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6. 그건 경험하지 않아도 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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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저널=정이신 목사] 56. 그건 경험하지 않아도 되는데 »
저들의 길을 피하라 한 것은 무서워서 아니라 더럽기 때문…
악독한 사람이 제시하는 길이 어떤 길인지 꼭 경험해 봐야겠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습니다(4:14∼15). <잠언>이 저들의 길을 피하라고 한 것은 무서워서 그런 게 아닙니다. 저들이 제시하는 길에는 온갖 올무와 오물이 가득합니다. 그래서 저 길로 가면 꼭 후유증이 생깁니다…
악독한 사람의 길을 굳이 경험해 봐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겨울철에 난방을 위해 피운 난로가 벌겋게 달아올랐는데 그게 얼마나 뜨거운지 손을 대봐야겠다고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만약 여러분이 부활의 은혜로 신령한 몸을 얻었는데, 그때부터 회개해야 한다면 어떻게 하렵니까? 천국에 도착했는데 죄악으로 가득한 몸을 지니고 있다면 어떻게 하렵니까?
하나님이 말씀하신 목적지에 도달했으면, 이제 본격적으로 주님의 일을 해야 합니다. 그러나 악독한 사람이 제시한 길로 가면 목적지에 도착해서도 후유증이 있어서 제때 해야 할 일을 못 합니다. 앞의 예화에 나온 미국 사람들처럼 그토록 원했던 서부에 도착했는데 곧바로 이동 중에 앓았던 병세가 더 나빠져서 죽습니다.
<4:16∼17>에는 <4:14>에 나온 악독한 사람의 특징이 나옵니다. 저들은 악을 행하는 게 본업이기에 악한 일을 저지르지 않고는 잠을 이루지 못합니다. 주로 이런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기 어렵다고 하는데, 거꾸로 주님의 말씀을 어기며 살아 보십시오. 매일 도둑질하며 사람을 속이고 사는 게 더 어렵습니다.
실제로는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 게 어려운 게 아니라 그 반대로 어기면서 사는 게 더 어렵습니다. 그러나 사탄은 이것을 거꾸로 생각하도록 환각용품을 마구 뿌려댑니다. 만약 이 환각용품에 중독되면 악인이 됩니다. 사탄이 준 환각용품에 중독된 채 굳이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면서 살겠다고 용을 쓰는 사람이 <잠언>에서 말한 악독한 사람입니다.
악독한 사람은 악한 방법으로 빵을 얻고 폭력으로 포도주를 빼앗습니다. 저들이 쓰는 방법은 하나님 나라의 질서와 다릅니다. 그런데도 저들은 이런 방법을 계속 씁니다. 이는 결국 자신이 자신의 주인이 되고 싶다는 표현입니다. 하나님이 제시하신 방법으로 살면 피조물이고 죄인이라는 것을 고백해야 하기에 자신이 자신의 주인이 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저들은 계속 이렇게 삽니다. 이에 반해 의인은 믿음으로 삽니다. 그런데 의인의 길은 한꺼번에 확 밝아지지 않습니다. 의인의 길은 태양이 조금씩 환하게 떠오르듯이 가면서 차츰차츰 밝아집니다(4:18). 그런데 가면서 조금씩 밝아지는 길이 가면서 더 어두워지는 길보다 훨씬 더 낫습니다.
가다가 넘어졌는데 어디서 무엇에 걸려 넘어졌는지 모르면 또 넘어지게 됩니다. 사이비ㆍ이단을 나온 사람들이 다시 다른 사이비ㆍ이단에 빠지는 이유는 자신이 어디서 무엇에 걸려 그곳에 빠졌었는지 잘 모르기 때문입니다. 악인의 길은 이런 특징이 있습니다(4:19). 내가 무엇에 걸려 넘어졌는지 알지 못하기에 또 그 장애물에 걸립니다.
초등학생 때 했던 실수를 대학생 때도 하고 있으면 안 됩니다. 그리고 실수를 반복하지 않으려면 무엇 때문에 실수했는지 알아야 합니다. 왜 그런 실수를 했는지 모르면 예전에 내가 넘어졌던 그 돌부리에 다시 걸려 넘어집니다.
<4:20>에 해당하는 이야기입니다. 예전에는 하나님의 말씀이 잘 들리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잘 들립니다. 이유가 뭘까요? 세상의 칭찬을 좋아하다 보면 하나님의 말씀이 잘 들리지 않습니다. 세상의 칭찬과 하나님의 말씀이 같이 있을 때도 있지만, 충돌할 때도 있습니다.
그래서 솔로몬은 자신이 하는 말에 귀를 기울이라고 했고, 신약성경은 성령님이 그 사람에게 강림해야 그가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게 된다고 했습니다. 성령님이 하나님의 속사정을 알고 계시는 분이기에, 이분이 강림하셔야 인간이 주님의 말씀을 세상의 칭찬보다 더 귀하게 생각하고 귀를 기울입니다.
솔로몬은 하나님의 말씀에서 한시라도 눈을 떼지 말라고 했습니다(4:21). 주식에 관련된 일을 하며 사는 사람은 하루 내내 전광판 앞에서 눈을 떼지 않습니다. 그리고 수도관이 어디서 파열됐는지 알아보려고 야밤에 기계를 들고 땅을 탐색하는 사람은 헤드폰에서 들려오는 기계음에 모든 신경을 다 쏟습니다.
이처럼 사람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일에 귀를 기울이고 그것에서 눈을 떼지 않습니다. 따라서 우리 안에 하나님의 말씀을 귀하게 생각하는 성령님이 내주하실 수 있게 해야 합니다. 내 안에 성령님이 계시면 내 삶의 모든 순서가 성령님의 계획에 따라 조율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게 되며 주님의 말씀에서 눈을 뗄 수 없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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