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 내가 원하는 속도로 가니 더 늦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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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저널=정이신 목사] 55. 내가 원하는 속도로 가니 더 늦었다 »
부모는 하나님의 말씀이 전달되는 통로…
<4:10>은 십계명의 제5계명인 ‘부모를 공경하라’에 가장 가까운 말씀입니다. 당시에 부모는 하나님의 말씀이 전달되는 통로였습니다. 하나님은 부모가 가르쳐 주는 주님의 말씀을 겸손하게 배우는 게 가나안에서 오래 살 수 있는 비결이라고 하셨습니다(신명기 5:16)…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가나안에서 잘 살기 위해 외국에 나가서 어려운 학문을 배워 오라고 하시지 않으셨습니다. 부국강병을 위해 세상에서 뛰어나다는 기술이나 무기를 가지라고 하지도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이 주님의 말씀을 배우고 잊지 않으면, 가나안에서 오래 살면서 복을 누리게 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이는 오늘날의 시각으로 봐도 아주 평범한 말씀입니다. 너무 평범했기에 이 말씀은 부국강병을 추구했던 고대 이스라엘 지도자들의 생각과 아주 달랐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은 끊임없이 하나님과 충돌했습니다.
동양고전《채근담(菜根譚)》에 담백한 맛이 진짜 맛이라는 말이 있습니다(醴肥辛甘非眞味 眞味只是淡 神奇卓異非至人 至人只是常). 세상 사람들은 감미로운 술과 기름진 고기를 원하며, 매운맛이나 단맛, 짠맛과 같은 자극적인 맛을 더 원합니다. 그러나 이런 맛의 음식을 하루도 안 빠지고 계속 먹으라고 하면 금방 질려 버립니다.
예를 들어 하루 세끼를 모두 뷔페로 먹으라고 하면 처음에는 좋지만, 며칠만 지나면 힘들어서 못 먹습니다. 이에 반해 우리가 먹는 밥처럼 아무리 먹어도 물리지 않는 담담하고 무미한 맛은 신기하게도 전혀 질리지 않습니다. 자극적인 맛은 화려하고 달콤하나 오래가지 못하고 수수하고 담백한 맛은 아무런 맛도 없지만 오래 갑니다.
하나님은《채근담》에서 말한 것처럼 평범한 가르침을 통해 고대 이스라엘이 계속 번영할 수 있는 길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고대 이스라엘은 신광야 시절부터 아주 당당하게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며 따르지 않았습니다.
<4:11>에서 말한 “지혜로운 길과 바른길”은 구원을 위해 가야 할 길입니다. 지혜로운 길은 가르쳤고, 바른길은 이끌었습니다. 가르치고 이끄는 사람은 양이 어디로 가야 하는지 압니다. 목자가 양을 데리고 갈 때는 어느 길로 갔을 때 위험한 짐승이 나오는지 알기에, 그 길을 피하려고 일부러 절벽에 난 길이나 가시밭길로 가기도 합니다.
<신명기 1:33>에서 하나님은 가나안의 사정을 보시고 히브리민족의 진군 속도를 결정하셨다고 했습니다. 광야에 있는 히브리민족은 자신들이 가려고 하는 가나안의 사정을 전혀 모릅니다. 그러니 언제 어느 정도의 속도로 가는 게 좋은지 알지 못합니다. 하나님은 그걸 아시는 분이기에 히브리민족이 가야 할 가나안의 사정에 맞춰 이들의 진군 속도를 조절하셨습니다.
중요한 것은 내가 생각하는 속도로 가면 이상하게 더 늦게 도착하더라는 것입니다. 목적지에 도착해 보면 늘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길과 속도가 가장 이상적이라는 판정이 나옵니다. <4:12>에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 이유가 나와 있습니다. 걸을 때 걸음이 막히지 않고, 달려가도 넘어지지 않기에 하나님이 인도하시면 더 빠릅니다.
미국의 서부 개척 시절 마차로 서부로 이동했던 사람들에게 있었던 일입니다. 한 무리는 주일을 지키기 위해 일주일에 하루를 꼭 쉬었습니다. 그러나 다른 무리는 쉴 틈이 어디 있느냐고, 빨리 가서 자신들이 원하는 땅을 더 많이 얻고 싶다고 쉬는 날도 없이 마차를 몰았습니다. 그런데 서부에 먼저 도착한 사람들은 일주일에 꼭 하루를 쉬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일주일에 하루를 쉬면서 서부로 갔던 사람들은 자신들이 많이 뒤처질 것으로 생각했지만, 신앙을 위해 좋은 땅을 포기하겠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서부에 이들이 도착한 후 한 달쯤 지나자 비로소 일주일에 하루도 쉬지 않고 먼저 갔던 무리 중에 많은 이가 병든 채 도착했습니다. 일주일에 하루는 예배하는 날이라고 쉬면서 왔던 이들이 그렇게 하지 않는 이들보다 더 빨리 서부에 도착했습니다. 이런 역설이 우리 삶에 많이 나타납니다. 그래서 길은 우리가 정하는 것보다, 하나님이 정해 주신 길이 더 낫습니다.
세상에는 죽음의 길로 이끄는 죄가 널리 퍼져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훈계(무사르)가 생명과 직결됩니다(4:13). 훈계는 어머니가 아이에게 심부름을 시킬 때 어디에 가서 무엇을 사 오라고 써 준 쪽지와 같습니다.
쪽지 없이 머리에 기억하고 갈 때도 있지만, 가다가 잊어버리는 수가 있기에 이왕이면 쪽지에 어디에 가서 무엇을 사 올 것인지 제대로 써 가는 게 좋습니다. 이런 역할을 하는 것이 훈계입니다. 훈계를 써 놓은 글을 잊어버리면,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심부름을 다녀왔는데 말씀과 달리 엉뚱한 것을 사 옵니다. 이러면 참 거시기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기는 했는데 엉뚱한 것을 사 왔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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