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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가 되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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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부흥의 불길 타오르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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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수교 140년사의 근대문명 리뷰-13
[역사저널] 한미수교 140년사의 근대문명 리뷰-13 » 강석진 목사 » 이승만의 외로운 대미외교 활동과 시련 대한제국과 일본과의 을사조약(1905.11)으로 대한이라는 나라의 외교권은 사실상 박탈된 것이었다. 이러한 역사적 수모가 실행되기 4개월 전인 1905년 7월에 ‘가스라.테프트밀약’으로 미국은 사실상 일본이 대한제국의 지배를 묵인하였고 바로 이어서 주한미공사관을 폐쇄시켰다. 이 당시 영국과 미국은 일본이 1904년 러.일전쟁에서 승리하자…

시리아 알레포 공항 활주로 폭격에 대하여

Dr.ElijaKim ◙ Photo&Img©ucdigiN

[영성칼럼=Dr. Elijah Kim]시리아 알레포 공항 활주로 폭격에 대하여 » 2023/03/11  »

활주로 즉 Runway 만을 파괴한 이스라엘 그 의도는 무엇인가?

제가 아는 목사님으로부터 이런 질문을 받았습니다. 튀르키예와 시리아 지진 이후 인도주의적 단체들의 구호 활동 중에 있는데, 알레포 공항이 이스라엘로부터 폭격을 받게 된 것에 대한 질문입니다. 그 분이 이런 질문을 받았으니 저의 의견은 어떠냐는 것입니다.
“목사님, 최근 이스라엘이 시리아 알레포 공항을 공습한 것으로 인해, 시리아로 구호품을 보내려고 하는 사람들이 반이스라엘 감정을 더 많이 갖게 되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사실, 이스라엘로서는 이란의 준동을 막을 수밖에 없는 절체절명의 국가 과업이 있는데.., 그 배후까지를 다 이해하기는 어렵고(물론, 그 안에는 시아파와 수니파 사이의 갈등이 뿌리이기도 한 것이지요?), 우선은 피해를 보고 있는 쪽을 향해 불쌍히 여길 수밖에 없는 것이 보통 사람들의 정서일 수 있을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이래 저래 오해를 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해 있는데…, 최근 이 기사와 관련하여 목사님의 의견은 어떠신지 궁금해서 여쭙습니다.”

이 분의 질문에 답하려면 사실관계를 알기 위해 이틀전에 있었던 (3월 7일 공습) 내용을 간단히 알아 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알레포 공항 폭격에 대한 2023년 3월 7일 연합뉴스 보도는 다음과 같습니다.

(테헤란=연합뉴스) 이승민 특파원 = 이스라엘군이 시리아 알레포 국제공항을 공습해 지진 구호품 수송이 차질을 빚고 있다. 7일(현지시간) 국영 SANA 통신과 외신에 따르면 이날 새벽 2시 7분께 시리아 중북부 알레포 국제공항이 미사일 공격을 받았다. 시리아 국방부는 “미사일은 서부 항구도시 라타키아 부근 지중해에서 발사된 것으로 보인다”며 “상당수 미사일은 요격했으나, 일부가 활주로에 떨어져 공항 운영은 중단됐다”고 발표했다. 당국은 알레포 공항이 복구될 때까지 지진 구호품 수송은 다마스쿠스와 라타키아 공항을 통해 이뤄진다고 설명했다. 바샤르 알아사드 대통령이 이끄는 시리아 정부는 이번 공격의 주체를 이스라엘로 지목했다. 이스라엘군은 이번 공격과 관련한 입장을 발표하지 않았다.
공격을 받은 알레포는 시리아 제2의 도시로 지난달 튀르키예(터키) 강진의 피해를 본 곳이다.
지금까지 알레포 국제공항에 착륙한 구호품을 실은 항공기는 80대가량이다. 각국에서 인도주의 지원을 받는 튀르키예와 달리 시리아는 알아사드 정권 아래 국제사회의 제재를 받고 있어 초기 구호 물품 수송이 차질을 빚었다. 특히 반군 장악 지역인 서북부 지역은 정부군과 반군의 갈등으로 구호 지원이 상당 기간 지연됐다.

이스라엘군은 지난달 19일 강진 발생 후 처음으로 시리아 내 친이란 무장 세력 거점을 폭격했다. 당시 공격으로 친이란 민병대원과 민간인 15명이 사망했다. 시리아 알아사드 정권의 핵심 동맹인 이란은 이스라엘의 최대 적성국으로, 이스라엘은 자국과 접한 시리아 국경 인근에 친이란 무장 세력이 주둔하는 것을 허용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지난해부터 이스라엘은 알아사드 정권과 친이란 성향의 헤즈볼라에 무기를 공급하는 이란군 주둔지와 무기고를 집중적으로 타격했다. 지난 1월에는 다마스쿠스 공항이 미사일 공격을 받았고, 이로 인해 시리아 정부군 2명을 포함해 총 4명이 숨졌다.
(참조: https://www.yna.co.kr/view/AKR20230307149900111?input=1195m)

알레포 공항 공습에 대한 요점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알레포 공항 활주로 (Runway) 폭격
2. 이란 민병대가 있는 군사시설 폭격
3. 헤즈볼라 본부 폭격

먼저 이 사건에 대하여 언급하기 위해 알레포 공습이 어떤 것인지 알아 보겠습니다.

이번 지진 이후 이스라엘이 시리아 알레포 공항 활주로를 폭격한 것은 한 두 번이 아닙니다. (여러차례 있었습니다. 2022년 9월 6일 공습 동아일보 보도: https://www.donga.com/news/article/all/20220907/115345770/1. 11월 13일 공습, https://www.reuters.com/world/middle-east/syrian-air-defences-shoot-down-israeli-missiles-targeting-homs-province-state-tv-2022-11-13/) 예전에도 시리아의 알레포 공항에 여러 번 활주로를 타겟 폭격한 적이 있습니다. 시리아 정부는 이것이 범죄라고 이례적으로 발표했습니다. 결론적으로 보면 이란-시리아 연대가 깊은 가운데 이스라엘이 허를 찌른 것이고, 이스라엘로서는 이렇게 해야만 하는 여러 사정이 있습니다. 여러 보도를 종합해 본 바 현재까지는 인명 피해는 없는 것으로 압니다. 이번 사태를 아주 간단히 보아서는 안되는 단면이 있습니다.

• 시리아 내전과 시리아 사태의 본질
• 시리아 사태를 둘러 싼 국제 관계 (미국-러시아-튀르키에-이스라엘-사우디 아라비아)
• 아랍 리그와 걸프 협력회의와의 관계
• 이란의 혁명 정부와 혁명 수비대 역할
• 중동 전선 수니파 벨트 대 시아파 벨트
• 이스라엘의 입장과 헤즈볼라, 하마스 그리고 반 이스라엘 무장단체

시리아 내전과 시리아 사태의 본질

시리아 내전은 근대국가로서 출범한 시리아에 서구 열강의 divide and rule(사우디와 요르단처럼) 의 원칙에 소수파인 알 아사드 가문이 지배한 것이 가장 원인입니다. 아버지 하페즈 알 아사드와 아들 바사르 알 아사드로 이어지는 아사드 가문은 알라위파(Alwaites)라는 하는 시아파의 한 극단주의적 분파입니다. 프랑스 지배 때에도 그렇지만 오스만 투르크 때에는 시아파가 이들 알라위파를 이단이라고 하여 극도로 차별하고 핍박을 했습니다. 참고로 알라위파 안에는 각 부족 중심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칼비야(Kalbiyah), 카이야틴(Khaiyatin), 핫다딘(Haddadin), 마타위라‎(Matawirah) 가 있고, 지역적으로는 라타키아에 거주하였으나 근대 이후 시리아의 내륙 도시인 홈스(Homs)와 하마(Hama)로 진출하였습니다. 이들 지명이 놀랍게도 성경에 나옵니다. 알라위파는 오랜 세월의 핍박 때문에 교육을 제대로 받은 자가 없었으며 인도로 치면 불가촉 천민처럼 천대받고 살았습니다. 시리아에는 87%의 무슬림이 있고, 10%에 달하는 기독교인이 있으나 내전 중임으로 World Bank나 IMF 그리고 미국 CIA의 수치가 조금씩 다릅니다. 사상자와 대량 난민 그리고 이민 때문입니다. 이 87%의 무슬림 가운데 수니파가 74% 그리고 시아파가 13%인데 이 중에서도 알라위파가 전체 인구에서 10% 정도 됩니다. 모세의 장인 이드로를 시조로 하는 드루즈파도 무려 3%(?, 이 수치가 결코 적지 않은 이유가 있음)나 됩니다.

그럼 다수의 시아파가 있는 시리아에서 어떻게 소수 그것도 10% 밖에 안되는 알라위파가 집권할 수 있게 되었느냐?고 하는 점이 지금의 복잡한 시리아 내전을 이해하는 데 핵심이 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사담 후세인의 바트(Ba’ath)당의 이념과 하피즈 알 아사드가 창당한 아랍 사회주의를 표면으로 내세운 시리아의 바트(Ba’ath)당이 지금의 중동 사태를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됩니다. 일견 상관이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전에 소련이었던 사회주의와 공산주의 그리고 중동에 세우고자 했던 사회주의 국가 실험들이 이라크, 시리아, 리비아 등과 연계되면서 지금까지도 이런 연관성들이 러시아와 밀접하게 작동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소수로 핍박 받고 멸시 받던 알라위파에 기회가 온 것은 프랑스의 위임 통치입니다. 1946년 프랑스 위임통치가 끝나고 시리아가 프랑스로부터 독립한 뒤 시리아는 다수파 시아파, 소수 기독교인, 알라위파, 그리고 드르주파로 나뉘어져 정국이 매우 불안정했습니다. 프랑스 통치 하에 있을 때, 출세할 수 있고 다수를 누를 수 있는 유일한 기회는 강대국 프랑스가 운영하던 군대에 들어가는 것이었습니다. 알라위파 청년들은 의도적이며 계획적으로 프랑스 정부군에 입대하여 군부를 통해 정치 과정에 개입하게 됩니다.

특히 젊은 청년 하피즈 알 아사드(hafiz al-Asad)는 이후 1955년 공군사관학교를 졸업한 뒤 바트당에 가입합니다. 그가 가입한 바트당은 소수임에도 집권에 성공합니다. 1963년 쿠데타를 일으키는데 그곳에서 핵심 요직을 맡게 됩니다. 1965년 공군사령관에 이듬해 국방장관이 되었습니다. 제3차 중동전쟁이 발발하고 시리아는 처참한 패배와 더불어 골란 고원을 이스라엘에게 빼앗깁니다. 이것이 이스라엘과 시리아 분쟁의 불씨가 되며 서로 철천지원수(불구대천지원수)가 됩니다. 당시 시리아 정부는 군사 책임자인 하피즈 알 아사드를 숙청하려고 하자 1970년, 쿠데타를 일으켜 총리가 되었고, 이듬해 최초의 알라위파 시리아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30년(1971-2000년 집권)을 집권하고 철권 통치를 지금의 바사르 알 아사드(Bashar al-Asad, 2000-현재까지 집권)까지 오게 된 것입니다. 이처럼 시리아의 알라위파는 집권 세력인 동시에 종교 집단입니다.

알라위파는 정통 이슬람의 수니파와 크게 다르며 일종의 민속종교와 기타 종교를 합친 혼합 종교입니다. 이들은 때론 정치적 목적을 위하여 이슬람 세계의 고위인사를 접견하고, 메카 성지 순례에 참여하거나, 다마스커스 우마이야 모스크의 금요 예배에 참여하기도 하지만 알라위파의 예배와 신학 그리고 전통은 수니파와는 자못 다릅니다. 하지만 알라위파는 이란까지 이르는 시아파 벨트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시리아의 알라위파, 수니파가 다수이지만 시아파가 있는 쿠르드족, 이라크의 시아파 그리고 이란의 정통 시아파로 연결되는 메소포타미아 초생달을 이루고 있습니다. 여기에 아랍 민족주의, 아랍식 사회주의, 아랍의 일당 바트주의로 연대를 하고 있었으며 이는 알제리와 리비아까지 연결되어 다수파인 수니파로서 방관할 수만 없는 독자적 세력화에 경계를 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에 가장 경계를 하고 수니파 결집에 나선 국가가 바로 사우디 아라비아입니다. 이미 언급한 바와 같이 시리아의 대다수는 수니파이지만 아사드 부자는 결코 정권을 다수 수니파 시리아인들에게 넘겨주지 않으면서 소수파 알라위만을 등용하면서 시리아 사태와 내전을 방조하였고 이는 시리아와 오랫동안 우호적이던 이란, 이라크, 알제리, 소련(지금은 러시아) 그리고 쿠르드족 일부에 이르기까지 결부되면서 시리아 사태를 복잡하게 만들면서 그 해결의 실마리가 더욱 얽히게 되었습니다.

시리아 사태를 둘러 싼 국제 관계

시리아 사태가 이토록 악화되게 된 근본 원인은 소수파인 알라위파가 다수파를 차별한 것이지만 알라위파의 입장에서는 오랫동안 차별 받은 것에 대한 분풀이가 많이 작용한 것도 사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레바논처럼 국내 문제로만 풀어갔다면 당사자끼리 그렇게 어렵지 않게 풀 수 있을 수도 있습니다. 레바논처럼 정파에 따라 대통령, 수상, 국방장관, 국회의장, 국회 의석수를 분배하고 다수의 영구적 집권을 막고 소수파의 권익도 보호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만들어서 평화 상태를 유지할 수 있었을 것입이다. 그리고 그런 분파 배분에 대한 논의가 이미 프랑스 지배부터 독립 이후에도 계속 있어왔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국내 문제가 쉽게 해결되지 않은 것은 주변국의 개입과 국제 관계 그리고 바사르 알 아사드가 끌어 들린 강대국의 개입 때문입니다. 특히 러시아와 이란입니다.

2011년 3월 15일에 발발한 시리아 사태는 급기야는 내전으로 치닫게 되고 국제 대리전 양상을 띠게 됩니다. 미국, 러시아(우크라이나 사태와 관련이 있는 5만명의 잔혹한 용병 그룹인 와그너 그룹 포함), 이란, 이집트가 개입하게 되고 테러 단체들이 반군과 정부군 교전에 개입하면서 그 양상이 복잡해지기 시작합니다. 헤즈볼라, PMF 라 불리우는 인민동원군(Popular Mobilization Forces), 알 카에다 잔존 세력, ISIS 등이 시리아 내전에 개입하면서 더 복잡해 집니다. 시리아에는 상당한 수의 쿠르드 족이 거주합니다. 이들이 시아파와 연대하면서 튀르키에에 거주하는 쿠르드 족, 이라크에 거주하는 투르크족(다수 수니파 보다는 시아파에 속한 이라크계 쿠르드족) 그리고 시리아에 거주하는 쿠르드족 지역을 합쳐서 로자바(Rojava)지역이라고 부르는데 이를 하나의 국가 건립하는 사안 등이 얽히고 설키기 시작합니다. 이스라엘 체재 전복을 꾀하는 하마스와 헤즈볼라가 갈수록 무장화 되고 팔레스타인 자치 국가를 목표로 하는 신생 단체들이 PLO 이후에 우후죽순처럼 불어나 무장화하고 테러 단체로 변모하면서 시리아에 기생하기 시작합니다.

사실 시리아 사태는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소수파인 알라위파가 다수파를 압박하고 권력을 공유하지 않은 것도 있지만 더 근본적인 것은 사우디와 카타르의 개입 때문입니다. 2012년 7월 제1차 다마스쿠스 공방전이 벌어졌을 때 반군이 제4기갑사단의 활약에 패배한 적이 있습니다. 군사물자와 전력이 열세였던 수니파 다수는 사우디와 카타르의 과격 이슬람 급본주의자들의 지원을 받으면서 정부군을 일시적으로 물리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2013년 정부군이 반격을 개시하여 반군이 패배를 거듭하게 됩니다. 그러나 반군들도 너무나 분파가 많았고 반 이스라엘 테러 단체, 이라크를 근거로 한 ISIS, 사우디의 지원을 받은 수니파 원리주의자 등 그 양상이 매우 달라졌는데 이 때 바사르 알 아사드 대통령이 러시아에게 도움을 요청하여 개입하게 됩니다. 동시에 시아파 근본주의 이슬람 혁명에 성공한 이란이 이란의 혁명 이념 실현을 위해 이란-이라크-시리아-레바논에 이르는 시아파 벨트를 구축하려는 야망이 알라위파 시리아 정권과도 맞아 떨어져 개입하게 됩니다. 바사르 알 아사드의 군사개입을 기다려 온 러시아는 냉큼 개입합니다. 그 이유는 러시아 유일의 부동항인 타루투스에 해군 기지가 있었는데 이를 보호한다는 미명 하에 지중해를 장악하고, 남진 정책의 교두보를 유지하고자 하기 때문입니다. 때마침 체첸을 무력 진압했고, 러시아의 체첸, 다제스탄과 같은 캅카스 무슬림 지역들의 반란과 동요를 방지하는 목적도 있었습니다. 더불어 수니파 종주국을 자처한 사우디 아라비아는 걸프 협력회의와 아랍리그의 주도권을 쥐고 시리아의 다수파 수니파 정권 수립에 목을 메게 됩니다. 이는 사우디를 주축으로 카타르와 UAE가 원래 반군의 목표인 민주화 실현보다는 수니파 주도의 이슬람 원리주의 정권 을 수립하고 시아파 벨트 구축을 도모하는 이란과 레반트 진출 저지를 위해 ISIL도 간접적으로 도와주면서 국제적 개입은 더욱 꼬이게 됩니다.

아랍 리그와 걸프 협력회의(Gulf Cooperation Council)와의 관계

이란과 이라크 그리고 시리아와 레바논을 잇는 시아파 벨트는 아라비아 반도에 있는 국가들에게는 위협 요인이 되었습니다. 거기에 바트당이 집권하고 있는 시리아는 사담 후세인의 바트 당 잔존 세력과도 연대 되었습니다. 특히 시리아는 이란과 이라크의 오랜 전쟁이 있을 때 이란을 직접적으로 군사적으로 도운 국가입니다. 시리아는 일종 이란의 형제 국가를 자임하였고 사사건건 미국과 대립하고 사회주의 이념 실현 및 친 이란 행보를 공개적으로 이어갔습니다. 시리아의 사회주의 경제체제의 모순과 낮은 공업수준으로 인한 경제적 위기를 이란과의 교역과 차관으로 해결해 왔습니다.

사우디 아라비아는 수니파 종주국을 자처하며, 시아파 벨트를 차단하고자 했습니다. 20세기 가장 큰 실험이라고 할 수 있는 이슬람 신정국가 수립에서 수니파 종주국으로 새로운 형태로 도입된 사우디의 왕정이 칼리프 제도의 부활이라고 믿는 사우디 아라비아에 도전한 국가가 있으니 바로 이란입니다. 1979년 팔레비 왕정을 무너뜨리고 이슬람 원리주의 혁명을 수호한 이란은 지구상 가장 강력한 무슬림 체재를 만들었습니다. 다시금 말하면 사우디의 이슬람 왕정 체재(민주주의를 빙자한)에 반한 이슬람 공화국입니다. 헌법에 샤리아를 녹아 들게 만들고 모든 헌법 조항조차 심의할 수 있는 헌법 수호 위원회를 만들어 국회에서 입법한 것도 심의하여 돌려 보내기 일쑤였습니다. 행정 수반인 대통령 위에 최고 종교지도자를 두고 대통령이 그 아래 있게 함으로 철저한 이슬람 신정정치를 이슬람 공화국이라는 미명하게 두었습니다. 이 두개의 거대 세력이 아라비아와 페르시아 그리고 메소포타미아를 두고 충돌하게 된 것입니다. 사우디아라비아, 카타르 등의 국가는 이란 이라크 전쟁에서 미국과 함께 이라크에게 막대한 물자 지원을 하여 사실상 이란과의 대리 전쟁을 수행하게 만든 배후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시리아는 이들 반대편에 섰습니다.

시리아의 전통 우방이었던 이집트(영국과 프랑스 통치가 끝나고 근대국가로 출범하고자 할 때 한때는 시리아와 요르단 그리고 이집트를 한 국가로 출범하고자 했음)가 캠프 데이비드 협정으로 대 이스라엘 전선에서 빠져나가고, 이라크는 사우디아라비아 국가들에 대한 군사적 위력을 통한 채무 변제를 위해 쿠웨이트를 침공하였습니다. 그 후에 미국의 개입이 일어난 걸프 전쟁을 통해 사담 후세인의 이라크는 무너집니다. 하지만 이라크에는 수니파도 있지만 시아파도 있습니다. 이란은 계속해서 혁명 수비대를 통해 이라크의 시아파를 지원했습니다. 그 시아파 벨트가 시리아까지 연결되었습니다. 하지만 시리아를 이란에게 빼앗기기를 원치 않는 걸프 협력회의 국가들은 바사르 알 아사드 대통령을 초기에 많이 도왔습니다. 튀르키예는 시리아와 경제협력을 강화하고, 카타르는 차관을 제공하고 서방의 경제 재제를 겪는 시리아를 위해 자국 명의로 항공기를 구매하여 아사드 대통령의 전용기로 대여해줄 만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해 왔습니다.

그러나 2010년부터 2011년에 일어난 아랍의 봄은 알제리, 튀니스, 리비아, 이집트처럼 정권 붕괴로 이어진 것처럼 시리아에도 이러한 일이 일어날 것으로 예측되었습니다. 시리아에 내재되어 있던 실업 문제, 경기 침체로 인한 흉흉한 민심이 뿌리깊은 알라위파에 대한 증오와 알레포-다마스커스간의 지역 갈등, 무슬림 형제단의 봉기와 같은 것이 연쇄적으로 작용하면서 반정부 시위가 촉발되었습니다. 이때 우호적인 입장을 취하던 사우디 아라비아와 카타르 뿐 아니라 튀르키예까지 시리아 정부를 비난하고 바사르 알 아사드 정권의 하야를 요구하며 반정부 세력 지지를 선언합니다. 시아파 벨트 대 수니파 벨트의 대척점이 시작된 것입니다. 이때 구원 투수 역할을 한 나라들이 있었으니 러시아와 이란입니다. 러시아의 공중 폭격 지원, 와그너 그룹 용병들의 잔혹한 대량 학살 등이 이어졌습니다.

이란의 혁명 정부와 혁명 수비대 역할

시리아는 정상적인 민주주의라면 바사르 알 아사드가 정권을 결코 잡을 수 없음에도 기사회생한 것은 이란의 적극적인 군사 지원 때문입니다. 여기에 화력 지원, 공중 지원, 무기지원을 러시아가 도와서 다 죽어가는 정권을 유지시켜 준 것입니다. 하지만 아랍리그와 걸프 협력회의를 통해 수니파 통일을 꾀하고 아랍세계의 장자 역할을 하려는 사우디는 이란이 눈에 가시이기에 시리아의 반군 즉 수니파 반군을 적극 지원했습니다. 화력도, 무기도, 인력도 수니파가 다수인 시리아에서 아사드 정권 붕괴 직전까지 갔습니다. 사우디를 죽도로 미워하는 이란의 혁명 수비대가 가만히 있지 않았습니다. 이란은 대통령 위에 종교 지도자인 최고지도가 있고, 이란의 정규군인 육해공군이 있지만 별도로 혁명 수비대가 따로 있습니다. 실제 파워도 대단합니다. 숫자는 적지만 해외 시아파 원조, 이스라엘에 대한 전쟁과 첩보 모두 혁명 수비대가 합니다. 이란의 혁명 수비대가 다 죽어가는 아사드 정권을 군사적으로 도왔습니다. 그리고 지금처럼 이란과 러시아가 협력한 적이 없습니다. 러시아는 중동에서 주도권을 잃지 않고 걸프 협력회의와 아랍리그가 친미이며 수니파가 친미이기에 반미를 하는 바사르 알 아사드와 이란 그리고 중동의 일부 시아파를 결합하기 위해 시리아 아사드 정권을 도와 준 것입니다.

새로운 중동 전선 수니파 벨트 대 시아파 벨트

여기에 최근의 변화가 이란이 혁명 수비대를 앞세워 이라크를 조정하고 있고(시아파 다수의 재집권과 이란 이라크 관계 회복), 쿠르드 족(종교적인 입장이 아니라 독립에 도움을 주는 쪽으로)의 친 이란 정책을 앞세우고 있고, PLO 가 요르단(친미이며 시아파인 사우디와 맹방)에서 레바논과 시리아로 그 근거지를 옮겼을 때 이스라엘이 PLO와 연대하여 세운 헤즈볼라 본부가 있는 베이루트를 폭격하고 전쟁을 일으킵니다. 이때 레바논의 많은 기독교인들이 난민 또는 이민을 떠나면서 레바논의 균형(기독교인대 무슬림의 50대 50원칙)이 깨지면서 전통적으로 레바논이 그래도 이스라엘과의 우호 관계를 유지하려던 것이 바뀌고 시리아와 레바논이 골란 고원 회복 및 헤즈볼라 그리고 하마스 무장 단체의 본거지가 되면서 반 이스라엘에 전선이 형성됩니다.

시아파 벨트: 이란-이라크-러시아-쿠르드족-레바논-시리아-예멘(대부분 시아파 연대)

이 모습을 본 사우디는 이 전선을 깨트리고 시리아를 걸프 협력 회의 구성원으로 넣고자 했습니다. 지금의 우크라이나 사태와 똑같습니다. 러시아는 러시아-벨라루스-우크라이나-조지아 라인으로 나토와 직접 대치하고 않고 쿠션을 만들려는 것과 같고, 나토는 우크라이나를 서방으로 포함하여 몰도바-루마니아-우크라이나 – 폴란드를 연결하는 반 러시아 전선을 구축하려는 것을 보면 이해가 쉽게 될 것입니다.

수니파 벨트: 요르단-이집트-걸프 협력회의 (쿠웨이트, 사우디, 바레인, UAE, 오만, 카타르)에 시리아를 포함시켜 반 이란과 시아파 전선을 구축하기

사우디가 세계에서 가장 무기를 많이 수입하고 군사력을 증대하는 것은 유명합니다. 우리나라 독도처럼 호루무즈 해협의 좁은 통로에 있는 아부무사(Abu Musa)섬과 턴브섬(Greater Tunb와 Lesser Tunb)등 3개 도서가 있는데 원래는 이 섬들은 이란 것이었는데 영국이 지배하면서 행정구역을 UAE로 했습니다. 물론 아랍 에미레이트 쪽에서는 7개 토호국(에미레이트, Emirate) 가운데 샤르자(Sharjah) 토후국과 라스 알 카이마(Ras al-Khaymah) 토후국을 통치하고 있던 카와쉼(Qawasim) 족장이 페르시아인들에게 종종 공물을 바쳤던 역사적 사실에 근거를 두고 자신들의 영토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영국은 이란이 아부 무사 도서를 놓고 샤르자 토후국과 협상하는 데 반대하지 않는다는 대가로 수장들의 영지를 아랍 토후국연합(UAE)에 귀속시키는 데 이란이 인정할 것을 제안하였습니다. 그러나 이에 대해 이란과 라스 알 카이마 토후국이 협상을 거부함으로써 협상이 결렬되었습니다. 그리고 영국이 물러가자 이란이 자신의 영토로 만들어 버리면서 UAE와 이란의 국제 분쟁이 일어납니다. 이 일로 인해 UAE와 이란이 한국과 일본처럼 틀어져 버리죠. 그래도 UN의 대 이란 봉쇄 가운데 무역 봉쇄로 인한 물자교류를 여전히 UAE를 통한 간접 무역으로 이란은 모든 물자를 공수 받고 있습니다. 사우디는 이 때를 놓지 않고 걸프 협력회의와 연대하여 시리아를 끌어 들이고 예멘 내전에서 수니파를 지원하고(이란은 시아파를 지원함으로 내전이 길어지고 있음) 반 이란 전선을 구축하고자 한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입장

앞서 말씀 드린 것과 같이 4차에 걸친 중동 전쟁 가운데 반 이스라엘 전선에 있는 국가들의 전쟁 가능성과 테러 기구를 미리 싹을 자르는 것으로 이스라엘의 정책이 바뀝니다. 자체 방어를 아무리 해도 가자 지구의 하마스와 시리아와 하마스가 미리 짜고 치고 있고, 가자의 헤즈볼라와 레바논의 헤즈볼라 및 신생 무장단체가 긴급히 연대하여 2인3각 경기를 치루고 하니 갈수록 이스라엘이 쓸 수 있는 카드가 줄어 듭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몇가지 중요한 포인트를 반드시 알아야 합니다.

반 이스라엘 테러기구가 옛날에는 PLO 하나이던 것이 요르단을 시작으로 거점을 옮긴 헤즈볼라, 하마스, 그리고 이제는 팔레스타인 자치 기구 내의 팔레스타인 사람들과 연대 된 Palestine Islamic Jihad, Al-Aqsa Martyrs Brigade, Popular Resistance Committees (PRC), Democratic Front for the Liberation of Palestine (DFLP), Popular Front for the
Liberation of Palestine (PFLP), Popular Front for the Liberation of Palestine – General Command (PFLP-GC), Harakat al-Sabireen, Palestinian Liberation Front (PLF) 무장 테러 단체들이 이란과 사우디의 셈법에 따라 반 이스라엘 전선을 구축하고자 합니다. (참조: 무장단체 정보, https://www.jewishvirtuallibrary.org/major-palestinian-terror-organizations) 사우디는 전통적 친미이지만 지금 방향이 바뀌긴 했어도 수니파 주도권과 장자 국가 역할을 자임하려고 합니다. 더불어 사우디는 이스라엘과 관계 개선을 어느 국가보다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중동 평화를 깨트리는 것을 원치 않기 때문입니다. 이런 사우디의 경향은 이집트나 요르단이나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문제는 많은 테러단체들이 웨스트 뱅크, 가자의 하마스와 헤즈볼라, 그리고 PLO 및 신생무장단체들과 좀 더 정교화되고 무기가 놀라울 정도로 현대화 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것을 역추적한 모사드와 이스라엘 정부는 이란이 주도하는 혁명 수비대가 지진으로 인해 온 세계가 구조에만 몰두하고 있는 이 때에 구조 활동을 위해 아사드 정권이 반군 세력과의 한시적 정전을 하고 외국에서 오는 구호대를 열기위해 알레포 공항을 열기에 이릅니다. 이 틈을 타 이란은 시리아와 레바논을 잇는 무장단체들을 지원하고 무장단체 현대화 무기 공습 작전을 추진하고자 한 것입니다. 이전에도 몇차례 이란을 이러한 일을 실제로 추진했습니다. 총이나 재래식 무기는 육로의 복잡한 과정을 통해 공급할 수 있지만 박격포 및 대전차 미사일 그리고 공대공 및 지대공 미사일을 공수하는 일은 항공 수송이 제일 좋습니다. 하마스와 헤즈볼라 및 신생 무장단체들이 시리아 내전을 틈타 시리아에 들어 가서 활동하고 레바논에 이미 근거지를 마련하고 있기에 이스라엘은 활주로만을 정밀 타격한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군 시설물이나 이런 것은 건들지 않고 활주로 즉 Runway 만을 파괴한 것입니다. 잘 알다시피 활주로 복구는 그리 시간이 많이 걸리지 않습니다. 아스팔트를 수리해서 다시 깔면 됩니다. 문제는 타이밍입니다. 이 지진 복구 시기를 벗어나면 미국과 사우디의 감시와 인공위성 및 군사 첩보망에 걸리기에 지진 복구를 빌미로 군수물자 공급이 적기라고 본 것이고 이스라엘은 활주로만을 일부 폭격한 것입니다.

여기에는 어떤 정치적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고 이스라엘은 헤즈볼라와 하마스 기타 무장단체에 이란의 무기가 공수되는 것을 막는 것이고, 시리아의 아사드 정권은 이란의 도움이 끊기기에 겉으로는 인도주의적 처사를 막는 범죄(crime)라는 레토릭을 사용한 것입니다. (참조: 일부 기사 도움이 될 것임, https://www.jpost.com/middle-east/article-733778)

결론적으로

시리아는 성경의 앗시리아(지금의 이라크와도 겹침)입니다. 구약 성경에는 아람으로 자주 나오며 엘리야와 엘리사 때에도 자주 언급됩니다. 열왕기하 6장의 아람 군대의 침임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들을 몰살한 것이 바로 지금의 시리아 땅 즉 아람 사람들이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다마스커스 도상에서 예수님을 만났으며, 다마스커스는 기독교 전통 가운데 가장 중요한 5대 교구 중 하나였습니다. 모하메드는 시리아 정교회를 보고 그것이 기독교 전부인줄 알았고 시리아의 수도원이 지금 모스크의 모델이 되었습니다. 당시 시리아 교회는 대단히 중요하고 중심 역할을 했기에 코란 대부분의 기독교인에 대한 언급은 모하메드가 보았던 시리아 교회와 기독교인들이었습니다. 모하메드로 말미암아 이슬람이 일어나 휩쓸고 갈 때에도 다마스커스와 알레포 지역은 기독교 중심 역할을 천 여년 이상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알 아사드 정권은 수니파도 있고 기독교 지역도 있는 다마스커스도 무너뜨리고 알레포의 기독교 지역도 파괴되도록 방관했습니다. 레바논부터 시리아로 연결되는 하마스와 헤즈볼라의 테러 단체들은 시리아 내전을 틈타 세력 확대를 꾀하였고 이를 방관할 수 없는 이스라엘은 알레포 활주로 일부를 공습하였고 헤즈볼라 군사 시설을 요격하였습니다. 만약 활주로를 파괴하지 않으면 지진 구호대가 있기에 지진 구호물자들이 알레포 공항으로 들어 오는 것을 아사드가 내전을 잠시 멈추고 공수를 허락할 것 보았기 때문입니다. 국제 정보 당국은 이란의 혁명 수비대가 무기물자를 공수하려 함을 인지했습니다. 이스라엘 정부는 이점을 간과하지 않았습니다. 만약 지진 구호대가 떠나면 UN을 비롯한 미국과 사우디의 감시가 철저해지기 때문에 지금 아니면 안된다고 이란은 판단했고 이스라엘 정보 당국은 이를 파악하고 사전 차단을 한 것입니다.
지금은 그런 모습이 보이질 않지만 이사야 19장 24절의 예언처럼 “그 날에 이스라엘이 애굽과 앗수르로 더불어 셋이 세계 중에 복이 되리니”라는 말씀이 성취될 올 것을 바라봅니다.

주님의 나라를 기다리는 김종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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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r. Elijah Kim: 보스톤 소재 파토스 재단 대표(President, Pathos Foundation, Inc.)/ 보스톤 연합예배(Boston United Worship) 및 미스바 기도 대각성 (Boston Mizpah Prayer Awakening)의 주최자(Organizer)/ 필리핀 Grain of Wheat College and Graduate school (Founder and President, formerly Elijah International World Mission Institute) 설립자 및 총장 역임/ 필리핀 한 알의 밀알 교회 개척 및 목사(Pioneer and Overseer Pastor, A Grain of Wheat Christian Ministries, Philippines)/ 글로벌 어반 미니스트리 네트웤 창립 멤버(Founding Member, Global Urban Ministries Network)/ 보스톤을 위한 목회자 기도회 설립(Founding Member, Prayer For Boston)/ 북미 정상 기도회 멤버(North America Prayer Summit) 등 각종 선교 대회 개최 및 인도 ( BAM, CBMC, 백석대학교, 세계한인디아스포라 선교대회)/ 부흥 시리즈(부흥의 역사, 부흥 신학, 부흥의 영성, 부흥과 선교 등) 세미나 및 집회 인도 사역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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