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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적인 체험이 삶의 영성으로

안준배 목사 ◙ Photo&Img©ucdigiN

[문화저널=안준배 박사] 기독교적인 체험이 삶의 영성으로  »  윤동주 시 평론 시리즈 <2회> »

희생양을 통한 어둠에서 밝음에로의 존재 초월은 윤동주 시의 중요한 모티브

윤동주의 유고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의 정음사 초판이 1948년 1월에 상재되었다. 그의 시는 기독교 정신을 담아내고 있으며, 기독교적인 체험이 일상으로 젖어든 삶의 영상을 형상화하였다. 암울한 시대에 맞서는 시인의 기독교적 발상을 드러내는 그의 시에는 빛과 어둠, 낮과 밤의 심상을 매개로 하여 인성의 근본 문제를 표상하였다.

 

초 한 대

초 한 대-내 방에 풍긴 향내를 맡는다.

광명의 제단이 무너지기 전
나는 깨끗한 제물을 보았다.

염소의 갈비뼈 같은 그의 몸,
그의 생명인 심지(心志)까지
백옥 같은 눈물과 피를 흘려
불살라 버린다.

그러고도 책상머리에 아롱거리며
선녀처럼 촛불은 춤을 춘다.

매를 본 꿩이 도망하듯이
암흑이 창구멍으로 도망한
나의 방에 풍긴
제물의 위대한 향내를 맛보노라.

이 시는 윤동주가 용정 은진중학교에 다닐 때인 1934년 12월 24일 성탄전야에 그이 나이 15세에 쓴 처녀작이다. 예수의 수난을 이미지로 한 의식구조는 어둠과 희생이다. 시인은 ‘춤추는 촛불’과 ‘도망치는 암흑’을 병치하였다. 암흑으로 표상되고 있는 절망 상황에서 초월케 하는 구원의 빛으로 촛불이 드러난다. 그러한 촛불의 존재를 가능하게 하는 것은 ‘눈물’과 ‘피’를 통한 희생이다. 촛불은 자기 희생으로써 암흑을 몰아내는 제물인 것이다. 이는 처절한 고독 속에서 이루어지는 시인 자신에 대한 성찰을 바탕으로, 또한 시인이 추구하는 삶의 태도를 투영하고 있다.

어느 하나 남김없이 ‘깨끗이 타들어 가는 촛불’의 이미지로써 윤동주는 어두운 현실을 극복해 가는 희생을 묘사하였다. 일제의 압제로 인해 처하게 된 암담한 조국의 현실에 대한 잠재적인 저항과 희생 의지를 표출하였다. 죄악의 어두움으로부터 광명으로 전환해 내는 예수의 십자가 희생은 생명 회복으로 확대된다. 선녀처럼 춤을 추며 아름답게 타오르는 촛불은 어두움의 현실을 넘어서는 생명과 사랑과 평화가 가득한 나라 자체인 예수 그리스도를 추구하는 것이다.

‘초 한 대’로 의인화된 예수가 깨끗한 제물로 제시되면서, 초는 염소의 갈비뼈 같이 타서 흘러내리는 그의 몸으로, 촛불은 백옥 같은 눈물과 피로, 흔들리는 촛불은 선녀의 형상으로 구체화 되고 있다. 궁극적으로는 ‘창구멍으로 도망간’ 암흑과 대칭을 이룬다. 그러므로 시의 결구에서 시인의 의식은 초가 타오름으로 제물처럼 바쳐진 예수의 희생으로 고양된다. 그렇다면 시인의 방은 인류 세계 전체를 암시하며, ‘초 한 대’는 예수를, 암흑은 인간 세상에 자리 잡은 죄의 절망을 상징한다. 생명인 심지까지 백옥 같은 눈물과 피를 흘려 불태우는 예수의 대속을 의인화한 것이다. 시인은 빛을 남기고 나서 몸은 녹아 없어지는 초의 특성으로 역사적 인물 예수의 수난과 죽음을 연상하게 하였다. 동시에 윤동주는 자신을 어린양 예수처럼 민족의 제단, 인류의 제단 위에 오를 순결한 제물로 인식한 것이다. <한국근현대시와 평설 Ⅱ, 조신권, 아가페 문화사 2016 참조>

기독교의 희생양을 통한 어둠에서 밝음에로의 존재 초월은 윤동주 시의 중요한 모티브이다. 윤동주는 1941년 5월 31일에 발표한 <십자가>에서 이러한 어둠 속에서의 희생을 보다 구체적으로 드러냈다.

십자가(十字架)

쫓아오던 햇빛인데
지금 교회당 꼭대기
십자가에 걸리었습니다.

첨탑(尖塔)이 저렇게도 높은데
어터게 올라갈 수 있을까요?

종소리도 들려오지 않는데
휘파람이나 불며 서성거리다가,

괴로웠던 사나이,
행복한 예수 그리스도에게
처럼
십자가가 허락된다면

모가지를 드리우고
꽃처럼 피어 나는 피를
어두워 가는 하늘 밑에
조용히 흘리겠습니다.

윤동주는 <십자가>에서 기독교적 순교 의식을 고통과 행복을 병치하여 시인의 갈등으로 드러내고 있다. 화자가 첨탑에 올라갈 수 없기에 홀로 서성거리며 방황한다. ‘괴로웠던 사나이/ 행복한 예수 그리스도’라는 시어는 시인의 의식에서 고통과 행복이 동행하고 있음을 의미하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를 고통과 행복이란 상반된 시어로 접속하는 것은 시인이 예수를 고통의 수용을 통해 행복하게 되는 삶의 원형으로 인식하였기 때문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현실에서 인류의 모든 짐을 지고 괴로워했지만, 십자가에 못 박혀 희생하였기에 도리어 행복한 예수 그리스도라고 시인을 묘사하였다. 그레서 시인은 자신에게도 십자가가 허락된다면 ‘모가지를 드리우고/ 꽃처럼 피어나는 피를/ 어두워가는 하늘 밑에 조용히 흘리겠습니다’라는 순교의식을 드러내고 있다.

윤동주의 <십자가>는 읽는 이들에게 번민과 회한을 느끼게 한다. 윤동주가 부대낀 그때 그 시절의 역사가 너무나 힘들고 벅차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사는 이 시대는 매사가 쉬워 마치 십자가마저 조금도 괴로운 것이라 여기지 않게 되었다. 그러나 삶의 현장에서 고통을 느낄 수 있을 때 우라는 비로소 행복한 예수 그리스도를 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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