 잘 다루는 기술은 선원으로 일하려는 사람들에게 필수적입니다.
성경에서 말한 지혜를 그리스 철학에서 말하는 정신적인 것으로만 생각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데 구약성경에서 말한 지혜는 이런 통념과 달리 항해술처럼 ‘숙련된 기술’을 뜻할 때가 더 많습니다. 수사력을 동원해서 모호한 궤변으로 사람을 속이거나 설득하는 능력을 성경은 지혜라고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배를 조정하는 기술이나 특정 해역에 대한 풍부한 경험처럼, 삶의 위기에서 실제로 우리를 구할 수 있는 걸 지혜라고 합니다.
고대 이스라엘에는 하나님의 말씀이 많았습니다. <잠언>에 나온 것처럼 길거리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사람을 초청할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이 많아도 사람들이 그 말씀을 붙들지 않자 이스라엘은 멸망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이지만 모두 성령님의 인도하심에 따라 구원의 길로 갔던 게 아니라, 멸망의 길로도 갔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사는 곳에 주님이 주신 지혜의 길만 있는 게 아니었습니다. 백성의 탐욕으로 만들어진 욕망의 길도 같이 있었습니다.
예수님 안에서 우리가 바라보는 구원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 안에 예수님이 주신 구원의 길만 있지 않습니다. 인간이 만들어 낸 온갖 잡동사니가 예수님이 십자가를 통해 제시해 주신 구원의 길과 같이 섞여 교회 안에 버젓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크리스천이 겪는 현실적인 어려움은 여기에서 비롯됩니다. 해 아래 세상에서 필요로 하고 많이 인정해 주는 건 하나님의 지혜가 아닌 세상이 제공하는 처세술입니다. 둘이 서로 다르기에 우리가 세상에서 성공하려면 때로 처세술에도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그래야 세상에서 인정받기가 쉽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지혜를 붙잡고 있다고 해도 사회적 지위가 달라지거나 세상에서 높은 지위로 올라가는 데 큰 도움이 되지 않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일을 당하다 보면 의문이 생깁니다. 분명히 하나님이 주신 지혜는 세상의 처세술보다 월등하게 좋습니다. 그렇다면 왜 하나님이 주신 지혜를 붙잡고 있는데도 세상에서 제대로 평가받지 못할까요?
여기에 하나님이 주신 복과 세상이 보장하는 혜택의 차이가 있습니다. 우리가 그 차이를 정확히 알지 못하면 하나님의 지혜를 가지고 있어도 세상의 처세술에 지게 됩니다.
세상에서 일어나는 갖가지 일을 해석하려는 처세술은 아주 다양합니다. 그런데 그게 내게 주어진 길에 딱 들어맞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지혜는 이와 다릅니다. 모든 사람에게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그러나 세상의 처세술은 다른 사람이 그걸로 어떤 문제를 풀었다고 해도, 내게는 전혀 적용되지 않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세상에서 제공하는 이러저러한 처세술에 기대어 삽니다. 그것 외에 특별히 다른 방법을 찾고자 엄두를 내지 못하고, 그냥 그 방법에 기대어 삽니다. 그러다가 성령님의 은혜가 임하면 더는 다른 사람이 정했거나 해석했던 사고의 틀에 맞춰 살기가 싫다면서, 용기를 내 하나님이 주시는 지혜를 찾습니다. 성령님의 은혜가 임하면 삶이나 자신이 가고 있는 길을 설명해 줄 수 있는 설(說)이나 론(論)이 아닌 법칙(法則)을 찾고 싶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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