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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가 되는 말
[새벽묵상] 기도가 되는 말 » 약 3:1-12 » 한은선 목사 » Ein Wort, das zum Gebet wird! 곧 좋은 말은 좋은 영혼에게서 나옵니다. 그러기에 말보다 마음을 먼저 고쳐야 합니다. 말의 문제는 소리의 문제가 아니라 심성의 문제요 겉 사람의 문제가 아니라 속사람의 문제입니다. 미움의 말 한마디가 사람을 죽일 수도 있고, 사랑의…
참부흥의 불길 타오르게 하소서!
[영성칼럼] 참부흥의 불길 타오르게 하소서! » 필자 Dr. Elijah Kim  » 무사히 안전하게 국제선교대회와 32주년 예배를 마치다 할렐루야! 무사히 안전하게 국제선교대회와 32주년 예배를 마치게 하신 하나님 한 분께만 찬양과 영광을 올려드립니다. 모든 탈북민들이 성령충만함 받고 영적 재충전과 트라우마로부터 내적치료를 받게 하시고, 안전하게 귀국하시게 하신 주님께 또한 감사를 드립니다...…
한미수교 140년사의 근대문명 리뷰-13
[역사저널] 한미수교 140년사의 근대문명 리뷰-13 » 강석진 목사 » 이승만의 외로운 대미외교 활동과 시련 대한제국과 일본과의 을사조약(1905.11)으로 대한이라는 나라의 외교권은 사실상 박탈된 것이었다. 이러한 역사적 수모가 실행되기 4개월 전인 1905년 7월에 ‘가스라.테프트밀약’으로 미국은 사실상 일본이 대한제국의 지배를 묵인하였고 바로 이어서 주한미공사관을 폐쇄시켰다. 이 당시 영국과 미국은 일본이 1904년 러.일전쟁에서 승리하자…

21세기 기독교의 새로운 조류와 도전

Dr.ElijaKim ◙ Photo&Img©ucdigiN

[영성칼럼=Dr. Elijah Kim] 21세기 기독교의 새로운 조류와 도전 » 2023/02/20  »

작금의 기독교가 직면한 도전은 위기가 아닌 선교의 황금 추수를 맞는 호기…

대각성 운동, 부흥운동, 오순절 운동 모든 부흥에는 의심의 여지없이 선교로 이어지는 헌신과 희생이 동반되었습니다. 그러한 성령의 기름 부으심이 한국 교회로, 중국으로, 인도네시아로, 그리고 인도와 아프리카, 남미와 중동권으로 번져 가고 있습니다. 세계 교회를 바라보며 오직 성령의 기름 부으심 안에 복음의 능력이 미치지 못하는 곳에 주의 놀라운 추수의 역사가 일어날 것을 우리는 바라보고 있습니다.

 

들어가는 말

2023년 현재 지구촌은 미증유의 사건으로 큰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코로나 바이러스(COVID 19)로 인한 지구촌 전체의 변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인한 에너지 대란, 식량 가격 폭등, 물가 상승과 안보와 동맹의 새로운 블록 짜기 그리고 튀르키예에 일어난 지진으로 다시금 지구촌 전체가 자연재해에 얼마나 무방비하고 나약한 존재인지를 보여 주고 있습니다. 불과 3년도 안되는 사이에 서방의 방위체계에 대한 새로운 판짜기가 시작되었고, 미국을 중심으로 자유민주주의와 자본주의에 심각한 지도력의 도전이 재기되고 있습니다. 이제 사우디 아라비아와 같은 전통적 미국의 맹방도 고분고분하지 않습니다.

우리나라 GDP 보다 더 큰 액수인 2조 3천억 달러를 아프가니스탄에 쏟아 부었지만 결국 미국은 아프가니스탄에서 철수하고 말았습니다. 이라크 전쟁 이후 이라크 시리아 전쟁에 쏟은 미국의 돈은 2조1천억 달러입니다. 미국이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시리아와 파키스탄에 쏟아 부은 돈만해도 6조 4천억 달러입니다. 911이후 테러와의 전쟁에 사용한 돈만 해도 20조 달러가 넘습니다. 그런데도 테러와의 전쟁은 진행형이며, 서방의 강력한 지원에도 우크라이나 전쟁은 지금도 포화가 끊이지 않으며, 인류가 가지고 있는 정부와 경제 그리고 기술을 다 동원해도 지진, 태풍, 쓰나미, 한파 그리고 폭염에 무기력합니다. 지난 100년의 속도보다 더 빠른 속도로 지난 2-3년이 몰고 온 지구촌의 변화, 우리는 이 변화 속에서 지구촌 기독교는 어디를 가고 있으며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2023년 지구촌 기독교의 당면 과제

지구촌 기독교 전체의 큰 그림 속에서 2023년 현재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이고 우리는 어디에 있으며, 지구촌에 있는 메가 트렌드 가운데 우리가 집중하고 가장 헌신해야 할 부분은 무엇인지를 알아 보기 위해서는 먼저 2023년 지구촌 기독교에 거세게 일고 있는 가장 큰 도전이 무엇인지 알아보고 더불어 지구촌에 새롭게 부상하고 있는 아젠다는 무엇인지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21세기 지구촌 기독교 새로운 조류들
추수와 부흥의 아젠다
오순절 교회의 부상
식민주의 선교의 종언
비서구적 기독교의 태동
다수 세계 기독교의 출범
다수 세계 기독교 지도력
다수세계 독립 교회의 부상

21세기 지구촌 기독교의 도전
세속화의 도전
이슬람의 도전
선교 패러다임의 도전
도시 선교의 도전
Glocal Mission의 도전
디아스포라 선교의 도전 (오늘 논제에서 BAM(Business as Mission)은 제외하고 따로 다룰 것임)

21세기 지구촌 기독교 새로운 조류들

20세기에 있었던 메가 트렌드(Megatrends)는 단연코 다수 세계 기독교와 오순절 교회의 부상입니다. 떠오르는 해가 있으면 지는 해가 있듯이 다수 세계 기독교의 부상 뒤에는 서구 기독교 세계의 몰락과 같은 뒤안길이 있습니다. 서구 기독교의 몰락은 기독교의 지축 이동을 불러 일으켰으며 서구 기독교가 몰락한 그 자리에 강력한 이슬람의 도전으로 그 빈자리를 채우고 있으며, 다수 세계 기독교는 서구와는 다른 형태의 기독교의 여러 모습들을 배태하며 부상하고 있습니다.

필리스 티클(Phyllis Tickle)교수는 2천년 교회사에서 500년 마다 대변혁이 일어났고, 새로운 변혁이 일어나면 바로 이전에 있던 가치, 전승, 제도, 권위, 관습들은 다 버리게 되고 새로운 시스템의 등장에 따른 가치, 새로운 전승, 제도 그리고 권위와 관습들이 세워진다고 했습니다. (참조: https://www.phyllistickle.com/books/the-great-emergence/) 우리가 이사 갈 때에 집안에 가득한 물건들을 다 처분하고 새집에 들어 갈 때에는 새로운 가구로 꾸미듯, 이전의 기독교 전승, 제도와 같은 많은 것들이 처분되고 서구에서 이전에는 보지 못했던 새로운 형태의 기독교가 다수 세계 기독교를 채우고 있습니다. 2천 교회사의 큰 흐름 속에서 주도권을 쥐고 있었던 서구 기독교가 20세기를 맞이하여 청산하게 된 것들은 무엇이며, 더불어 21세기에는 어떠한 것들이 새롭게 부상하고 있는 것일까요?

추수와 부흥의 아젠다

비기독교 진영에 대한 기독교의 끊임없는 선교와 복음전도의 과제는 “추수와 부흥”이라는 2000년 교회사의 중요 아젠더를 상고하게 합니다. 추수는 “선교와 전도”의 결과에서 오는 것이라면 부흥은 “추수를 거두는 동력”이 됩니다. 지난 1세기(20세기) 기간 가운데 이루어진 비서구권의 놀라운 기독교 성장은 지금까지 서구권 시각에 머물렀던 것을 이제는 비서구권 시각과 상황에도 우리의 눈을 돌리게 하기에 충분합니다. 아직도 세계의 기독교인들이 서구권 기독교 세계관에 머물고 있다면 이는 전세계의 종교 상황의 변화를 미처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는 뜻이 되기도 합니다. 단순한 비서구권 기독교의 성장이 통계학적 수치와 양적 성장에만 관심을 둘 수 없는 이유는, 이는 종교관, 세계관, 문화, 상황화, 그리고 각 대륙과 나라가 처한 역사적 연관관계가 작용하고 있는 복잡성이 있음을 주지해야 합니다. 서구 중심적으로 기술되었던 20세기 이전의 서구 기독교가 이제는 다수 세계 기독교(Majority World Christianity)로서 기술되어야 하는 부분에는 기독교를 단순한 종교 현상으로만 기술하기에는 무리가 있습니다. 이는 다수 세계 기독교의 성장의 이면에는 각국의 종교적, 정치적, 역사적 현상들이 독특하고 또한 다양하게 반영되어 나타나기에 그 실상을 종합해 보면 공통성과 다양성으로 집약됩니다. 우선 21세기 기독교의 중요한 공통 요소를 거시담론적 시각으로, 그리고 통전적이며 종합적으로 분석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오순절 교회의 부상

2023년 현재 지구촌 개신교인의 수는 8억에서 10억을 헤아리고 있습니다. 자유주의 교회, 몰몬교회, 여호와의 증인들이 다 포함된 숫자입니다. 이 개신교인 가운데 가장 많은 수의 개신교인이 미국에 거주하고 있는데 1억 6천만명이 미국에 있습니다. 세계 개신교인의 20%에 해당하는 어마어마한 숫자가 미국에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 숫자에 속지 않아야 합니다. 미국에 있는 개신교인의 숫자는 다양한 경로를 통해 연구 조사해 보면 상당히 큰 허수에 불과합니다. 그것을 알려면 공인 연구 기관들의 발표를 먼저 살펴보아야 합니다. Pew Forum, Barna Poll 뿐 아니라 Gallop Poll등이 있습니다. 이외 가장 신뢰할 만한 미국 종교 인구 조사(Religious demographics of America)의 “2020년 미국 종교인구 조사(The 2020 Census of American Religion)에 따르면 미국인 10명 가운데 4명은 기독교인(44%)라고 합니다. (참조: https://www.prri.org/research/2020-census-of-american-religion/#:~:text=More%20than%20four%20in%20ten%20(41%25)%20identify%20as%20Protestant,Jewish%2C%20Muslim%2C%20and%20Hindu.)

이를 좀 더 자세히 보기 위해 또 다른 소스인 ABS 뉴스 보도에 따르면 미국 개신교인은 36%에 해당하는데 2003년도에 개신교인이 50%에 달한 것에 비하면 엄청난 속도로 격감한 것입니다. 이 36%의 개신교인 전체 가운데서도 성경의 무오류성과 진리를 믿는 복음주의자들이 불과 56%에 달하기에 실제로 복음주의자들은 미국 전체에서 25%에도 미치지 못합니다. (참조: https://abcnews.go.com/Politics/protestants-decline-religion-sharply-shifting-religious-landscape-poll/story?id=54995663) 이것은 무엇을 말하고 있습니까? 미국의 종교 지형이 크게 바뀌고 있다는 것입니다. 전통적이고 자유주의적 교회들만 쇠퇴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주류 교회들도 100년 째 쇠퇴하고 있으며, 미국 복음주의자들의 대부분은 오순절 교회들로 채워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부분에서 전세계 개신교인 가운데 복음주의자들 그리고 오순절 교인들에 대하여 면밀히 연구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미국 다음으로 큰 복음주의자들이 많은 곳은 중국, 나이지리아, 브라질, 인도네시아 등이 뒤따르고 있습니다. 지난 100여년 동안 일어난 기독교 지형의 지각 변동에는 오순절 운동이 있습니다.

오순절 운동의 기원은 1906년 아주사 부흥 운동입니다. 그러나 아주사 부흥만이 오순절 운동이나 새로운 형태의 성령의 부어 주심만은 아닐 것입니다. 1900년 초기부터 연타적으로 일어난 일련의 부흥의 역사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지구촌에는 1904년 웨일즈 부흥, 1902년부터 1905년까지 있었던 호주 시드니와 멜버른 부흥, 보어 부흥(Boer Revival)이라고 불리우는 1900년 초기의 남아공 부흥운, 1906년 LA 아주사 거리 부흥, 1907년 평양 대부흥, 1905년부터 1906년에 있었던 동북부 인도의 미조람, 카시아 부흥, 거의 동시기에 일어난 남인도의 Pune 의 묵티(Mukti) 부흥, 칠레와 브라질 그리고 아르헨티나 등이 있습니다. 20세기 초에는 매우 경미한 정도의 오순절 신자들이 있었지만 강력한 부흥과 성령의 역사로 인하여 시작된 지구촌 선교에 따라 그 불씨가 전세계로 퍼지게 되면서 이제 오순절 신자들은 6억 4천 4백만에 이릅니다. (참조: https://brill.com/view/journals/pneu/42/3-4/article-p327_1.xml?language=en) 이는 전세계 복음주의자 숫자를 훨씬 상회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오순절 신자들이 개신교회 뿐 아니라 정교회, 천주교회에도 있기 때문입니다. 이를 좀더 자세히 보면 2000년 전세계 복음주의자들은 불과 5천5백만에 이릅니다. 오순절 기독교인들은 무려 11배에 달하고 라틴 아메리카 대륙의 오순절 신자들이 3천2백만에 달한다는 사실입니다. 오순절 운동은 개신교 내 뿐 아니라 이제는 이집트의 정교회, 동방 정교회, 이슬람권, 그리고 천주교 내에서 일어나 성경 읽기, 그리고 기도회 등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우상을 버리고 성령의 임재 가운데 들어 가고 있습니다. 개신교 전체 중 복음주의자보다도 훨씬 많은 숫자가 성령의 능력을 인정하고 체험하는 오순절(Renewal) 운동에 포함되고 있습니다. 1910년 오순절 운동의 91.5 퍼센트가 북미주에 있었다면 이제는 대부분의 오순절 기독교인은 비서구권인 다수세계(Majority World)에 몰려 있습니다. 이제 중남미, 사하라 남단 아프리카, 아시아 많은 지역의 복음주의자들은 놀라운 부흥의 체험과 성령의 임재를 맛 본 사람들이며 이들이 이룬 새로운 형태의 성장은 다수세계 기독교의 주류가 되었습니다.

식민주의 선교의 종언

20세기 초엽에 일어난 기독교 세계의 변화는 비단 지리적 변화만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이는 역사적이고 또한 총체적인 지구촌의 변화이기 때문입니다. 서구권에서 비서구권으로 기독교의 축이 움직이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제 1차 세계 대전과 제 2차 세계 대전 후의 일입니다. 기독교 진영인 서구 진영이 총부리를 같은 서구 진영에 겨눈 전쟁이 일어났습니다. 2차 세계 대전이 끝난 이후에 기독교가 다수인 국가들과 기독교인들에게 “기독교”에 대한 정체성에 많은 질문들이 제기되었습니다. 금기시되었던 하나님에 대한 질문, 그리고 교회의 본질에 대한 질문들이 제기되었습니다. 철석같이 믿고 있는 신조, 요리문답, 믿음, 신앙고백에 대한 회의주의가 풍미하기 시작했습니다. 성(sex)의 자유, 권위, 전통과 자유로부터의 자유, 신학과 성경에 대한 자유로운 비판이 다시 한번 더 불어오기 시작했습니다. 1960년이 들어서면서 교회들이 텅텅 비기 시작했습니다. 1960초엽에 유럽은 더 이상 돌이킬 수 없는 지속적 하강 곡선을 그린 시점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같은 시기에 대부분의 서구 선교사가 떠나버린 사하라 남단 아프리카, 인도, 중국, 인도네시아, 남미에 놀라운 부흥의 역사가 일어나는 시점입니다.

식민주의(colonialism)에서 후기 식민주의(post-colonialism)로 넘어 가고, 현대주의(modernism)에서 후기 현대주의(post-modernism)로 넘어가면서 기독교 진영에 많은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이 변화는 분명 혁명이었습니다. 1960년대의 시기를 분명 “비가시적 종교 혁명(invisible religious revolution)”으로 불러도 지나침이 없을 것입니다. 1960년대 들어서서 서구인들은 “그들 스스로 종교(특히 기독교)와 상관없이 그들의 가정과 성 생활과 문화적 추구” 할 수 있다고 믿게 되었습니다. 지금의 LGBTQ와 같은 성도덕의 문란을 넘어선 창조질서에 대한 도전이 이미 이때 그 뿌리를 내리기 시작한 것입니다. 선한 사람, 악한 사람으로 구분할 수 있는 도덕률의 기준을 종교에 두지 않고 자신들 스스로에 두고 구축할 수 있다고 믿게 된 것입니다. 전통적인 기독교적 결혼관, 선과 악에 대한 성경적 표준, 그리고 행복한 가정의 출발점인 기독교적 결혼식 마저도 기준이 기독교적 가치와 규범에 있지 않고 자유로운 인간 스스로에 있음을 천명하는 가히 혁명적 발상이 바로 1960년대에 시작되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지경에 이르게 된 것은 이미 1960년대 이전에 고도의 그리고 광범위한 형태의 탈기독교화(De-Christianization)와 후기 기독교 시대(Post-Christian Era)가 전개되고 있음을 시사해 줍니다. 식민주의가 종언을 고한 1960년대에 서구에서는 탈기독교화 급 물살을 타게 됩니다.

비서구적 기독교의 태동

서구권의 부흥운동은 해외선교로 연결되었고, 다수 기독교 지역의 부흥운동은 민족 복음화와 비서구적 기독교를 태동시켰습니다. 이럼으로 국가 교회의 형태를 지녔던 루터교회, 성공회, 화란 개혁교회의 전통적 교회는 약화되고 아프리카 토착교회, 남미 풀뿌리 교회, 중국의 지하교회와 삼자 교회, 인도의 가정 교회, 인도네시아의 독립교회의 성장은 다수 기독교 세력의 중요한 구성원이 되었습니다. 20세기 이전의 부흥운동은 백인 중심의 서구 기독교권 내에서 일어난 것이라면, 21세기의 부흥운동은 비백인, 비서구권 기독교 부흥이라고 표현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입니다. 비록 서구권에서 성장하는 교회라 할지라도 이는 흑인이나 또는 이민자들을 중심으로 기독교 세력인 드물게 성장하는 것이며, 총체적으로 비서구권에 일어난 기독교 세력의 성장은 괄목할 만한 것입니다.

다수 세계 기독교(Majority World Christianity)의 출범

20세기를 마감하면서 기독교의 중심축이 서구권에서 비서구권으로 이동한 사실은 단순한 변화가 아닌 가장 놀라운 인류 종교 지형의 지각변동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는 서구권 기독교의 지도력이 쇠퇴하고 있음을 의미하며, 다수 기독교(Majority Christianity: 제삼세계 기독교 세력)의 지도력이 성장하고 있음을 반영합니다. 이는 북반구 서구 중심에서 남반구 기독교 성장으로의 이동을 뜻하기도 합니다. 라틴 아메리카와 사하라 남단 아프리카와 같은 남반구 기독교의 괄목할 만한 성장은 역사상 그 유례가 드문 일입니다. 하지만 세계 기독교의 중심축이 반드시 남반구 기독교의 성장으로만 설명될 수는 없습니다. 이는 중국과 인도, 인도네시아, 필리핀 그리고 한국과 같은 북반구 지역에도 놀라운 기독교 성장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 모든 기독교 성장의 공통점은 비서구권에서 일어났다는 점에서 서반구에서 동반구 기독교의 축의 이동으로 설명하기도 합니다. 북반구에서 남반구로, 서반구에서 동반구로서의 기독교의 축의 이동을 이제는 소수기독교(서구)에서 다수 기독교(남반구와 동반구 포함)라고 당당하게 표현할 때가 이른 것입니다.

보스톤 대학(Boston University) 의 대너 로버트(Dana Robert) 교수의 보고에 의하면 1900년 당시 전 지구촌 기독교 인구의 70.6 퍼센트는 서반구에 있었다고 한다. 다시 말하면 대부분의 지구촌 기독교인들이 유럽과 북미주 두 대륙에 집중되어 있었다는 애기가 됩니다. 유럽과 북미에서 제외된 뉴질랜드와 호주 그리고 남아공 등을 감안한다면 대략 제3세계에 있는 당시의 비백인 기독교인들은 28퍼센트 정도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타드 존슨 (Todd Johnson )박사는 지구촌 기독교 지도(Atlas of Global Christianity) 에서1910 년 에딘버러 세계 선교 대회가 열릴 당시의 전세계 기독교인의 80.9 퍼센트는 백인들이었다고 보고하였습니다. 1910년 당시 66%가 유럽인들이었고, 15%가 북미주 백인들이며 나머지는 오세아니아와 남아공의 백인들이 차지하였습니다. 에딘버러 세계 선교대회 100주년이 열린 2010년에는 그 상황이 역전되었습니다. 전 세계 기독교인 가운데 유럽 기독교인이 차지하는 비율은 66%에서 25%로 급감하였고, 북미주의 백인 기독교인 비율은 15%에서 12%로 감소하였습니다.

서구 기독교는 급격히 몰락한 반면 비서구 교회는 괄목할 만한 성장이 있었고 앞으로도 더욱 더 서구대 비서구 기독교인 격차는 벌어질 것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나타난 수치를 이해함에 있어서는 당시 기독교 인구 산출 방식을 참조하여야 합니다. 20세기 초부터 시작된 비서구권 교회의 성장의 배경에는 당시에 일어난 부흥운동에 깊이 기인하며 이는 세계선교운동으로 연결되어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됩니다. 1910년 에딘버러 세계 선교 대회 이후 100년이 지난 2010년의 통계에는 서구권 기독교 인구는 37.9 퍼센트에 달합니다. 100년의 기독교 변화 가운데 가장 주목해야 할 부분은 1981년입니다. 1981년을 지나면서 남반구 기독교인들은 이미 북반구 기독교인을 앞지르게 됩니다. 2010년 현재 37.9 퍼센트의 기독교인이 있는 서구권 기독교인이 있다고 하지만 더 큰 문제는 수치로는 기독교인의 비율이 크게 나오나 실제로는 신앙도 없고 일체 교회 출석을 하지 않는 사람들 때문입니다. 그것은 바로 너무나 높은 서구 기독교인의 명목상의 기독교 인구이고 실제 교회를 나가는 인구는 훨씬 더 심각할 정도로 소수인 점입니다. 이 점을 감안하면 비서구권 기독교인들이 전 지구촌에 차지하는 점유율이 생각보다 더 높게 나온다는 사실입니다. 서구권 기독교인들 가운데 유럽 대부분 나라와 북미주의 교회 출석률은 1.0 퍼센트에 겨우 10퍼센트를 넘기는 수준입니다. 1900년도의 아프리카에는 9백 만명의 기독교인이 있었지만 100년 뒤에는 그는 3억97백만명이 되었습니다. 이는 사하라 남단에 일어난 교회 성장만 본다면 이는 인류 역사 가운데 가장 위대한 종교 변화였습니다.

다수 세계 기독교 지도력

서구권 교회가 쇠퇴함이 곧장 비서구권 기독교 진영의 리더쉽으로 이양된 것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만약 비서구 기독교 발흥의 대표적인 예인 아프리카, 남미의 브라질, 아르헨티나 그리고 아시아의 필리핀, 인도네시아 그리고 한국 등의 기독교 성장과 교세를 생각한다면 그들 국가와 지도자들이 세계 기독교의 지도력을 발휘하거나 또는 신학과 교회 전반의 주도권을 행사해야 함이 당연합니다. 하지만 사실은 아직도 지도력과 신학 그리고 교권의 주도권은 전적으로 몰락하는 서구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세계복음주의 연맹, 로잔 복음화 대회 그리고 세계 선교단체의 지도자들의 대부분은 서구 지도자들로 채워져 있었으나 이제 아시아 지도자들로 바뀌고 있습니다. 이는 서구 기독교의 총체적 몰락에 대한 양적 지도력의 몰락은 있지만 여전히 서구교회와 신학의 질적 영향력은 매우 큽니다.

양적 기독교의 퇴조가 있었다면 질적 기독교의 쇠퇴도 존재합니다. 이 말을 반대로 말하면 양적 기독교의 성장은 질적 기독교 성장이 반드시 뒤 따를 때 온전한 성장이라 말할 수 있으며 이는 한 국가의 정치, 사회와 문화 전반을 이루는 기초를 제공해 주며 이는 종교가 문화화(inculturation)되는 과정을 투영해 주는 것입니다. 국가의 규범, 사회 윤리, 철학과 사상, 그리고 정치와 경제가 기독교 신앙을 기초로 이루어지도록 역할을 담당했던 서구 기독교가 단지 교회의 출석과 양적인 면에서만 쇠퇴한 것만이 아닌 종합적인 양태로 쇠퇴하였습니다. 유럽의 각 국가들의 기독교의 영향력이 급감에도 불구하고 지도력과 선교 주도권에서는 아직도 세계교회를 대표하고 있는 것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습니다. 반면에 각 나라의 규범 그리고 도덕과 사회 전반 영역 다시 말하면 문화와는 별개의 형태로 존재하는 질적 기독교는 아프리카, 아시아 그리고 심지어는 라틴 아메리카에서 크게 나타나고 있지 않으며, 이점이 2000년의 역사 속에 양적, 질적 기독교화(Christianization) 과정을 겪었던 서구 기독교와의 차이점입니다.

다수세계 독립 교회의 부상

독립교회란 정교회, 천주교회, 그리고 개신교회와 같은 서구에 뿌리들 둔 전통적 교단들이 아닌 대부분 비서구권에서 그것도 특히 아프리카, 아시아, 남미에서 자생한 교회들을 지칭합니다. 중국의 지하교회, 인도네시아의 많은 독립교회, 아프리카 독립교회들(AICs) 그리고 남미의 많은 교회들이 서구 교단이나 서구 선교단체들과 무관하거나 아니면 스스로 독립하게 된 교단과 교회들을 말합니다. 현재 천주교회는 지구촌 전 기독교 진영 가운데 50.4 퍼센트를 점유하고 개신교회가 그 다음인 6.1 퍼센트로 4억천9백만에 이릅니다. 그리고 독립교회가 5.3 퍼센트로 4억천9백만에 달합니다.

21세기 지구촌 기독교의 도전을 맞이하여

20세기를 마감하고 21세기에 진입한 인류는 이전에 없었던 새로운 형태의 도전에 직면하고 있습니다. 20세기의 변화는 백 년에 걸쳐 기독교 역사의 중심축이 서구에서 비서구권으로 이동한 것입니다. 기독교 지형의 지각변동은 지역적 이동 뿐 아니라 신학, 교회, 인종, 문화 모든 영역에 반영되면서 이전의 서구 중심의 기독교가 아니라 이제는 비서구권 기독교가 주류가 되는 지구촌 기독교가 되었습니다. 서구권은 소수가 되고 비서구권은 다수가 됨으로 “다수 세계 기독교(Majority World Christianity)”가 거역할 수 없는 지구촌 기독교의 현주소가 되었습니다. 20세기 기독교는 서구권 종교의 전유물이 아닌 비서구권이 중심의 종교로 우뚝 서게 되었습니다. 서구적 신학에서 비서구권 상황에 맞는 신학적 주제와 탐구는 기독교 세계 전체의 변화가 어떠한 것인지를 나타냅니다. 지난 21세기의 변화 즉 지난 20년의 변화는 국지적인 것 아닌 지구촌 전반에 걸쳐 나타났습니다. 그 변화의 큰 흐름을 보면, 리더쉽과 영적 흐름, 선교와 교회 구성원 그리고 “지구촌 지역화(Glocalization)”의 특성이 더 한층 강화되었습니다. 예를 들면 20세기는 근대 선교와 식민주의 선교를 기반으로 해서 상황화(contextualization), 토착화(indigenization)와 문화화(inculturation)의 긴 100여년의 과정을 거쳐 왔습니다. 이를 큰 담론으로 말하면 “기독교의 세계화(Globalization of Christianity)”입니다. 사하라 남단의 기독교, 이질적으로 보일 수 밖에 없는 파키스탄의 자생적 기독교, 중남미의 기독교, 매우 중국적이며 비서구적인 중국 지하교회 등 지난 2천년 동안 서구 기독교에서 보기 드문 형태의 기독교가 다수 세계 기독교를 이루고 이제는 안정적 지위에 들어 온 것입니다.

세속화의 도전

서구권 기독교의 몰락에는 수백 년간에 걸친 집요한 세속의 흐름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계몽주의의 등장으로 이성을 근간으로 성경의 초자연적 현상 즉 동정녀 탄생, 기적, 그리고 부활과 승천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믿지 않는 풍조들이 양산되었습니다. 계몽주의의 영향은 독일을 중심으로 합리주의를 기반으로 한 성경의 정경성에 대한 공격으로 이어졌고, 뛰르갱, 꽁트와 같은 사회학자들의 선언으로 기독교는 역사상 사라지게 될 것이라고 하는 가장 인류 역사상 무모하고도 극악한 천명으로 이어졌습니다. 기독교는 신화의 단계에 만들어진 종교이기에 필연 이러한 무지의 소치인 신화는 사라질 것이며 인간의 이성이 종교의 주체가 되어 이상적인 사회가 구현될 것이라고 천명하였습니다. 그 이후 200년 동안 기독교는 리츨의 합리주의를 기초로 한 자유주의 신학, 다윈의 종의 기원을 통한 진화론, 과학의 가설과 학설을 기초로 한 과학주의, 인간이 신의 자리를 차지하고 신을 없애 버린 종교적 인본주의 (Religious Humanism), 교육과 정치 그리고 사회 전반에 기독교 세계관을 송두리채 제거해 버린 근대화 논쟁(Modernity debate), 그리고 성의 자유와, 신으로부터 도덕적 자유를 선언한 세속주의, 그리고 일어난 후기 식민주의와 후기 근대주의는 기독교 신앙 전체에 대한 전방위 공격으로 서구 기독교 전체를 초토화 하였습니다. 인간의 이성과 논리가 하나님의 존재와 신앙을 위협하는 거대한 파도 앞에 유럽과 미국의 기독교는 병약하기 그지 없었습니다.

이슬람의 도전

20세기의 문을 열었을 때, 무슬림 인구는 2억에 불과했습니다. 1800년의 무슬림 인구는 9천 백만에 불과했습니다. 2023년 현재의 무슬림 인구는 19억에 달합니다.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세계 종교는 기독교가 아닙니다. 기독교는 1900년 초기나 20세기 말이나 2023년 현재 31.1%로는 오히려 1900년보다 2% 감소했습니다. 이슬람은 놀라운 속도로 성장하고 있습니다. 2023년 현재 무슬림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나라는 50개 나라가 넘습니다. 1900년 초기의 이슬람이 다수였던 나라는 중동과 북아프리카 지역이었습니다. 소련의 붕괴로 중앙아시아도 이슬람이 주류 종교가 되었고, 남아시아, 동남아시아의 무슬림 인구는 대단합니다. 세계 최대의 무슬림 인구가 있는 나라는 사우디 아라비아나 이란 또는 이집트가 아니라 인도네시아입니다. 북인도와 방글라데시 그리고 파키스탄의 이슬람 인구는 중동의 이슬람 인구와 비교조차 불가능할 정도로 많습니다. 지구촌 평균을 훨씬 웃도는 무슬림 인구증가와 이민은 유럽과 북미주 곳곳에 이미 이슬람 공동체를 형성했습니다. 시장, 국회의원 그리고 유럽의 수반에 이르기까지 무슬림 전성시대를 겪고 있습니다. 이에 대하여 기독교는 너무나 무력합니다. 전략 부재입니다. 그리고 이슬람을 잘 알지도 못합니다. 이슬람의 다와(Dawah)를 대처할 전지구촌적 선교전략도 전무합니다.

더 충격적인 것은 이러 추세로 가면 몰락하는 유럽이 급증하는 이슬람 인구 유입으로 이슬람화가 가속화된다는 점입니다. 유럽 이슬람의 증가는 수적 증가 보다도 친이슬람화를 위한 학문, 정치, 경제, 문화, 예술, 언론과 자선단체에 이르기까지 생각했던 것보다 더 깊숙이 그리고 광대하게 퍼져 있습니다. 이런 유럽의 우울한 분위기를 대변하는 책들이 홍수처럼 쏟아져 나오고 있습니다. 지금 출판되고 있는 책들을 읽기에도 벅찰 정도로 너무 많은 책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뜨거운 감자는 터키의 EU 가입에 관한 부분, 알바니아를 비롯한 동유럽 이슬람 국가의 EU 편입이 미치는 유럽 판도의 변화에 관한 학계의 연구서적들입니다. 양대 세계 대전 이후 무시할 수 없는 속도로 이민을 통해 불어난 이슬람의 자연 인구 증가는 더이상 이민자가 아닌 선거권과 투표권을 가진 당당한 유럽의 일원인 기성세대로 그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유럽에 물밀듯 밀려 오는 구식민지 지역의 이슬람 인구의 유입, 난민 신청을 통한 법적 지위 획득과 정착 그리고 주변 이슬람 유럽 국가의 이슬람 인구의 다양한 유입들이 가뜩이나 소수 공동체를 이루는 유럽에 그나마 남은 기독교 정체성마저 위협받을 수준에 이르고 있습니다. 기성세대가 된 모슬렘들이 선거권을 갖게 됨으로 도시별로 그리고 일부 선거구 전체가 이슬람 공동체로 바뀌어 가는 부분들을 주목해야 합니다. 21세기의 기독교는 이슬람에 대한 전략적 대응과 역선교를 감당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전세계의 연구기관들이 주목하는 것처럼 2030년이 되면 무슬림은 전체 기독교 수를 넘어서는 22억에 이르며 많은 기독교인들이 이슬람의 샤리아 입법에 따른 핍박과 제한 그리고 소수자로 남아 전도와 선교조차 봉쇄당할 것입니다. (참조: https://www.pewresearch.org/religion/2011/01/27/the-future-of-the-global-muslim-population/#:~:text=The%20world’s%20Muslim%20population%20is,Forum%20on%20Religion%20%26%20Public%20Life.)

선교 패러다임의 도전

또 다른 영역은 선교지와 피선교지로 만드는 등식이 바뀐 것입니다. 서구권은 선교국, 그리고 비서구권은 피선교지라는 등식에서 이제는 모든 교회가 선교하고 모든 민족과 나라와 언어와 부족이 구분 없는 선교국과 피선교국이 되었습니다. 교회가 대상으로 하는 선교는 자신이 살고 있는 지역과 국가 뿐 아니라 전세계로 확장되었습니다. 2000년 교회사 가운데 가장 괄목할 만한 변화는 기독교의 다수를 이루던 서구 중심의 기독교가 이제는 비서구권 기독교인이 다수 종교가 된 점입니다. 이러한 지리적, 인종적, 양적 변화가 본질적이고 또한 질적인 영역까지 변화되었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기독교의 다수가 비서구권에서 있다 해도 여전히 비서구권의 광대한 지역이 비기독교 지역 또는 미복음화된 지역으로 남아 있습니다. 비서구권 지역은 교회의 체제, 예배, 신학 그리고 선교의 골격을 여전히 서구적 모델을 따라가는 형국입니다. 서구 중심적 세계관에서 기독교는 서구의 것이라는 관점이 세계 종교로 발전해 나가는 과정에서 획일적으로 “기독교는 서구의 것”이라는 점에 어떤 변화도 없었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변화는 전체의 형국을 바꿀 만큼 주도적이지 않습니다. 교회의 관점이 전 세계를 대상으로 확대되면서 선교와 복음화의 도구가 한 나라나 교파에 국한된 것이 아닌 전세계의 모든 교회들이 연합해서 함께 나아갈 사역이라는 점이 기독교 전체 역사의 과정에서 암묵적으로 요구되고 있습니다. 이는 교회의 연합이나 또는 일치 운동들이 일어나는 근거를 제공해 줍니다. 기독교 진영의 큰 변화는 복음의 내용을 바라보는 시각을 다양하게 제공하였고, 각 교파, 교단의 교리, 그리고 지역의 관점에 따라 많은 다양성들은 비서구적 모델과 행동양식의 패턴을 양산하였습니다. 서구권에서 비서구권으로 기독교 중심축의 이동은 서구 기독교가 세계 종교로서 어느 지역의 독점적 종교가 아니라 이제는 전 세계의 종교임을 나타냅니다.

도시선교의 도전

근대 선교는 가는 선교였고, 20세기 선교의 큰 획을 그었던 미전도 종족 선교는 도시에서 시골로 그리고 오지를 찾아가는 선교였습니다. 2023년 현재 지구촌 인구의 절반이 넘는 53.9%의 인구인 44억명이 도시에 살고 있습니다. (참조: https://en.qdnd.vn/social-affairs/news/urbanization-ratio-expected-to-reach-53-9-in-2023-548840#:~:text=Urbanization%20ratio%20is%20expected%20to,breakthrough%20stages%20of%20the%20sector.) 세계 은행(World Bank) 보고에 따르면 2050년이 되면 인구의 3분의 2가 도시에 살 것이라고 합니다. 전 세계 GDP의 80% 이상이 도시에서 발생합니다. 그런데 10억명의 사람들이 도시 빈곤층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강제 이주자의 50%가 도시 지역에 거주하고 있습니다. 도시 토지 소비의 확장은 인구 증가를 50%나 앞지르고 있습니다. 다양한 곳에서 온 사람들이 도시에 몰려 살고 있습니다. (참조: https://www.worldbank.org/en/topic/urbandevelopment/overview) 이에 더불어 이민자들이나 또는 방문객들도 도시로 옵니다. 21세기 선교의 블루 오션은 도시를 복음화하는 것입니다.

1910년 당시에 10 대 도시에는 런던, 뉴욕, 파리, 베를린, 시카고, 비엔나, 필라델피아, 부에노스 아이레스, 루흐, 맨체스터로 부에노스 아이레스만 빼고 전부 서구권에 포진되어 있었습니다. 이런 인구 분포가 2010년의 세계 25대 도시가운데 1910년 있던 뉴욕, 부에노스 아이레스, 파리와 시카고만 빼고 나머지 모든 비서구권 도시들이 포함되었습니다. 25개 도시의 인구만 해도 3억7천9백만이 이릅니다. 도시를 예루살렘이나 에베소 그리고 아테네처럼 복음 전도의 기회로 그리고 미전도 족속과 다인종 타문화권 사람들이 스스로 찾아오는 전도와 선교의 호기를 우리는 21세기에 맞고 있습니다. 이제 대부분의 인구들이 도시로 몰려 사는 이때에 도시를 선교의 전략적 대상으로 삼고 사역했던 사도행전의 사도 바울이 사역이 필요한 시기입니다.

Glocal mission의 도전: 한류 선교

20세기의 화두는 세계화(Globalization)입니다. 그러나 21세기의 화두는 Glocalization입니다. Glocalization (지역 세계화)은 세계화(Globalization)와 지역화(Localization)의 합성어입니다. 지역의 세계화 선교(Glocal mission)는 서구 즉 유럽이나 미국의 보편적 스탠더드를 따르는 것이 아니라 각 지역의 고유한 것이 도리어 전세계에 전파되어 사용하게 되는 것을 말합니다.

한국의 1907년 평양 장대현 교회의 부흥은 인류 역사 가운데 서구권에 볼 수 없는 여러 모습들을 보여 주었습니다. 새벽 기도, 철야 기도, 연합 기도 그리고 부흥 사경회, 부흥회, 노방 전도 등의 이런 전통들입니다. 한국에만 있다고 해서 이제 한국 교회 것으로 치부하는 것이 아닌 도리어 한국 것을 서구권이 배우려는 것이 되었습니다. 남미와 아프리카 그리고 중국과 인도네시아의 토착 교회의 자생력과 장점이 몰락하는 서구 기독교 학자들에게 경이로운 연구 대상이 되고 있습니다. 이는 뜨거운 선교 운동으로 발전하게 되어 인도, 중국 그리고 인도네시아와 한국, 필리핀이 앞으로 세계 선교의 주무대에서 더욱 더 동역하는 계기를 만들게 될 것입니다.

K-pop, K-drama, k-movie, K-beauty, k-foods(한식), K-fashion, 한복, K-travel 등과 같은 한류가 이제는 문화 강국으로의 한국의 위상을 높여 주고 있습니다. 이처럼 선교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근대 선교의 기원이 된 영국의 윌리엄 캐리로부터 19세기말부터 20세기 선교의 주도권을 쥐게 된 미국에 이어 한국교회의 선교 현장은 세계 선교 현장에서 결코 과소평가할 수 없는 세계적 트렌드로 자리잡고 있습니다. 저는 이를 “한류 선교(Korean Mission)”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한류 선교는 유럽선교나 미국선교와 대별되는 한국 교회만이 가지고 있는 독특한 선교라고 할 수 있습니다.

주변 강대국의 침략에 대항하여 은둔과 끈기로 국가의 독립과 존립을 지켜낸 한민족의 특징이 선교 현장에서도 나타나고 있다고 봅니다. 교회 개척이 불가능한 지역에서도 교회들이 개척되고 있고 유럽과 미국 선교사들이 포기한 선교 현장에서 지금도 한국 선교사들이 불굴의 정신으로 사역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한국식 새벽기도회, 금식 기도 그리고 민족을 위한 연합기도가 각 선교 현장에서도 현지에 맞게 새로운 기도 운동으로 일어나고 있습니다. 99.99% 불교 국가였던 한국이 복음화 된 역사가 이슬람, 힌두교와 불교가 대다수인 국가들에게 한국 복음화를 실례를 통해 그 지역 복음화의 가능성의 문을 열어 주고 있습니다. 한국 복음화에는 복음전도, 제자훈련, 찬양과 경배, 지도자 훈련, 셀 그룹, 성도들의 헌신이 있었던 것처럼 한국 선교사들이 가는 곳에 그 지역의 부흥과 성장을 위한 복음화의 유산이 큰 원동력이 되고 있다고 봅니다. 이는 유럽과 미국에서 보기 드문 한류 선교의 모습이라고 봅니다.

디아스포라 선교의 도전

20세기를 마치고 21세기에 들어선 지구촌 선교의 가장 큰 문제는 전통적 개념의 선교의 일대 대전환입니다. 끊임없이 선교사를 파송하고, 후원하고, 관리하고, 기도했는데 한바퀴를 다 돌아 와 보니 내가 살고 있는 지역 그리고 국가와 공동체가 바로 선교지라는 점입니다. 이 점은 유럽이든, 북미이든, 아시아나 아프리카 그리고 중남미 지역이든 우리가 살고 있는 곳이 복음을 전해야 할 선교지임을 인식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미국에서 그토록 세계 곳곳에 선교사를 파송하고 있는데 정작 미국에는 세계 각국의 이민자들이 몰려 들고 있으며 기실 미국 주류교회들은 쇠퇴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유럽도 마찬가지이며 대한민국도 마찬가지입니다. 2020년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우리나라 인구가 5천 178만명인데 한국에 등록되어 거주하는 외국인의 수는 215만명(2022년 통계는 213만명)입니다.

유형별로 살펴보면 한국국적을 가지지 아니한 자(외국인근로자, 외국국적동포, 결혼이민자 등) 169만 5,643명(79.0%)이고, 한국국적을 취득한 자 19만 9,128명(9.3%)이며, 외국인주민 자녀(출생)가 25만 1,977명(11.7%)으로 나타났습니다. 한국에서 파송 된 선교사의 수가 3만명 가까이 되는데, 전체 한국 교회가 기도하고 선발하여 훈련하고 파송하여 선교하는 구조를 이미 한국에 거주하는 외국인 미등록까지 포함하며 2백만명을 선교한다면 이 보다 더 효과적인 선교는 없을 것입니다. 한국에 오는 세계 각지의 외국인들은 특히 복음화가 되지 않은 지역이 유독 많습니다. 한국에 거주하는 외국인 출신 국가들을 보면, 중국, 베트남, 태국, 미국, 우즈베키스탄, 필리핀 그리고 캄보디아 순입니다. 유럽, 북미 그리고 우리나라와 같은 경우에 이민자, 디아스포라, 방문객, 단기 여행자, 중단기 거주자, 유학생, 단기 계약 노동자, 국제 결혼자, 귀화자등이 매우 많습니다. 전통적 보내는 선교의 발생 전환이 시급한 때입니다.

주요 국적별 외국인 거주자의 현황은 다음과 같습니다.
중국(한국계) 541,337
중국 207,764
베트남199,950
태국 165,511
미국 59,646
우즈베키스탄58,000
필리핀 43,455
캄보디아 40,718

2020년 미국 국무부 통계에 따르면 미국에 거주하는 이민자는 5천백만이라고 합니다. 대한민국 국민 전체가 미국에 이민 와 있는 것입니다. 언론에 잘 알려진 바와 같이 튀르키예 이민자와 더불어 시리아 난민이 몰려 있는 독일은 미국 다음으로 이민자의 수가 천5백 8십만에 달합니다. 사우디 아라비아는 무려 천3백 5십만에 달합니다. 지구촌 전체가 이민자로 인해 섞이고 있고 공고했던 종교의 벽들이 이민자로 인해 무너지고 있습니다. 걸프 협력 위원회 국가들과 아랍국가들이 더이상 무슬림 다수를 유지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른 것도 그 국가들을 유지하는 노동력과 생산력이 밀려오는 외국인 노동자와 이민자에 있기에 때문입니다. 이러한 곳에 세워지는 디아스포라 교회가 이슬람권 최대의 대형교회들이 세워지게 되고 새로운 선교의 진이 구축되고 있습니다. (참조: https://www.pewresearch.org/fact-tank/2022/12/16/key-facts-about-recent-trends-in-global-migration/#:~:text=The%20United%20States%20has%20more,Saudi%20Arabia%20with%2013.5%20million.)

21세기 지구촌 선교의 화두는 당연히 우리 이웃에 살고 있는 외국인입니다. 이들이 어떠한 형태로 와 있든 지구촌 전체 인구 가운데 30명 가운데 한 명은 이민자에 해당합니다. 유엔(UN) 이민자 보고(IOM, UN Migration)에 따르면 2020년 현재 지구촌에 있는 이러한 형태의 외국인은 2억 8천 백만에 해당합니다. (참조: https://worldmigrationreport.iom.int/wmr-2022-interactive/) 이는 10년전 이민자 인구에 비하면 7천만명 가까이 늘어난 것입니다. 지구촌 인구 3.6 퍼센트가 이민자입니다. 2008년 Anup Shah 의 보고에 따르면 전세계 이민 인구는 1억9천백만었습니다. 1990년 세계 이민자가 1억 2천 8백만이었는데 이는 1970년대 이민자의 세배로 증가한 것이며, 다시금 30년 만에 두 배 이상 이민자가 증가한 것입니다. 2010년 발표된 세계 이민 인구 보고에 따르면 2억 천3백만이 이민자라고 합니다. 이 중 1억2천7백만이 선진국에 살고 있으면 나머지가 개발 도상국에 살고 있다고 합니다. 2010년 3억의 미국 인구가 2050년 4억이 될 때 백인 인구는 여전히 감소하고 비백인들의 증가로 백인 대 비백인이 역전되는 해로 보고 있습니다. 이는 여전히 증가하는 비백인 특히 히스패닉 이민자 증가 때문입니다.

이제 남반구 기독교를 이루는 남미와 아프리카 그리고 아시아 일부 지역의 기독교인들의 부상이 전 기독교계에 미치는 영향과 그 파장에 대한 심도 깊은 연구가 필요합니다. 전 세계의 기독교 분포도에서 서구권은 급격한 하강을 하고 있는데 이는 유럽이 심각하고 북미주는 점증하는 이민자들로 인해 그 하강 속도를 유럽보다는 완만한 속도를 유지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글을 맺으며

한편으로는 흥분되고 놀라운 다수 세계 기독교의 발흥, 또 한편으로는 낙담 되고 실망스러운 서구 기독교 몰락의 실상이 대비되는 모습을 우리는 보고 있습니다. 유럽이 전지구촌 선교를 걸머지며 걸어 왔던 많은 여정들, 미국이 선교대국으로 부상했던 요인들은 의심의 여지없이 젊음을 불사르고 그리로 생명을 아끼지 않고 뛰어나가도록 역사했던 그 어떤 것이 반드시 존재하였습니다. 그것은 성령님의 임재였고 또한 성령님의 기름 부으심입니다. 대각성 운동, 부흥운동, 오순절 운동 모든 부흥에는 의심의 여지없이 선교로 이어지는 헌신과 희생이 동반되었습니다. 그러한 성령의 기름 부으심이 한국 교회로, 중국으로, 인도네시아로, 그리고 인도와 아프리카, 남미와 중동권으로 번져 가고 있습니다. 세계 교회를 바라보며 오직 성령의 기름 부으심 안에 복음의 능력이 미치지 못하는 곳에 주의 놀라운 추수의 역사가 일어날 것을 우리는 바라보고 있습니다. 작금의 기독교가 직면한 도전은 위기가 아닌 선교의 황금 추수를 맞는 호기입니다. 새로운 한류 선교를 꿈꾸며 나아가서 지금의 도전이 복음화를 이룰 수 있는 새로운 도약의 기회가 되기를 충심으로 기도합니다.

보스톤에서 김종필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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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r. Elijah Kim: 보스톤 소재 파토스 재단 대표(President, Pathos Foundation, Inc.)/ 보스톤 연합예배(Boston United Worship) 및 미스바 기도 대각성 (Boston Mizpah Prayer Awakening)의 주최자(Organizer)/ 필리핀 Grain of Wheat College and Graduate school (Founder and President, formerly Elijah International World Mission Institute) 설립자 및 총장 역임/ 필리핀 한 알의 밀알 교회 개척 및 목사(Pioneer and Overseer Pastor, A Grain of Wheat Christian Ministries, Philippines)/ 글로벌 어반 미니스트리 네트웤 창립 멤버(Founding Member, Global Urban Ministries Network)/ 보스톤을 위한 목회자 기도회 설립(Founding Member, Prayer For Boston)/ 북미 정상 기도회 멤버(North America Prayer Summit) 등 각종 선교 대회 개최 및 인도 ( BAM, CBMC, 백석대학교, 세계한인디아스포라 선교대회)/ 부흥 시리즈(부흥의 역사, 부흥 신학, 부흥의 영성, 부흥과 선교 등) 세미나 및 집회 인도 사역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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