컬러의 시간

[북스저널=정이신목사] 컬러의 시간  » 제임스 폭스(James Fox) 지음, 강경이 옮김/ 출판사: 윌북  »

그 색깔이 왜 인간에게 그런 의미가 있는 존재가 됐는지…

의미를 생산하고 추구하는 것은 우리 종의 본질적인 특징이다. 우리는 경험과 일상의 사건, 우리를 둘러싼 세상에 의미를 부여한다. 의미 찾기는 모든 만남과 관계에 영향을 미치며, 모든 추상적 사고의 동기일 뿐 아니라 예술과 문학을 비롯한 문화의 모든 면을 지탱한다. 우리는 깨어 있는 모든 순간 의미를 만든다. 그것을 의식하지 못할 때도 많다. 입을 열어 말할 때마다 사실상 우리는 세상에 의미를 날려 보내는 셈이다. 어떤 면에서 이런 의미들은 허구일 수도 있지만, 우리는 아니라고 끊임없이 자신을 설득한다. 어쨌든 행복한 환상이 그 대안(존재 자체가 무의미하다는 생각)보다는 훨씬 낫다 – [책 내용 중에서]

‘색으로 본 세상의 의미’에 관한 책입니다. 저자는 책에서 자신이 찾아낸 색에 관한 이야기를 통해 인간, 다시 말해 우리 종(種) 안에 뿌리내린 고정 관념에 관해 썼습니다. 그래서 이 책은 고발이 아니라 역사적 전개를 주로 다룹니다. ‘그 색깔이 왜 인간에게 그런 의미가 있는 존재가 됐는지’를 시대순으로 이야기합니다.

책을 보면 검정과 같이 특정한 색깔에 과도한 의미를 부여하는 행위 자체가 모순입니다. 그런 의미가 종교적 행위를 통해 발생했든지, 그 색이 개발된 역사적 연원에 따라 만들어진 것인지는 뒤에 따져 보더라도, 색에 관한 인간의 생각이 바뀌었다는 건, 그것에 의미를 부여한 인간의 사유방식이 변했다는 뜻입니다.

초록에 대한 이슬람교의 시각에서 볼 수 있듯이(참조. 사우디아라비아 국기), 특정한 색이 축복이나 악의 상징으로 등장한 건 절대로 고정된 의미가 아닙니다. 따라서 특정한 색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고, 이걸 고착해서 이해하려는 폭력적 시도를 이제 버려야 합니다.

저자가 책에서 다룬 일곱 개의 색과 이에 얽힌 인간의 고정 관념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검정(black): 인간이 지닌 깊은 두려움, 빨강(red): 피의 윤기를 나타내는 색으로 인간의 생명과 몸, 노랑(yellow): 가늘게 눈을 뜨고 눈부시게 빛나는 태양을 보는 인간의 행위와 더불어 강력한 신들의 모습, 파랑(blue): 푸른 하늘과 바다의 색으로 수평선과 지평선 너머에 있는 세상, 하양(white): 깨끗한 표면으로 도덕적ㆍ미학적ㆍ사회적 순수성의 모범, 부유하고 권력 있는 사람들만 입던 티리언 퍼플(tyrian purple) 외에 19세기에 합성한 보라(purple): 기술 진보의 상징, 초록(green): 자연에 있는 수많은 낙원과 재생의 상징.

그런데 이건 철저하게 인간이 희망과 불안, 집착을 색에 투사해서 부여한 의미입니다. 그래서 색의 역사는 인간의 역사가 됩니다.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고대 이집트인에게 검정은 나일강 삼각주를 이루는 검은 토양의 색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검은 땅은 이집트 문명 전체가 의존하는 비옥한 땅의 색깔이었습니다. 그래서 고대 이집트인은 주변 사막의 척박한 붉은 색과 그들의 땅을 비교하면서, 그들의 왕국을 ‘검은 땅’이라고 찬양했습니다. 이로 인해 그들에게 검정은 지하 세계를 다스리는 ‘검은 자 오시리스(Osiris)’와 같이 부정적인 의미만 있었던 게 아닙니다. 검정은 그들에게 생명의 양식을 주는 비옥한 토양으로 상징되는 ‘재생의 색’이었고, 신비로운 힘이 있는 ‘생명의 색’이었습니다.

또 백인이 죽으면 사체가 피부색과 달리 잠시 특유의 노란색을 띱니다. 그래서 백인에게 노랑은 배설의 색이었습니다. 귀지, 점액, 고름, 대소변 등 인체에서 내보내거나 배어나는 많은 물질이 주로 노랑이었기에 백인은 노랑을 죽음의 색으로 이해했습니다. 이로 인해 유럽인은 노랑에 비천함이나 원치 않는 대상과 같은 존재라는 의미를 부여했고, 히틀러는 유대인이란 표지로 노란색으로 된 다윗의 별을 달게 했습니다. 그러나 히틀러 이전에 살았던 괴테는 노랑을 태양과 연결해서 그 의미를 다르게 생각했습니다. 독일인이지만 괴테와 히틀러가 노랑에 부여한 의미는 서로 다릅니다.

‘노랑’에 인간이 부여한 의미가 그러했듯이 책이 전해준 이야기를 통해서 ‘하양 이데올로기’가 만든 폐해를 이제는 버려야 합니다.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대리석 조각에서 드러나듯이 절대적인 하양은 인간의 현실에서 실현될 수 없는 허상입니다. 그리스ㆍ로마인은 하얀 대리석 표면에 에나멜과 귀금속을 덮었고, 금박과 금 세공품으로 이걸 장식했습니다. 대리석의 하양을 그대로 두지 않고 선명한 색으로 덧칠했습니다. 르네상스 시대에 발견된 대리석 유물은 이런 장식들이 벗겨진 상태인데, 유럽인은 이 유물이 늘 그런 모습이었을 것으로 잘못 생각했습니다.

색에 대한 이해의 변천사를 통해 하양에 지나치게 많은 미학적ㆍ사회적ㆍ인종적 의미를 부여한 후, 이걸 추앙하며 좇는 일을 그만둬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21세기에도 색깔 이데올로기로 인해 커다란 사회적 혼란과 재앙을 만드는 일이 계속 일어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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