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유럽이 선교지가 되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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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션저널=김수길 선교사] 왜 유럽이 선교지가 되었는가? »
오늘 유럽의 이슬람 문제가 한국 사회에 주는 교훈을 잊지 말라!
한번 솔직히 묻고 싶다. 무엇이 선교인가? 선교란, 하나님의 마음으로 이 땅을 바라보고, 선교 대상들을 바라보는 것이 아닌가? 하나님의 눈길이 있는 그곳에 우리의 마음이 있기를 원함이 아닌가? 선교적 관점에서 볼 때 오늘 유럽의 위기는 난민과 이슬람 이주민의 등장이 아니다. 스스로 기독교적 문화 전통과 뿌리를 던져 버림으로 온 결과이다…
제1차 2차 세계대전 후 오스트리아와 독일은 패전의 결과로 해외에서 식민지와 제국의 기능을 상실했다. 2차 대전 후 50~60년대의 유럽은 많은 노동력이 필요한 경제 부흥기였다. 독일을 제외한 영국과 프랑스 네덜란드 등은 필요한 인력을 자국의 식민지였던 아프리카와 아시아로부터 공급받았다. 독일은 1차 대전부터 동맹국이었던 터키로부터 대거 노동력을 충당했다. 이후 독신으로 온 노동자들이 가족들을 이민으로 초청하여 대거 정착하게 된다. 당시 유럽의 교회는 자국에 온 이슬람과 노동자들을 하나님이 보내 준 사람들이 아니라, 생산에 필요한 노동자들로만 생각했다. 그래서 그들을 선교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아랍의 봄(지중해 난민 사태) 이전 유럽에 들어 온 이슬람 난민들은 알제리, 모로코, 튀니지 등의 마그레브 출신이 많았다. 그리고 터키를 이어서 방글라데시, 파키스탄 등의 남아시아 그룹이다. 현재 유럽에서 이슬람 인구 비율이 높은 나라는 프랑스, 독일, 영국, 네덜란드, 그리스 순으로 이들 국가에서는 인구의 4-10%가 모슬렘이다. 그러나 그리스의 경우는 영토 수복 전쟁 후 터키에 남아있는 수많은 그리스인을 보호하기 위해서 그리스 북부 크산티를 중심으로 한 트라키아 지방에 있던 오십만 명 이상의 터키인들을 터키에 송환하지 않았다. 그것이 고착되어 오늘에 이르렀기에 난민 및 이주 이슬람이 사회문제가 된 영국과 프랑스 독일 등의 경우와 다르다 할 것이다.
오늘날 유럽에 살고 있는 모슬렘과 대부분 난민은 그리스도를 알지 못한다. 아니 안다해도 그리스도를 대적하는 민족을 이 땅에 보내신 이유는 무엇인가?
사실 유럽 난민과 이슬람 사회문제는 그동안 유럽에 내재한 이슬람 문제를 해결하시려는 하나님의 의지라 본다. 그 시각을 이슬람 난민에게만 국한 시키지 말고 좀 더 깊이 본다면 주님 재림 전 주시는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할 때 문제는 해결될 수 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보낸 사람들이라는 인식과 더불어 그들을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안아주고 그들의 문제를 바라볼 때 유럽을 재 복음화하는 시금석이 될 것이다.
한번 솔직히 묻고 싶다. 무엇이 선교인가? 선교란, 하나님의 마음으로 이 땅을 바라보고, 선교 대상들을 바라보는 것이 아닌가? 하나님의 눈길이 있는 그곳에 우리의 마음이 있기를 원함이 아닌가?
선교적 관점에서 볼 때 오늘 유럽의 위기는 난민과 이슬람 이주민의 등장이 아니다. 스스로 기독교적 문화 전통과 뿌리를 던져 버림으로 온 결과이다. 유럽이 선교 현장이 된 것은 파송 선교사가 적고, 선교이론이 미약하여서가 아니다. 에든버러 선교대회 100주년을 기념하는 2010년 동경선교대회에서 스테판 구스탑슨 (Stefan Gustavsson)은 “유럽인들은 생각 없이 자기들의 영혼을 팔아 치웠으며, 그 풍부한 유산들을 흩어버림으로써 오늘날 탕자와 같이 되었다.”라고 했다.
대하 7장 14절을 통해서 유럽의 교회들이, 우리 한인 디아스포라들이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를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 기다리심이 너무도 오래되었다. 이제야말로 유럽의 그리스도인들이, 교회들이, 주님의 인내심과 절박한 기다림을 알아야 할 시간이다. 하지만 선교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유럽 땅은 스스로 지탱하기도 힘든 노인이요, 깊은 병이 든 환자이다. 자기 몸도 가누기 힘든 유럽교회가 모슬렘들로부터 놀림을 당하는 유럽을 위하여, 자복하고, 회계하여 무능력과 부족함을 내려놓고 주께 나가야 한다. 그때 하나님은 유럽교회를 살리시고, 민족의 대이동과 같은 난민의 출몰이 저주가 아니라 회복이요, 축복이 될 것이라 믿는다.
더 이상 유럽은 예전의 대륙이 아니다. 많은 대적들의 놀림과 수군거림 가운데 밀물과 같이 몰려드는 이슬람 세력 앞에 정치가들이 제대로 인식도 못 하는 것은 물론 국가가 주도하는 관료화된 교회들은 올바른 방어와 함께 선교적 관점에서 이해하고자 하는 시도 역시 미약하기만 하다.
오로지 시공을 초월한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유럽이 속히 일어나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며, 회계하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보내신 메뚜기 같은 숫자 미상의 모슬렘이 온통 유럽을 뒤덮겠다는 하나님의 준엄한 음성을 들어야 한다. 다시 주님의 복음의 능력을 선포하고 그 능력을 의지하고 믿으며 순종하고 나아가야 한다. 지금도 일어나는 여러 상황을 믿음에 의지해서 인내하고, 희생하며, 저들을 주님 앞에 올려드리도록 간구함이, 난민들을 향한 선교의 바른 방법이라고 본다.
유럽 땅에 난민의 출현은 저주가 되든지, 축복되던지 둘 중의 하나이다. 그 선택은 다른 사람들이 아닌 유럽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며, 교회들의 몫이다. 유럽 교회들과 기독인들 그리고 이 땅에 디아스포라로 온 한인 공동체들이 하나님께 겸비하고, 회개하고, 자복하며 유럽에 온전한 하나님의 나라가 도래하도록, 간구하고 함께 힘을 모아야 할 시기인 것이다. 십자가의 길로 가신 주님처럼, 저들을 하나님의 사람, 함께 가야 할 사람으로 만드는데, 우리의 수고와 노력과 인내와 애씀과 즉 눈물이 있어야 한다. 아버지의 마음으로, 눈으로, 기도하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 주를 떠난 유럽의 백성들이 돌아서 입으로 하나님 되심을 인정하고, 성전에서 하나님을 찾을 때 하늘에서 들으시고, 이 상황을, 이 땅을 회복시켜 주실 것이다. 그리고 이 땅을 찾은 난민들을 변화시키며, 돌이켜 유럽 땅의 허물어진 성전들을 세우실 것이다.
마지막으로, 오늘 유럽의 이슬람 문제가 한국 사회에 주는 교훈은 외국에서 온 노동자들을 경제적인 관점과 초점에만 눈을 맞춘다면 유럽의 오늘이 곧, 우리의 내일이 된다.
하나님이신 예수께서 이 땅에 오신 것부터가 이타적인 사랑을 실현하기 위해서이다. 사회적으로 소외된 자들을 바라보시는 사랑의 눈길로 보시며, 어린아이와 가난하고 나그네 된 사람들을 돕는 것이 곧 자신에게 하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마 25장 3-35) 뿐만 아니라 유대 사회가 불결하다고 멀리 격리한 무리를 찾아가 치료를 해주셨다. 나병환자를 불쌍히 여기셔서 손을 잡으시며 고치셨다. (막 1:41) 창기와 세리, 죄인들과 함께 먹고 마시었다. 또한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눅10:25-37)와 탕자의 비유(눅15:1131)를 통해서 우리에게 교훈하셨다. “너희의 아버지가 자비로우신 것처럼 자비로워져라. 다른 사람을 비판하지 마라. 그러면 너희도 비판받지 않을 것이다. 비난하지 마라. 그러면 너희도 비난받지 않을 것이다. 용서하여라. 그러면 너희도 용서받을 것이다.” (눅6:36-37) 그리고 “가서 너는 이처럼 하라고 하시느라”(눅10:37)라는 말씀에 우리가 반응해야 한다.
예수께서 스스로 십자가를 지심은 자신을 비우고 그 속에 다른 이들의 아픔과 고통 그리고 죄악을 대신 짊어지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경대로 하면 된다. 더 이상 다른 것은 없다. 마지막 때 영적전쟁에서 하나님의 말씀 외 다른 무기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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