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방기독교의 십자가 연구-4
[역사저널=김규동 박사] 동방기독교의 십자가 연구-4 »
3. 동방기독교 십자가의 변화(the change of the cross of Eastern Christianity)
景敎 십자가 변화에 대해 우선 그 형태를 탐구하는 것이 중요하다. 앞서 언급했듯이, 景敎가 사용했던 십자가들은 사도 도마 십자가들과 연결 선상에 있는데, 인도 마드라스(Madras)에서 발굴되어 나온 사도 도마 십자가를 통해 탐색할 수 있다…
景敎 십자가의 변화과정을 연구함으로써 내몽골 지역에 있는 景敎 문화를 이해할 뿐만 아니라, 동·서양 문화교류의 그 신비한 매력을 경험 할 수 있다. 내몽골 지역에 있는 景敎 십자가의 하단부에는 유독 아름답게 조각된 연꽃이 대체적으로 많았는데, 이런 다양한 신앙요소를 담은 십자가들은 분명히 景敎 십자가 최초의 모습은 아니라는 것이다.
景敎 십자가 변화에 대해 우선 그 형태를 탐구하는 것이 중요하다. 앞서 언급했듯이, 景敎가 사용했던 십자가들은 사도 도마 십자가들과 연결 선상에 있는데, 인도 마드라스(Madras)에서 발굴되어 나온 사도 도마 십자가를 통해 탐색할 수 있다. 이 비석(십자가)은 마일라포르(Mylapore)에서 발굴되어 나온 것인데, 당시 포르투갈인이 1547년에 발견했을 때 물이 끊임없이 베어 나왔으므로 “피 흘리는 십자가”라고 부르기도 했다.
이 십자가 비석은 고대 페르시아어와 고대 시리아어로 구성된 6세기에 속한 유물이며, 좌우에 새긴 새들은 성령의 비둘기를 상징한 것으로 십자가 하단에 연꽃을 새긴 전형적인 꽃봉오리식 십자가였다. 그렇다면 사도 도마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우신 열두 제자 중에 한 명으로, 사도 도마 십자가 역시 유구한 역사적 가치가 있는 것으로 추측해 볼 수 있다.
1885년 세미레치예(7河) 지역에서 동방기독교가 사용했던 십자가가 발굴되어 나왔으며, 7河 유역에서 수천 개의 고대 무덤군에서 다량의 석비들이 발굴되어 나왔다. 이 고묘들 중 가장 오래된 것은 858년대 것이다. 실제로 이런 석비들은 다 자연석으로 제작되었으며, 뾰족한 돌을 통해 십자가와 고대 시리아 자모와 고대 돌궐어로 새긴 것으로 특징은 하단부에 연꽃 받침이 없을뿐더러 등불 장식조차 없는 것이다. 이 십자가의 형태는 사에끼·요시로우(佐伯好郎)가 기록한 7호 묘비가 그 예이다.
이것은 정방형 십자가로 각 부분에 세개의 보석 같은 원형 구슬이 있고 십자가 중심부에 또 하나의 원형이 새겨 있어, 이런 양식은 흔치 않는 것으로 동방기독교 초기에 사용했던 십자가와 흡사하다.
또한, 우즈베키스탄의 사마르칸(Samarkand)에서 발굴되어 나온 景敎 묘비석과 메소포타미아 근처에 있는 마엘마대 사원에 남아있는 라반·바·사우마(Rabban Bar Sauma) 등의 묘지의 십자가에 새겨진 원형 구슬 형태 외에 연꽃이나 등불 같은 장식도 없었다.
이상 각지에서 발견된 것 외에 중국 내에 있는 신강 고창 景敎사원과 돈황에서 발견된 벽화에 그려진 십자가 하단부에는 연꽃과 화창(火窓) 같은 장식이 전혀 없었다.
결론적으로, 동·서양의 십자가 구분의 가장 명확한 특징은 연꽃 장식이 있느냐 없는냐로 구별할 수 있고, 십자가 네 부분에 보석과 연꽃 장식이 없다면 그것은 서양 십자가일 것이며, 반대로 연꽃 장식이 있는 것은 중국 십자가나 동방기독교 십자가라 할 것이다. 그래서 연꽃은 동양 십자가와 서양 십자가를 구별할 수 있는 중요한 특징이 되었다.
먼저, 북경에 있는 방산구(房山區) 삼분산(三盆山) 景敎사원 십자사(十字寺)에서 발견된 五代 시대에 속한 두 석비를 연구해보자.
북경 방산구에서 발견된 십자가는 헬라식 십자가다, 어떤 것들은 좌우편에 방울이 세 개 혹은 한 개로 장식되어 있었고, 사면에 한 보석이 장식되어 있으며 십자가 밑에 꽃받침이 새겨져 있었는데 내몽골 지역에서 발견된 연꽃 받침을 새긴 것과 같지 않다는 것이 마치 대진경교유행중국비와 비슷하다는 것이다.
또 개산림(盖山林)에게 따르면 북경에 있는 경마장 근처에서 십자가가 새겨진 송원 시대에 속한 景敎 석판이 발굴되어 나왔고, 이 석판 중앙에는 큰 십자가가 새겨 져 있는데, 석판 좌우의 옆면에 화창으로 둘러싸였고 십자가 밑에는 연꽃 받침이 있는데 파손이 심해서 정확히 구별할 수 없다. 하지만 양쪽에 있는 십자가 좌우편에 구름이 올라가는 형상의 무늬가 새겨져 있지만 이런 무늬는 대진경교유행중국비 중에 언급된 십자가 무늬와 비슷하다.
중국 북방에 있는 景敎 십자가와는 달리, 江南 지역에 있는 景敎 십자가는 사에끼·요시로우(佐伯好郎)의 경교지연구(景敎之硏究)에서 언급된 강소성 양주(揚州) 회교사원에 있는 景敎 석비의 십자가는 헬라식 십자가에 속한 것으로, 밑의 연꽃 받침과 양쪽에 화창으로 테두리를 장식해 묘비의 양식과 치수가 내몽골 지역에 있는 것과 거의 차이가 없었다.
굳이 차이가 있다면, 양주에 있는 景敎 석비에 장식된 연꽃은 좀 더 크고 입체적이며 사실감 있게 다듬어졌다. 그리고 등불창 장식 차이는 양주에 있는 화창의 테두리 둘레는 단층으로 뾰족한 것으로 내몽골 지역에 다소 많이 출토되었다. 그리고 양주에 있는 景敎 석비가 북송 시기에 속한 것이고 내몽골 지역에 있는 景敎 석비와 상당한 관계가 있다는 것이다.
복건성 천주(泉州)에서 발견된 십자가가 새겨진 景敎 석비 중에서 십자가 양식으로부터 십자가 장식 형태까지 다 양주에서 발견된 것과 같은데 화창의 테두리 둘레는 뾰족한 단층이 아니라 다층인 것으로, 내몽골에 있는 景敎 석비 무늬와 비슷한 것이다. 예를 들어 천주에 있는 수로사(水路寺)에서 발견된 가지와 잎을 가진 연꽃 양식이 바로 양주에서 발견된 잎을 가진 연꽃 양식과 비슷하고 천주 남읍(南邑) 서산(西山)에서 발견된 십자가가 내몽골 지역에서 발견된 것과 비슷하다. 이에 따라서 천주로부터 양주, 내몽골까지 그곳에 있는 景敎 석비들이 아마 같은 양식에서 변화된 것임을 알 수 있다.
최초 대진경교유행중국비의 십자가에서부터 북경 방산에 있는 십자가까지 이는 모두 헬라 십자가 양식에 속한 것이며, 각 부분에 보석과 같은 세 구슬이 새겨져 있 고, 십자가의 사면에 작은 옥구슬 같은 원형이 새겨져 있으며, 하단에 연꽃 받침대가 있다는 것이다. 천주와 양주, 그리고 내몽골 지역에 있는 십자가에는 보석 장식은 없지만, 그보다 연꽃과 화창으로 테두리 장식을 더한 것이다.
이를 통해 중국 景敎 십자가의 변화 추이를 잘 알 수 있다. 당대부터 원말까지, 초기 십자가는 원형 구슬장식은 있었고 화창으로 테두리 무늬가 없었지만, 후일 구슬장식이 없고 화창 무늬가 있는 십자가로 변형되었다. 그러나 그 전체적으로 모든 과정에 시종 연꽃 받침이 있었다. 간혹 달라 보이는 것이 있다면 아마 연꽃 사의(寫意)와 사생(寫生)의 변화로 인한 것이었다.
1983년 내몽골 적봉(赤峯) 송산구(松山區) 성자향(城子鄕) 화진구문촌(畵進溝門村)의 한 농민이 길이 47.2cm, 너비 39.5cm, 두께 6cm인 묘비석 한 조각을 발견했다. 벽돌의 정면에 글자가 있고 중앙 상단에 대형 십자가 문양이 있으며, 십자가 아래는 연화좌대가 있다. 이같은 문양은 천주, 서안, 방산, 양주, 돈황, 내몽골 아오룬수무(敖倫蘇木) 고성 등 지역에서도 발견됐다. 십자가 가운데 원 안에 매화꽃 무늬가 있었다. 십자가와 연화, 매화의 결합은 곧, 서방기독교와 중국불교, 중국문화와의 상호융합을 보여주는 실제적 증거이다.
십자가 상단 양쪽에 각각 시리아문자가 한 줄씩 있고 하단 양쪽에는 각각 회홀문자가 네 줄씩 있다. 시리아문자는 구약 시편 제34장 6절에 나오는 “hur lwteh/sbaru beh”이며 ‘삼가 바라고 믿었다’는 뜻이다. 동일한 내용의 경교 묘비석은 북경의 방산에서도 발견되었다. 회홀문자 부분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그리고 내몽골 지역에 있는 景敎 석비의 명문(銘文)과 천주와 양주에 있는 景敎 석비의 명문, 십자가 등의 무늬가 닮은 점을 통해, 아마도 중국 천주와 양주에 있는 景敎 묘비의 주인이 북방의 위구르족이고, 중국 남방에 있는 景敎 석비는 대체로 북방에 있는 景敎로 인해 유입된 것이다.
이상 도표를 통해 서아시아와 중앙아시아, 그리고 중국의 북방과 남방에서 발견된 각종 景敎 십자가를 비교연구 한 후, 아마 초보적인 결론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다. 먼저 십자가에 연꽃 장식이 있는지 없는지와 십자가 사면에 구슬 장식이 있고 없고의 여부를 통해 서아시아와 중앙아시아 그리고 동아시아의 차이점을 발견할 수 있게 된다.
동아시아 십자가는 당대로부터 오대까지 보석 구슬장식을 했으며, 오대 후 송·원 시기에 화창으로 테두리 장식을 가진 십자가를 주요한 특징으로 삼았고, 또한 연꽃받침이 있었다.
이상으로, 景敎 십자가는 중국 당대부터 오대 시기까지 중앙아시아 십자가와 동아시아 십자가의 특징을 가진 과도기였다고 말할 수 있고, 송·원 시기에 불교와 기독교 문화에 영향을 받아 동아시아 십자가가 변형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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