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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가 되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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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부흥의 불길 타오르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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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수교 140년사의 근대문명 리뷰-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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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리고 순수한 맑은 심상을 가진 윤동주

안준배 목사 ◙ Photo&Img©ucdigiN

[문화저널=안준배 박사] 여리고 순수한 맑은 심상을 가진 윤동주  »  윤동주 시 평론 시리즈 <3회> »

윤동주의 동생 윤일주, 그 시절 회고 “섬세하고 여성적인 정서 가져”

윤동주의 동생 윤일주는 그 시절을 회고하면서 “축구 선수였던 형은 어머니의 손을 빌리지 않고 유니폼에 이름도 혼자 만들어 붙이고 기성 복도 손수 재봉틀로 적당히 고쳐 입었습니다.”라고 말했다. 남성적인 운동인 축구 선수였던 윤동주가 당시 가부장적인 사회에서도 손수 재봉틀로 옷을 지어 입은 것으로 보아 그의 내면에 자리한 섬세하고 여성적인 정서를 엿볼 수 있다.

정지용이 윤동주의 아우되는 윤일주에게 묻고 그는 윤동주를 답했다.
“동주는 무슨 연애 같은 것이나 있었냐?”
“하도 말이 없어서 모릅니다.”
“담배는?”
“집에 와서는 어른들 때문에 피우는 것 못 보았습니다.”
“인색하지 않았나?”
“누가 달라면 책이나 셔츠나 거저 줍데다.”
“공부는?”
“책을 보다가도 집에서나 남이 원하면 시간까지도 아끼지 않습데다.”
“심술은?”
“순하디 순하였습니다.”
“몸은?”
중학 때 축구 선수였습니다.”
“주책은?”
“남이 하자는 대로 하다가도 함부로 속을 주지는 않습데다.”

윤동주의 동생 윤일주는 그 시절을 회고하면서 “축구 선수였던 형은 어머니의 손을 빌리지 않고 유니폼에 이름도 혼자 만들어 붙이고 기성 복도 손수 재봉틀로 적당히 고쳐 입었습니다.”라고 말했다. 남성적인 운동인 축구 선수였던 윤동주가 당시 가부장적인 사회에서도 손수 재봉틀로 옷을 지어 입은 것으로 보아 그의 내면에 자리한 섬세하고 여성적인 정서를 엿볼 수 있다.

윤일주는 윤동주의 유고 시킴 발문에 이렇게 적었다.
“그즈음에 백석의 시집 (사슴)이 출간되었는데 100부 한정관인 까닭에 그 책을 구할 수가 없어 도서관에서 온종일 걸려 정자(正)로 베껴 내고야 말았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퍽 소중하게 지니고 다녔습니다.”

윤일주의 회고는 윤동주의 성격을 보다 구체적으로 알게 해준다. “문학 서적만 들고 다니던 형이었기에 성적 중에서 수학이 으뜸가는 것에 다들 놀랐습니다. 특히 기하학을 좋아했는데 아마 치밀한 상품 때문이 아니었을까 생각합니다.”

윤동주는 연희전문학교 문과를 다니다가 방학이 되어 집에 돌아오 면 배바지, 배적삼에 밀짚모자를 쓰고 다니기를 즐겼다. 그는 그런 차림으로 황소를 몰고 나가기도 했는데, 그의 손에는 언제나 릴케나 발 레리의 시집이 들려 있었다.

소를 몰고 가다가 일하는 시골 아낙네들을 보면 따뜻하게 말을 건네 었고, 골목길에서 노는 아이들과 함께 씨름도 했으며, 들꽃을 꺾어 가 슴에 꽂거나 책갈피 사이에 끼워 두기도 하였다.

집안일을 도와 소 꼴도 베고 물도 길었다. 때로는 할머니를 도와 맷 돌질을 했다. 평소에는 과묵했지만, 할머니와 마주 앉아 맷돌질을 할 때면 서울 이야기를 재미나게 들려주기도 했다. 한편 체질적으로 허약 했던 어머니를 간병하며 말동무가 되어 주기도 했다.

또 저녁이 되면 습관처럼 동생의 손을 잡고 산책길을 나섰다. 그 무 럽 1938년 9월 15일에 쓴 시 <아우의 인상화(印)>에 형제애의 뜨 거운 정을 묘사했다.

붉은 이마에 싸늘한 달이 서리어
아우의 얼굴은 슬픈 그림이다.

발걸음을 멈추어
살그머니 애딘 손을 잡으며
“늬는 자라 무엇이 되려니”
“사람이 되지”
아우의 설은 진정코 설은 대답이다.

슬며시 잡았던 손을 놓고
아우의 얼굴을 다시 들여다 본다.

싸늘한 달이 붉은 이마에 젖어
아우의 얼굴은 슬픈 그림이다.

윤동주는 아우의 ‘애딘’손을 잡았다고 시어로 적었다. ‘애딘’이란 ‘앳된’, ‘여리다’는 뜻으로, 아우의 ‘사람이 되지’라는 말에 대한 시인 의 반응은 살아있는 시어이다.

1936년에 쓴 윤동주의 <편지>에는 이별한 누나에 대한 사모의 정이 눈처럼 수북하게 쌓여 있다.

누나!
이 겨울에도
눈이 가득히 왔습니다.

흰 봉투에
눈을 한 줌 옇고
글도 쓰지 말고
우표도 붙이지 말고
말쑥하게 그대로
편지를 부칠까요

누나 가신 나라엔
눈이 아니 온다기에.

윤동주의 착하고 여린 마음이 손에 잡힐 듯하다. 시인의 착하고 선 한 심성은 어디든 갈 수 있고, 무엇이든 이을 수 있다. 윤동주의 동시 <편지>에는 지상과 천상으로 나누어진 두 세계의 화해를 갈망하고 있 다. 흰 봉투에 눈을 한 줌 열고 누나 가신 나라로 편지를 부치는 시인의 순백한 마음이 눈의 색깔처럼 하얗기만 한 것이다. 눈은 지상과 천 상을 이어 주는 매개이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시인의 선한 마음을 다 알아들을 수 있다.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권영민 편저 문학사상사 1995 참조>

별을 헤아리고 별을 노래한 시성

윤동주 하면 누구나 떠오르는 시는 1941년 11월 5일에 쓴 <별 헤는 밤>이다.

계절이 지나가는 하늘에는
가을로 가득 차 있습니다.

나는 아무 걱정도 없이
가을 속의 별들을 다 헤일 듯합니다.

가슴속에 하나 둘 새겨지는 별을
이제 다 못 헤는 것은
쉬이 아침이 오는 까닭이요.
내일 밤이 남은 까닭이요.
아직 나의 청춘이 다하지 않은 까닭입니다.

별 하나에 추억과
별 하나에 사랑과
별 하나에 쓸쓸함과
별 하나에 동경과
별 하나에 시와
별 하나에 어머니, 어머니,

어머님, 나는 별 하나에 아름다운 말 한마디씩 불러 봅니다. 소학교 때 책상을 같이 했던 아이들의 이름과, 패, 경, 옥 이런 이국 소녀들의 이름과 벌써 애기 어머니 된 계집애들의 이름과, 가난한 이 웃 사람들의 이름과, 비둘기, 강아지, 토끼, 노새, 노루, 프랑시스 잠. 라이너 마리아 릴케, 이런 시인의 이름을 불러봅니다.

이네들은 너무나 멀리 있습니다.
별이 아슬히 멀 듯이,

어머님.
그리고 당신은 멀리 북간도에 계십니다.

나는 무엇인지 그리워
이 많은 별빛이 내린 언덕 위에
흙으로 덮어 버리었습니다.

딴은 밤을 새워 우는 벌레는
부끄러운 이름을 슬퍼하는 까닭입니다.

그러나 겨울이 지나고 나의 별에도 봄이 오면
무덤 위에 파란 잔디가 피어나듯이

내 이름자 묻힌 언덕 우에도
자랑처럼 풀이 무성할게외다.

<별 헤는 밤>은 가을 속의 별과 가슴 속의 별이 대응하는 구조이다. 시인은 가을 속의 별을 헤아린다. 이런 헤아림은 곧 가슴 속의 별을 헤 아리는 일인 것이다. 이 시에서 ‘별’은 추억, 사랑, 쓸쓸함, 동경, 시, 어머니. 아름다움을 표상하고 있다. 이런 상징에는 ‘서시’에 나오는 ‘죽어가는 것들을 사랑하는 마음’과 통한다. 그러나 이런 세계는 별 이 아슬히 멀 듯이 너무나 먼 곳에 있다. 시인은 ”을 바라보면서 자신의 삶에 부끄러움을 느낀다.

‘나는 무엇인지 그리워/ 이 많은 별빛이 내린 언덕 우에/ 내 이름자 를 써보고 흙으로 덮어 버리었습니다.’는 이런 부끄러움을 동기로 하 는 화자의 상징적 죽음을 암시한다. 그는 자신의 죽음이 겨울을 지나 봄이 되면 새로운 삶, 곧 ‘파란 잔디’로 새롭게 피어나리라고 믿는다. 이는 부활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이승훈은 해석하였다. 김윤식은 타향 에서 시달린 화자가 고향으로 돌아왔지만, 고향에서도 죽어가는 자아 를 느끼고 또 다른 고향을 갈망한다고 <별 헤는 밤>의 고향을 해석했 다.

애뜻, 애잔, 애석, 외로움, 다정 다감, 슬픈 얼굴들이 이 시 속에 다 살아있다. 많은 얼굴들을 지칭하는 ‘이네들’이란 시어는 정답기도 하 고 슬프기도 하다.

윤동주의 또 다른 대표작 <서시(詩)>는 1941년 11월 20일에 연희 전문학교 교정에서 썼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일제강점기 시대에 있어서 한 점 부끄러움’ 없이 사는 것은 지난했 다. 시인이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라고 한 것은 ‘잎새’를 흔들 정도의 미세하고 여린 바람의 세기에도 괴로워하는 시 인의 심상을 드러낸 것이다. 아주 작은 허물과 잘못도 용인할 수 없다 는 시인의 결벽증을 보여주고 있다고 할 것이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 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에게 주어진 길을 걸 “어가야겠다.”는 시인의 다짐은 일제강점기에서 신음하는 민족을 기독 교적 사랑으로 품고자 한 것이다. 나아가서는 그렇게 사는 것이 자신 에게 주어진 소명이라는 것이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라는 결어는 시인의 삶을 바람 이 이리저리 흔들어대도 순결을 지향하겠다는 고백이다.

나는 1985년 무렵에 방송에서 조영남이 윤동주의 ‘서시’를 부르는 것을 듣게 되었다. 그 노래를 듣는 순간에 내가 하는 기독교문화상의 음악 부문에 윤동주의 ‘서시’를 수상작으로 세우는 것이 기독교 문화 형성과 창달에 이바지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윤동주의 6촌 되는 가수 윤형주에게 전화해서 ‘서시’의 작곡자에게 상을 주고자 하는 데 그가 작곡하였느냐고 물었었다. 윤형주는 자신이 아니고 조영남이 작곡한 거라고 하였다. 사실 윤형주는 그의 6촌 형 되는 윤동주의 시 에다 곡을 붙여 노래하고자 했었다. 그러나 그의 부친 되는 윤영춘이 윤동주의 시 자체가 완전체인데 다른 것으로 변환시키면 훼손할 수 있 음을 경계하였다고 하였다. 나는 윤형주가 가르쳐 준 대로 조영남의 집으로 전화를 했다. 윤여정이 전화를 받았는데 조영남에 대한 반응이 별로 안 좋았다. “난 그 사람이 도대체 뭐 하고 다니는지 모릅니다. 지 금 집에 없으니 다음에 전화해서 직접 알아보셔요.” 여러 차례 집에 전화해서 통화가 되어 조영남을 정동에 있는 난다랑에서 만나 그를 제 3회 기독교문화상 음악 부문 수상자로 확정했었다. 그날, 조영남에 관 하여 무관심하게 전화를 받았던 윤여정은 1987년에 그와 이혼하였 다.

순수하고 순결한 윤동주의 <서시>를 조영남이 작곡하고 불러서 대 중에게 알렸다는 것은 아이러니이기도 하다. 어떻게 보면 인간이란 누 구나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지 못하기에 윤동 주의 <서시>는 누구에게나 괴로움을 주고 있다. 어떤 가식과 허풍이 없는 순백한 <서시>를 읊조리다 보면 내게도 부끄러움이 생긴다. <서시>는 윤동주이고, 우리에게 주어진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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