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탄이 임하는 길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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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묵상=한은선 목사] 성탄이 임하는 길목! » 사40:3-5 »
Der Weg, der zu Weihnachten führt
성탄은 아무리 뒤집어 생각해봐도 기적이요 절대은총이요 극적인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이사도라 던컨이라는 현대무용의 어미니라 불리는 여인이 있습니다. 그녀는 춤출 때마다 맨발로 춤을 췄는데 그만큼 춤에 대한 열정이 대단했다는 의미입니다. 기자가 물었습니다. “당신은 행복해지려고 춤추시나요? 아니면 행복하기 때문에 춤추시나요?”
그러자, “둘 다 맞습니다. 처음 어렸을 때는 행복해지기 위해 춤을 시작했는데, 어느 때부턴가 행복해서 춤을 추고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지금은 행복해서 춤을 춥니다.”
이 질문을 신앙생활에 응용해서 질문한다면, “여러분은 은혜받기 위해 예배를 드립니까? 아니면 은혜 받았기 때문에 예배를 드립니까?”
은혜 받자고 예배드리는 것도 매우 훌륭한 자세입니다. 왜냐면 생각 없이 예배드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만약 은혜 받았기에 예배드리고 있다면, 가장 바람직한 예배를 드리고 있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이 성숙한 그리스도인이요. 참 예배의 사람이요. 하나님이 기뻐하실 예배자입니다.
기다림은 존재가치와 정비레합니다. 정말 사랑하는 사람이면 기다림도 길어 지지만 별볼일 없는 사람이면 기다림의 시간도 짧아집니다. 야곱은 한 눈에 반한 라헬을 위해 칠 년을 수일처럼 기다리며 삼촌의 마음에 들기 위해 종노릇하기를 즐거워했습니다. 삼촌의 속임수에 넘어갔음에도 그는 또다시 칠 년을 일해 사랑하는 사람을 끝내 얻어낸 것은 야곱에게 라헬의 존재 가치가 얼마나 컸는지를 알게합니다.
이스라엘은 이사야의 예언을 듣고 칠백 년 동안 메시야를 기다립니다. 그리 긴 시간을 기다리고도 영접하는 일에는 실패하지만…오늘 본문은 그런 어처구니없는 실패가 골짜기를 메꾸지 못하고 높아진 것을 낮추지 못하고, 거칠어진 마음을 평탄케 하지 못해서 나타난 결과임을 지적합니다.
노아가 사람들의 비웃음을 참아내며 120년 동안 방주를 만든 것은 하나님의 물 심판이 그만큼 큰 의미로 다가왔기에 올인한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초유의 세상을 쓸어 버리는 심판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었습니다.
요셉은 꿈을 이루기까지 온갖 모함과 수난을 견디어 14년을 기다린 끝에 총리가 됩니다. 모세는 사십년 왕궁에서 사십년 미디안 광에서 다듬어지는 동안 잘 견뎠기에 이스라엘의 위대한 지도자로 우뚝 섭니다.
다윗은 왕으로 기름 부음을 받고도 7년을 쫓겨 다니다가 왕이 됩니다. 안나는 메시야를 만날 약속을 받고 84년을 성전을 떠나지 아니
하고 기다리다가 아기 예수를 만나게 됩니다. 성경의 위대한 인물은 모두 기다림을 잘한 사람들이었습니다.
메시야를 영접할 자들의 자세 세 가지
1. 골짜기마다 돋우어지게 하는 것-
본문 4절, ‘골짜기마다 돋우어지며..’ 골짜기가 돋우워져야 하는 이유는, 골짜기란 갈라진 마음, 곧 두 마음이기 때문입니다. 두 마음은 갈등을 일으키게 되고 주를 영접하는 데도 머뭇거릴 수밖에 없습니다. 또한 주를 모시기에 모자란 마음을 메꿔야 영접할 수 있습니다.
2. 신앙의 성패는 겸손에 달려있습니다.
신앙의 이유도 겸손이고 신앙의 시작도 겸손입니다.
낮추는 것: 본문 4절, ‘산마다, 언덕마다 낮아지며.’ 당시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정작 칠백 년이나 기다리던 메시야가 오셨음에도 영접에 실패합니다. 교만과 무지때문입니다.
교만이란 다른 것이 들어갈 수 없을만큼 세속으로 가득찬 상태를 의미합니다. 오즉하면 말구유에 주님이 나셨을까요. 인간의 탐심과 이기심이 너무 커서 임산부에게조차 방을 내줄 수 없었던 당시 나사렛 사람들의 마음은 곧 지금 우리의 마음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암탉이 병아리 안 듯 주님은 진리와 사랑으로 감싸 안으려 했음에도 이스라엘이 거부한 것은 극도의 교만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교만은 눈을 어둡게 하고 교만은 죄를 부르는 법입니다. 이스라엘은 정작 메시야가 오셨을 때 그들은 알아보지 못했을뿐만 아니라 오히려 배척하고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교만을 이기는 힘은 예수의 겸손에 있습니다.
3. 험한 곳이 평탄케 되어야 한다는 것.
본문 4절 ‘고르지 아니한 곳이 평탄하게 되며 험한 곳이 평지가 될 것이요’
주를 영접할 길을 만들어야 할 곳을 본문은 광야와 사막으로 밝히고 있습니다. 그곳은 사람 살지 못하는 곳 곧 죽음의 땅 심판의 땅을 의미합니다. 길 만들기 쉽지 않다는 의미입니다. 엉컹퀴와 땡볕으로 거칠대로 거칠어진 상태인데 물도 없는 황망한 곳인데..
그런데 거기에 주님이 오시겠다는 것이 은혜요 하나님의 사랑이요 축복인 것입니다. 그리고 길을 만들면, 거기에 ‘여호와의 영광이 나타나고 모든 육체가 그것을 함께 보리라’ 왕중의 왕이신 주님이 임재하실 것을 약속하십니다.
성탄은 아무리 뒤집어 생각해봐도 기적이요 절대은총이요 극적인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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