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분단 70년의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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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칼럼=Dr. Elijah Kim] 남북 분단 70년의 의미 » 2023/02/06 »
남과 북을 도리어 연단하셔서 하나님의 뜻과 경륜을 나타나게 하심
구한말로부터 수천년을 이어온 우리 민족의 역사가 일본 제국주의에 중단되고 36년의 식민지배, 이어서 맞이한 해방 이후 분단, 그리고 한국 전쟁 그리고 다시금 이어진 분단의 고착화 가운데 아직도 우리는 우리 민족을 향하신 크신 하나님의 경륜과 뜻을 헤아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는 멸망 직전에 있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뜻을 헤아리지 못한 것과 같은 의미입니다. 유다의 멸망과 예루살렘 함락이라는 큰 사건이 주는 의미를 통해 우리민족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뜻은 우리를 향하신 회복과 회개와 새로운 준비와 지구촌 복음화를 위해 한민족을 쓰시겠다는 것…
들어 가는 말
예루살렘의 멸망은 구속사의 핵심이며, 출애굽 이후 이스라엘 전 백성 훈련 이후 두번째에 해당하는 국가적 훈련과 연단입니다. 이는70년에 걸친 대훈련의 장정이며, 남은자를 통해 구원을 이루시고 이스라엘의 언약을 회복하심입니다. 유다의 멸망과 바벨론 유수라는 대서사시를 입안하시고 실행하신 분은 하나님 자신이시며 이를 선지자들에게 누차 말씀하셨지만 어리석은 유다 백성들은 거짓 선지자를 내세우고 의지할 힘도 없는 애굽을 신뢰하였으며 끝까지 하나님의 말씀을 청종하지 않았습니다. 멸망을 작정하심이 영원한 폐기가 아니라 새로운 ‘clockwork (메시야를 통해 인류 구원의 시계침을 제공하시는 것)’이며, 역사의 새출발을 말하는 ‘neologism(新語)’이며, ‘abrupt change(이에 대한 적절한 한국어 단어가 없지만 굳이 설명한다면 갑작스러운 변화)’임에도 불구하고 어리석은 백성들은 끝까지 하나님의 말씀을 경청하지 않고 멸망의 구렁텅이에서 행하시는 크고 놀라우신 하나님의 역사를 볼 수 없었습니다.
저는 우리민족의 분단의 역사를 바라보면서 우리가 겪고 있는 부분에 대하여, 하나님으로부터 심판과 채찍과 징계를 받은 이스라엘 백성과 그들의 돌이킴과 회개 그리고 회복을 통하여 우리민족에게 주시는 교훈과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볼 수 있었습니다. 1945년 일제의 긴 압제 가운데 만끽할 수 있는 해방과 광복의 기쁨도 잠시 길고 긴 좌우의 대결과 이어진 우리 민족의 분단을 보면서 남북 분단의 역사를 돌아오는 성경적 고찰을 전개하고자 합니다.
분단 70년
1945년 8월 15일 우리는 해방을 맞이했지만 한 국가로 출범하지 못하고 일본군이 떠난 그 뒤에 미국과 소련 양 진영에 의해 군정이 들어서게 되면서 남북한 분할 점령이 이루어집니다. 미군의 군정 이후 남한의 단독 정부가 수립되고 이어서 북한에도 독자 정부가 수립이 됩니다. 이 해가 1948년에 이루어졌기에 실제적 분단은 1945년이 아닌 1948년으로 잡기도 합니다. 그리고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했습니다. 그리고 1953년 7월 27일에 남북한 사이에 휴전협정이 맺어졌습니다. 이 휴전협정(Military Armistice Agreement)은 잠시 전쟁을 멈춘 것이지 평화협정은 아니었습니다. 그 이후 우리 민족은 여전히 총뿌리를 겨눈 채 대치 상태를 지속해 오고 있습니다. 제가 여러 세미나를 인도하는 시기마다 광복과 분단을 애기할 때마다 제가 강의를 하는 시점에 따라 분단의 역사가 달라졌습니다. 2023년 지금 이 글을 쓰는 순간을 기점을 할 때 분단의 기간이 나오지만 저의 글이 후에 읽혀질 때에는 분단의 기간이 또 달라질 것입니다. 우리 민족 분단의 시점을 기술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해방 후 78년 : 1945년 8월 15일
건국 후 75 년 : 1848년 8월 15일
한국전쟁 후 73년 : 1950년 6월 25일
정전 후 70년 : 1953년7월 27일
매우 단순한 것 같지만 우리 민족의 분단을 어느 시점에서 잡느냐 에 따라 그 시일이 달라짐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역사상 일어난 매우 중요한 사건을 통해 그 기원을 잡을 때가 많습니다. 그래야만 기준점이 생깁니다. 인류에게 이스라엘의 역사는 크로노스(Chronos)가 아닌 카이로스(Kairos)로 구별케 해주는 매우 중요한 시계침입니다. 알렉산더 대왕의 페르시아 전쟁은 언제 있었고, 줄리어스 시저의 갈리아 정복은 언제 있었고, 나폴레옹의 러시아 침공은 언제 있었고, 2차 세계대전의 발발은 언제 있었다는 연대기에 대해 우리는 자주 말합니다. 이것은 크로노스이며 사건이 일어난 시기를 말합니다. 그러나 역사상 일어난 사건이 하나님의 개입과 구속사의 연장 선상에 일어날 때에는 크로노스가 아닌 카이로스 즉 하나님의 때가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은 그 오신 이전과 이후로 나뉘었고 우리는 주전 주후 또는 기원전 기원후로 말하면 영어로는 BC 그리고 AD 로 구분합니다. 역사상 일어난 어떤 사건이 인류에게 메시야의 오심과 관련해서 가장 많이 말하는 부분이 예루살렘의 멸망과 바벨론 포로 그리고 고토로의 귀환과 예루살렘 재건입니다. 이 분은 인류에게 분명히 역사가 메시야의 오심을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음을 보여주는 하나님의 시계침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단순히 크로노스와 카이로스로 구별하면 되는 줄 알았는데 이스라엘의 카이로스가 일어난 일련의 사건들을 지금 현 시점에서 그리고 현 상황에서 적용하려 할 때는 그리 단순하지 않다는 점입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다음과 같은 점들을 고려해야 합니다.
문자적 의미에서 70년
성경의 해석에서 주는 70년
한민족의 상황에서 볼 수 적용 가능한 70년의 의미
저는 위와 같은 부분들을 고려하면서 먼저 70년의 의미를 고찰해 보고자 합니다.
공산주의의 종언 70년
소련의 붕괴는 연대상으로는 1991년으로 말하지만 이미 소련의 내부 붕괴는 고르바초프와 레이건 대통령이 맺은 ‘중거리 핵전력 조약 (Intermediate-Range Nuclear Forces, (INF) Treaty)’으로 시작되었다고 대부분의 언론 매체는 당시에 언급했습니다. 1917년 볼세비키 혁명이 일어나서 제정 러시아가 무너지고 공산주의 원년이라 할 수 있는 소련 제국의 출범이 이어졌습니다. 70년의 시간이 흐른 후 견고한 공산주의 종주국 소련이 공산주의의 종언을 고합니다. 공식적으로 1991년 12월 25일 소련의 공산당 서기장이며 대통령인 미하일 고르바초프가 소련의 공식 해체를 선언한 날입니다. 그러나 이미 언급한 바와 같이 공산주의의 출범으로부터 공산주의 종언까지 1917년부터 1987년까지 70년이 걸린 것입니다.
이 70년이 지구촌 역사상 저는 많은 의미를 준다고 봅니다. 무신론과 유물론으로 인류를 혹세무민하고 인간의 정신세계를 말살시킨 공산주의가 그 거짓과 선동과 회유의 본질이 다 드러나고 더 이상 지탱할 힘이 없어서 스스로 무너진 것입니다. 70년이라는 기간 동안 공산주의 체제하에 있던 국민들은 노예처럼 착취당하였고 유린되었습니다. 그리고 공산주의가 무너지자 그 아래 있던 백성들은 비로서 놓임을 받았습니다. 동유럽과 중앙아시아와 구 소련 연방 하에 있던 많은 국가들이 독립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옛날처럼 공산주의로 돌아가는 것을 결사 반대하고 있습니다.
공산주의의 종언이 있기까지 인류에게 준 70년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소련 공산주의 붕괴 70년, 서독 사회주의 붕괴 40년
현대 역사에서도 이처럼 신기원을 이룰 만한 이정표를 남길 사건들이 있습니다. 그것은 공식적인 독일의 통일 보다 앞선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1989년 11월 9일입니다. 동서독의 통일은 그 뒤인 1990년 10월 3일에 이루어집니다. 1945년 4월 16일 베를린이 소련군의 휘하에 들어 간 것을 천명한 날입니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것은 소련군에게 나찌 독일이 항복한 것은 4월 16일이지만 무조건적 항복 조약에 서명한 것은 5월 2일입니다. 베를린 항복으로부터 베를린 장벽까지는 44년이 걸렸지만 서독에 민주 정부가 들어선 것은 1949년 5월 23일이며, 동독의 사회주의 정부가 들어 선 것은 1949년 10월 7일입니다. 베를린 장벽은 동독 사회주의 정부 수립 후 40년 만에 이루어진 것입니다.
서독과 동독 분단과 통일에서 보듯 한반도의 분단의 역사도 이처럼 그 의미를 되짚어 볼 수 있습니다. 아직도 우리는 분단된 채 대치 상태로 살고 있습니다. 어느 지점으로 우리가 분단의 시기를 잡는다 해도 한국 전쟁이 끝나고 종전이 되었지만 여전히 휴전 상태로 살아온 지 70년째가 되었습니다.
오늘 저는 70년이 주는 성경적 의미는 무엇일까?를 고찰해 보고자 합니다.
남북 분단 70년의 의미
해방과 남북한의 분단, 한국 전쟁 그리고 정전 70년이 되는 2023년 현재 남북한의 통일은 멀게만 느껴집니다. 일제의 태평양 전쟁 패배로 맞이한 우리의 해방이후 얄타회담으로 인해 남북한 38선이 그어지고 남과 북이 국가 시스템이 다른 두 나라로 출발하게 된 1948년, 그리고 머지않아 1950년 6월 25일 한국전쟁이 발발합니다. 그리고 1953년 7월 27일 정전 협정을 맺음으로 다시금 통일을 목전에 둔 채 이루지 못하고 분단된 채 70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습니다. 우리민족에게 이 70년이 주는 성경적인 의미는 무엇일까요? 그 의미를 알아 보기 위해 매우 간략하게 성경이 주는 유다 백성의 바벨론 포로 70년이 주는 의미가 무엇인지를 우리는 살펴 보아야 합니다.
70년의 성경적 의미
‘70’이라는 숫자는 ‘7’이라는 완전수에 ‘10’을 곱한 숫자입니다. 성경에서 ‘10’은 ‘7’이라는 완전수에 하나님의 율법을 의미하는 ‘3’을 더한 수입니다. 성경의 ‘70’은 모든 권세로 완벽한 영적 질서를 수행하는 것을 의미하며 동시에 심판의 기간을 의미합니다. 70이라는 숫자가 성경에 언급된 것은 모세가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70인의 장로를 택하여 회막 앞에 모이게 한 것에 볼 수 있습니다. (민수기 11:16-30; 출 24:1) 후에 70인의 장로들의 모임은 산헤드린이 되었습니다. 요셉을 비롯한 야곱의 가족이 애굽으로 이주한 수는 70명이었으며 이들의 후손이 이스라엘이라는 한 국가가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70인의 제자들을 둘 씩 짝을 지워 파송하셨습니다. (눅 10) 4복음서를 보면 예수님께서는 70개의 비유를 말씀하셨습니다. 이처럼 성경 전반에 ‘70’이 주는 의미가 지대합니다. 시편 90편 10절은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로 언급하였으며, 방대한 탈무드 문서 가운데 미슈나의 피르케이 아보트 (פרקי אבות ) 문서에서는 70을 나이가 들 수록 더해지는 “힘”으로도 지칭하고 있습니다.
오늘 제가 특별히 나누고자 하는 것은 유다의 멸망으로부터 바벨로 포로로 된 70년의 의미와 이와 관련하여 종전 70년의 의미를 비교 성찰하기 위함 입니다.
예루살렘이 파괴되고 잡혀 간 유다 백성은 70년을 바벨론, 메대 그리고 페르시아 제국시기까지 포로 생활을 했습니다(렘 29:10). 역설적으로 유다 백성이 바벨론 포로로 잡혀가는 동안 예루살렘은 황폐함으로 70년 동안 안식을 누릴 수 있었습니다.(렘 25:11) 다니엘은 기도 가운데 예레미야의 예언을 깨달으며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네 백성과 네 거룩한 성을 위하여 칠십 이레로 기한을 정하였나니 허물이 마치며 죄가 끝나며 죄악이 영속되며 영원한 의가 드러나며 이상과 예언이 응하며 또 지극히 거룩한 자가 기름부음을 받으리라” (단 9:24)
여기에 칠십 이레는 70 곱하기 7이 됨으로 490이라는 숫자가 됩니다. 유다 백성이 바벨론 포로의 기간이 70년이라는 사실에 대하여 우리는 다음과 같은 사실을 묵상하게 됩니다. 또한 예수님께서는 용서에 대한 질문에 답하시면서 일흔 번에 일곱번이라도 용서하라고 하셨습니다. 70이레처럼 70X7번(490 번)이라도 용서를 해 주셔야 된다고 하십니다. 70이라는 하나님의 영적 질서의 회복과 심판이 가득 찬 기간이 바로 70 곱하기 완전수인 7이 바로 칠십 이레가 됩니다.
70년 바벨론 포로의 의미
솔로몬 사후 이스라엘은 주전 930년 남북 왕조로 분열되고 북왕국 이스라엘은 주전 722년에 앗수르에 의해 멸망합니다. 남아 있는 남왕국 유다도 주전 586년에 느브갓네살의 바벨론에 의해 멸망합니다. 이 멸망은 최종적 멸망입니다. 사실 예루살렘은 3차례에 걸쳐 함락되었습니다. 예루살렘의 함락은 주전 605년, 597년, 그리고 586년 세 차례에 걸쳐서 이루어진 것입니다. 예루살렘 함락에 대하여 예레미야서는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선지자 예레미야가 예루살렘에서 이같은 편지를 느부갓네살이 예루살렘에서 바벨론으로 옮겨간 포로 중 남아 있는 장로들과 제사장들과 선지자들과 모든 백성에게 보내었는데
때는 여고니야왕과 국모와 환관들과 및 유다와 예루살렘 방백들과 목공들과 철공들이 예루살렘에서 떠난 후라” (예레미아 29:1-2)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바벨론에서 칠십년이 차면 내가 너희를 권고하고 나의 선한 말을 너희에게 실행하여 너희를 이곳으로 돌아오게 하리라” (예레미아 29:10)
여기에서 예레미야는 포로됨의 기간이 70년이며 고토로 돌아오게 될 것임을 분명히 말합니다. 유다 백성의 고토 귀환은 예레미야 뿐 아니라 이사야 선지자도 예언했습니다. (사44:28, 45:1-3) 유다 백성의 포로됨에 대한 예레미아의 예언은 3차에 걸친 멸망 가운데 분명히 제1차 함락시에 주어졌습니다.
주전 605년 제1차 예루살렘 함락 때에 여호야긴 왕이 폐위되고 그의 가족, 궁정, 수천 명의 일꾼과 함께 포로로 끌려 갑니다. 예루살렘 제1차 함락 때 바벨론으로 끌려 간 사람 중에는 다니엘도 포함되었는데 그 때 그의 나이 15세였습니다. 다니엘과 세 친구들은 바벨론 왕궁에서 지도자 수업을 받게 되며 특히 다니엘은 바벨론 제국의 총리가 됩니다. 그러나 포로 된 유다 백성이 예루살렘으로 귀한되기만을 학수고대하던 그는 깊은 기도 가운데 포로 된 기간과 그리고 고토 귀환에 대한 말씀의 의미를 깨닫게 됩니다. 이에 대하여 다니엘서 9장 1절에서 2절은 다음과 같이 적고 있습니다.
“메대 족속 아하수에로의 아들 다리오가 갈대아 나라 왕으로 세움을 입던 원년
곧 그 통치 원년에 나 다니엘이 서책으로 말미암아 여호와의 말씀이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임하여 고하신 그 년수를 깨달았나니 곧 예루살렘의 황무함이 칠십년만에 마치리라 하신 것이니라”
포로됨의 70년은 예루살렘을 황폐케 함이며 그것이 가득 차게 되었을 때 하나님께서는 그의 백성들을 돌아 오게 하신다는 점입니다. 다니엘이 70년의 포로됨을 깨달은 후 금식하며 유다의 죄악을 고백하며 하나님께서 용서를 구하였고 가브리엘 천사가 내려 와 그에게 유다 백성에 대한 고토 귀환과 더불어 칠십 이레에 대한 말씀을 전해 주게 됩니다. 여기에서 매우 중요한 사실은 다니엘이 기도하게 된 가장 중요한 부분이 바로 예레미야의 예언 때문입니다. 예레미야는 바벨론 포로 기간이 70년과 유다 백성의 귀환을 분명히 예언했기 때문입니다. (렘 29:14)
유다 백성의 포로 귀환 명령이 고레스 대왕에 의해 선포된 것은 BC 538년입니다. 만약 느브갓네살왕에 의한 멸망인 BC 586년부터 고레스 칙령 선포 해인 BC 538년으로 하면 포로 생활은 48년이 됩니다. (대하 36:22-23, 스 1:1-4) 앞서 말한 것처럼 예레미야는 포로 생활이 70년이라고 예언했습니다. (예레미야 29:10) 이럴 경우에는 70년의 포로기는 분명히 최종적 예루살렘 멸망이 아닌 제1차 예루살렘 함락인 608년이고 고토 귀환의 칙령이 선포된 538년까지 계산하게 되면 68년이 됩니다. 68년은 당해 년도가 포함된 것입니다. 실제적으로 포로 귀환도 3차에 걸쳐 일어납니다. 제 1차 귀환은 고레스 칙령이 주전 538년에 발표되었으며 주전 537년 스룹바벨과 포로들 일부가 귀환하게 됩니다. 실제적 포로 귀환은 537년에 이루어진 것입니다. 제 1차 바벨론 포로 귀환이 있은 지 82년 후인 주전 456년 아닥사스다 7년에 학사 겸 제사장 에스라의 지도하에 제 2차 귀환이 있었습니다. 3차 귀환은 느헤미야의 인도하에 아닥사스다 20년인 주전 444년에 이루어집니다.
3차에 걸친 예루살렘 함락과 3차에 걸친 포로귀환 가운데 우리에게 여전히 풀리지 않는 미스테리가 남아 있습니다. 제1차 예루살렘 함락이 있었던 주전 605년부터 제1차 포로귀환이 발표된 주전 537년까지의 기간이 68년 밖에 되지 않는 다는 점입니다.
70년 포로됨의 실제와 적용 사이
최초로 예루살렘이 함락되었던 주전 605년부터 실제적으로 포로 귀환이 이루어진 주전 537년의 68년에 대하여 우리는 성경이 기록된 당시 상황을 살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성경에는 세개의 달력이 사용되고 있습니다. 구약에는 유대력과 바벨론 달력 그리고 신약에서 덧붙여서 줄리어스 시저가 도입한 주전 46년의 율리어스력(Julian calendar)입니다. 지금 전세계는 율리어스력을 기초로한 그레고릭력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바벨론 포로기에는 유대력 말고도 자연스럽게 바벨론력이 도입되었습니다. 지금의 시각으로 성경이 기록된 당시의 달력 계산법을 염두에 두지 않고 계산하며 오류가 생길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그레고리력은 365일이며, 우리나라가 예전에 사용한 달력은 354일입니다. 유대력은 12개월을 균등하게 30일로 계수한 360일입니다. 그러므로 성경 년도를 유대력이 아닌 그레고리력으로 계산하면 큰 차이가 생깁니다.
종교력으로 신년은 지금 태양력의 9월 또는 10월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처음으로 포로로 잡혀간 것은 그레고리력으로 BC 605년 봄입니다. 우리가 사용하는 BC와 AD는 당연히 율리어스력을 보강한 그레고리력입니다. 주전 605년의 봄은 유대력으로 이미 두번째 해가 됩니다. 고레스 칙령 이후 포로 귀환이 이루어진 주전 537년은 그레고리력으로 536년까지 연장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유대력과 지금의 그레고리 태양력으로 계산하게 될 경우에 2년의 차이가 발생합니다. 우리가 또 하나 눈여겨 볼 것은 유대인의 ‘포괄적 계산(inclusive counting)’ 방식입니다. 주전 605년 봄부터 BC 537년 늦가을까지 전체 유대력 68년을 말하지만 추가 유대력 2년까지 포함하면 실제적인 포로 생활이 실제로 성경에 명시된 대로 70년 동안 지속되었음을 볼 수 있습니다.
70년 포로됨이 주는 심판과 징계의 의미
회개
가장 중요한 부분은 오랫동안 엘리야, 미가야, 엘리사, 요나, 호세아, 아모스, 이사야, 예레미야, 미가선지자들을 통해 유다 백성의 죄악을 책망하신 하나님께서 돌이키지 않을 때 심판하실 것을 누차 말씀하셨습니다. 유다가 멸망 직전까지도 나훔, 스바냐, 훌다(대하 34; 왕하 25:5), 하박국과 에스겔 선지자들이 죄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예언했으나 패역한 그들은 돌이키지 않고 도리어 반역하고 불순종 함으로 심판이 임한 것입니다. 이처럼 유다 백성의 70년 바벨론 유수는 그들의 죄를 끊고 온전히 회개케 하시는 은총의 기간이기도 합니다.
우상숭배
유다 백성의 가장 큰 죄는 바알과 아세라를 비롯한 이방신들을 섬기고 우상 숭배하며 안식일과 안식년을 지키지 않고, 하나님의 율법을 거역한 것입니다. 이들을 예루살렘에서 뽑아서 70년의 포로기를 거쳐 그들이 잘못한 우상숭배의 근원을 뿌리 뽑고 다시금 안식일과 안식년을 지킬 뿐 아니라 율법을 회복하기 위하여 70년의 포로기를 허락한 것입니다. (대하 36:21, 렘 34:8-16)
땅의 안식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시내 광야에 있을 때 율법을 주시며 안식년을 제정해 주셨습니다. (레위기 25:2-7) 6년은 경작하고 7년이 되는 해에는 땅에게 휴경기인 안식년을 주어 땅이 쉬도록 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안식년의 규례를 지키지 않으면 그들을 그 땅에서 쫓아내고 그 땅에 안식일 법을 시행할 것이라고 경고하셨습니다(레위기 26:34-35, 43). 안식일과 안식년을 범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쫓김을 받아 바벨론 포로생활을 하였으나 예루살렘과 유다의 땅은 “70년”의 휴식을 갖게 되었습니다. (레위기 26:40-45)
훈련과 돌이킴
하나님의 심판과 징계가 줌으로 유다 백성 전체가 배우게는 되는 훈련과 깨달음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절기와 율법과 제사와 예배와 기도를 지키지 않은 유대인들은 포로된 그 땅에 돌이킴으로 죄를 청산하고 말씀으로 새롭게 되며, 피의 제사를 드릴 수 없어도 찬양의 제사를 드리면서 온 유대 공동체가 다 훈련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율법과 순종과 정결케 되었고 그들의 죄악을 청산함으로 새롭게 거듭날 수 있었습니다.
새로운 준비
70년의 포로됨이 잡힘의 시간이지만 동시에 새로운 역사를 준비케 하는 시간입니다. 죄로부터 멀리하고 온전히 하나님 중심으로 거듭한 유대 공동체는 이제 메시야의 오심을 준비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기도 공동체
70년 바벨론 유수에서 가장 놀라운 사실은 눈에 보이는 예루살렘 성전이 무너졌음에도 불구하고 유대인들은 모여서 예배하고 기도하며 말씀으로 돌아오는 회당 예배를 시작했다는 점입니다. 이는 진정한 기도의 집의 시작이기도 하며 신약에서 말하는 교회의 시작을 위한 기초를 놓게 합니다. 유대인들은 회당을 통한 기도 공동체를 구현함으로 인류 구원을 위한 신약의 교회가 예표가 되었습니다.
예배와 말씀 회복
회당은 안식일 뿐 아니라 매일 매일 드려지는 찬양의 제사와 기도 그리고 하루 세 번씩 드려지는 공예배를 생활화하게 함으로 다가올 예배와 말씀 중심의 유대 공동체를 구현했습니다. 이는 장차 다시 세워질 예루살렘 성전과 회복이 시온을 통해 오실 메시야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을 준비케 하림입니다.
제사장 나라
이스라엘은 거룩한 나라요 주의 소유된 백성이요 왕 같은 제사장이었으나 불순종과 우상숭배 그리고 죄악으로 도리어 내침을 당합니다. 이들이 쫓겨 나간 그 땅에 다시금 거룩을 회복하고 열방을 향한 제사장 나라를 회복하게 된 것은 가장 놀라운 결실입니다. (대하 36:21)
남은자
포로로 잡혀간 이들은 유다 백성 전부가 아닙니다. 왕과 귀한 자들과 고관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예루살렘의 파멸이 최종적 멸망이 아니면 남은 자를 사용하심이 하나님의 백성을 구원하시고 정화시키사 회복케 하시는 구속사의 놀라운 행진입니다. 사로잡혀간 유다 백성이 다시금 예루살렘으로 돌아 온 사람은 5만명에 이릅니다. 성경에서 매우 주제인 남은자를 통한 구속의 역사입니다. 학개서 2장 9절처럼 “이 전의 나중 영광이 이전 영광보다 크리라”라는 메시야 예언을 성취하게 하신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 남은 자를 통해 환란과 역경 중에서 끝까지 믿음을 지킴으로 구원을 이루는 자라고 했습니다. (롬 9:27)
영적 이스라엘의 회복
70년의 포로기간을 통해 유다 백성은 진정 하나님의 선민으로, 거룩한 나라로 그리고 제사장 국가로 거듭날 뿐 아니라 영적 이스라엘로 회복하게 됩니다. (렘 30:1-24) 이는 이스라엘을 부르신 본질적 하나님의 부르심을 회복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사 54:1-10) 이들은 이방인과의 통혼 그리고 이방인들의 관행을 따르던 것들을 다 끊고 거룩한 백성으로서의 회복을 하게 됩니다. (에스라 7:1-10) 이스라엘의 회복은 열방을 주님께로 이끄는 통로가 됩니다.
70년 분단이 주는 영적 의미
위와 같은 70년 포로됨을 통해 우리 민족이 깨달을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요? 먼저 유대 민족이 겪었던 그 모든 과정들을 우리민족에게 대비하면 그 모습이 너무 분명해 집니다.
회개
우상숭배
땅의 안식
훈련과 돌이킴
새로운 준비
기도 공동체
예배와 말씀 회복
제사장 나라
남은자
영적 이스라엘의 회복
분단 이전의 죄
위의 사항에 해당하는 모든 항목이 남북한 공동체에게 주는 메시지가 매우 큽니다. 우리는 분단 70년을 돌아 보며 두 가지 사실을 봅니다. 분단 이전에 일제치하에서 한국교회가 보여준 신사참배와 동방요배 그리고 제도적 배교와 일제와의 타협과 협조에 대한 회개와 돌이킴이 필요합니다. 동방의 예루살렘이 김일성 집단의 우상숭배가 만연하도록 한 것은 비록 일제 치하이지만 우리 스스로 공산주의자와 사회주의자들을 대처하지 못한 교회의 타협과 타락이 더욱 큽니다. 유다의 멸망의 원인이 된 우상숭배와 배교 그리고 일제 강점기의 신사참배 및 우상숭배와 불순종의 결과로 나타난 이스라엘의 패망과 예루살렘 함락은 우상숭배와 이방종교의 유입 그리고 하나님 중심으로부터 떠난 타락이 가장 큰 원인입니다. 성경적으로 보면 해방 이전 기독교회와 기독교인 90%를 점유했습니다. 일제의 강압적 신사참배에 대하여 무릎을 꿇게 된 교회는 해방 이후에도 신앙을 점검하여 회개와 돌이킴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도리어 분열과 타협으로 나아갔습니다. 이후 일어난 한국 전쟁 그리고 휴전 그리고 우리는 70년의 분단의 세월을 다시금 겪고 있습니다.
분단 70년 이후 새로운 기회
‘회개와 돌이킴
겉으로는 예루살렘이 파괴되고 많은 자들이 사로잡히고 이방 땅에 포로 되었지만 그곳에서 회개와 거룩함을 통해 인류 구원을 위한 메시야의 대망이 이루어진 것처럼 같은 민족이며 형제임에도 우리가 피 끓는 고통으로 겪는 분단이 우리를 정화시키고 하나님 나라 확장을 위해 한민족이 사용될 수 있는 기회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남은자
북한의 김일성 소수 집단에 의해 정치적 종교적 우상숭배가 자리잡고 북한 주민은 우상숭배에 예속되게 하는 말 그대로의 노예됨이 북한에 시작됨에도 하나님께서 북한에도 그리고 남한에도 남은자를 사용하십니다. 남은 자를 통해 예루살렘 귀환과 이스라엘의 회복을 주신 것처럼 북한에서도 남겨진 순교자의 신앙을 가진 기독교인들과 남한에서도 세속에 물들지 않고 거룩한 신부로 준비되어진 소수의 남은 자를 통해 다시금 한반도의 회복과 복음화의 역사를 이루십니다.
한민족의 회복
나아가서 이스라엘의 회복이 나라의 회복보다는 하나님 나라의 시작과 완성을 의미하듯 남북한의 하나됨과 동일이 한민족의 염원을 성취하는 민족주의적 통일이 아니라 인류를 구원하고 주께로 인도하는 복음화의 역사에 쓰임 받도록 하는 보다 성숙한 성찰과 깨어짐의 계기가 되어야 합니다.
한국교회의 회복
우리가 회개해야 할 일들이 마치 다니엘의 기도가 매우 구체적인 것처럼 우리 한국 교회가 어디에서 떨어졌고 타락했는지 그리고 무엇을 단절하고 고치며 끊어야 하는지를 분명히 하고 청산해야 합니다. 남한에 만연한 물질만능주의, 번영의 복음, 기복신앙, 교회건물위주의 과시주의, 교권주의, 교회의 세속화와 정치권력화, 소금과 빛의 역할을 잃어 버린 교회와 성도들, 영적 능력과 첫사랑을 잃어 버린 교회의 처참한 상태, 헌금 강요로 빚는 현세주의, 성도덕의 타락, 목회자들의 문란과 성적 방종, 남남 갈등, 동서 갈등, 세대 갈등, 이념 편중에 물든 교회, 해방신학과 민중신학을 통한 복음의 변질 등을 뼈를 깎는 각오로 회개해야 합니다.
다음세대 지도자
다니엘, 스룹바벨, 에스라 그리고 느헤미야는 어찌보면 다음 세대이며 동시에 다가오는 세대를 이끄는 지도자들이었습니다. 우리민족의 나아갈 길을 분단 70년을 기점으로 젊은 세대를 육성하고 새로운 영적 거룩함을 갖춘 지도자들이 나올 토양을 마련하고 준비해야 합니다.
순교자의 믿음
유다 백성에서 70년 바벨론 유수로 이끈 분이 하나님(대하 36:17)이시고 예레미야를 통해 예언하신 말씀을 성취하신 것처럼 (대하 36:21) 주변 4대 강국이 있고 핵 위협이 상존하면 일촉즉발의 전쟁 대치에 있다 할지라도 우리가 돌이키고 회개하면 한반도를 향하신 하나님의 주권적 개인과 회복의 역사를 주심을 우리는 믿고 나아가야 합니다. 일제 치하의 강압적 신사참배에도 불구하고 순교자로 믿음을 지킨 주기철 목사와 수많은 순교자들의 믿음을 본받아 지금 우리 시대에 새롭게 역사하시는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디아스포라 한국인까지
태평양 전쟁을 일으킨 일본은 세계의 강자로 떠올랐고, 인구 1위인 중국은 오랜 세계사 가운데 지리상의 발견 이전 까지는 유일한 패권국이었습니다. 19세기와 20세기를 거쳐 미국과 소련은 세계를 편가르는 양대 세력이었습니다. 이 4대 강국이 한반도를 중심으로 첨예하게 자신의 이익에 따라 대치하고 있습니다. 한반도의 분단은 분명 비극이지만 하나님의 눈으로 볼 때에 세계사에 변방에 머무르던 한반도가 4대 강국 뿐 아니라 세계사의 중심 세력으로 떠올라서 세계 복음화를 완성하는 놀라운 사명이 있음을 우리는 보아야 합니다. 70년 포로기를 통해 고대 역사상 가장 강력한 제국이었던 바벨론, 메디아, 페르시아, 그리스 그리고 로마 제국에 이르는 세계 역사의 가장 중요한 흐름 가운데 세속사 넘어서는 구속사의 계시가 이스라엘을 통해 나타나게 된 것입니다. 한반도의 분단이 단순히 한민족의 분단이 아니라 이 땅에 주어진 분단 속에서 남과 북 그리고 디아스포라를 통해 주신 각자의 사명과 하나님의 경륜이 무엇이며 그것을 통해 이루시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글을 마치며
구한말로부터 수천년을 이어온 우리 민족의 역사가 일본 제국주의에 중단되고 36년의 식민지배, 이어서 맞이한 해방 이후 분단, 그리고 한국 전쟁 그리고 다시금 이어진 분단의 고착화 가운데 아직도 우리는 우리 민족을 향하신 크신 하나님의 경륜과 뜻을 헤아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는 멸망 직전에 있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뜻을 헤아리지 못한 것과 같은 의미입니다. 유다의 멸망과 예루살렘 함락이라는 큰 사건이 주는 의미를 통해 우리민족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뜻은 우리를 향하신 회복과 회개와 새로운 준비와 지구촌 복음화를 위해 한민족을 쓰시겠다는 것입니다.
남북 분단이 결코 영구적이 저주가 아니라 남과 북을 도리어 연단하셔서 하나님의 뜻과 경륜을 나타나게 하심이라는 점입니다. 북쪽에는 지구상 가장 순수한 순교자의 영성을 가진 핍박받는 신앙인들을, 남쪽에는 세계 선교의 완성과 세계 복음화를 이루기 위한 첨병으로 사용하시는 하나님의 계획이었습니다. 자원도 없는 최빈국을 오직 다시금 회개와 간구 가운에 열화처럼 일어나는 부흥과 성장을 맛보게 하심으로 이를 세계 선교의 동력으로 사용하신 것입니다. 자원이나 자본 그리고 기술이나 선진 문화가 거의 전무했기에 인적 자원인 인재와 영적 자원인 기도로 남한을 무장하게 하신 하나님의 섭리와 뜻이 있었습니다. 오직 말씀과 기도와 깨끗한 믿음과 거룩한 손으로 하나님께 다시금 쓰임 받은 한민족과 디아스포라 한국인이 되기를 충정을 모아 기도 드립니다.
보스톤에서 김종필 목사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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