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 말세의 교훈과 종말의 심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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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저널=정이신 목사] 62. 말세의 교훈과 종말의 심판 »
지금 말세의 때를 지나가고 있고 야훼의 날인 종말은 아직 오지 않…
성경을 오해하는 사람들은 말세와 종말을 같은 것으로 이해하지만, 성경은 이 둘을 구분합니다. 그리고 성경은 말세를 지나는 교훈과 종말을 기다리는 지혜를 같이 말합니다. 예를 들어 <잠언>은 말세를 지나는 교훈이고, <요한계시록>은 종말을 기다리는 지혜입니다. 종말은 인간에게 회개하라고 말하며 기다려주지 않습니다. 성도에게 회개하지 않는 사람을 그냥 떠나라고 하고(요한계시록 18:4), 저들에게는 하나님의 심판이 선포됩니다…
성경에 의하면 우리는 지금 말세의 때를 지나가고 있고 야훼의 날인 종말은 아직 오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사랑에 관한 이야기를 말세의 때를 지나가고 있는 성도를 각성시켜, 하나님이 정하신 종말에 이르도록 하는 교훈으로 여기는 게 좋습니다.
성경을 오해하는 사람들은 말세와 종말을 같은 것으로 이해하지만, 성경은 이 둘을 구분합니다. 그리고 성경은 말세를 지나는 교훈과 종말을 기다리는 지혜를 같이 말합니다. 예를 들어 <잠언>은 말세를 지나는 교훈이고, <요한계시록>은 종말을 기다리는 지혜입니다. 종말은 인간에게 회개하라고 말하며 기다려주지 않습니다. 성도에게 회개하지 않는 사람을 그냥 떠나라고 하고(요한계시록 18:4), 저들에게는 하나님의 심판이 선포됩니다.
이 둘을 비교했을 때 <잠언>에서 말한 사랑의 세계에는 종말을 향해 가고 있는 말세의 때에 지켜야 할 지침이 나와 있고, 문학작품에는 말세의 때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갈등이 그려져 있습니다.
종말을 향해 가고 있는 사랑과 종말을 겪으면서 갈등하는 사랑이 같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성경과 문학작품에서 그리고 있는 사랑이 다르고 둘의 뿌리가 다릅니다. 뿌리가 서로 다르기에 둘을 비교할 필요가 없습니다. 다만 크리스천이 이 세상에서 살고 있기에 둘을 다 가지는 게 좋습니다. 과정 중에 사람들이 어떤 갈등을 겪는지, 인간이 지닌 마음의 무늬를 알 수 있기에 둘 다 가지는 게 좋습니다. 그러나 둘을 갖기 힘들면 성경에서 말한 사랑의 세계를 먼저 가지십시오.
성경에서 말한 사랑의 세계는 문학작품에서 그리고 있는 것처럼 세련되지 않고 투박합니다. 기교면에서는 분명히 문학작품이 앞섭니다. 예를 들어 <시편>이 세상에서 유명한 시보다 기교면에서 빼어나다고 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이게 성경의 매력입니다. 이 투박함 속에 바울이 말한 하나님의 지혜가 나타났습니다(고린도전서 1:23). 그래서 바울은 투박한 나무 십자가를 자랑했고, 다른 사람의 병을 고쳐주면서도 자신의 병을 고쳐주시지 않는 성령님의 은혜를 찬양했습니다(고린도후서 12:7∼10).
이런 특성이 있기에 섣불리 성경도 문학작품이라고 일반화시킬 필요도 없고, 문학작품은 성경보다 더 낮은 세계를 반영하고 있다고 도맷값으로 넘길 필요도 없습니다. 두 개가 그리고 있는 세계가 다르지만, 우리가 이 두 세계를 넘나들면서 살고 있으니, 두 세계를 다 가지고 있는 게 좋습니다.
사랑에 대한 세상의 이해와 <잠언>의 이해가 극명하게 대비를 이루기에, 이에 관한 것을 보완하기 위해 말세와 종말이 어떻게 다른지 살펴보겠습니다. <마가복음 1:15>에서 예수님은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왔으나, 여전히 완성을 향해 진행 중이라고 했습니다.
따라서 과정 중에 있는, 성화의 과정을 걷고 있는 성도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나라와 성화가 끝난 후 부활의 몸을 얻은 성도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영원한 나라를 비교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러면 왜 <잠언>에서 말한 사랑의 세계와 세상에서 말하는 게 다른지 이해하기 쉽고, 문학작품에서 말한 사랑의 세계가 지닌 효용성을 알기 쉽습니다.
바울은 믿음 안에서 자신의 참 아들이 된 디모데에게 보낸 편지에서 마지막 때 일어날 징조에 대해 말했습니다(디모데후서 3:1∼6). 바울의 편지를 보면 말세의 징조는 지금도 여전하고, 이런 의미에서 우리는 성경에서 말한 징조가 나타난 말세를 살고 있습니다.
바울은 예수님의 부활을 설명하면서 자신이 날마다 죽는 또는 죽음을 경험하는 말세의 시대를 살고 있다고 했습니다(고린도전서 15:31). 그런데 이는 <요한계시록 21:2>에서 말한 우주의 모든 게 새롭게 다시 창조되는 종말이 아닙니다.
말세의 징조는 인간에게 각성과 회개를 촉구합니다. 예를 들어 성경은 말세의 징조 중 하나로 거짓 선지자의 등장을 언급했는데, 사이비ㆍ이단 교주에 해당하는 거짓 선지자는 초대교회 때부터 있었습니다(요한일서 2:18). 그렇지만 기독교는 초대교회를 종말의 때나 시대였다고 하지 않습니다. 초대교회에서부터 말세의 징조가 예수님이 말씀하신 대로 나타났다고 합니다(마태복음 24:23∼27).
이런 면에서 성경에 표현된 말세의 징조는 종말을 준비하기 위해 사람을 변화시키려는 하나님의 섭리입니다(마태복음 24:14, 사도행전 1:8). 그리고 이런 의미에서 코로나19바이러스로 인해 나타난 세계적인 재앙은 말세의 한 징조입니다. 우리는 이 사건을 통해 인간이 뭘 잘못하고 살았는지 살펴봐야 하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지 성찰한 후 삶을 다시 설계해야 합니다.
코로나19바이러스 사태를 겪으면서 지구촌은 연대해야 할 때는 국가 간에 철창을 치고, 철창을 쳐야 할 때는 연대하는 기이한 행동을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인류가 앞으로 가야 할 길이 참으로 멀다’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코로나19바이러스로 인해 나타난 교훈을 가슴 깊숙한 곳에 간직하고 있지 않으면, 앞으로 이것보다 더 큰 말세의 재앙이 나타났을 때 지금보다 더 허둥지둥하며 헤맬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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