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와 생명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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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저널=정이신 목사] 41. 지혜와 생명나무 »
지혜를 찾는 사람과 , 명철을 얻은 사람은 복이 있…
<잠언> 기자는 지혜의 가치를 은ㆍ황금을 얻는 것보다 더 낫고, 진주보다 더 값있다고 합니다. 현실적으로 생각해 보면 세상의 보물에 속하는 금ㆍ은ㆍ진주가 더 값있어 보입니다. 그런데 <잠언> 기자는 그것보다 지혜가 더 귀하다고 합니다. 이는 보물과 지혜의 배후를 보고 한 말입니다…
지혜(히브리어: 호크마)를 찾는 사람은 복이 있고, 명철(히브리어: 타분)을 얻은 사람은 복이 있습니다(3:13). 이는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는 사람이 복이 있고, 그걸 활용해서 세상에 대한 통찰력을 얻는 사람이 복이 있다는 말씀입니다.
<3:14∼18>에 이에 대한 이유가 나옵니다. <3:13>에서 지혜와 명철을 언급했는데, “명철”은 개인의 이해력과 지식을 뜻하는 말로 창조 때부터 하나님과 함께 있었던 주님의 지혜 안에 모든 게 다 포함됩니다. <8장>은 지혜를 인격화해 표현했는데, 하나님은 창조 전부터 지혜를 데리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3:14∼18>에는 지혜의 가치만 나옵니다.
<잠언> 기자는 지혜의 가치를 은ㆍ황금을 얻는 것보다 더 낫고, 진주보다 더 값있다고 합니다. 현실적으로 생각해 보면 세상의 보물에 속하는 금ㆍ은ㆍ진주가 더 값있어 보입니다. 그런데 <잠언> 기자는 그것보다 지혜가 더 귀하다고 합니다. 이는 보물과 지혜의 배후를 보고 한 말입니다.
세상의 보물은 그것의 가치를 보장하는 배경이 세상입니다. 세상에서 그게 귀하다고 인정했지 하나님이 귀하다고 인정한 게 아니기에, 그걸 귀하다고 인정하는 곳에서만 귀한 취급을 받습니다. <요한계시록>에 나오듯이 하나님의 영원한 나라에 가면 그것들을 전혀 귀하게 취급하지 않습니다.
수정을 길거리를 장식하는 도로 포장재로 쓰고 온갖 보석을 대문과 성벽을 만드는 데 씁니다. 그러나 지혜는 그걸 귀하다고 하신 분이 하나님이시기에 주님 앞에 가서도 귀한 대접을 받습니다. <잠언> 기자는 그것들과 연결된 존재를 보고 그것들의 가치를 다시 설명했습니다.
<3:16>에 나온 장수와 부귀는 개신교회에서 목사들이 축복할 때 두 손을 드는 이유입니다. 모세가 아말렉과 전쟁할 때 아론과 훌이 모세의 두 팔이 내려가지 않도록 들었던 장면에서(출애굽기 17:12) 목사들이 예배 끝 무렵에 두 손을 들어 축복하는 것이라고 설명하는 이도 있습니다.
그러나 모세의 일화는 전쟁에 관한 것이고, 옆에서 그의 손을 잡은 이가 둘이나 있었기에 목사의 축복과 성격이 다릅니다. 지혜의 오른손에 장수, 왼손에 부귀영화가 있다고 했는데, <3:2>에서 말한 것처럼 지혜로 인해, 지혜 안에서 나타난 장수이기에 장수의 저주가 아니라 복입니다.
그런데 신약성경은 예수님 안에서 얻게 되는 영원한 생명이 이것보다 더 귀한 복이라고 했습니다(요한일서 2:25). 그래서 저는 예수님 안에서 영원한 생명을 얻기를 기원하는 마음으로 주일예배에서 축복할 때 두 손을 들지 않습니다.
지혜로 인해 나타나는 최종적인 복을 생명 나무에 비유했습니다(18절). 생명 나무는 에덴동산에 있었던 나무이고, <요한계시록 22:2>에서 하나님의 영원한 나라에 들어온 모든 민족을 치유하는데 쓰는 나무입니다. 일부 사이비에서 예수님이 생명 나무라고 거짓말을 하는데, <요한계시록 22:3>을 보면 생명 나무와 달리 어린 양의 보좌가 따로 있습니다.
예수님이 생명 나무라면 <요한계시록>에서 생명 나무에 대해 묘사한 다음에 이 나무와 별개로 어린 양의 보좌를 언급할 필요가 없습니다. 또 생명 나무에 관한 언급은 <창세기, 잠언, 요한계시록>에 나옵니다. 그러므로 사이비들처럼 <창세기, 고린도전서, 요한계시록>을 비교해서 생명 나무가 남자를 비유한 것이고, 아담과 예수님이 생명 나무라고 하면 안 됩니다.
<잠언>에도 생명 나무에 관한 말씀이 있는데, 이것에 대한 해석은 빼고 <창세기, 고린도전서, 요한계시록>에 있는 아담과 생명 나무만 비교하면 안 됩니다. 성경에서 생명 나무에 대한 언급이 나온 곳을 모두 비교하면 예수님을 생명 나무에 해당하는 존재로 제자들이 비유해서 설명한 적은 있지만, 예수님은 예수님이고 생명 나무는 생명 나무입니다. 둘이 서로 다릅니다.
하나님은 생명 나무를 통해 우리가 주님의 말씀을 지키면 영생한다고 하셨습니다. <잠언> 기자는 지혜에 그런 부분이 있다고 했습니다. 이는 우리가 하나님의 지혜를 얻으면 부분적일지라도 우리가 사는 곳이 에덴동산으로 변한다는 말입니다. 우리 마음의 상처가 다 치유되고 우리 영이 날로 새로워지는 낙원의 출발을 <잠언> 기자는 하나님의 지혜를 얻는 것이라고 했습니다(3:18). 그래서 지혜를 붙잡으라고 했습니다.
신약시대에 이런 역할을 하셨던 분이 예수님입니다. 요한은 예수님이 이런 가치가 있는 분이라고 비유적으로 설명했습니다(요한복음 14:6, 요한계시록 2:7). 이번 한 주간도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어 성령님이 주시는 지혜로 가득한 날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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