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 성경에서 말한 지혜의 특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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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저널=정이신 목사] 42. 성경에서 말한 지혜의 특징 »
지혜를 얻기 위해서 책만 읽는 게 아니라 신앙적인 실습 꼭 필요…
성경은 하나님이 말씀하신 지혜가 세상에서 통용되는 것과 다른 것임을 강조하기 위해 주님이 주신 숙련된 기술도 지혜라고 합니다(출애굽기 31:6). 사람이 어떤 일을 잘할 수 있도록 기술을 숙련하는 과정에도 하나님이 개입하시고, 이 과정에서 실습하며 기술을 익히는 인간은 주님의 개입을 느끼게 되기에 성경은 이를 지혜라고 합니다…
세상에서는 공자(孔子)나 소크라테스(Sōkratēs)를 지혜의 현인으로 봅니다. 그런데 이들이 이야기한 지혜는 인간 사회에서 지켜야 할 의리(義理: 사람으로서 지켜야 할 도리)입니다. 의리를 지키고 살면 다른 사람들에게 믿음을 줍니다. 그래서 지도자들이 갖춰야 할 덕성에 이들이 말한 가르침을 포함 시킵니다.
세상에서 말한 지혜 중에도 이들과 대척점에 있는 사람들의 가르침이 있습니다.《군주론》을 쓴 마키아벨리(Niccolò Machiavelli)나《손자병법(孫子兵法)》을 쓴 손자(孫子)도 세상에서 말한 지혜를 설파한 사람이지만, 공자나 소크라테스와 대척점에 있는 가르침을 말했습니다. 물론 그들이 말한 지혜는 앞에서 말한 이들과 달리 덕성과는 무관한 것이고, 오직 자기 목적을 효과적으로 달성하기 위한 수단과 방법에 관한 것입니다.
세상에는 공자나 소크라테스의 가르침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일이 너무 많습니다. 그래서 덕성을 이야기하면서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목표를 이뤄내는 냉혹한 기회주의자의 지혜를 세상 사람들이 같이 요구합니다. 이런 현실은 과학자가 이론과 실제 사이에서 고민하는 것과 비슷합니다.
이론적으로는 틀림없이 될 것 같지만, 실제로 실험해 보면 안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또 이는 자연과학과 공학의 차이이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과학에서 이론으로 내놓은 방법인데 그게 실현은 가능하지만, 공학적으로 봤을 때 경제성이 뒷받침되지 않아 폐기되는 게 있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이 말씀하신 지혜가 세상에서 통용되는 것과 다른 것임을 강조하기 위해 주님이 주신 숙련된 기술도 지혜라고 합니다(출애굽기 31:6). 사람이 어떤 일을 잘할 수 있도록 기술을 숙련하는 과정에도 하나님이 개입하시고, 이 과정에서 실습하며 기술을 익히는 인간은 주님의 개입을 느끼게 되기에 성경은 이를 지혜라고 합니다.
성경에서 말한 이런 지혜는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가는 것과 비슷합니다. 바다를 잘 알아 숙련된 기술을 가진 항해사와 그런 기술이 없이 책만 읽고 기술을 머리로 이해한 항해사는 천지 차이가 납니다. 폭풍이 불고 거친 파도가 일어날 때 배에 타고 있는 사람들을 안전한 곳으로 이동시킬 수 있는 것은 숙련된 기술을 가진 선장이나 항해사입니다.
그래서 성경에서 말한 지혜를 얻기 위해서는 책만 읽는 게 아니라 신앙적인 실습이 꼭 필요합니다. 신앙적인 실습을 하지 않으면 하나님을 믿기는 하지만 결국 자기 생각이나 판단으로만 살아갑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사역을 한마디로 표현해 ‘신적 수동태(divine passive)의 영성’이라고 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스스로 능동적 입장에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는 순종이었다는 뜻에서 이런 표현을 씁니다.
그런데 인간은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해서 어떤 일을 결정하는 것을 하나님이 자신에게 주신 최고의 능력이라고 착각합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의 결정에 따라 움직이는 피동적인 입장을 좋아하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예수님이 걸어가신 길은 이와 다른데, 성경은 그분이 하셨던 일을 지혜로운 것이라고 하지 인간의 능동적 결정을 지혜롭다고 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인간의 능동적 행위와 예수님이 보여주신 신적 수동태의 영성 사이에는 어떤 상관관계가 있을까요?
성경은 하나님이 우리를 무시하시거나 인간의 판단이 아무 소용이 없어서 수동태의 길을 주시는 게 아니라고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신적 수동태의 길을 제시하시는 이유는 우리가 아직 어리고 세상이 강하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우리가 하는 사고에 한계가 있기에 일정 수준을 넘어서지 못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신적 수동태의 길을 우리에게 제시하십니다. 이는 야생 생태계를 봐도 알 수 있습니다. 사자, 호랑이 같은 맹수일지라도 어린 새끼 때는 자신을 스스로 보호할 능력이 없습니다. 그래서 맹수일지라도 새끼 때는 다른 짐승들의 밥이 됩니다. 만약 새끼 맹수들이 자신들이 맹수라고 능동적으로 활동하겠다고 나서면 모두 다른 짐승들의 밥이 됩니다.
하나님 앞에서 우리가 능동적으로 무엇을 하려면 그리스도에게까지 다다를 정도로 자라야 합니다(에베소서 4:15). 그 이전까지는 불안합니다. 따라서 이때까지는 겸손하게, 피동적으로 하나님의 지혜를 따라가는 게 좋습니다.
이것은 마치 과학자들이 어떤 이론을 발표하기 전에 수없이 실험해서 완전한 기술을 습득하는 것과 같습니다. 아무런 실험도 없이 자기 머리만 믿고 세상으로 뛰어드는 것은 맹수 새끼가 아무것도 모르면서 정글이나 초원으로 달려가는 것과 같습니다. 이럴 때 운이 아주 좋은 경우에만 맹수 새끼가 살아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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