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 하나님의 백성에게만 있는 목자의 복
[교육저널=정이신 목사] 52. 하나님의 백성에게만 있는 목자의 복 »
지혜를 사랑해야 하는 이유, 하나님이 역사 하시는 통로기 때문…
<4:2>에는 선한 도리와 교훈이 나옵니다. 이는 우리가 세상을 살아갈 때 지켜야 할 일정한 질서가 있다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이 질서를 아는 게 너무 어렵습니다. 왜냐면 이것은 그냥 암기한다고 해서 알 수 있는 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하나님이 원하시는 질서는 약육강식(弱肉强食)의 질서가 지배하는 세상이 원하는 것과 달리 양이 되는 것입니다…
양에게는 목자가 필요하지만, 늑대에게는 필요 없기에 하나님은 우리에게 목자가 필요한 양이 되라고 하십니다. 우리가 양이 돼서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양에게는 목자가 있기에 양이 된 후에 목자의 복을 이 세상으로 가져와야 합니다. 늑대에게 없는 목자의 복을 이 세상으로 가져와 나누며 살기 위해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양이 돼야 합니다.
솔로몬이 지금 이렇게 <잠언>을 말하고 있지만, 그도 예전에는 어린아이였습니다. 하나님의 복을 받은 사람도 처음에는 이렇게 조그맣게 시작합니다. 이렇게 연약한 상태를 거친 사람은 자신이 원래부터 강한 사람이 아니었음을 압니다. 그래서 늘 겸손하게 자기가 처음 출발할 때 주어졌던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합니다.
만약 이때 처음부터 자신은 강한 존재였다고 주장하면서, 자기는 연약했던 적이 없었다고 하면 그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지혜가 더 역사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연약한 상태를 거치면서, 자신이 처음부터 강한 존재가 아니었음을 인정하면서 몸에 있는 죄의 혈기를 다루는 방법을 배우게 됩니다.
인간이 연약한 상태를 거치지 않는다면, 자신의 몸에 있는 죄의 혈기를 다루는 법을 배울 수 없습니다. 어린아이 시절도 없이 곧바로 성인이 된 이가 어떻게 어린아이의 생각을 이해하겠습니까? 우리는 이런 과정을 통해 신앙도 성장하는 것임을 배우고, 내가 가진 모든 게 하나님의 은혜로 차고 넘치게 됐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래서 바울은 오히려 자신이 가진 연약함을 자랑하겠다고 했습니다. 그 연약함 속에 자신을 이끌어 가시는 예수님의 은혜가 드러났기 때문입니다(고린도후서 12:9).
고대 이스라엘에서 부모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하는 통로였습니다(1:8). 그래서 아버지가 신앙에 관련된 가르침을 자식에게 들려주는 장면이 <4∼5절>에 묘사돼 있습니다. 부모가 진심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모습을 보이면, 그것은 자녀들에게 아주 강한 인상으로 남습니다.
‘기도로 키운 자식은 망하지 않는다’란 말처럼 부모가 자식에게 보여 준 믿음은 결정적인 순간에 자식을 바른길로 돌이키는 촉매제가 됩니다. <4:4>은 죄에 빠지지 말라는 경고가 담긴 명령형 문장입니다. 성경에서 죄를 멀리하거나 죄에 빠지지 말라는 말씀은 모두 명령문으로 돼 있습니다. 인간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게 죄에 빠지는 것이기에, 죄에 관한 하나님의 말씀은 늘 강한 경고입니다.
<4:5>을 다르게 표현하면 지혜와 명철을 배우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지혜는 인간이 혼자 명상한다고 배울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성경에서 말한 진리는 반드시 가르쳐 주는 존재가 있기에, 성령님의 인도를 따라야 제대로 배울 수 있습니다.
진리를 배울 때 가르쳐 주는 주체가 하라는 대로 하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하면 내면이 황폐해져서 제대로 못 배웁니다. 그래서 <4:5>은 “어기지 말라”라고 했습니다. 이는 진리를 가르쳐 주는 주체가 말하는 순서와 방법을 어기고 인간이 생각하는 순서대로 배우지 말라는 경고입니다.
진리를 배울 때는 성경이 말한 순서를 따라야 합니다. 세상의 가르침은 일정한 때까지는 배웠다가 그 이후로는 자신의 독창적인 방법으로 헤쳐나가야 합니다. 그러나 진리는 그렇지 않습니다. 평생을 배워도 다 배울 수 없는 게 성경의 진리기에 철저하게 성경에서 말한 순서를 따라야 합니다.
<4:6>에 지혜의 중요성이 나옵니다. 이 말씀에서 지혜를 하나님으로 바꿔서 생각해 볼 수도 있습니다. 성경에 따르면 인간이 하나님을 버리지 주님이 인간을 버리신 적이 없습니다. 따라서 “지혜를 버리지 말라”라는 말은 하나님의 은혜가 오는 통로를 인간더러 막지 말라는 뜻입니다.
인간이 지혜를 사랑해야 하는 이유는 지혜가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통로기 때문입니다. 사랑은 히브리어로 ‘아헤브’인데 히브리어에서 이 말은 어떤 사람이 좋거나, 올바르게 평가하거나 인정하는 것에 이끌리도록 하는 자발적인 힘입니다.
사랑이 자발적인 힘이기에 사람은 이 힘에 제어를 받아 자기 자신을 주거나 혹은 사랑의 대상을 확고히 붙잡게 되고, 사랑하는 대상에게 즐거움을 줍니다. 즉 히브리어에서 ‘지혜를 사랑한다’란 말은 ‘지혜를 즐겁게 여기고 확고히 붙잡는다’란 뜻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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