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지구촌 기독교의 재편: 서구 기독교 몰락과 부흥
[영성칼럼=Dr. Elijah Kim] 2023년 지구촌 기독교의 재편: 서구 기독교 몰락과 부흥 » 2023/02/16 »
2023 벽두부터 에즈베리 대학교 수요 예배가 몰고 온 자그마한 부흥의 소식…
에즈베리 대학교의 수요 예배가 몰고 온 자그마한 부흥의 소식이 계속 지펴 올라 이슬람의 흥기를 막고 세속화에 신음하는 서구 교회를 살리는 역사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여호와여 내가 주께 대한 소문을 듣고 놀랐나이다 여호와여 주는 주의 일을 이 수년 내에 부흥케 하옵소서 이 수년 내에 나타내시옵소서 진노 중에라도 긍휼을 잊지 마옵소서 (하박국 3장 2절) …
들어가는 말
최근의 지구촌 변화는 범상치 않습니다. COVID 19이 몰고 온 엄청난 변화를 추스르기도 전에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있었으며 2023년 벽두부터 튀르키예에 일어난 지진으로 지구촌 재난과 자연재해에 대한 두려움이 지구촌 뉴스를 강타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일련의 일들이 준 변화는 오랫동안 타성에 젖은 지구촌 각 사람의 삶의 양식과 경제 그리고 모든 영역에 지대한 변화를 주고 있습니다.
먼저 2019년 12월 발발한 코로나 바이러스는 불과 이삼년 사이에 지구촌의 일상적인 삶을 바꾸어 버렸습니다.
• 안전을 우선하는 글로벌 통제 및 국민 보건 시스템의 격변
• 비즈니스와 유통업의 디지털화
• 국제이주와 여행의 시스템의 변화
• 온라인 교육과 온라인 엔터테인먼트의 급부상
• 디지탈화의 가속도를 붙여준 디지털 한류의 확산
• 권위주의 붕괴와 리더십의 변화
• 모든 삶의 영역, 예를 들면 구글, 네이버, 카톡과 같은 곳에 일상적으로 사용되는 AI의 활용과 자동화의 혁신
• 모빌리티의 미래: 전자 소매, 디지털 자동차 플랫폼, 자전거 공유 및 차량 내 “보건, 건강, 전인 건강 (Health, Wellness, and Well-Being, HWW )”기능 중심의 기술 재편
• 가장 중요한 변화는 교회의 문이 닫힘과 동시에 열린 virtual worship의 활성화와 새로운 형태의 부흥의 시작
펜데믹이 잦아드는 시점인 2022년 3월 17일 돌연 러시아는 우크라이나를 무력으로 침공함으로 브렉시트의 마무리에 접어든 유럽과 환태평양 지역 그리고 지구촌 안보 협력에 대한 새로운 판짜기를 제공하였습니다.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대규모 인도주의적 위기 발생
• 온 지구촌에 물가 폭등을 불러 일으켜 취약한 사람들의 고통 증가
• 유럽을 쥐고 흔들었던 러시아의 천연가스와 석유 공급의 대변화가 지구촌 에너지 공급망의 대전환과 물가상승의 근원적 요인이 됨
• 지구촌 전체의 문제가 된 식량안보
• 배터리, 석탄, 지하자원과 같은 중요한 재료, 장비 및 원자재 경쟁의 심화
• 공급망 관리의 새로운 시대의 도래
• 미국 주도의 중국 고립화 정책이 빚은 글로벌 기술 스탠더드의 분리
• 각국의 국방비의 급격한 증액과 국방 강화 및 무기 산업의 급증
• 새로운 전쟁터가 된 사이버 공간과 전자전쟁
• 서구 기업들의 러시아 철수와 재편되는 글로벌 기업 구도
• 예측 불가능한 변동성(volatility)
이에 우리는 2023년에 대한 예측들에 대하여 뉴욕 타임즈의 Tom Friedman은 다음과 같은 사항들을 예측하였습니다. (참조: https://www.brinknews.com/megatrends-in-2023-altamar-podcast/)
• 중국의 40년 주기의 끝(The End of a 40 Year Cycle in China)
세계 경제의 강자로 떠오른 중국의 상품과 군사력이 지구촌이 공유하던 있던 가치와 심각하게 다름을 인식하게 됨
• 개방형 시스템에 항상 베팅(Always Bet on Open Systems)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야기된 민주주의의 퇴보와 변화들
• 자유의 한계(The Limits to Freedom)
자유의 역설, 독재로부터 온 자유가 준 다양한 양상들
• 경제적 고통의 수준(the Level of Economic Distress)
미국 주도의 금리 인상이 지난 14-15년 간 유지되었던 저이자의 시대를 종언하고 서방 선진국과 개발도상국이 겪고 있는 경제적 고통의 증가
이러한 다양한 변화들 가운데2023년을 맞이하는 지구촌 기독교의 과제는 다음과 같습니다.
• 서구 기독교의 몰락과 재편되는 지구촌 기독교
• 다수 세계 기독교의 역할에 대한 재고와 리더쉽 방향
• 예전과는 다른 형태로 다가오는 부흥의 양상과 선교 돌파
• 재정립되어야 할 이슬람, 힌두교 그리고 불교권 선교
• 디지털 미션이 주는 선교 혁명에 대한 범기독교적 밑그림 그리기
저는 위와 같은 주제에 맞게 몰락하는 서구촌 기독교의 실체에 대해 저의 글을 나누고자 합니다.
영국과 유럽 교회 몰락의 실상들
영국과 유럽, 미국과 캐나다를 비롯한 북미, 그리고 오스트레일리아와 뉴질랜드에 이르기까지 서구권 교회들이 쇠락하는 뉴스는 어제 오늘만의 것은 아닙니다. 지난 한세기에 타이타닉호처럼 바다 밑으로 가라앉듯 거대한 서구 기독교 문명이 사라지고 있습니다. 수십 년에 걸쳐 완성된 스테인글래스는 한편의 드라마를 펼쳐 보이는 듯하고, 세상의 그 어떤 것보다도 정교하게 수를 놓은 듯한 성당안의 천장 조각과 장식은 방문객의 얼을 놓게 하고, 장엄미의 극치를 보여 주는 기둥과 예배당 그리고 무엇 하나 손댈 것 없어 보이는 대리석으로 꾸며진 교회당을 보려고 찾아 오는 이들의 발길을 오랫동안 붙들어 매며 그 건축미는 방문객의 잔상에서 쉽게 사라지지 않습니다. 기실 주야로 사시사철 방문객의 발걸음을 청하는 것은 살아있는 예배가 아닙니다. 박물관으로 바뀐 지 오래 된 역사의 유물로서 남아 있는 유적지를 보고자 함입니다. 이런 류의 박물관 교회에는 매표소는 있어도 드리는 예배가 중단되지 여러 해가 된 것입니다.
교회당 건물을 유지할 수 없어 매각하거나 아예 정부에 기증하는 일들이 빈번한 것이 유럽의 현실입니다. 지붕에 빗물이 새도 보수할 돈이 없어 방치할 수밖에 없는 것이 작금의 실상인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닐 것입니다. 1980년부터 2009년까지 30년 동안 영국에서만 무려 9천 교회가 이런 저런 이유로 문을 닫았습니다. 2010년부터 2022년까지 2천 200교회가 문을 닫았습니다. 재정적인 곤란, 남아 있는 노인 성도 조차 사라지고 있는 교회, 더 이상 설교할 목회자가 없는 교회, 담임 목사의 은퇴 후 후임 목사를 구하지 못해 아예 다른 교회나 타교단 교회와 합병하거나 또는 문을 닫는 교회, 남아 있는 성도들이 목회자의 사례비를 지불할 힘이 없는 교회 백인백색의 교회가 즐비합니다. 지금도 영국에는 매주 4교회 정도가 문을 닫고 있으니 일년에 220개 교회, 지난 십년에 2천 200교회가 정도가 문을 닫고 있으나 실제 수치는 이보다 훨씬 더 높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런 사정은 이웃나라인 네덜란드, 독일 등을 보아도 별반 다르지 않으며 스칸디니나비아 여러 나라는 더더욱 심각한 상황입니다. 천주교회가 다수인 프랑스나 이탈리아, 스페인과 포르투갈은 처참한 형국입니다. 그리스를 비롯한 정교회 국가들의 상황도 그리 좋지 않습니다.
유럽의 교회 건물들
교회 건물이 박물관으로 바뀐 것은 그나마 좋은 케이스입니다. 왜냐하면 정부의 운영으로 그나마 입장료와 보조금으로 건물은 구제(?)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교회 건물을 유지할 수 없어 매각된 경우 이 건물들이 대부분은 역사적 유물로 지정되어 있는 경우가 많아 외부의 모습은 교회 외관을 그대로 유지해야 하지만 내부는 술집으로, 오피스로, 공장으로, 타운 하우스로, 창고로, 요가 연습장, 댄스 교습장, 개인 주택으로, 모스크나 시크교나, 힌두 사원과 불교 사원으로 바뀌는 경우가 비일비재합니다. 영국에서 주일 예배를 드리기 위해 딸과 함께 교회당 건물 인줄 알고 들어갔다가 술집이어서 놀랜 가슴 쓸어내린 기억이 생생합니다.
유럽의 많은 교회들이 지금 이 글을 쓰는 시간에도 폐쇄되고 있습니다. 비단 영국 교회들 만이 아닌 유럽 각국의 형편도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약 200개의 덴마크 교회가 생존할 수 없거나 활용도가 낮은 것으로 간주되었습니다. 독일의 로마 카톨릭 교회는 지난 10년 동안 약 515개의 교회를 폐쇄했습니다. 유럽에서 네덜란드는 2015년 1월 3-4일자 Naftali Bendavid의 Wall Street Journal 기사에 따르면 가장 큰 타격을 입은 것으로 보입니다. 동성연애, 짐승과의 수간, 심각한 자유주의 신학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 개혁주의의 본산이었던 네덜란드 전국 개신교 교회 중 약 700개가 4년 이내에 문을 닫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유럽은 북구권 즉 노르웨이, 스웨덴, 핀란드 그리고 덴마크의 교회 출석율이 1%에 머물고 있습니다. 그나마 교회에 출석하는 분들은 노령층입니다. 독일과 프랑스에서는 기독교인의 10-11%만이 적어도 일주일에 한 번 교회 예배에 참석한다고 보고되었으나 현장에 나오는 교회 실제 출석율은 절반에도 미치지 못합니다.
이슬람은 실제로 이민으로 인해 성장했습니다. 무슬림 인구는 1990년 유럽 인구의 4.1%에서 2010년 6%로 증가했습니다. 워싱턴의 퓨 리서치 센터에 따르면 무슬림 인구는 2013년까지 8%인 5,800만 명으로 증가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어떤 종교와도 관련이 없다고 말하는 인구의 “없음” 비율, 2010: Pew Research Center Data 미국은 전통적으로 보다 세속적인 서유럽 국가보다 종교 참여가 더 많았지만 항상 그런 것은 아닙니다. 일부 전문가들은 우리가 그들의 길을 따르고 있을지 모른다고 우려합니다. 2000년에서 2010년 사이에 미국에 약 5,000개의 새로운 교회가 추가되었습니다. 동시에 코네티컷 하트포드 신학교의 Scott Thumma에 따르면 전체 교인 수는 3% 감소했습니다. Thumma 씨는 미국의 교회에 다니는 인구가 고령화되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이러한 추세가 바뀌지 않는 한 그는 “앞으로 30년 이내에 미국의 상황은 적어도 현재 유럽에서 나타나는 것만큼 나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외적으로 보이는 교회 건물들이 하나 둘 씩 세속적 용도나 타종교 기관의 사원으로 바뀌는 것만이 오늘날 유럽 교회의 쇠퇴를 보여주는 것은 아닙니다. 아직도 상당히 높은 수치로 정작 자신은 기독교인이라고 말하지만 실제 예배를 드리거나 종교 행위에 가담하는 사람은 충격적이리만치 저조합니다.
서구 기독교 몰락의 원인
서구 기독교의 본산이라 할 수 있는 유럽이 더 이상 기독교 국가가 아니며 도리어 세속주의적, 종교다원주의적, 비기독교 국가 또는 반기독교 국가로 변모하고 있습니다. 이제 유럽 대부분의 국가들 중 대부분 10% 또는 그 미만의 인구만이 교회를 나가고 있습니다. 후기식민주의(Postcolonialism) 즉 2차 세계대전 이후에 들어 와서는 급격한 무슬림 이민은 많은 지역에서 유럽 기독교인의 평균 교회 출석 수치를 넘어서거나 또는 위협하는 수준에 이르고 있습니다. 이러한 나라들은 영국, 프랑스, 독일, 네덜란드와 스웨덴과 같은 나라들입니다.
중동에서 시작된 기독교가 세계 종교로 발돋움하게 된 것은 유럽의 기독교화 (Christianization of Europe)에 있었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하지만 계몽주의 이후 일어난 합리주의, 자유주의 사상의 발흥으로 기독교의 근간이 되는 구원관과 삼위일체론적 신학 일반에는 일대 대변혁이 일어났고 진화론과 과학주의의 맹신(?)으로 성경의 정경성과 기적을 부인하는 것이 다반사가 되었습니다. 기독교에 관련된 모든 것들을 배제하는 탈기독교화(De-Christianization)이 깊숙이 진행되어 사회적, 문화적, 정치적 그리고 구조적으로 유럽 전체에는 기독교와 관련된 어떤 사상이나 구호도 환영 받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국가 종교인 기독교가 더 이상 국가 종교(state religion)이 아닌 성속이 분리되는 세속화가 진행되어 세속주의와 인본주의 그리고 이성주의가 기독교를 대체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자유주의 신학이 제공한 유럽 기독교의 몰락
성경의 근본 진리를 떠나면 기독교는 무너집니다. 서구권 교회의 쇠퇴는 계몽주의(Enlightenment) 와 합리주의(Rationalism) 의 영향으로 시작된 지성 중심의 세계관이 기독교 신학 전반에 걸쳐 기적과 동정녀 탄생, 성경의 정경성, 기독교 구원의 유일성,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과 승천에 대한 이성적 비판으로 서서히 무너지게 되었습니다. 합리주의는 자유주의 신학(Liberal Theology)의 토대를 제공하였고, 자유주의 신학은 기독교 신학이 가지고 있는 구원의 유일성마저 침해함으로 교회 존재의 기반을 무너뜨리게 되었습니다. 여기에 역사적으로 일어난 산업혁명과 도시화는 이농 현상을 불러 일으키면서 전통적 농촌 중심의 교구 목회(Parochial ministry)에서 개인주의적 도시 목회로 바뀌게 되어 대다수의 도시인들을 교회가 보살피지 못하게 됩니다. 개인주의적 서구인의 성향은 구원이 절대적 요구가 아닌 것으로 간주되었고, 교회는 각 개인의 선택 사항이 되었습니다. 정교분리는 국가의 지원을 더 이상 받을 수 없는 교회가 교구 구성원을 붙잡아 둘 수 없게 됩니다. 체험적 신앙을 비이성적인 것으로 치부하는 합리주의는 종국에는 이성의 한계 안에 존재하는 기독교 신앙을 가두어 둠으로 성령의 임재와 기름 부으심의 한계에 달한 서구 교회는 종국에 몰락의 길을 가게 됩니다. 인간 이성이 성경 말씀 위에 서게 되기까지 서구 기독교는 합리주의(Rationalism)를 덥석 물고 성경의 진리들을 훼손하는 데 거리낌이 없었습니다. 1960년대까지도 복음주의 신학을 견지하던 영국교회는 독일을 중심으로 한 대륙의 이신주의 신학(Theistic Rationalism or Theism)에 함몰 당했습니다. 많은 학자들은 합리주의 모양을 한 이신주의 신학의 쓰나미에 영국 열도가 가라 앉았다고 표현합니다.
다시 재고하는 유럽의 세속화(Revisiting Secularization in Europe)
이 시점에서 우리는 “유럽이 과연 복음화를 동반한 진정한 기독교화의 과정을 거쳤는가?”라는 심각한 질문에 봉착하게 됩니다. 이와 더불어 서구 기독교의 몰락을 다양한 학문적 연구 대상으로 다루기 시작하면서 현상학자, 종교 사회학자, 통계학자 그리고 종교철학자들은 유럽 기독교의 쇠락은 “세속화(secularization)”로 설명되어진다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1960년 이후 시작된 학문적 세속화 논쟁은 우리 모두에게 친숙하고 매일의 삶과 관련되어지는 매우 중요한 주제가 되어 버렸습니다. 하지만 이제 유럽은 후기 식민주의(post-colonialism), 후기 세속화(post-secularization)와 후기 기독교 시대(post-Christian era)로 접어들고 있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합니다.
이처럼 위의 모든 사항들을 포함하는 세속화(Secularization)의 현상이 전 유럽에 풍미하였습니다. 교회 사가, 종교 사회학자들은 너도 나도 할 것 없이 1960년대는 세속화의 위기를 가져 온 시기라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교회의 양적 쇠퇴와 가치관의 급속한 변화는 비단 도덕과 규범 그리고 사회 영역 뿐 아니라 초자연적 세계 특히 부활과 기적 그리고 내세를 믿지 않는 서구인의 개인주의적 태도를 반영한 것입니다. 이는 1960년대 이전에 가지고 있었던 서구 교회의 아름다운 내적 그리고 질적 요소들이 감소되었다는 반추이기도 합니다.
1960년 이전까지 “성과 속(the sacred and the secular)” “교회와 국가” “세상과 기독교”가 어느 정도의 조화를 이룬 면이 없지 않아 있었습니다. 당시의 교회에는 거룩함이 유지되었습니다. 하지만 1960년대 이르러 이러한 균형은 깨어졌고, 세속적인 것들이 교회 내부에까지 침투되기에 이릅니다. 세속화의 내부적 요소들이 다량으로 유입됨으로 인해 교회 안에 거하던 사람들이 세속적 가치관에 물들고 세속적으로 바뀌기 시작합니다. 이는 세속적인 것이 더이상 부정으로 것으로 바라 보지 않고 이제는 받아 들일 수 있는 것으로 인정하기에 이른 것입니다. 1960년 이후의 변화에는 교회의 “거룩함”을 배제하고 세속적인 요소들이 교회와 기독교인의 삶의 “지배적인 주류” 로 자리를 잡게 된 것입니다. 이러한 경향은 동양 종교, 뉴에이지 뿐 아니라 신흥종교 운동(NRM: New Religious Movements)까지 받아 들이도록 합니다. 주류 교회에서 이미 마음이 떠났거나 또는 주류 교회 밖에 영적 만족을 추구하던 사람들에게 발길을 돌리게 하는 대안 종교가 된 것입니다.
유럽의 재복음화
네덜란드의 안톤 베셀(Anton Wessel)은 이러한 기본적인 논쟁에 대해 본질적인 질문을 던진 사람 가운데 한 사람입니다. 그의 도전적인 책, “유럽이 과연 기독교였던 적이 있었는가? (Europe: Was it Ever Really Christian?)”에서 유럽은 복음화의 역사적 과정없이 제도적 기독교화를 이루었고 따라서 실제적으로 재복음화가 필요한 곳이라고 설파합니다. 사실 유럽의 기독교 역사가 복음화의 역사와 동일한 것은 아님은 자명합니다. 그 일례로 칼럼 브라운은 그의 저서, “기독교 영국의 죽음 (The Death of Christian Britain)”에서 주장하기를 영국을 기독교로 개종시키는 데에는 수세기가 소요되었지만 이제 그 기독교를 버리는 일에는 불과 40년도 걸리지 않았다고 지적하였습니다. 이러한 맥락은 지금의 영국을 비롯해 수많은 서구권 국가들이 탈기독교화 과정(De-Christianization)을 겪고 있습니다.
마이크 레겔레 (Mike Regele)는 그의 저서 “교회의 사망 (Death of the Church)”에서 통제가 불가능한 급변하는 세계 속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믿는 현재의 기독교는 불안정하며 변화무쌍한 환경의 변화에 매우 유약한 특징을 갖고 있음을 지적하였습니다. 다시 말하면 세상은 급하게 변하고 있는데 변하지 않는 기독교의 체제와 형태는 변화하는 세태 속에 변화되지도 않고 변화를 주도함으로 세상을 변화시키는 일도 하지 않음으로 스스로의 고립과 도태를 자초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는 평가하기를 “이러한 변화의 힘이 오늘의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를 형성하고 있는 변화 자체임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라고 말하고, “우리가 만일 이러한 변화의 힘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그러한 변화에 대해 우리 자신이 경악하게 될 것”라고 통렬한 자기성찰의 질문을 던져 줍니다. 그의 강력한 경고는 지금의 기독교가 변화에 저항한 결과로 죽음을 맞든지 아니면 기독교가 생존하기 위해 죽음으로 살아남든지 둘중의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기로에 놓여 있음을 갈파하고 있습니다. 에디 깁스(Eddie Gibbs)도 레겔레와 마찬가지로 지금의 기독교는 급격한 변혁(a great transition)가운데 놓여 있다고 동의한다. 그는 지금의 기독교의 변화는 근대성(modernity)에서 후기근대성(postmodernity)으로 변화이며, 이것은 현재의 교회들이 밀려오는 변화 충격속에 마비될 수 있는 충격적인 본질적 변화 가운데 있다고 하였습니다. 깁스는 이러한 변화들은 그 연원이 깊으며, 종합적이며, 복잡하고 그리고 예상 가능하지 않으며 동시에 전 지구촌적이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유럽의 기독교 몰락이 단순한 교회 건물들의 폐쇄와 출석율의 저조만이라면 그나마 다행(?)일 것입니다. 하지만 하바드 대학의 새뮤얼 헌팅턴이 “문명의 충돌(The Clash of Civilizations)”에서 지적한 것처럼 유럽의 기독교의 빈자리를 이슬람이 이미 꿰차고 들어 오고 있기 때문입니다. 기독교가 쇠퇴한 그 자리에 이슬람이 들어 왔던 중동, 지중해, 북아프리카, 발칸, 소아시아, 아라비아, 중앙아시아 등은 이미 복음화를 이루었던 지역들이었습니다. 지금의 기독교는 COVID 19의 대응,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구제 사역, 튀르키예 복구 작업보다 더 큰 이슬람의 도전에 아무런 대응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슬람 문명과의 충돌
지금 세계는 급속한 종교 인구의 이민 이동으로 새무얼 헌팅톤(Samuel Huntington)이 말한 문명의 충돌 뿐 아니라 종교 문명의 충돌까지 치닫고 있는 형국입니다. 2005년 9월 30일에 덴마크의 한 신문인 “율란츠 포스텐”이 이슬람의 창시자인 모하메드의 터번을 폭탄으로 묘사한 풍자 만화를 게재함으로 아랍권과 유럽에 있는 무슬림을 자극하게 된 것은 익히 잘 알 것입니다. 2023년 1월 23일 스웨덴에서 일어난 코란 소각이 이슬람권 공분을 불러 일으키고 있습니다. 덴마크 극우정당 ‘강경노선(Stram Kurs)’의 Rasmus Paludan 대표가 스웨덴 스톡홀름 주재 튀르키예 대사관 앞에서 반 이슬람 집회를 벌인 사건으로 이는 결과적으로 이슬람의 유럽 정치 공고화와 유럽의 이슬람화를 촉진시킬 수 있는 발판을 제공할 것입니다.
이미 이베리아 반도의 스페인과 포루투갈을 700년이나 지배했던 이슬람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결코 만만한 종교가 아닙니다. 8차에 걸친 십자군 전쟁을 물리친 저력이 있으며, 오스만 투르크로 대변되는 이슬람 세력은 유럽의 봉쇄를 수백 년간 단행하였습니다. 기독교 왕국들이 이슬람 국가로 변모케 한 발칸 반도는 아직도 유럽의 화약고입니다. 3백7십만에 달하는 시리아 난민은 선교의 기회이기도 하지만 이미 나약할 대로 나약해진 유럽교회 앞에는 풍전등화처럼 보이는 이슬람 증대의 기회가 되고 있습니다. 이탈리아는 알바니아 이슬람에게 먹히고, 독일은 튀르키예 및 시리아 이슬람에게 먹히고, 프랑스는 알제리, 리비아, 튀니지아 및 이슬람권 식민지들 이민자들에게 먹히고, 영국은 북 인도 무슬림과 파키스탄 무슬림에게 점령당하고 있습니다. 북유럽, 중부 유럽, 서유럽, 남유럽 어디를 가나 모스크가 들어서 있고 정치세력화된 이슬람 공동체를 우리는 보고 있습니다. 유럽의 이슬람화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닙니다. 이미 영국은 인도계 수상이 통치를 하고 있는데 지금의 유럽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를 보면서 지구촌 기독교가 적절히 이슬람을 대응하지 못한다면 기독교 지역이 이슬람에게 재점령당하는 모습을 두 눈을 뜬 채로 보게 될 것입니다.
오직 부흥만이
부흥은 죽어 가는 교회를 살리고, 회개를 통한 개인의 회심을 이루며, 죄의 통회를 통한 사회의 자정과 성령님의 강권적인 역사하심으로 말미암아 사회 각 영역에 변혁을 이루어 줍니다. 전기한 세속화는 부흥을 끄는 것이었다면 꺼져 버린 불길을 다시금 일으키는 것은 부흥입니다. 서구에 일어난 두개의 큰 사조는 “부흥”이라는 것과 “세속화”입니다. 부흥운동은 종교개혁 이후, 청교도주의, 경건주의와 연계된 영적 각성 운동이며, 이는 대각성 운동, 기도 부흥운동, 성결 부흥운동, 오순절 운동을 낳게 됩니다. 전혀 다른 사조는 유럽으로부터 시작된 합리주의이며 이를 기반으로 세속화와 자유주의가 태동합니다. 부흥운동이 영국과 유럽의 복음주의 발흥의 역동적인 요인이었다면, 대각성운동은 미국의 복음주의, 성결부흥운동 그리고 긍극적으로는 근본주의 태동을 일으키는 점화 역할을 감당하였습니다. 나아가서 20세기의 여명에 일어난 미국의 전통적 오순절 부흥운동이 미국 교회의 성장과 확장 뿐 아니라 제 3 세계 기독교의 성장의 계기가 되는 지대한 역할을 하게 되었다는 점입니다. 유럽의 세속화가 기독교의 현격한 퇴조에 중요한 요인이었다고 한다면, 미국과 유럽의 경우가 그 기원과 성장의 과정이 다르다 할지라고 세속화의 영향이 미국에도 적용될 수 있는 것인가에 우리는 주목해야 합니다.
유럽은 부흥과 쇠퇴, 성장과 하락이라는 순환 곡선의 역사적 산출 관계를 갖고 있습니다. 로빈 질(Robin Gill) 이 지적한 제도권 종교의 순환이론에도 설명됩니다. 하지만 이 순환곡선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20세기 중반부터 하강 곡선을 보이기 시작한 이후, 서구 교회는 단 한번도 상승 곡선이 없이 심각한 속도로 비기독교화의 과정을 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반면 동양 신비종교, 이슬람, 뉴에이지 운동과 불교등 비기독교 세력은 급속한 속도로 성장하고 있습니다. 유럽에서 성장하고 있는 교회의 대부분은 비서구권 또는 식민지에서 이주해 온 이민자 교회들입니다. 유럽에 일고 있는 심각한 교회 쇠퇴는 “비기독교화” “비복음화” “기독교 쇠퇴”에 관한 근본적 주제를 연구하는 학문적 연구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교회사가, 인류 문화학자, 종교 사회학자들은 이 주제를 연구하면서 하나의 공통사에 동의하게 됩니다. 이른바 “세속화”입니 다. 유럽의 대부분 국가들이 계몽주의 이후 시작된 정교 분리, 산업화와 도시화 준 개인주의적 성향이 교회와의 분리를 가져 온 것과, 이성주의 영향으로 태동된 자유주의 신학이 신앙을 떠나게 한 종합적 원인에 대한 연구가 바로 “세속화(secularization)인 셈입니다. 세속화의 중요한 주제 가운데 발견된 것들은 종교 행동, 가치관, 세계관, 사회 규범, 도덕, 윤리, 제도, 의식의 변화들이며, 이들은 기독교 쇠퇴를 그대로 반영하고 있습니다. 과학과 학문에 있어서 좀더 자유로운 비판과 사고가 가능해 짐으로 초자연적 영역을 배제하기에 이르렀고 이는 신학적으로 “동정녀 탄생”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 그리고 “사후 세계”에 대한 의구심을 증가시킴으로 자연적 교회의 쇠퇴를 가져 오게 됩니다. 종교 개혁이후 세속화가 나타나는 가운데도 열정과 감성의 중흥이 일어났던 시기가 있었습니다. 이를 두고 우리는 “부흥운동”이라고 합니다. 각 세기마다 세속화의 풍조가 풍미할 때, 이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것이 바로 “각성”과 “부흥’이라는 영적 중흥운동이었습니다. 종교 개혁 이후 일어난 경건주의는 말씀과 교리의 개혁으로부터 삶과 신앙의 변화를 주도하는 회심과 성결의 역사를 가능케 하는 운동이었습니다. 이는 종교 개혁 이후 종교 전쟁의 폐해로 말미암아 신앙과 교회에 대한 냉소주의가 풍미할 때 일어난 것입니다. 경건주의는 “말씀 읽기”와 “성령 안에서의 기도”를 각 개인을 그리스도 앞으로 회심하는 것에 집중합니다. 이 두개의 특징이 비서구권에 일어났을 때에도 우리는 부흥과 각성이라는 표현을 쓰게 됩니다. 남미, 사하라 남단 아프리카, 중국, 인도, 인도네시아등에서 일어난 이러한 운동은 20세기 부흥운동이었습니다. 비서구권의 부흥운동은 전혀 서구 기독교에서 발견할 수 없는 놀라운 역사도 보여 주었는데 그것이 바로 토착화(indigenization), 상황화(contextualization)와 문화화 (inculturation)입니다.
세속화가 정교 분리, 비기독교적 세계관, 규범과 도덕의 비기독교적 영역을 일으켰다면 미국과 유럽의 “각성” 과 “부흥”은 많은 선교단체들을 배태시켜 20세기에 일어난 비서구권 기독교 성장의 토양을 제공해 주었습니다. 부흥과 각성은 사회 소외계층을 위한 문맹 퇴치 운동, 의료 봉사, 양로 시설, 교육기관에 관심을 갖도록 인도해 주었습니다. 미국 대각성운동의 여파로 수많은 대학들이 생겨나게 되고 이는 사회 각 전반에 기독교 이상을 체현하는 공동체 설립에 일조하게 됩니다. 나아가서 해외 선교에 나아 갈 수 있는 인적 자원을 가능케 함으로 미국이 세계 선교의 중심으로 떠오르는 데에도 큰 역할을 감당하게 한다. 이는 미국 비단 청교도 이상을 실현하는 것 뿐 아니라 1차 각성 운동의 여파로 순조롭게 독립을 쟁취하게 된 것이나, 남북 전쟁 이전에 일어난 뉴욕 기도 부흥이 전쟁의 후유증을 속히 치료하는 데에도 매우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음을 시인할 수 밖에 없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말하는 문명화라고 하는 부분도 서구권에서 일어난 부흥운동의 결과로 귀결된 부분이 상당히 많음을 직시해야 합니다. 기독교 복음에 입각해, 노예폐지, 아동 노동 제한, 여성의 권리 인정, 노동자 착취를 철폐하도록 한 사람들은 윌리엄 윌버포스(William Wilberforce)을 중심으로 한 Clapham Sect의 지도자들이었습니다. 이들은 강력한 기름 부으심과 성령의 임재 가운데 있었던 경건한 무리들이었습니다. 이처럼 사회를 변화시키고 가치관과 또한 제도의 변화를 주도한 사람은 “각성”과 “부흥’을 주도했던 사람들입니다. 요한 웨슬레, 윌버포스, 조나단 에드워드와 진젠돌프 백작과 같은 이들은 당대 뿐 아니라 다가 오는 세대에도 큰 영향을 끼친 사람들입니다.
글을 마치면서
2023년 벽두부터 에즈베리 대학교의 수요 예배가 몰고 온 자그마한 부흥의 소식이 계속 지펴 올라 이슬람의 흥기를 막고 세속화에 신음하는 서구 교회를 살리는 역사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여호와여 내가 주께 대한 소문을 듣고 놀랐나이다 여호와여 주는 주의 일을 이 수년 내에 부흥케 하옵소서 이 수년 내에 나타내시옵소서 진노 중에라도 긍휼을 잊지 마옵소서 (하박국 3장 2절)
“여호와께서 그 군대 앞에서 소리를 발하시고 그 진은 심히 크고 그 명령을 행하는 자는 강하니 여호와의 날이 크고 심히 두렵도다 당할 자가 누구이랴
여호와의 말씀에 너희는 이제라도 금식하며 울며 애통하고 마음을 다하여 내게로 돌아오라 하셨나니
너희는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고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올찌어다 그는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애가 크시사 뜻을 돌이켜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나니
주께서 혹시 마음과 뜻을 돌이키시고 그 뒤에 복을 끼치사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 소제와 전제를 드리게 하지 아니하실는지 누가 알겠느냐
너희는 시온에서 나팔을 불어 거룩한 금식일을 정하고 성회를 선고하라” (요엘 3장 11-15절)
보스톤에서 부흥을 위해 기도하는 김종필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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