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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가 되는 말
[새벽묵상] 기도가 되는 말 » 약 3:1-12 » 한은선 목사 » Ein Wort, das zum Gebet wird! 곧 좋은 말은 좋은 영혼에게서 나옵니다. 그러기에 말보다 마음을 먼저 고쳐야 합니다. 말의 문제는 소리의 문제가 아니라 심성의 문제요 겉 사람의 문제가 아니라 속사람의 문제입니다. 미움의 말 한마디가 사람을 죽일 수도 있고, 사랑의…
참부흥의 불길 타오르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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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수교 140년사의 근대문명 리뷰-13
[역사저널] 한미수교 140년사의 근대문명 리뷰-13 » 강석진 목사 » 이승만의 외로운 대미외교 활동과 시련 대한제국과 일본과의 을사조약(1905.11)으로 대한이라는 나라의 외교권은 사실상 박탈된 것이었다. 이러한 역사적 수모가 실행되기 4개월 전인 1905년 7월에 ‘가스라.테프트밀약’으로 미국은 사실상 일본이 대한제국의 지배를 묵인하였고 바로 이어서 주한미공사관을 폐쇄시켰다. 이 당시 영국과 미국은 일본이 1904년 러.일전쟁에서 승리하자…

에즈베리 대학교 부흥을 통해 본 부흥의 의미와 역사

Dr.ElijaKim ◙ Photo&Img©ucdigiN

[영성칼럼=Dr. Elijah Kim] 에즈베리 대학교 부흥을 통해 본 부흥의 의미와 역사 » 2023/03/01  »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에즈베리 대학 부흥, 언제까지 이 일이 계속될지…

에즈베리 대학의 부흥을 말하고자 하면 우리는 먼저 “부흥이란 무엇인가? “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부흥의 시작은 사도행전 2장에 나오는 오순절 성령의 역사가 그 기원이며 이는 교회의 시작이기도 합니다. 사도행전의 역사는 놀라운 살아있는 교회를 예루살렘 뿐 아니라 로마 제국 곳곳에 세우게 했습니다. 우리는 사도행전이 말하는 부흥이 단순히 그냥 말하는 부흥이 아니라 구약 성경으로부터 예수님에 의해 완성되었고 예수님께서 성령을 보내 주시겠다는 그 약속대로 성령이 부어 주심으로 시작된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교회의 실제적인 부흥의 현장인 사도행전 2장을 보게 된 것…

 

들어가는 말

저에게 많은 분들이 에즈베리 대학교에서 일고 있는 부흥에 대하여 물어 왔습니다. 더 구체적인 것은 다른 사람이 말하는 부흥이나 언론이 말하는 부흥이 아니라 “김종필 목사는 에즈베리의 부흥을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보다 더 구체적이고 직접적인 질문이었습니다” 좀 더 시일이 끝나고 종합적으로 에즈베리 부흥 report를 쓰고자 했습니다. 하지만 많은 분들의 요청에 의해 주일 예배를 마치고 돌아 온 제가 앉자 마자 이 글을 쓰게 한 요인이기도 합니다.

에즈베리 대학의 부흥을 말하고자 하면 우리는 먼저 “부흥이란 무엇인가? “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부흥의 시작은 사도행전 2장에 나오는 오순절 성령의 역사가 그 기원이며 이는 교회의 시작이기도 합니다. 사도행전의 역사는 놀라운 살아있는 교회를 예루살렘 뿐 아니라 로마 제국 곳곳에 세우게 했습니다. 우리는 사도행전이 말하는 부흥이 단순히 그냥 말하는 부흥이 아니라 구약 성경으로부터 예수님에 의해 완성되었고 예수님께서 성령을 보내 주시겠다는 그 약속대로 성령이 부어 주심으로 시작된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교회의 실제적인 부흥의 현장인 사도행전 2장을 보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먼저 성경이 말하는 부흥은 무엇인가?를 상고해 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성경에 말씀하신 부분이 2천년 교회사가 가운데 어떻게 실현되고 있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 부흥의 정의
• 성경이 말하는 부흥
• 성경의 부흥 어원들
• 부흥의 케이스로 살펴 본 성경의 부흥
• 부흥이 일어난 실례로 본 성경과 역사상 부흥
• 회복, 각성 등 다양한 어원과 유사 어휘들을 통해 살펴 본 성경의 부흥
• 성경이 말하는 종교개혁(Reformation)
• 갱신운동(Renewal Movement)
• 성전 개혁 (Temple reformation)
• 종말론적 사건으로서의 부흥
•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메시야적 예언의 성취)으로서의 부흥
• 예수님의 비유와 가르침으로 나타난 비유
• 사도행전 오순절 사건을 통해 나타난 부흥
• 신약 성경에 나타난 부흥
• 사도들을 통해 나타난 부흥

성경에 나타난 부흥을 통해 부흥이 무엇인지를 살펴 보는 것은 신학대학원 강의 두 학기 분량에 해당합니다. 실제로 저는 성경이 말하는 부흥에 대하여 두 학기를 가르쳤어도 다 다룰 수 없을 정도로 방대하고 심원합니다. 제가 부흥에 대하여 대학원 수준으로 충분히 강의해야 한다며 10과목이어도 부족합니다. 그토록 부흥에 관한 강의는 방대합니다. 실제로 저는 성경이 말하는 부흥만을 강의한다 해도 네 과목 이어도 충분하지 않을 것입니다. 오늘 제가 논하고자 하는 것은 매우 부분적이지만 그래도 핵심에 해당하는 사항을 말하고자 합니다.

부흥은 성경을 기원으로 해서 교회사 가운데 비일비재하게 일어났습니다. 교회사에서 일어난 많은 사건들이 교회사의 매우 중요한 역사적 전기를 만들었으며 이 부흥으로 말미암아 많은 교단들이 탄생했습니다. 더불어 부흥이 실제적으로 일어나는 과정 속에서 다양한 표현과 상황화가 이루어졌다는 점입니다.

• 초대교회의 부흥
• 중세 시대의 부흥
• 부흥운동으로서의 종교개혁
• 유럽의 부흥운동
• 미국의 부흥운동
• 20세기의 부흥운동
• 캠퍼스 부흥운동
• 1970년 에즈베리 대학 부흥
• 2023년 에즈베리 부흥

부흥의 정의

웨일즈의 저명한 부흥에 관한 교회사가인 에드윈 오르 (Edwin Orr)는 말하기를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하심을 말하고 반복해서 다시 말할 때마다 신실한 중보 기도자들의 기대와 또 다른 부흥을 준비하는 일에 재각성 해주는 전례가 있음을 교회사는 보여 주고 있다.” 라고 했습니다. 다시 말하면 예전에 일어난 부흥을 말해 줄 때마다 지금 현재에도 동일한 부흥이 일어난다는 뜻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성경이 말하는 부흥과 더불어 역사상 일어난 부흥을 알 필요가 있습니다. 부흥은 복음주의적 각성과 어느 정도 상관관계를 갖는데 이전의 종교적 비활동 상태에 있는 회심하지 않은 비신자가 신앙의 생명으로, 그의 신앙고백과 회개로 이어짐을 의미합니다.

에드윈 오르는 복음주의적 각성과 부흥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정의하였습니다.

1. 신적 영감, 성경의 권위와 충분성 그리고 해석에 관한 개인의 심판의 권리와 의무.
2. 3위 일체의 인격성 안에서 성부의 부성의 통일성
3. 타락을 불러 일으키는 인간 본성의 전적 타락
4. 성자의 성육신과 죄인을 위한 그의 속죄 사역과 그의 중보 기도와 다스림
5. 오직 믿음에 의한 죄인의 칭의
6. 죄인의 회심과 성화에 있어서의 성령의 사역
7. 예수 그리스도의 몸의 부활과 세상을 심판하심, 의인들의 영원한 축복, 사악한 자들의 영원한 심판.

스티브(Mark Stibbe)에 의하면, “부흥의 목적은 교회가 하나님의 나라를 위한 열정을 잃어 버린 어떤 시점과 장소에서 죄인의 구원하기 위함이다”라고 말했습니다. 던컨 캄벨(Duncan Kampbell)은 “교회는 복음전도적이지 않고도 자주 복음주의적이다! (The Church has been often been evangelical without being evangelistic!)”라고 말합니다. 그러한 이유로 하나님께서 그의 성령을 보내셔서 잃은 자를 전도하기 위해 교회를 깨우시고,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긴박하게 필요로 하는 잃은 자를 구하기 위함이 부흥의 본질입니다. 현상적으로 나타나는 놀라운 역사도 있겠지만 부흥의 본질적 의미는 죄인을 회개케 하고 돌이켜서 하나님의 사람으로 만들어서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이루는 것입니다.

부흥이라는 말이 처음 등장한 것도 청교도에 의해서 였습니다. 신대륙은 근대부흥운동의 요람지였습니다. 1662년 헨리 베인(Henry Vane)이 <미국에서의 그리스도의 위대한 사역>(The Great Work of Christ in America, Magnalia Christi Americana)이라는 책에서 “그리스도에 의한 급하고 비상한 부흥”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였고, 이것을 청교도인 카튼 마터( Cotten Marther, 1663-1728)가 인용하면서 널리 소개되었습니다. 그러다가 조나단 에드워드(Jonathan Edwards)가 그의 저서 “겸손한 시도(An humble attempt to promote explicit agreement and visible union of God’s people in extraordinary prayer for the revival of religion, 1747)”에서 부흥을 성령의 “흘러 들어옴”(effusion) 또는 부어 주심(outpouring)등의 의미로 사용하면서 18세기에 대중화되기 시작하였습니다.

세계 교회사에서 일어난 사건들을 통해 점검해 보는 부흥의 의미

세계교회사에 나타난 부흥의 역사를 고찰하기 전 먼저 부흥이 무엇인가를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부흥이 무엇인가에 대해 다양한 사람들이 여러 방면으로 부흥을 정의하고 있지만 아마도 가장 선명하고 훌륭한 정의는 세계적인 청교도 개혁신학자 거두 제임스 패커(James I. Packer) 박사의 부흥에 대한 정의일 것입니다. 그의 책 “성령과의 동행”(Keep in Steps with the Spirit)에서“ 부흥은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교회를 소생시키는 일”이며,“하나님의 진노를 하나님의 교회에서 멀리 옮기시는 것”이며,“하나님께서 자기 백성들의 마음에 찾아오시는 일”이며 그리고“하나님께서 자신의 은혜의 주권을 드러내심”이라고 정의하였습니다.

패커 박사는 부흥의 주체가 하나님이심을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성령께서 임하시면 자신의 온갖 죄악을 토로하는 개인 및 공동체적 영적각성이 강하게 일어나고, 그 후 사회 및 문화적 변혁이 이어져 교회가 사회와 민족을 선도하는 구심점으로 거듭나게 됩니다. 이것이 참된 부흥이며, 그 전형적인 모형은 사도행전에서 읽을 수 있습니다. 사도행전에는 성령의 비상한 역사, 베드로의 설교를 통한 말씀의 깨달음과 죄에 대한 철저한 회개 그리고 은혜를 받은 공동체의 변화가 그 특징을 이루고 있습니다. 그 후에 복음이 놀랍게 전파되고 교회가 흥왕(興旺)하는 역사가 나타난 것입니다. 세계적인 신약학자 부르스( F. F. Bruce)가 표현한 것처럼 오순절 예루살렘에서 시작된 복음은 불꽃처럼 로마 제국 전역에 확산되었을 뿐 아니라 유럽 복음화에 기여했다고 했습니다. 기독교의 근간이 바로 성령님께서 부어 주신 부흥의 역사에 기인한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부흥을 뜻하는 “Revival”은 보통 침체되어 있는 삶과 신앙을 회복한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조셉 켐프(Joseph W. Kemp)는 “엄밀히 말해서 부흥이란 이미 존재하고 있기는 하지만 침체된 상태에 있는 것에 다시금 새로운 활력을 불어 넣는 것을 뜻한다”고 정의하였습니다.

기독교에서 부흥이라고 할 때, 영적으로 침체되어 있는 신앙의 상태를 회복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윌리엄 스프레그는 “종교가 비교적 침체된 상태를 벗어나 활력을 되찾아 갈 때, 헌신적인 그리스도인들이 자신의 의무에 더욱 충실해질 때, 그리고 교회가 새로운 경건성으로 능력을 더해 갈 때 우리는 그것을 주저하지 않고‘부흥’이라 불러도 무방할 것이다”고 말했습니다. 침체된 상태에서의 회복을 부흥과 연관시키려는 노력은 찰스 피니에게도 그대로 찾을 수 있습니다.

19세기 미국부흥운동의 주역 찰스 피니는 그의 유명한 저서, <부흥론>(Lectures on Revival)에서 “부흥은 하나님을 향한 죄인들의 각성과 회심을 낳는 그리스도인의 첫 사랑의 회복이다”고 정의하였습니다. 피니에게 “부흥이란 하나님께 대한 순종을 새로이 시작하는 것에 불과합니다. 회심한 죄인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그 첫 단계는 마음을 찢고 깊이 회개하는 것이며, 이어서 겸손한 자세로 하나님 앞에 흙으로 돌아감으로써 죄를 용서받는 것입니다.” 죄에 대한 회개를 통한 영적인 신앙의 회복을 부흥이라고 할 때 다음 네 가지 사실을 전제합니다. 후에도 언급하겠지만 본질적 의미에서의 부흥에 대한 피니의 정의는 놀라운 것이지만 인위적 부흥에 대한 노력은 두고 두고 미국 교회사가들에게는 논쟁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부흥은 일차적으로 신자의 부흥이라는 사실입니다. 부흥이 회개와 깊은 연계성을 지니는 것은 새로운 신자보다는 이미 믿는 신자들에게 일차적으로 그것이 적용됨을 함의 합니다. 모건(G. J. Morgan)이 “엄밀히 말해서 부흥이란 거듭나지 않은 사람들의 삶이 아니라 성령의 내주하심을 통해 신자들의 삶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 넣는 것”이라고 말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교회가 부흥을 경험하기 위해서는 항상 기성 신자들의 영적각성이 선행되어야 합니다. 1905년 복음주의연합공의회가 결성된 후 장로교 감리교 선교사들이 새로운 신자의 영입보다 기성신자의 각성이 먼저 선행되어져야 한다고 본 것은 정확한 진단이었음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둘째, 교회에서 하는 어떤 집회나 교회의 성장이 부흥의 수단이나 결과일 수 있지만 부흥과 동일시할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성경과 기독교 역사가 보여주는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성장이 부흥의 결과이기는 하지만 결코 성장이 부흥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다는 사실입니다. 부흥은 교회가 성장하거나 사람들이 교회로 몰려드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물론 부흥이 일어나 사람들이 영적인 깊은 잠에서 깨어나면 전도가 활성화되고 교회가 성장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부흥운동이 일어나지 않아도 교회가 성장할 수 있기 때문에 교회성장을 부흥과 동일시해서는 안 됩니다. 또한 일각에서 부흥회나 전도집회를 부흥과 동일한 의미로 사용하는 것은 부흥에 대한 바른 이해가 아닙니다. 로이드 존스의 말대로 그것은 부흥이 아니며 “어떤 의미에서 그것만큼 부흥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것”은 없다는 점에 우리는 주의해야 합니다.

셋째 영적상태에서의 회복은 성령의 역사를 통해서 가능하다는 사실입니다. 이안 머레이가 지적한 것처럼 부흥은 “성령의 인격 및 사역”과 깊은 관련을 맺고 있습니다. 부흥은 “성령의 역사요, 인간의 마음과 생각과 의지에 성령께서 직접 역사하셔서 조명하고 새롭게 하시는 역사입니다.” 로이드 존스 역시 부흥은 ‘지존하신 분으로부터 찾아오는 것’이요 성령의 부으심”이라고 정의했습니다.

부흥이 성령의 역사라는 사실은 우리에게 부흥에 대해 어떤 자세로 접근해야 할 것인지를 가르쳐 줍니다. 부흥 운동을 단순히 머리나 학적으로만 연구하는 것은 부흥운동의 본질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로이드 존스는 이렇게 말합니다.

“여러분이 부흥을 일으킬 수는 없습니다. 전적으로 하나님께 달려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 기도하고 간청하고 탄원하고 간구하는 것입니다.”

부흥운동을 얼마든지 사람들이 만들어 낼 수 있는 산물이라고 이해한 적도 있고 현재도 부흥사들이 이런 부흥을 가져올 수 있는 것으로 이해하는 경향도 많은 것이 사실입니다. 물론 하나님께서는 때로는 부흥의 역사를 가져오시기 위해 그들을 도구로 사용하시기도 합니다. 그러나 부흥사들의 부흥회를 통해 부흥의 역사를 가져오는 것은 여전히 그 부흥이 어떠한 신적인 기원을 갖고 있기 때문이며, 부흥사는 단순히 도구로써 쓰임 받았을 뿐입니다.

부흥이 신적 기원을 갖고 있다는 것은 부흥이 하나님의 주권적인 사역이라는 사실을 함축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부흥의 역사를 실제로 경험한 패튼( W. W. Patton)은 “종교적 부흥”에서 부흥은 “성령의 섭리 가운데 어느 한 장소에서 특별한 능력이 임하고 성령의 영광이 드러나는 것”이라고 정의했습니다.

넷째 부흥이 성령의 역사라는 사실은 그것이 인간의 작품이 아니라는 사실을 전제합니다. 부흥은 성령께서 당신의 백성에게 베푸시는 주권적인 선물입니다. 부흥은 오직 하나님의 주권적인 은총의 역사입니다. 그것은 아더 윌리스(Arthur Willis)가 적절하게 표현한대로 죄인을 향한 거룩하신 하나님의 주권적인 개입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참고할 수 있는 부흥에 관한 저술들은 부흥이란 영적인 상태의 정상적인 흐름에 대한 신적인 개입을 의미한다는 것을 확인시켜 준다. 하나님께서는 두려움을 불러일으키시는 거룩함과 불가항력적인 능력으로 자신의 모습을 인간에게 드러내 보여주신다. 그와 같은 역사 앞에서 인간은 볼품없는 존재가 되고, 그가 세운 모든 계획은 쓸모없는 것이 되어 버리고 만다. 하나님께서 무대에 등장하실 때, 인간은 뒷전으로 물러날 수밖에 없다. 자신의 거룩한 손을 펴 보이시는 분도 주님이시고, 성자와 죄인을 특별한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분도 주님이시다.”

조오프리 킹(Geofrey R. King)이 말한 것처럼 부흥이란 특별한 능력으로 개입하시는 교회에 대한 하나님의 주권적인 역사입니다. 스티븐 올포드(Stephen Olford)의 말을 빌린다면 “부흥은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들을 찾아오시어 새로운 활력을 불어 넣어 주심으로써 충만한 은총을 받게 해주시는, 기이하고도 주권적인 역사로 이해될 수 있습니다.” 부흥이 주권적인 성령의 역사라는 말이 인간의 책임을 간과하거나 무시한다는 의미는 결코 아니라는 것입니다.

중세 시대의 부흥과 종교개혁

중세 시대의 부흥이 종교 개혁의 토대를 마련하였고 교황청의 타락과 천주교회의 압제와 핍박 가운데서도 성경과 그리스도 예수의 복음만을 지킨 신앙의 사람들을 볼 수 있습니다. 감사하게도 저는 왈도파를 비롯해 실제적으로 유럽 각지에서 일어났던 중세 시대 부흥의 현장들을 대부분 방문 답사하여 조사할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방대한 저의 연구 조사가 책으로 편집되기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부흥이 하나의 뚜렷한 신앙운동으로 교회사에 뿌리를 내리기 시작한 것은 종교개혁입니다. 종교개혁은 신앙을 재발견한 일종의 신앙의 각성운동입니다. 종교개혁자들은 전통이 아닌 성경과 교부들을 연구하면서 하바국이 언급하고, 바울이 재확인하고, 어거스틴을 비롯한 교부들이 확신했던,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받는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 사건은 초대교회 부흥을 회복할 수 있는 신앙적 틀을 제공해 주었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교회사에서는 종교개혁을 부흥운동으로 기술합니다. 천주교회로부터, 타락한 로마 교황청으로부터, 그리고 성인축제일과 수많은 비성경적 교리로부터 성경과 오직 믿음으로 돌아 오는 것이 부흥의 핵심이기에 종교개혁의 Reformation은 부흥으로 간주합니다.

유럽과 미국의 부흥운동

부흥운동이 현대적인 의미로 처음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청교도들에 의해서 였습니다. 청교도들은 인간의 전적 타락을 믿었고 인간의 구원은 성경에 계시된 그리스도를 통하지 않고는 이룩할 수 없다고 확신했습니다. 철저한 회개를 통한 죄 사함은 이들이 강조한 중요한 교리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청교도들은 회개하지 않는 죄인들에게는 무서운 진노의 심판에 대해 여과 없이 담대하게 선포하였습니다. <회심 받지 못한 자에 대한 초청>(A Call to the Unconverted)에서 리차드 백스터는 “악인은 반드시 회개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죽는다는 것은 불변하는 하나님의 법이다.”고 외쳤습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청교도들은 그리스도의 사역에 기초한 성령의 역사에 의한 영적각성의 필요성을 제기했습니다.

청교도운동은 경건주의 운동과 더불어 17세기와 18세기 영적대각성운동을 일으키는 역할을 감당하였습니다. 17세기 영국, 아일랜드, 스코틀랜드, 웨일즈에서 일어난 부흥운동은 18세기에 들어서면서 좀 더 강력한 형태의 영적각성운동의 성격을 띠며 발흥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조지 휘필드와 하월 해리스의 웨일즈 부흥운동, 1734-36, 1740-42년 사이에 발흥한 1차 대각성운동은 이전의 크고 작은 부흥운동이 하나로 엮어져 폭발한 성령의 강력한 역사였습니다.

이 중에서도 부흥운동의 주역이었던 조나단 에드워즈, 길버트 테넨트, 조지 휫필드, 프릴링휘슨 등이 중심이 된 1차 대각성운동은 뉴잉글랜드를 중심으로 해서 강하게 일어난 근대부흥운동의 가장 중요한 모델이었습니다. 1차대각성운동 때 성령의 역사를 잘 정리하여 출판한 조나단 에드워즈의 놀라운 회심의 이야기는 부흥운동의 발단, 진행, 결과들을 너무도 선명하게 전해주고 있습니다. 로이드 존스가 지적한 것처럼 이 시대 부흥운동은 “명백한 성령의 부어주심으로 말미암아”일어난 부흥운동이었습니다.

미국의 1차 대각성운동은 웨슬리 부흥운동의 발흥에 지대한 영향을 미쳐 이후 1790년까지 영국, 웨일즈, 스코틀랜드, 아일랜드, 미국 전역의 영적각성운동으로 계속되었습니다. 1730년 미국의 1차대각성운동부터 웨슬리 부흥운동이 정리되는 1790년까지의 기간은 “넓은 안목으로 보면 부흥의 시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마도 이 시대 발흥한 가장 강력한 부흥운동 가운데 하나는 1745년 웨일즈 부흥운동일 것입니다. 1745년의 부흥운동이 발흥한 후 웨일즈에는 18세기 중엽부터 강력한 부흥운동이 지속적으로 일어났습니다.“능력의 세례”를 받은 하웰 해리스(Howell Harris)와 다니엘 로랜드(Daniel Rowland)에 의해 1735년 웨일즈에서 발흥한 부흥운동은 참으로 큰 부흥이었고, 여러 해 동안 계속되었습니다.

부흥운동 지도자들이 세상을 떠났음에도 불구하고 웨일즈, 스코틀랜드, 아일랜드, 그리고 미국에서는 부흥운동이 계속되었습니다. 미국에서는 1800-1830년까지 2차 대각성운동이 발흥했고, 1858년 북아일랜드에서는 놀라운 부흥운동이 발흥하여 그 이듬해 정점에 달했습니다. 그리고 1858-59년 사이에 스코틀랜드와 웨일즈에서도 놀라운 부흥운동이 일어났습니다.

웨일즈는 부흥운동이 지속적으로 발흥하였던 영적각성운동의 진원지였습니다. 1760년부터 1860년까지의 기간에 웨일즈에서만 열다섯 번의 주요한 부흥이 발흥했습니다. 그 후 디 엘 무디의 부흥운동, 1903~1904년의 웨일즈 부훙운동, 1905~1906년의 인도부흥운동, 1903~1907년 평양대부흥, 그리고 1908년 중국부흥운동이 보여주는 것처럼 기독교 역사 속에서 부흥은 끊임없이 진행되어 왔습니다. 1987년 로이드 존스는 그의 작품 “청교도들(The Puritans)”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분명히 교회의 진행과 발전 역사는 주로 부흥의 역사였고, 성령의 강력하고 예외적인 부으심의 역사이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영광과 능력을 이러한 비범하고 예외적이며 이적적인 방법으로 나타내심으로써, 자신의 일을 지키시고 발전시키셨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역사만으로도 그 사실을 의심할 여지없이 입증할 수 있음을 나는 역설한다.”

1905년 프랭크 버드슬리(Frank G. Beardsley)가 자신의 저서 “미국 부흥의 역사(A History of American Revivals)”에서 언급한 것처럼 어떤 의미에서 “부흥운동의 역사는 교회의 역사이다”라고 말한 것은 가장 적절한 표현일 것입니다.

유럽은 영국, 스코틀랜드, 웨일즈, 북아일랜드, 독일, 프랑스, 네덜란드, 스위스, 이탈리아, 스웨덴, 노르웨이, 덴마크, 오스트리아, 헝가리, 스페인 등 셀 수도 없이 부인할 수 없는 부흥의 역사가 있었습니다. 너무 많아서 이러한 역사를 배우는 학과목이 4과목 또는 8과목으로 다루어도 다 다루지 못할 정도입니다. 이 중에서도 가장 놀라운 것은 오늘날 우리가 말하는 교단이라는 것이 대부분 부흥 운동으로 시작되었거나 아니면 새롭게 되었다는 점입니다. 웨슬리의 감리교회, 퀘이커(지금은 가장 liberal 한 교단으로 바뀜), 유럽 대륙의 재심례파와 침례교회, 모라비안 형제단, 메노나이트, 미국의 Disciple of Christ, 회중교회, 미국 감리교회, 미국 침례교회, 미국 대부분의 흑인교회(미국의 모든 흑인교회는 부흥운동에 뿌리를 두고 있음), Christian & Missionary Alliance, 하나님의 성회, 포스퀘어 복음교단, 웨슬리안 감리교회, 그리스도의 교회(Church of Christ)등 유럽과 미국의 복음주의 교회 중 가장 교단들 대부분이 부흥운동과 깊은 관련을 갖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조금 더 미국 교회만을 따로 떼어 내어서 미국의 부흥운동을 언급해 보고자 합니다.

미국의 부흥운동

영적 대각성 운동(The great awakening)들이 국가에 미친 정치적, 사회적 변화를 종합적으로 평가한다면, 이 시기는 종교의 부흥(revivalism of religion)만 있었던 시기가 아닌 사회 전반을 새롭게 변화시켰던 전체적 재각성(wholistic reawakening)의 기간으로 볼 수 있다는 점에 있습니다. 이점에 있어서 브라운대학의 역사학자로 있었던 맥로플린(McLoughlin) 교수가 강조한 것과도 일맥상통합니다. 그는 “대각성기간은 비록 문화적 혼돈(cultural confusion)은 있었다 할지라도, 사회적 신경증세(neurosis)를 앓는 기간은 아니었고 오히려 [전 국가적 그리고 전 사회적] 소생(revitalization) 의 기간들이었다. 이 시기들은 병리(pathological)적이지는 않았지만, 치료(therapeutic)적이며, 정화(cathartic)해 주는 시기” 라고 하였습니다. 미국 기독교 이상 (Christian Idea)과 순수한 형식의 단서를 제공했던 초기의 청교도 정신은 18세기 들어 와서는 급격히 쇠퇴한 것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그것이 도리어 종교적 절망 가운데 있을 때, 또 다른 부흥을 갈망케 하는 대조적 현상을 제공했다는 점입니다. 1740년대에 일어났던 제1차 대각성 부흥운동은 영국으로부터 독립하려는 미국인들의 마음을 하나로 통일시키려는 연합 정신을 점화했을 뿐 아니라, 어떤 종교적 또는 정치적 독재나 강압으로부터 벗어나 종교와 양심 그리고 정치적 자유를 갈구하되, ‘그리스도 안에서만 하나님이 주신 자유’를 얻을 수 있다는 점을 각성(깨닫게, awakening)케 했다는 점입니다. 이점에서 대각성운동과 독립운동은 동시에 미국 역사상 가장 중요한 사건으로 인정된 것입니다. 마크 놀(Mark Noll) 교수도 이점에 있어서 말하기를, “독립운동은 새로운 국가를 세우는데 있어서 미합중국을 기독교 이상(Christian Idea)안에서 건국하게 하는 중요한 계기를 제공해 주었다”고 하였습니다. 이러한 점에서 1976년 미국 건국 200주년 기념식에 발표된 성명은 얼마나 미국의 건국이 기독교 신앙과 대각성 운동의 여파로 세워졌는지를 여실히 보여 주는 단적인 예라 하겠습니다.

영국 식민지하에 있던 미국인들이 그들의 물질적 관심으로부터 돌아서서, [대각성 운동 기간중 보여준] 기도 가운데 하나님만을 추구하였을 때, 하나님께서 그들을 치료(Healing)하셨을 뿐 아니라 그들을 통해 새로운 강성한 나라 미합중국을 탄생하도록 사용하셨다는 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훈련과 연단을 받은 사람들을 사용하셔서, 미국 국민이 회개(Repenting)케 하시고 이를 통해 다가오는 독립전쟁의 시련을 준비하도록 사용하셨다는 점입니다. 한 일례로, 티콘데로가 요새(Fort Ticonderoga) 를 점령했을 때, 이튼 앨런 (Ethan Allen) 연대장이 “전능하신 하나님과 미국 대륙 의회의 이름으로” 표어를 선언하며 전쟁에 참여한 것에서 극명하게 드러납니다.

미국 국민을 치료하시고 오직 신앙안에서 전국민을 묶어 주었던 청교도 정신이 새로운 형태로 분명히 대각성운동 이후에 일어난 것을 천명한 것입니다. 이제 이튼 앨런(Ethan Allen)의 선언 이후 이제 미국은 한 문장을 더 첨가 했는데, 그 문구는 “하나님 아래서 (Under God)” 라는 말로 미국 의회 개회 선언, 대통령 취임식, 대법원장 취임식 중요한 전반 행사때마다 선서 되고 있습니다. 독립전쟁 이전에 있었던 회개와 치료의 사건들은 오늘의 미국을 있게 한 놀라운 사건임에는 분명합니다. 이점에서 20세기가 오기전 일어난 세번의 대각성운동과 미국 전 역사의 관계에 관하여 고찰 해 본다면, 대각성운동은 아주 큰 규모의 혁명, 국가 팽창, 민권 투쟁, 이민과 산업화로 개인과 공동체 개체에게, 그리고 뉴 잉글랜드 공동체에 만연된 사회적 타락을 치료(Healing)해 주었고 이로 인해 영적 치료와 부흥을 갈망할 토대를 제공해 주었다는 점입니다. 이를 사회학적 관점에서 본다면, 대각성 부흥운동의 사회적 효과와 영향으로 뉴 잉글랜드의 사회, 공동체, 국가와 정치를 하나로 묶을 수 있었던 청교도 정신은 제2선으로 물러나는 대신 이제는 대각성 운동의 정신과 영향이 좀더 광범위하게 확장되는 사회 현상이 되었다는 점입니다. 대각성운동을 주도했던 부흥사들은 청교도 신학과 사상을 대체할 의도는 전혀 없었으나, 청교도 정신과 사회적 틀 속에 살던 많은 신자들에게 영적 소생을 통해 실제적 삶의 변화를 주도하도록 발판을 제공하였고, 부흥사 자신들도 그러한 변화를 겪게 되었다는 점입니다. 청교도 정신이 쇠퇴해 짐에 따라, 대각성운동의 정신이 회중교회, 개혁교회, 장로교회 신자들의 삶을 새롭게 정화시켰으며, 맥로플린(McLoughlin) 교수도 지적한 바와 같이, 이 정신은 후에 심지어 침례교도, 감리교도, 캄벨교도(Campbellites), 그리스도의 제자(Disciple of Christ) 교회 신자들과 진보적 그리고 자유주의적 개신교도들 에게까지도 미국 기독교 전반에 걸쳐서 종합적으로 그리고 전진적으로 소생케 하는 영향을 끼쳤다는 점입니다.

우리가 미국을 이야기 할 때 빼 놓을 수 없는 것이 신대륙 미국으로 이주해 온 사람들이 종교적 박해를 피해 온 사람들이었다는 점입니다. 그들은 영국에서 그리고 유럽 대륙에서 차별받고 핍박 받으며 심지어 재산과 삶의 근거지조차 몰수 당해야 했던 수많은 비국교도들(Nonconformists)로서, 퀘이커교도, 침례교도, 회중교인, 모라비안들, 위그노 교도들, 메노나이트 교도들과 청교도들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들 모든 비국교도의 중심에는 광범위하게 회중 교회를 중심으로 한 청교도 정신이 있었습니다. 18세기 초반부터 중반까지의 거의 50년동안, 이러한 청교도 정신이 희미해지기 시작하여 그들의 신앙이 회의주의와 냉소주의에 빠질 때 제1차 대각성운동이 일어남으로 죽어가고 다시 냉담해지는 기독교 신앙을 새롭게 해 주었던 것입니다. 조지 휫필드(George Whitefield)와 조나단 에드워즈(Jonathan Edwards)는 여러번의 집회를 통해 대중 개개인의 회심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도록 인도하였음은 주지의 사실입니다. 그들의 사역은 뉴 잉글랜드와 뉴욕 그리고 남북 캐롤라이나 주들을 엮는 동부 해안선 (Eastern Seaboard)지역의 회중교인, 장로교인과 대부분의 다른 교파의 사람들에게 새롭게 각인된 청교도 정신 즉 부흥운동의 필요성을 전파했다는 점입니다. 새롭게 시작된 교파인 감리교회조차도 대각성운동을 통해 남부 지역에 개척되어 큰 규모로 정착하게 되었습니다. 괄목할 만한 성장에 성장을 거듭한 침례교회는 대각성운동의 발흥과 촉진이 없었다면 침례교회사 자체를 기술하는 것이 불가능한 것은 너무나 자명합니다. 하나의 종교 운동으로 끝나지 않고 사회 전반과 국가의 기초를 세우는데 크나큰 공헌을 한 대각성운동은 거의 모든 면에서 그 영향과 효과를 미치고 있습니다.

제1차 대각성운동은 미합중국 다시 말하면 미공화국을 탄생하는데 주도적 역할을 담당했으며, 연방을 단결하도록 하였고, 잭슨파(Jacksonian)가 참여하는 민주정치의 발흥에 큰 기여를 했다는 점입니다. 이러한 사실은 미국 정치에 있어서 지금의 형태인 민주당, 공화당의 양당 체제 아래 기독교 정신에 기반한 민주 정치를 실현함으로 기독교와 민주주의는 미국을 떠받치고 있는2개의 기둥(two pillars)으로서, 후에는 미국이 세계에 가장 전파하고자 했던 것이 되었으며, 미국민들이 가장 자부심과 세계 평화에 공헌한 것으로 생각하기에 충분한 것이 된 것입니다. 이에 대하여, 제2차 대각성운동은 처음에는 1790년대에는 조나단 에드워즈의 손자인 티모티 드와이트(Timothy Dwight: 1752-1817)가 예일대에 시작하여 뉴 잉글랜드 전역으로 일어난 것을 시발점으로, 광범위한 캔터키와 테네시(Kentucky and Tennessee)를 비롯한 서부개척지역에 캠프 모임(camp meetings)으로 큰 영향을 끼쳤고 남부에서는 프랜시스 애즈베리(Francis Asbury)를 비롯한 많은 순회 설교자들을 통해 일어났다는 점입니다. 물론 이중에서도 가장 극적인 부흥운동의 폭발은 1801년 모두 깡마른 체구를 가진 제임스 맥그레이디(James McGready (1758?-1817)와 바톤 스톤(Barton W. Stone (1772-1844)이 주도하고 조직한 캠프 모임으로 처음에는 서부개척지인 캔터기(the frontier of Kentucky)의 개스퍼 강변(Gasper River)에서 그 다음에는 같은 주의 케인 리지(Cane Ridge)에서 일어났습니다. 독립전쟁이후 일어난 이 부흥운동은 전 서부지역 뿐 아니라 당시 미국의 광범위한 지역으로 확대되어 일어 나게 된 점입니다. 자칫 무법 천지가 될 수도 있는 서부개척지에는 밤새도록 울려 퍼지는 찬송과 회개, 그리고 개개인의 회심으로 새롭게 개척되는 또 다른 서부 지역에 그 사회와 문화를 대각성운동을 기초로 한 기독교 신앙안에서 마을과 사회 그리고 수 많은 교육 기관들이 세워져서 다음 세기를 준비하는 새로운 미국을 준비케 한 것입니다.

대각성운동은 비단 백인 교회에만 일어난 것은 아니라 흑인들에게도 일어난 것입니다. 미국 남부 지역을 휩쓴 또 다른 차원의 부흥운동은 천대받고, 강압과 차별 속에 살아 가는 흑인 노예들에게 삶의 희망을 주는 유일한 통로가 되었고, 종국에는 역사상 전례가 없는 흑인 교회 부흥과 성장을 이룩하였습니다. 특히 미국 감리교회의 기초를 세우는 데 없어서는 안될 중요한 인물인 프랜시스 에즈베리는 제대로 교육받지 못한 흑인 백인 모든 설교자를 유치해서 오직 부흥과 영적대각성을 가져 오게 하였습니다. “남북전쟁 전후를 통해 일어난 모든 영구적 변화에는 어떤 사회의 영역이든 대각성운동이 미치지 않은 곳은 없을 정도이다.”라고 피시윜크(Fishwick)는 단언한 것은 결코 과장의 말이 아닌 것입니다.

앞에서 잠시 언급한 바와 같이 부흥운동을 직접적으로 조직하고 지도자를 육성하고 가르쳐서 부흥의 불길을 확산시켰던 찰스 피니(Charles Finney)는 구체적이고도 체계적으로 부흥운동을 일으킨 핵심 인물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는 서부 개척시대에 일어난 부흥운동의 특징 중 하나인 농촌 중심에서 이제는 도시 중심으로 대각성운동을 주도했다는 점입니다. 그 다음 인물인 무디(D. L. Moody)는 새로운 미국 도시 환경에 강력하고도 실험적인 기독교가 시작되도록 한 인물인데 그로 말미암아 성결운동(Holiness movement)이 구체적으로 열매를 맺게 된 점입니다. 따라서 재각성(Reawakened)된 도시 노동자와 시민들은 성숙해졌고 그들은 새로운 사회의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하는 능력을 배양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바로 이점이 미국이 세계 무대에 비로서 등장하여 산업사회와 민주정치를 기독교 신앙안에서 세워 나갈 수 있었던 실제적 계기가 되었다는 점에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맥로플린 교수는 이점에 있어서 지적하기를 “우리의 제3차 대각성운동은 불공정한 자본주의의 착취를 거부하게 했으며, [재각성된 그리스도인들이 모두다 동등하게 누릴 수 있는] 복지국가의 출현으로 인도하였으며, 제4차 대각성 운동[20세기 중반]은 인간의 불공정한 착취를 거부하게 하도록 방향을 제공해 주었고, 긍극적으로 인간 뿐 아니라 지역적, 국제적 자연보존과 세계자원의 선택적 유용을 모두가 협력하는 발판을 마련하였다.”라고 지적하였습니다. 여기에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제3차 대각성운동(역사적으로 논란이 일고 있지만 이는 전적으로 맥로플린 교수의 개인적 견해로 제3차 대각성 운동을 남북 전쟁 전에 일어난 기도 부흥을 말함)이 비개신교국가들인 아일랜드, 이태리, 그리고 남부 유럽과 동부 유럽의 이민자들이 대량 유입하는 기간 중에 일어났다는 점입니다. 다시 말해서 정교도(Orthodox)와 천주교(Catholic)도 중심으로 이루어진 이민자들에게도 새로운 복음의 기회를 들을 수 있게 되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며, 이들 비개신교 이민자들의 실제적 회심과 큰 은사주의 운동은 1950년대와 60년대에 이르러 매우 큰 규모로 일어나게 되며, 이를 들어 맥로울린은 제4차대각성운동으로 명명한 것입니다. 물론 역사상 대각성 운동은 제1차 그리고 2차 대각성 운동만이 인정되고 나머지는 부흥운동으로 기술되고 있음에 유의해야 합니다.

영미 부흥운동의 열매

부흥운동 이후의 19세기 영국에서는 선교기관들의 설립이 줄을 이었던 것처럼, 미국의 많은 선교단체들도 기본적으로 대각성운동의 여파로 인해 많은 해외 선교부가 설립된 것입니다. 결국에는 1890년부터 20세기초까지, 미국 교회의 선교 열정과 참여로 인해 매우 큰 차원에서 세계 각지에 개신교회가 새워졌고 결국 세계 교회의 확장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게 된 점입니다. 따라서 미국 기독교는 국내외적으로, 해외 선교 운동 단체들, 주일학교, YMCA나 YWCA와 같은 선교자원단체, 성서공회와 구제 단체들이 국내외 선교의 매개체 역할을 감당하였습니다. 마스덴이 지적한 바와 같이 대부분의 초교파 선교단체들은 다른 교파나 교단들과 협력을 통해 세계대전이 끝나는 시점까지 영적 동력을 구축하는데 주도적인 역할을 감내한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 일례로 영혼 구원을 향한 무디의 선교 열정이 극적으로 그의 세대에 해외 선교에 크게 동참하게 한 점입니다.

무디 자신도 이를 직접 설파하였던 것에서 그 일을 추진할 선교 센터 및 교육 기관들을 건립하였습니다. 1886년 시카고에, 그는 신학교 (후에 무디 신학교로 개칭, Moody Bible Institute)를 세워서 복음 사역을 위해 평신도를 훈련하였습니다. 이 시기에 더욱 중요한 일은 그의 고향이 있는 메사추세주의 노스필드에서 선교대회를 개최한 점입니다. 이 선교대회가 성장하여 당시에 가장 큰 규모의 선교 운동으로 1886년 설립된 학생자원운동 (Student Volunteer Movement)이 되었고 이 운동은 말 그대로 위대한 19세기를 장식하는 선교의 시대를 연 서사극이 되었습니다. 이 기간 동안에 수천명의 학생들이 자신들을 선교사역에 헌신할 것을 서원하였습니다. 학생자원운동의 모토는 무디 자신의 목표 안에 잘 나타는데, 그것은 “우리 시대에 온 세계 복음화를 (The evangelization of the world in this generation)!”를 이루는 것이었다. 이때 SVM을 통해 조선 땅에 온 선교사들이 600명이 넘었으며 이들이 원산 대부흥과 평양 대 부흥운동의 배후의 인물들이었으며 한국 기독교의 가장 중요한 기초를 세운 분들 이었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나라에는 무디 때부터 도입된 부흥 사경회, 동기와 하기 수련회가 지금까지 내려 오고 있는 것입니다.

대각성운동의 결과로, 미국에서도 영국의 경우처럼 복음주의가 형성되어서 교육 기관들을 설립하고 신학교와 대학의 신학부들에도 영향력을 미치게 되었습니다. 더 나아가서, 새롭게 시작된 대학들이 선교사와 후원자들을 공급하게 된 것입니다. 스미스 (George Smith)도 이 기간 동안에 이루어진 미국 복음주의자들의 공헌을 강조하기를, “복음주의 개신교는 많은 수의 교회에 다니지 않았던 미국인들을 복음주의 개신교 진영으로 회심케 했던 조나단 에드워즈로부터 찰스 피니이 이르기까지 일어났던 성공적인 부흥과 각성운동이 일으킨 대 물결의 혜택속에 만들어졌다.” 라고 하였습니다. 종합적으로 말하면, 영적대각성운동의 결과의 영역은 새로 나온 사람들을 신실한 성도로 만드는 일 뿐 아니라 죽어가는 교회들을 복음전도와 갱신된 예배를 통해 교회를 살리는 역할을 했다는 점입니다. 마크 놀(Mark Noll)과 그의 동료들도 지적한 바와 같이 대각성운동은 미국의 식민지 문화 전반에 영향을 끼쳤을 뿐 아니라 공적 연설의 새로운 모범을 보여 주었고 공적 행동의 새로운 동기와 새로운 관심을 일으켜 준 것입니다.

세계의 부흥운동

1907년 한국 평양 장대현 교회 부흥운동은 한국교회를 만드는 기초가 되었고 이 때 시작된 새벽기도는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습니다. 이처럼 한번 시작된 부흥운동은 그 나라의 역사 속에 아직도 이어오고 있습니다. 평양 장대현 교회 부흥운동이 시작되던 1900년부터 1910년 까지 전지구적으로 부흥이 일어나서 기독교 세력이 매우 미약하던 각 나라의 복음화를 촉발 시켜 지금의 교회 부흥과 기독교 성장의 역사를 이루었습니다.

남아프리카
동북부 인도와 남인도
스리랑카
미안마
인도네시아
중국
한국
칠레
아르헨티나
우루과이
브라질
사모아 및 남태평양 제도
필리핀
말레이시아
이란
과테말라
엘살바도르
멕시코
베네수엘라
쿠바
콜롬비아
오스트레일리아
일본
등등

위의 나라 가운데 평양 장대현 교회의 부흥 보다 앞서서 일본에도 무려 세차례에 걸쳐서 부흥이 있었습니다. 각 나라의 교회사에는 위에 제가 언급한 부흥이 자세히 언급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일본처럼 부흥이 확산되지 못하고 부흥이 꺼져 버려 교회 부흥과 기독교 성장으로 이어지지 못한 나라들도 있습니다.

20세기의 부흥

20세기에는 환태평양으로 그 무게 축을 옮긴 지가 오래됩니다. 더이상 새로운 교파나 교회가 출현하지 않은 유럽과는 달리 북미는 구주류교단 즉 회중교회, 성공회, 루터교와 개혁 교회등은 역사의 무대에서 소수 교파로 물러나고 부흥운동과 대각성운동을 통한 새로운 교단들이 급격하게 출현한 점입니다. 성결운동(Holiness Movement)을 하는 교단들, 서부개척지의 부흥운동으로 일어난 제자교회(Disciple of Christ), 그리고 20세기에 불처럼 일어난 오순절교단들로 하나님의 성회(Assemblies of God), 하나님의 교회(Church of God), 그리스도의 교회(Church of Christ), Foursquare Church등이 그 주요한 일례들입니다. 하지만 부흥운동의 여파로 가장 크게 성장한 교단은 역시 침례교회와 감리교회입니다. 그 이유 가운데 하나는 대중적 형태와 문화와 함께 효과적인 지도력으로 이 두교단은 가장 효과적인 적용으로 가장 빠르게 성장하였습니다. 이 점은 신생교단의 놀라운 성장의 이면에는 언제나 대중 종교의 공헌이 있었다고 헴톤(Hempton)은 지적합니다.

20세기 초엽부터 시작된 부흥은 제1차 세계대전, 제2차 세계 대전을 거치면서 새롭게 일어납니다. 부흥이라는 단어가 다시금 살리는 것이기도 하기에 2차 세계 대전 이후에는 이러한 부흥이 다양한 모습으로 일어납니다. 기존 교단을 새롭게 하거나, 새로운 선교 운동으로 일어 나거나, 교회 갱신 운동으로 구공산권의 정교회, 이집트 곱틱 정교회, 심지어는 천주교회 안에서도 강력하게 일어납니다. 이를 Basic Community Movement 라고 하기도 합니다. 남미의 천주교회에 안에서 해방신학이 일어났지만 그들은 이 근거를 성경을 읽는 운동으로 시작하였고 그들의 의도와는 정반대로 성경을 읽다가 도리어 천주교회를 나오는 남미 부흥운동이 바로 성경읽기(base community에서 시작된)인 것이 역설이기도 합니다. 20세기의 부흥 중 가장 놀라운 것은 나이지리아, 가나, 잠비아, 콩고 공화국과 같은 곳에서 일어나 서아프리카 부흥, 케냐, 우간단, 브룬디, 르완다, 탄자니아를 중심으로 일어난 동아프리카 부흥입니다. 이 부흥으로 인해 아프리카의 종교 지형이 바뀐 것입니다. 인도네시아 정글에서 일어난 부흥으로 오늘날의 인도네시아 개신교회의 놀라운 성장의 배경이 되었습니다. 이 부흥의 불길이 말레이시아, 싱가폴까지 번짐으로 무슬림 다수 가운데서도 기독교의 성장을 이룰 수 있었습니다. 문화혁명 가운데 일어났던 부흥의 배경에는 이미 중국 공산화 이전에 일어났던 산동성 부흥이 있었으며 이 산동성 부흥은 평양 장대현 교회 부흥과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지금의 기독교 지형의 형성은 대부분 부흥운동과 매우 깊은 역사적 상호관계를 갖고 있습니다. 또한 1970년 2월 8일에 시작된 에즈베리 부흥운동은 캠퍼스로 번저 나갔고 그것이 70년대 히피들을 전도하여 일어난 각 대학교 부흥인 Jesus Movement 입니다.

캠퍼스 부흥의 중요성

세계 부흥운동 연구에 있어서 가장 깊고도 넓은 연구 결과를 성취한 영국 웨일즈 출신의 학자 에드원 오르 (Edwin Orr)에 따르면, 미국의 제 3차 대각성 부흥운동 기간에 600개의 대학들이 신실한 기독교 지도자들을 배출하기 위해 설립되었다고 합니다. 의심의 여지 없이 19세기의 그리스도 앞으로 돌아 온 이들 젊은이들은 해외로 가서 타문화와 타인종 그리고 다른 언어권에 있는 사람들의 복음화를 위해 해외 선교사로 나간 것입니다. 학생 부흥운동과 세계선교운동으로 이어지는 제3차 대각성 부흥운동을 살펴보려면, 바로 이전인 제2차 대각성 부흥운동의 공헌과 그 결과를 살펴 보아야 하는데, 이는 제 2차 대각성운동의 중요한 기점이 되는1802년으로 이 시기는 광범위한 위치를 점유하게 되는데 그 이유는 “프랑스 계몽주의의 영향아래 지배됐거나 또는 한때 불신앙에 지배되었던 학생들 3분의 1이 주께로 회심” 했기 때문이라는 점이라고 리이스(Riis)는 강조하였습니다. 이는 유럽 대부분의 대학들이 합리주의와 자유주의 강력한 영향 하래 세속화되면서 대학에서부터 신앙을 떠나게 되는 것과는 분명히 대비되는 부분입니다. 에드윈 오르에 따르면, 이 시기를 중심으로 조금 더 광범위하게 살펴보면, 특별히 1787년부터 1830년 사이에 일어난 캠퍼스 부흥운동은 많은 수의 대학에 강력한 영향을 끼쳤는데, 그 이유는 많은 부흥사들이 직접 기독교 교육을 고양시켰고, 젊은 학생들을 훈련하고 파송하기 위해 또한 하나님의 사역과 선교를 위해 600개 이상의 대학을 설립한 것이라고 확증하였습니다. 이시기에 세워진 수많은 대학들, 그리고 이러한 부흥운동의 중심에 있었던 대학들이 지금의 Ivy League 대학들이며, 이들 대학들은 뉴 잉글랜드에 위치한 대학들이 대부분입니다. 이 시기에 일어난 미국의 해외 선교 운동은 버마와 인도, 아프리카, 중국 선교를 시작하게 하는 계기가 되었고, 에드윈 오르의 언급처럼 캠퍼스 부흥운동의 꽃이 될 수 있는 제3차 대각성 운동의 영향으로 급기야는우리나라에도 선교사들이 오게 된 중요한 계기가 됩니다. 이중에 대표적인 대학이Charles Finney 가 총장으로 사역하며 부흥운동의 진원지가 되었던 Oberlin College 입니다. 물론 지금 우리가 관심을 가지고 있는 에즈베리 대학도 19세말 부흥운동의 여파로 감리교 중심이지만 초교파 대학으로 설립되었습니다.

특히 대각성 부흥운동 이후에도 끊임없이 미국 복음화와 세계 선교를 감당하는 학교들이 설립되었다는 점입니다. 그 중의 한 예로 무디 신학교 (Moody Bible Institute) 로 한때는 미국 해외선교사의 절반을 배출하기도 하였습니다. 이곳 뉴 잉글랜드는 다수세계 기독교 신앙의 선교사들은 물론 그들 나라의 지도자들을 훈련시키고 배출한 요람과 같은 지역으로, 특히 대다수의 선교사들이 하바드, 예일, 엠허스트, 윌리암스, 브라운, 스미스, 다트모스, BU, Andover Theological Seminary(지금의 Andover-Newton Theological School) 등과 그외의 많은 다양한 교육기관들을 통해 수없이 배출되었습니다. 그러나 오늘의 보스톤 지역, 더나아가서 뉴 잉글랜드의 교육 기관들은 세속주의(Secularism), 자유주의 (Liberalism), 동성연애의 확장, 현대주의 (Modernism)와 후기 현대주의(Postmodernism)를 전파하는 안전지대가 되어 버렸습니다. 무엇보다도, 18세기와 19세기의 근대 해외선교와 대각성운동을 주도하였던 뉴 잉글랜드는 이제 기운이 다하여 21세기에 와서는 안락사를 기다리는 모습처럼 보여집니다. 기실 보스톤 시는 더 이상 선교 파송지라기 보다는 피선교지가 되었고, 유럽의 전형적인 비기독교 다수 및 다인종 이민자 다수인 도시들인 Frankfurt, Paris, Amsterdam, London and Birmingham과 같은 비기독교적 세속도시로 변모한 것입니다. 에즈베리 대학의 부흥을 보면서 저는 아이비 리그와 보스톤 지역의 대학에 다시금 부흥이 일어나기를 위해 기도하는 가장 큰 요인이 이미 미국에서는 어려 차례 캠퍼스 부흥을 맛보았고 이것이 세계 복음화에 기여한 해외 선교 운동으로 연결되었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계속되는 부흥

부흥은 각 시대와 상황 그리고 부흥을 주도하는 교회나 지도자에 따라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났습니다. 마틴 루터, 존 칼빈, 조지 팍스, 요한 웨슬레, 진젠도르프 백작, 조나단 에드워즈, 제임스 맥그레이디, 찰스 피니, 제레미아 란피에르, 드와이트 무디, 빌리 선데이, 루벤 토레이, 아터 피어슨, 이반 로버츠 등등 이루 열거할 수 없는 수많은 부흥의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 부흥들이 다 다른 모습으로 나타났고 그 열매와 영향도 매우 다릅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지금 일어나는 부흥에 대한 본질과 양상 그리고 열매에 대하여 두 가지 방법 즉 성경과 역사상 일어난 부흥을 통해 비교해 보고 조심스럽게 평가해 볼 수 있습니다.

의심의 여지없이, 제1차 부흥 운동으로부터, 2차에 이르는 대각성운동 그리고 19세기의 부흥운동에 이르기까지, 대부분의 부흥사들과 순회 전도자들은 복잡하지도 않으면서도 아주 단순한 형태의 설교를 통해 문화 종교의 형태를 유지하는 동시에 미국의 기독교를 강화시키는 이중효과를 가져왔습니다. 심지어는 20세기에 이르러서도, 대중을 대상하는 하는 부흥사들의 대중적 설교 형태는 많은 군중들을 사로잡았는데, 이는 맥로플린이 지적한 바와 같이 그러한 대중 설교를 잘한 사람들은 “빌리 선데이(Billy Sunday), 빌리 그래함(Billy Graham), 오랄 로버츠(Oral Roberts), 케네쓰 코플랜드(Kenneth Copeland), 지미 스웨거트(Jimmy Swaggart), 제리 펠웰(Jerry Falwell), 존 스토트(John Stott)와 마틴 로이드 존스(Martyn Lloyd-Jones)”와 같은 사람들로 이제는 한 지역이 아닌 불특정 다수를 대상하는 대중적 부흥운동을 주도한 설교자들이었다는 점입니다. 제1차 대각성 운동, 제2차 대각성운동, 뉴욕 기도 부흥, 19세기말 성결 부흥운동, 무디의 부흥운동, 빌리 선데이의 부흥운동, 아주사 부흥, 그리고 에즈베리 부흥과 Jesus Movement에 이르기까지 역사상 보여 준 부흥의 양상과 열매는 매우 다양합니다. 하지만 지금도 살아 계신 하나님께서는 죄인을 회심케 하시며 삶의 변화를 주는 역사를 이루고 계십니다.

1970년 에즈베리 부흥에 대하여

현재 일어나는 에즈베리 부흥은 이제는 미국 뿐 아니라 전세계에 있는 많은 언론 매체와 교회들의 초미의 관심사가 되었습니다. 부흥을 사모하는 많은 사람들에게도 이 소식은 21세기에도 가능한 부흥의 모습에 흥분하기도 하고, 더러는 좀 더 지켜 보자고 하기도 하고, 더러는 다소 냉소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합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에즈베리 대학은 요한 웨슬리에 의해 파송 된 에즈베리 감독의 이름에서 유래합니다. 부흥운동으로 시작된 영국의 감리교회 창시자 요한 웨슬리는 1784년 프란시스 에즈베리 감독과 토마스 코크(Thomas Coke)를 신대륙 미국에 보냅니다. 미국으로부터 독립을 갓 일구어 낸 신생국가인 미합중국의 각지역을 순회 설교하며 부흥의 놀라운 역사를 일으킨 장본인이 바로 에즈베리 감독입니다. 이때 일어난 텐트 모임, 순회 부흥회, 사경회, 속회등이 지금의 미국 감리교회를 만드는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이때 일어난 부흥의 역사들은 엄청났으며 이 부흥으로 수많은 도시와 타운 그리고 학교들이 탄생하였습니다. 에즈베리 대학은 에즈베리 감독의 초기 감리교 부흥운동이 한 참 지난 1890년에 세워졌지만 여전히 그의 부흥운동을 기리고 있으며 그 이후에도 여러차례 부흥이 일어났습니다.

저는 1970년 에즈베리 대학 부흥에 대한 다양한 자료를 갖고 있지만 지금 제가 인용할 자료는 대학 당국이 공식적으로 발표하고 간직하고 있는 아카이브의 자료를 통해 당시의 부흥을 기술하고자 합니다. 수많은 뉴스와 저술들 그리고 증언과 논문들 가운데 에즈베리 대학이 공식적으로 발표한 요지는 다음과 같습니다.

“1970년의 2월 8일 예배 후에 시작된 에즈베리 대학 부흥(Asbury College Revival)은 185시간 동안 지속되었습니다. 에즈베리 대학(Asbury College, 지금은 University)에서 시작된 1970년 부흥이 며칠 동안 계속되어 미국 전역의 대학교와 교회로 퍼졌습니다. 그들은 성령으로 충만하여 함께 찬양하며, 죄를 고백하며, 성경을 묵상하고, 놀라운 회개와 용서와 그리고 새롭게 하심을 체험하게 됩니다. 이들의 예배는 185시간 동안 지속되었습니다. 간헐적으로 몇 주 동안 계속되었습니다. 궁극적으로 그것은 미국 전역과 외국으로 퍼졌습니다.” (참조: https://www.asbury.edu/outpouring/)

1970년 여름까지 부흥은 130개 이상의 다른 대학, 신학교, 성경 학교, 수십 개의 교회에 이르렀습니다. 뉴욕에서 캘리포니아로, 심지어 남미까지 퍼졌습니다. 예를 들어, 인디애나 주 앤더슨에 있는 Meridian Street Church of God에서 몇몇 Asbury 학생들이 간증을 했을 때, 교회는 연속 50일 동안 자발적인 부흥을 경험했습니다. 인디애나 신문의 오래된 오려낸 기사에 따르면 앤더슨 교회는 곧 너무 붐벼서 예배를 학교 체육관으로 옮겨야 했습니다. 밤에 최대 2,500명의 사람들이 하나님의 감동을 받기를 바라며 체육관으로 몰려들었습니다. 미국 최고의 복음주의 신학자이자 교회사가인 마크 놀(Mark Knoll)교수는 에즈베리 대학(Asbury college) 부흥이 대규모 신 오순절 운동과 동시에 일어났다고 말했습니다. 이는 당시에 에즈베리 대학만 이 부흥을 맛본 것이 아니고 미국 전역에 일어난 부흥운동의 현상의 동시대적 역사였다는 것이 마크 놀 교수의 평가입니다.

위의 사항이 1970년 2월 8일에 일어난 에즈베리 대학 부흥의 요체입니다.

에즈베리 감독과 부흥운동의 관계

미국내의 교회 성장의 원동력이 됨으로 역동적인 미국 종교 지형을 형성하는데 아주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였습니다. 교구 신부나 목사들의 전통적인 목회 방식들은 교구 신도들에게 더 이상 매력적이지 않았으나, 새로운 타입의 목회 방식들은 매력적이면서도 효과적이었습니다. 왜냐하면 부흥사와 순회 전도자들이 직접적이고, 개인적이며 대중적인 방식으로 전도와 설교를 하였기에 직접 회중에게 접근하는 방식이 가능하였고, 이는 교회에 나오는 기존의 교인 뿐만 아니라 교회 나오지 않았던 사람들, 다시 말하면 마을 사람들, 농부와 도시 거주자들에게도 지대한 영향을 끼치게 된 것입니다. 즉각적인 회개와 중생 그리고 성령의 세례를 받음으로 새로운 신자나 기성 교인들이 성령이 주시는 갱신의 체험을 하도록 설교했던 대각성 운동의 접근 방식은 조나단 에드워즈 (Jonathan Edwards)를 비록하여 조지 휫필드 (George Whitefield), 프란시스 에즈베리 (Francis Asbury), 찰스 피니 (Charles Finney)와 드와이트 무디 (Dwight Moody)등에게서 공통적으로 발견할 수 있는 점들입니다. 이들에 대해 평가한 마크 놀 (Mark Noll)은 “이들 복음 전도자들이 했던 것들은 개인주의(individualism)와 즉흥주의 (immediatism)가 종국에는 기독교 사상을 형성하는데 심오한 영향을 준 ” 점이라고 지적한 것입니다.

2023년 에즈베리 대학의 부흥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에즈베리 대학의 부흥은 언제까지 이 일이 계속될지 오직 하나님만이 아십니다. 이제는 미국의 모든 주요 신문, 방송 그리고 세계 거의 모든 방송과 신문에서 대서 특필하고 있습니다. 유튜브에는 셀 수도 없을 정도로 예배와 현지 모습을 담은 동영상을 쏟아 내고 있으며 이 모든 것을 소화하기도 힘들 정도로 다양한 글들이 소셜미디어를 통해 물밀듯 밀려오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CNN, Fox News, 뉴욕 타임즈, 뉴욕 포스트, 워싱톤 포스트 등 모든 세속의 신문들보다도 기독교적 입장에서 정리한 크리스차니티 투데이의 그 요체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참조: https://www.christianitytoday.com/news/2023/february/asbury-revival-outpouring-protect-work-admin-volunteers.html)

이 기사는 이러한 머리글로 시작합니다.

“No Celebrities Except Jesus”

예전의 부흥운동에는 부흥운동의 주역이 있었습니다. 예를 들면 조지 휫필드, 요한 웨슬리, 조나단 에드워즈 등등입니다. 이러한 주역들을 요즈음 말하는 연예인으로 빗댄 것입니다. 에즈베리 대학 부흥에는 유명인도 없고 탁월한 설교가도 없고 오직 예수님 밖에 없다. 이 보다 더 놀라운 표현이 어디에 있을까요? 우리는 부흥이라는 역사 아래 화려한 찬양 팀, 뛰어나고 놀라운 음악, 무대 장치, 심금을 울리는 설교가, 그리고 그것을 생중계하는 방송 매체들에 너무 익숙해져 있습니다. 1980년 채널만 틀면 화려한 언변으로 시청자들을 사로 잡았던 미국의 방송 설교자들을 기억할 것입니다. 에즈베리에는 그러한 요소들이 없다는 것입니다.

저는 크리스차니티 투데이의 기사를 있는 그대로 옮겨 봅니다.

“수요 예배 이후 계속 자발적 기도에 대하여 토요일에 이르기까지 에즈베리 대학( Asbury University) 당국은 부흥을 위한 어떤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

에즈베리 대학교는 성령의 부어 주심을 계획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슈퍼볼이 열리기 며칠 전인 2월 첫째 주 중반에 어떤 일이 일어나기 시작하자 관리자, 직원, 교직원, 친구, 대학 이웃이 즉석에서 혼합되어 빠르게 동원되었습니다. 그들은 휴 대강당(Hughes Auditorium) 옆에 있는 수납장에 모여 교실을 용도 변경하여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이 무엇이든 촉진하고 지원하도록 했습니다. …

입소문이 나자 군중이 몰려들고 이것이 “진정한” 부흥인지에 대한 논쟁이 온라인에서 격렬해졌습니다. 이 사람들은 하나님을 찾는 모든 사람이 음식과 물, 화장실을 가지고 있고 모든 사람이 안전한지 확인하기 위해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시간을 일했습니다. 부흥의 비하인드 스토리 중 일부는 그것을 보호하기 위해 들어간 거의 보이지 않는 작업입니다.

케빈 브라운 애즈베리 대학 총장은 크리스차니티 투데이 인터뷰에서 “이 서비스를 즉석에서 작동시키기 위해 한 번에 100명의 자원 봉사자가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

부흥은 2월 8일 예배당 예배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선교단체 엔비전의 지도력 개발 코디네이터이기도 한 축구 보조 코치인 제크 미어크립스(Zach Meerkreebs)는 행동으로 사랑이 되는 것에 대해 설교했습니다. 그의 본문은 로마서 12장이었습니다. 그의 설교 이후 흑인 가스펠 트리오가 마지막 노래를 불렀고 예배당은 끝났지만 18명에서19명의 학생들이 남았습니다. 몇 명은 오른쪽 벽을 따라, 몇 명은 좌석에, 몇 명은 통로 바닥에, 몇 명은 무대 아래에 앉았습니다. 그들은 계속 기도했습니다. 그들은 자신과 이웃과 세상을 위해 간절히 찬양하고 기도했습니다. 회개와 죄에 대한 통회를 표현하고 치유, 온전함, 평화, 정의를 위해 중보 기도했습니다.” (참조: https://www.christianitytoday.com/news/2023/february/asbury-revival-outpouring-protect-work-admin-volunteers.html)

이것은 크리스챠니티 투데이의 기사이지만 CNN이든 주류 방송 매체이든 어떤 신문이든 위의 내용과 매우 비슷하게 보도하고 있게 여기에 매우 놀라운 경험을 했다는 사람들의 간증들이 인터뷰로 채워지고 있습니다.

이들의 기도는 계속 이어지면서 미국 전역에 이 소식은 일파만파 번지기 시작했습니다.
목요일 저녁에는 스탠딩 룸만 있었지만 이제는 에즈베리 대학 뿐 아니라 켄터키 대학교, 컴벌랜즈 대학교, 퍼듀 대학교, 인디애나 웨슬리안 대학교, 오하이오 기독교 대학교, 트란실바니아 대학교, 미드웨이 대학교, 리 대학교, 조지타운 대학교, 마운트 버논 나사렛 대학교에도 에즈베리 대학과 동일한 부흥이 일어나고 있다는 뉴스들이 계속 쏟아지고 있습니다. 심지어 제가 이글을 쓰는 동안에도 다양한 기사와 소셜 미디어의 소식들이 인터넷을 통해 퍼지고 있습니다.

특별하다면 매우 특별하겠지만 이전의 대각성 운동이나 대 부흥운동에 견주어 보면 매우 평범한 에즈베리 부흥에 대하여 수많은 신학적 논쟁과 토론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중에 가장 논점이 되는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켄터키 대학 예배당에서 일어난 놀라운 성령의 역사 – 정말입니까?

우리가 검증 가능한 것은 인위적이며 프로그램에 의한 억지로 만들어내는 부흥은 분명히 아닌 것이 대체적으로 미국 신학계의 의견입니다. 빌리 선데이를 비롯해 빌리 그래함 전도는 수많은 노력과 동원 그리고 인적 자원과 조직에 의해서 만들어졌고 열매도 있었지만 하나님의 초자연적 역사인 것에 대해서는 많은 논쟁을 낳았습니다. 찰스 피니가 세계 교회사에서 아직도 논쟁의 핵심 가운데 있는 것은 인간이 끊임없이 준비하고 만들고 노력했을 때 100% 주권적 부흥과 대별된다고 수많은 교회사가들이 지적한 부분이기도 합니다. 적어도 지금의 에즈베리는 부흥을 디자인한 사람도 없고, 부흥을 조직한 대학 당국도 없으며 현재까지는 그 어떤 주인공도 없습니다. 오직 찬양과 기도 그리고 성령님의 임재와 죄의 고백이 있습니다. 일부 인터뷰를 통해 나온 개인의 고백을 통해 지엽적인 문제로 공격하는 것은 전체적인 맥락에서 온당치 않을 수 있습니다.

수많은 기사 가운데 나온 한 기사의 일부분입니다.

“내 교회도 아니고, 확실히 내 예배 스타일도 아니지만, 성령님이 나타나서 마음을 변화시키기 위해 내 허락을 필요로 하지 않는 것은 분명합니다. 나는 그것이 이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이며, 그 젊은이들이 성령의 실재에 대한 극적인 경험, 즉 그들의 회심을 심화시키는 경험을 하고 있기를 희망하고 기도합니다.”

글을 맺으며: 사도행전 2장을 통해 본 부흥

저는 여러 루트를 통해 에즈베리 대학교의 집회에 참여를 요청 받았습니다. 저의 형편으로 인해 그곳을 갈 수 없었습니다. 앞으로 어떻게 이 부흥이 계속되고 확장될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그러기에 저는 오직 성경으로 지금의 에즈베리 부흥을 말함으로 저의 이야기를 대신하고 합니다. 사도행전 2장을 따라는 나타나는 부흥의 원형이자 패턴은 다음과 같습니다.

1. 놀라운 성령님의 부어주심
오순절날이 이미 이르매 저희가 다 같이 한곳에 모였더니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저희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불의 혀 같이 갈라지는 것이 저희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임하여 있더니 (1-3절)

2. 성령 충만과 성령 세례
저희가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4절)

3. 성령에 취함
또 어떤이들은 조롱하여 가로되 저희가 새 술이 취하였다 하더라 (13절)

4. 큰 권능과 기사와 표적의 나타나심: 성령의 나타나심
이스라엘 사람들아 이 말을 들으라 너희도 아는바에 하나님께서 나사렛 예수로 큰 권능과 기사와 표적을 너희 가운데서 베푸사 너희 앞에서 그를 증거하셨느니라 (22절)

5. 회개의 역사
저희가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게 물어 가로되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하거늘 (37절)

6. 죄사함과 성령을 받으라
베드로가 가로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 (38절)

7. 회심의 역사
그 말을 받는 사람들은 세례를 받으매 이 날에 제자의 수가 삼천이나 더하더라 (41절)

8. 제자훈련
사도들의 가르침을 받아 (42절)

9. 교제의 역사
서로 교제하며 떡을 떼며 (42절)

10. 기도의 역사
기도하기를 전혀 힘쓰니라 (42절)

11. 지속적 성령의 역사
사람마다 두려워하는데 사도들로 인하여 기사와 표적이 많이 나타나니 (43절)

12. 지속적인 부흥의 역사: 매일 기도와 전도 그리고 부흥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45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고 날마다 마음을 같이 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 (44-47절)

우리가 지금 일어나고 있는 에즈베리 부흥을 보면서 위의 12사항 가운데 어떤 것을 가지고 있고 어떤 부분이 없는지를 보면 우리는 쉽게 구분할 수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부흥을 위해 늘 기도하는 김종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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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r. Elijah Kim: 보스톤 소재 파토스 재단 대표(President, Pathos Foundation, Inc.)/ 보스톤 연합예배(Boston United Worship) 및 미스바 기도 대각성 (Boston Mizpah Prayer Awakening)의 주최자(Organizer)/ 필리핀 Grain of Wheat College and Graduate school (Founder and President, formerly Elijah International World Mission Institute) 설립자 및 총장 역임/ 필리핀 한 알의 밀알 교회 개척 및 목사(Pioneer and Overseer Pastor, A Grain of Wheat Christian Ministries, Philippines)/ 글로벌 어반 미니스트리 네트웤 창립 멤버(Founding Member, Global Urban Ministries Network)/ 보스톤을 위한 목회자 기도회 설립(Founding Member, Prayer For Boston)/ 북미 정상 기도회 멤버(North America Prayer Summit) 등 각종 선교 대회 개최 및 인도 ( BAM, CBMC, 백석대학교, 세계한인디아스포라 선교대회)/ 부흥 시리즈(부흥의 역사, 부흥 신학, 부흥의 영성, 부흥과 선교 등) 세미나 및 집회 인도 사역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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