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인에 의해 로마인을 위한 로마인의 도시 고린도

[미션저널=김수길 선교사] 그리스 이야기(7)  » 로마인에 의해 로마인을 위한 로마인의 도시 고린도   »

사도바울은 고린도에서 로마를 보았고 로마의 많은 것들을 체험하였다

사도바울은 고린도에서 로마를 보았고 로마의 많은 것들을 체험하였기에 그는 바른 길을 제시하고 싶었고, 바르게 살라고 권하고 싶었다. 그래서일까. 바울 사도는 2차전도 여행과 3차 전도여행 중 고린도에서 약 2년간의 사역을 끝내고 고린도의 외항 겡그리아에서 초연한 모습으로 머리를 깎아 준 베뵈 집사에게 쥐어준 편지는 고린도 교회에 보내는 편지가 아니라 한 번도 가보지 않은 바다 건너 로마에 보내는 편지를 쓴 것이었다…

사도 바울의 숨결이 서려있는 고린도는 현지인들의 언어로 ‘아카이아 고린도’(αρχαία Κόρινθος)라고 부르는 구 고린도이다. 바울사도의 고린도로 가려면 겨울에도 온화하고 아름다운 신 고린도에서 차로 약 20여 분간 시지퍼스의 신화가 숨 쉬는 산 쪽으로 이동을 해야 한다. 관광객이 뜸한 유적지 입구는 작은 산촌 마을과 다름이 없는 풍경이다. 이곳을 찾는 이들을 위한 작은 음식점들과 민예품 가게들을 힘들게 지나면 오랜 세월의 무게에 흐트러진 그림 같은 유적들이 고대 도시임을 증명이나 하듯이 이곳을 찾는 순례자들을 맞이한다.

유적지 안으로 들어가면 입구 가까운 곳에 고린도 박물관이 있다. 성경에 인용된 청동거울과 그리고 신석기 시대로부터 로마시대에 이르는 도자기들, 그 중에는 의료의신 아스클레피오스(Ἀσκληπιός) 에게 드리는 여러 인체 모양의 도자기들이 보는 이들의 눈길을 잠시 붙잡는다. 옆방에는 고린도에서 발굴된 동상들이 있는데 대부분 시저와 옥타비아누스가의 동상들이다. 동상들을 보노라면 이들의 영향력이 얼마나 큰 것인가를, 오랜 세월이 흘러도 이들은 고린도의 주인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박물관 작은 안뜰에도 많은 비석과 동상들이 전시되어있다. 이 가운데서 고린도의 유대인 공동체가 존재했음을 알리는 유대인들의 묘비명과 메노라가 조각된 비석 등이 공간 한 쪽을 채우고 있다.

박물관 옆에는 옥타비안 황제의 신전이 아칸서스 문양의 전형적인 고린도 양식으로 나지막하게 자리하고 있지만, 고대 고린도가 가장 잘 나가던 주전 5세기에 세워진 우뚝 솟은 아폴론 신전에는 비교가 되지 못한다. 지금은 무너지고 일곱 개의 기둥만 남았지만 아주 오래전에 이 아폴론 신전은 대리석으로 지은 다른 신전과 다르게 시멘트를 사용하여 큰 구조물로 건축되었다.

옥타비아누스는 아테네가 아닌 고린도를 로마의 속주 아가야 지방의 수도로 만들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고린도 양식이라는 말은 로마시대 이전 고린도 사람들의 문화와 생활방식이 아니라 이 당시 고린도에 생활했던 로마인들의 미술과 건축양식을 가리키는 말이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고린도에 도착 할 즈음 고린도는 로마인에 의해 로마인을 위한 로마인의 완벽한 도시로 탈바꿈 되어 있었다. 로마의 도시로 거듭난 것은 도시의 모양뿐 아니라 그 속에 사는 고린도사람들의 의식구조와 행동 까지도 완전히 로마화가 되었다.

동서양에서 몰려든 다양한 인종과 많은 사람들로 항상 붐비는 이 도시는 심한 빈부의 차이와 바울사도가 교회 안에서 여성도 들에게 머리에 수건을 씌울 정도로 사치와 향락이 차고 넘쳐흘렀다. 뿐만 아니라 당시 로마에서 유행하던 디오니소스 축제 (Φεστιβάλ Διογένεσης) 라틴어로 바커스 축제등 퇴폐적인 이교 행사와 음란한 생활 윤리는 고린도 사회 뿐 아니라 교회 안에도 그대로 수용되어 의붓어머니와 동거해도 탓하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문란했다.

사도바울은 고린도에서 로마를 보았고 로마의 많은 것들을 체험하였기에 그는 바른 길을 제시하고 싶었고, 바르게 살라고 권하고 싶었다. 그래서일까. 바울 사도는 2차전도 여행과 3차 전도여행 중 고린도에서 약 2년간의 사역을 끝내고 고린도의 외항 겡그리아에서 초연한 모습으로 머리를 깎아 준 베뵈 집사에게 쥐어준 편지는 고린도 교회에 보내는 편지가 아니라 한 번도 가보지 않은 바다 건너 로마에 보내는 편지를 쓴 것이었다.

유대인들의 고소로 신임총독에게 끌려갔던 바울 사도의 재판자리에 서면 우리의 믿음이, 신앙이 무엇인가 숙연히 생각하게 된다. 그래서 이 도시, 고린도의 주인은 역사 속에 명멸해 간 수많은 동상들의 주인공들이 아니라, 초라한 비문 하나 남아 있지 않지만 직접 텐트를 만들며 그리스도의 복음을 쉰 목소리로 유대인들에게 전도한 사도 바울과 수많은 그의 동역 자들 인 것이다.

고린도 광장에는 이 비마가 지금도 남아있고 북서쪽 상점들의 유적지엔 아주 오래 전에 벽에 새겨둔 십자가가 나타난다. 오랜 세월 전에 새겨진 십자가들은 많은 건물 주인들이 바뀌면서 석회석 벽화에 숨죽이고 있다가 근래에 이 세상에 나타난 것이다. 박물관의 동상들과 비교할 때 너무도 작고 초라하게 보이지만 나의 눈에는 어느 무엇보다도 크고 충격적인 조각이자 흔적이었다. 따라서 세월의 생체기 같은 신앙의 흔적들과 징표들은 고린도는 바울사도의 애증이 담겨진 바울의 도시이다. 그리고 오늘 우리의 자화상이 된 도시이다. 옛날의 명성을 뒤로 하고 지금은 흩어진 돌조각으로 남아있는 고린도, 그러나 그 퇴락 속에서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의 모습이 어림은 어인일인가?

고린도를 생각할 때 마다, 고린도는 태어나면서 로마시민권자인 사도 바울을 위한 로마인에 의해 로마인을 위한 로마인의 도시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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