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감사생활!
한은선목사 ◙ Now&Here©유크디지N
[새벽묵상=한은선 목사] 예수님의 감사생활! » 마26:26-27 / 추수감사주일설교 »
Jesus’ Leben in Dank!
아이작 윌튼은 “하나님이 거하시는 곳이 두 곳이 있는데 하나는 천국이요, 다른 하나는 감사하는 마음이다”라고 했다. 인생은 하나님께 감사할 줄 알 때부터 시작된다. 바른 인생, 좋은 인생, 행복한 인생을 살고 있는 자는 하나님께 감사하는 자들이다.
탈무드에 보면 “혓바닥에게 ‘감사합니다.’는 말을 버릇들이기 전엔 아무 말도 하지 말라”는 가르침이 있다. 한국 사람들이 얼마나 감사할 줄 모르는가 하면, 외국인들 중에는, 한국인이 감사할 일을 두고도 감사하지 아니하면 “유 땡큐” “너 대신 감사”라며 조크를 던진다는 것이다.
인격성숙은 감사가 주는 선물이다. 요셉은 은 이십 량에 자기를 팔아버린 형제들이 양식을 구하러 찾아왔을 때, “하나님께서 우리들의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당신들 앞서 나를 보내셨나이다”라며 얼마든지 보복할 수 있었지만 오히려 하나님의 섭리였다며 오히려 형제들을 위로하며 성숙한 대응을 한다. 모든 걸 감사로 하나님의 섭리를 헤아리는 자의 성숙이다.
* 감사는 기적을 만들어 준다. 바울과 실라가 귀신들린 여인을 고쳐준 대가로 감옥에 갇혔으나 기도와 찬송과 감사를 드리자 옥 터가 움직이고 착고가 풀려나가고 옥문이 열리더니 간수가 죄수에게 무릎을 꿇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한다. 감사는 억매이게 하는 모든 것들을 풀어내고 자유케 하는 열쇠라는 것을 알게 된다. 아울러 감사하는 자세는 최고의 전도방법이기도 하다.
1. 예수님의 절대 감사생활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감사하시는 예수님을 마14:19절에서는, “무리를 명하사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사 하늘을 우러러 축사하시고 떡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매 제자들이 무리에게 주니”라고 기록하고 있다. 여기서 ‘축사’는 ‘유카리스테오’로 ‘감사를 돌리다.’라는 뜻이다.
보통 이런 상황에선 감사보다는 한숨이 나오거나 다른 방법 찾는 게 맞지만 그렇다고 “오병이어가 이만명의 먹거리가 되어라”고 명하신 것도 아니고, 그저 본문은 “하늘을 우러러 감사 하시고”라고 하심으로 문제를 풀어가시는 방법을 제시하셨다. 문제 해결책은 문제에 대한 집착보다는 그 마음의 눈길을 하나님께 향하라는 메시지다. 주님은 문제를 해결하시고도 열두 광주리를 남기셨다. 감사는 절망스러운 상황도 반전시킬 수 있는 넉넉한 능력이라는 것이다. 요한복음11장에 보면, 예수님은 친구 나사로가 죽은 지 사흘이나 지나 무덤 속에 있음에도 감사의 기도로 살리셨다. 감사의 기도를 통해 부활의 역사를 보여주신 것이다. 감사의 위력이 얼마나 큰지를 보여주셨다.
2. 진노 중에도 감사하는 예수님
마11:25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 있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 이 말씀의 배경은, 주님께서 두로와 벳세다 가버나움에서 힘껏 복음을 전하셨지만 철저히 외면하는 그들을 향해 저주를 퍼 부으실 만큼 격노하셨지만 오히려 어린아이 같이 겸손히 주께 나오는 자들을 보시고 감사하신 말씀이다.
3. 자신의 죽음 앞에서 드린 감사
마26:27-28에서, “또 잔을 가지 사 감사기도 하시고 그들에게 주시며 이르시되 너희가 다 이것을 마시라 28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고 하셨다. 최후의 만찬을 배설하시고 떡을 떼시며 사례하시고 잔을 돌리시면서 감사하셨다. 이는 자기를 은 30에 팔 가륫 유다를 앞에 놓고도 감사하신 것이며, 주님 자신의 살 찢고 피 쏟으실 것에 대한 곧 십자가 죽음을 앞에 두고 감사하신 것이다.
감사학교란 졸업이 없는 과정이며 모든 덕의 뿌리이기도 하고 신앙의 오메가 포인트가 된다. 감사란 어떤 조건이나 상황 때문에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대한 절대 신뢰와 사명과 영적 깊은 이해에서 가능한 일이다.
사랑엔 세 가지 속성이 있다고 한다. 첫째는 아낌없이 준다. 주고 또 주고 또 줘도 부족함을 느끼는 법이다. 하나님은 심지어 독자 예수님을 우리에게 내어 주실 만큼 사랑하셨다. 두 번째는 무한대로 용서한다. 부모는 자녀가 어떤 잘못을 저질러도 자기의 부덕 탓으로 여기고 받아들이고 용서한다. 주님은 우리를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용서하셨다. 셋째는 그 사랑을 성취하기 위해 무한대의 희생을 기꺼이 감내한다. 그래서 주님은 온갖 수모와 조롱과 고통을 마다하지 않으시고 내 죄를 위해 십자가에서 희생하신 것이다.
이런 사랑 앞에서도 감사하지 않는 자라면, 하나님도 그런 자는 구원할 방법이 없다. 그러나 이 사랑에 대해 감사하는 자에게는 그 감사의 크기만큼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도 커지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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