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동주가 꿈꾸는 이상 세계

[문화저널=안준배 박사] 윤동주가 꿈꾸는 이상 세계  »  윤동주 시 평론 시리즈 <4회> »

도래할 빛의 세계를 기다리는 것은 윤동주 시의 기본구조…

윤동주에게 있어서 시인이라는 ‘천명’은 시인은 하늘의 명령에 귀를 기울여야 하는 자라는 뜻이다. 시인은 하늘의 목소리에 따라 시를 써야 하는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곧 하늘의 목소리에 따른 시가 아닌 한 줄의 시를 적고 싶다고 한다. 생각해보면 어릴 때 동무를 죄다 잃고 홀로 가라앉는 삶에 대한 성찰이다. ‘시대처럼 올 아침’을 기다리는 ‘최후의 나’라는 시구에서 윤동주의 종말론적 세계관을 암시하고 있다.

윤동주 탄생 100주년을 맞이하면서 소강석 시인은 <다시, 별 헤는 밤》이라는 시집을 냈다. 소강석 시인은 윤동주의 작품과 삶에 대한 메타 시를 썼다. 소강석은 윤동주의 내면으로 들어가기도 하고 그를 자신 안에 끌어들이기도 하면서 윤동주 평전 시를 냈다. 한국 문단사 최초의 윤동주 평전 시집이라는 문학사적 의미와 진정성, 시적 완성도를 평가 받아 윤동주 탄생 100주년을 맞아 시인 소강석은 윤동주문학상을 수상하였다. 소강석 시인은 윤동주라는 별을 찾아 떠난 그의 여정 <별빛 언덕 위에 쓴 이름>이란 에세이까지 연달아 샘터에서 출간하였 다. 시인 소강석은 윤동주라는 시성을 추앙하는 문학세계를 형성하였다. 그는 윤동주가 1941년에 꿈꾸었던 이상 세계를 담아 쓴 <간판(看板) 없는 거리>라는 시를 주목했다.

정거장 플랫폼에
내렸을 때 아무도 없어.

다들 손님들뿐,
손님 같은 사람들뿐

집집마다 간판이 없어
집 찾을 근심이 없어

빨갛게
파랗게
불붙은 문자도 없이

모퉁이마다
자애로운 현 와사등에
불을 켜놓고.

손목을 잡으면
다들 어진 사람들
다들 어진 사람들

봄, 여름, 가을, 겨울
순서로 돌아들고

윤동주는 일제의 폭압과 압제에 시를 쓰며 저항하고 항거했지만 그가 바라고 꿈꾸었던 이상향이 있었다. 그것은 세계열강의 야만적 폭력과 침탈이 사라지고 러시아, 중국, 일본, 대한제국이 함께 평화롭게 어우러져 사는 세계이기에 윤동주의 내적 염원을 담아낸 시 <간판 없는 거리>라는 시라고 소강석 시인은 지적했다.

인간은 목적지에 도착하면 어김없이 정거장에 내리게 되어 있다. 다들 손님들이고 집집마다 간판이 없다는 것은 목적지엔 국가가 없다는 것이다. 서로가 손목을 잡으면 어진 사람들이 되고, 봄, 여름, 가을, 겨울의 계절이 순서대로 돌아가듯 자연스러운 세계를 맞이하자는 것이 시인의 지향점이다. 지금의 삶이 비록 자연스럽지 못하나 한반도를 에워싸고 있는 모든 나라가 평화 공생하자고 윤동주는 말한다. 윤동주는 항일정서를 넘어 온 세상이 평화롭게 사는 세계를 희구하고 있다.

윤동주는 1942년 4월에 도쿄의 릿쿄대에 입학하였다가 10월에 도시샤대 영문과로 옮겼다. 고종사촌 형 송몽규는 교토제대 서양학과에 입학하였다. 윤동주와 송몽규는 당시 도쿄에서 영문학 강사였던 5촌 당숙 윤영준과 자주 어울렸다. 차디찬 육첩방 다다미 위에서 프랑시스 장과 장 콕토와 나이두의 시로 긴 밤을 지새우기 일쑤였다.

윤동주는 1942년 6월 3일에 남의 나라 일본에서 다다미가 여섯 장 깔린 육첩방에 엎드려 <쉽게 씌여진 시>를 쓰게 되었다.

창 밖에 밤비가 속살거려
육첩방(六疊房)은 남의 나라.

시인이란 슬픈 천명(天命)인 줄 알면서도
한 줄 시를 적어 볼까.

땀내와 사랑 내 포근히 품긴
보내 주신 학비 봉투를 받아

대학 노-트를 끼고
늙은 교수의 강의 들으러 간다.

생각해 보면 어린 때 동무를
하나, 둘, 죄다 잃어버리고

나는 무얼 바라
나는 다만, 홀로 침전(沈澱)하는 것일까?

인생은 살기 어렵다는데
시가 이렇게 쉽게 씌어지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육첩방은 남의 나라
창 밖에 밤비가 속살거리는데,

등불을 밝혀 어둠을 조금 내몰고,
시대처럼 올 아침을 기다리는 최후의 나,

나는 나에게 작은 손을 내밀어
눈물과 위안으로 잡는 최초의 악수.

윤동주에게 있어서 시인이라는 ‘천명’은 시인은 하늘의 명령에 귀를 기울여야 하는 자라는 뜻이다. 시인은 하늘의 목소리에 따라 시를 써야 하는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곧 하늘의 목소리에 따른 시가 아닌 한 줄의 시를 적고 싶다고 한다. 생각해보면 어릴 때 동무를 죄다 잃고 홀로 가라앉는 삶에 대한 성찰이다. ‘시대처럼 올 아침’을 기다리는 ‘최후의 나’라는 시구에서 윤동주의 종말론적 세계관을 암시하고 있다. 윤동주의 시에 나타난 빛의 세계는 그의 삶과 시를 지탱하고 있는 원동력이고 보루이다. 어둠에 대한 고뇌를 자기희생으로써 마주 서면서 도래할 빛의 세계를 기다리는 윤동주 시의 기본구조를 보여준다.

잡을 손이라야 자신의 손이 전부였던 시인의 손은 그의 마음이다. 남의 나라 육첩방의 눅눅한 외로움에 시인의 뼈는 시리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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