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슬리운동의 현대적 의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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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칼럼=김태연 교수] 웨슬리운동의 현대적 의의 » 한국의 웨슬레 조종남 박사의 부음을 접하며 고인을 회고한다 »
2023년 8월 20일 새벽에
저는 명지대학교에서 교수 선교사로서의 사역을 하면서 3년 동안 같은 방에서 조종남 박사님을 모신 소중한 경험이 있습니다. 오늘 새벽 6시에 박사님의 부음을 접하고 식음을 전폐하고 이런 시를 쓰게 되었습니다.

조종남 박사님
한국의 웨슬레
조종남 박사님
전 대통령이 불러도
응하지 않으신 결기
명지대 교수시절
같은 방에 모시고
문화교류학과를 세울 때
박사님의 예지와 정확하심
분명하고 깨끗한 품성을
많은 제자들에게
군계일학의 스승이셨다
한국로잔위원회 고문을
언제나 늘
오는 세대 가는 세대의
십자로에서 미소 지으시며
복음화가 아닌
복음을 전하고자 하셨네
이 시대의 유일한 스승
조종남 박사님이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예수님과 같이
천국에서 다윗의 별이 되어
빛을 발하신다
조종남 박사님의 가르침을 통하여 오랜 세월 침레교도인 저는 칼빈 신학을 기반으로 해서 신학을 해왔지만 웨슬리 신학은 성서적 기독교를 긍정하는 운동이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Orthodoxy). 또한,웨슬리의 사역은 교회와 사회를 갱신시키는 통전적 선교였음을 배우게 되었습니다(Orthopraxy). 그리고 웨슬리의 신학은 하나님과의 뜨거운 만남의 체험에서 활성화되었다는 것을 확신하게 되었습니다(Orthopathy).
이러한 웨슬리 영성에 기초한 목회/선교 비젼이 세계 웨슬리안 공동체에 선교파장으로 점진적으로 나아가기를 원합니다. 현대 목회자는 글로벌 시대의 급속한 변화의 흐름 속에서 평신도를 깨워 사역에 동참하게 함으로써 ‘세계는 나의 교구’라는 비젼을 실천한 요한 웨슬레의 영성을 회복해야 합니다. 흔들리는 터전 가운데서도 미래 지향적이고 변치 않는 하나님의 말씀을 굳게 의지하고 긍정적인 목회를 해야 합니다. 21세기 웨슬리안 목회자들인 우리는 목회자와 평신도가 함께 기능적으로 동반자가 되어서 하나님 중심의 세계관(God-centered worldview)을 가지고 하나님의 나라(the Kingdom of God)를 실현하는 사역동기로 변혁(transformation)이 되어야 합니다.
오늘날 코로나 바이러스 이후에 한국교회가 성장이 둔화되었다고 하지만 웨슬리 신학에 기반을 둔 교단들의 약진이 두드러지게 보이는 것은 조종남 박사(서울신대 명예총장)와 김선도 감독(광림교회 원로)를 필두로 웨슬리안 교회지도자협의회에 속한 웨슬리안 영성을 지닌 여러분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덕(德)입니다. 다시 말해서서 영성(spirituality)입니다. 웨슬리의 영성입니다. 아무리 포스트모던사회는 지식기반 사회(knowledge-based society)이고 인터넷이 범람하는 IT 사회일지라도 이 불확실성의 시대에 예수 품성의 덕이 없으면 그 목회는 지역 교회에서 조차도 성공할 수가 없습니다. 코리안 디아스포라의 지역 교회에서부터 성숙을 통한 성공을 해야 우리 웨슬리 신학이 세계로 향한 소망이 있습니다. 우리는 설득력과 활기에 가득 찬 웨슬리 선교의 비젼을 가지고 글로벌 선교형 교회(global missional church)로 나아가야 합니다.
웨슬리안 교단에 속한 주의 종들이 목회/선교 비젼을 가지고 세계를 우리의 교구로 여기고 천손(天孫) 민족인 한민족을 넘어서 미전도 종족(unreached people group)에게 까지 나아가기 위해서는 속사람이 변화된 새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남북이 여전히 나뉘인 가운데 대한민국 건국 75년을 맞이한 이 해에 진정한 의미의 개인적인 회개를 통한 성화(sanctification)와 영적인 전쟁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회복하려는 동일시 회개(identification repentance)의 마음을 가지고 나아가야 합니다.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에 성령의 능력으로 동참하여 최종적인 큰 전쟁의 승리는 우리 웨슬리안의 것이 될 것입니다. 한국의 웨슬레의 소천 소식을 접하면서 필자는 영적인 아들 디모데의 마음으로 기도하오니 목회자/선교사로서의 웨슬레적 정체성(identity)와 리더십을 가지고 소금과 빛의 역할을 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이제 저는 칼빈 신학과 웨슬레 신학을 융섭하여 글로벌 상황화 신학의 K-Theology의 모델로 전문인 신학(Professional Theology)을 지난 15년동안 새로 세우고 실천하게 되었습니다.
전문인신학은 7가지의 이론신학과 11가지의 실천신학으로 구성이 되어있다. 이는 18가지의 창조적 경영기법과도 상관성을 가지는 과학경영 신학이기도 하다.
7R(Redemption)과 전문인 신학 11가지 T(Theology)신학 요소를 융섭하여 한국교회의 모델을 제시해보는 것도 Seminex 시대 즉 나도 전문인 선교사 시대에 소중한 것이다. 교회 밖의 교회운동이라고 하지만 이것은 예배당 밖의 교회운동이요 움직이는 그리스도의 몸으로서의 선교형 교회운동이다.
명칭을 세븐 R을 성공모델을 흡수하는 좋은 선례가 될 것이다. 이는 식스 시그마에서 비롯된 것으로서 진정한 동일시 회개애 기초하여 본 어게인이 시작해야 변혁이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그 여섯 단계는 몇 가지 유형이 있으나 일단 기본형을 소개하면 아래와 같다.
1. 회개(Repentance)
2. 부흥(Revival)
3. 개혁(Reformation)
4. 화해(Reconciliation)
5. 구조조정(Restructure)
6. 빚탕감(Remission)
일레븐T로 하는 것도 성공모델을 흡수하는 좋은 선례가 될 것이다.
1. God-centered Worldview – 하나님 중심의 세계관
전문인 리더는 먼저 기독교세계관에 입각하여 그리스도 안에서 사고를 해야 한다. 하나님의 뜻을 준행하기 위해서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길을 순종하는 것이다. 사랑의 원자탄 즉 원자력발전과 북한의 비핵화는 하늘과 땅 차이이다.
2. Jesus-like Ministry – 예수님 같은 사역
예수님을 본받는 사역이란 가르치고 치유하시고 선포하시는 사역을 말하는 데, 이 사역을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그리스도의 마음을 본받는 예수 품성을 배우는 것이 소중하다.
3. Servanthood leadership – 종으로서의 리더십
섬기는 종으로 오신 고난받는 종의 자세를 가지고 성화되는 과정 가운데 헌신을 위한 고난과 희생을 위한 고난이 필수적인 것이다.
4. Global Christian Worldview Perspective – 범세계적 기독교 세계관 입장
한국 속의 세계, 세계 속의 한국으로 기독교 세계관을 실천하기 위해서는 글로칼(Glocal)로 나아가야 한다. 세계문화시민권자로서 문화교류를 통해서 영적 돌파를 이루어야 할 것이다.
5. Christian Peace facilitator Koreana –코리아 크리스챤 평화촉진자
대한민국의 영향력은 촉진자이지 우리가 주도권을 쥐고 군림하는 자세는 아니다. 우리가 사회주의 국가들의 위장 평화를 전천후로 경계해야 한다.
6. Every Believer’s Missionaryhood – 전신자선교사주의
선교 4.0시대는 예수 전도단이 말하는 나도 전문인 선교사의 시대이다. 모두가 자신의 직업 가운데서 생활전도자가 되는 것이다. AI인공지능 시대에 100만 명의 SNS 선교사를 양성해야 한다.
7. Contrariwise Channel of Blessing – 그럼에도 불구하고 축복의 통로
소유의 창고의 시대에 축복의 창고로 전환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축복의 통로가 되는 것이 예수의 피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것이다. 그리고 순교하는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축복의 통로”가 되는 길이다.
8. Incarnational mission – 성육신적인 선교
자기비하의 원리, 동일시의 원리, 성육신의 원리에 기초하여 우리는 섬기는 종으로서의 선교사역을 할 수 있다.
9. Five-Fold Professionalism – 5중 전문성(언어, 지역, 직업, 사역, 성령의 기름부으심)
10. Critical Contextual Theology – 비판적 상황화 신학
무비판적 토착화로 인한 해방신학과 무비판적 상황화를 한 민중신학을 비판적 상황화를 해야 한다. 그것이 전문인 신학이다. 전문인 신학은 사도 바울의 자비량 선교와 피터 드러커의 전문인의 조건에서 비롯된 것이다.
11. Intercultural Leadership – 문화교류 리더십
선교라는 말 자체가 미제국주의를 상징한다고 비판을 하니 우리는 국내에서는 문화교류 선교라는 개념으로 선교를 실천하고 해외에서는 문화교류라고 실천하고 있다.
이를 전문인 선교신학의 입장에서 보완 적용하면, 기독교세계관을 하나님의 경영의 차원에서 종합적으로 볼 수 있는 신국적 세계관이다. 천국의 집을 예비하시는 순례자적인 예수사역이다. 섬기는 종으로서의 발을 씻기시는 헌신의 사역이다. 전문인 선교와 복음전파를 포괄하는 의미의 전문인 선교이다. 만인제사장에 묶여있는 이신득의의 신학을 변혁하는 변혁 신앙으로서의 전신자선교사주의이다.
선교가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다. 소유의 창고와 같은 성취동기가 아닌 헌신동기로서의 축복의 통로를 소개하고 하박국서처럼 자신의 소유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축복의 통로가 되는 것이다. 성육신적인 선교, 동일시의 원리, 자기비하의 교리를 생명과 성령의 법 안에서 행동하는 믿음으로 실천한 바울의 자비량 선교, 전문인 선교, 교육비지니스 선교, 플랫폼 혁명을 통한 융섭형 전문인 선교의 기초는 예수 선교이다.
성령세례에 의한 하나님이 내안에서 역사하시는 사역이 올바른 성령의 사역이며 전문성이 내안에서 융섭적으로 드러나게 된다. 지정학적인 갈등과 분쟁을 12지파와 12사도에게서 교훈을 얻어서 비둘기처럼 순결하고 뱀처럼 지혜로운 정체성을 먼저 지키고 상관성을 유지하는 상황화된 자신학의 전략이 필요하다. 하늘의 문화를 버리시고 이 땅의 문화에 오신 최초의 타문화권 선교사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리더십의 이론과 실제를 사도 바울처럼 실천해야 한다. 그래야 창조성, 효율성, 효과성, 융통성을 지닌 복음적인 글로벌과 온 우주의 생명을 살리는 생명 신학을 할 수가 있습니다.

웨슬리 운동의 현대적 의의
(오늘의 갱신운동에서 주의를 끄는 웨슬리 운동)
2007년 6월 3일(일)밤
조종남 박사/ 웨슬리안 교회지도자 창립총회
1. 오늘의 한국교회:
한국 교회는 하나님의 은혜로 성장했습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는 교회의 갱신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끼고 있습니다.
이에 뜻 있는 사람들은 오늘날의 교회 갱신과 사회 갱신을 위하여 웨슬리 운동에 주의를 기울이기 시작하였다. 이는 미국에서도 마찬가지인 듯합니다.
2. 이 점에서 주의를 끄는 글들이 있습니다.
1991년에 더 퍼블릭 인터리스트(The Public Interest) 라는 잡지에 뉴욕 주립대학의 교수인 로저 스타(Roger Starr) 가 흥미있는 글을 실었다. 이 사람은 미국의 민주당원으로서, 자유주의자인 유대인이다. 그는 18세기 영국의 사정이 자기들이 살고 있는 오늘의 상황과 같다는 것을 알았다. 그 당시 영국에는 술과 마약의 문제가 있었고, 가정들은 분해되고 있었으며 많은 타락과 범죄 또는 폭동이 일어나고 있었는데, 너무나도 미국의 현 상황과 비슷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런 사실을 발견한 저자는 그러면 그러한 영국을 구원한 것이 무엇인가를 연구하여야 하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는 가운데 이 유대인 자유주의자인 스타(Starr)박사는 당시의 영국을 구원한 것은 그가 그때까지 들어보지도 못한 사람, 바로 메소디스트 운동을 시작한 웨슬리에 의한 것이었다고 주장하였다.
저자 스타 박사는, 자기는 메소디스트에 대하여는 아는 바가 없었으나 웨슬리가 시작한 그 운동이 문자 그대로 영국을 구원하였고, 웨슬리의 운동은 그 당시의 사회, 경제 그리고 정치에도 많은 영향을 끼쳐 결국 영국이라는 국가를 구원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그러면서 그는 말하기를 우리들은 웨슬리 운동이 어떻게 사역하였는지를 연구할 필요가 있으며, 그리하여 오늘날에도 그런 운동이 재현되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말하였다.
한 달 후에 조지 윌(George Will)이라는 사람이 워싱턴 포스트지(Washington Post)에 스타의 글에 대한 글을 썼다. 윌은 아주 완고한 공화당원으로 보수적인 성공회 신자이다. 이 저자는 글의 서두에서 말하기를, ‘내가 자유주의자 스타가 쓴 글에 동의한다는 것은 상상을 못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이 자유주의자가 실제로 잘 지적하였다. 사실 18세기에는 독일, 프랑스, 그리고 세계 각처에서 혁명이 있었지만 영국에는 그런 혁명이 없었다. 영국에는 바로 메소디스트가 그들의 국가를 새롭게 하였던 혁명이 있었다. 이런 점에서 스타의 주장을 진지하게 다룰 필요가 있다. 그러므로 웨슬리 운동의 비결(secret) 이 무엇이었는지 알아보아야 하겠다.’라고 하였다. 그러면서 그는 ‘내가 이렇게 말하는 것이 이상하게 들린지는 모르나, 우리에게는 이 세상을 구원할 메소디스트가 필요하다. 이렇게 글을 마치고 싶지는 않지만, 그보다 더 좋은 아이디어(idea)를 가진 자가 있는가 말해 보시오.’라고 덧붙여 말하였다.
다시 그 후 한 달 후에, 뉴 퍼블릭(New Republic)이라는 잡지의 편집장인 프레드 반스(Fred Barns)는 ‘세상에 이런 일도 있는가? 자유주의자이요 유대인인 민주당원 스타씨와, 완고하며 보수적인 공화당원인 윌씨가 동의하다니? 생각하여 보면 볼수록 이 두 사람이 지적한 내용은 옳다.’고 말하였다. 그러면서 그는 다음과 같이 지적하였다. ‘그러나 그들이 잊은 것이 하나 있다. 그것은 웨슬리 운동은 근본적으로 가슴에서 일어나는 영적인 각성운동이었다는 것이다. 웨슬리의 운동이 경제적 정치적 변화를 가져온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 운동은 영적인 부흥 운동, 정신적 각성으로 시작한 것이다. 오늘날, 우리가 이 나라에서 정신적인 각성과 영적인 부흥이 일어나서 그런 경제적 정치적 변화를 일으키지 않는 한, 그런 역사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영적운동으로 시작하여야 한다. 그 길이 있을 뿐이다. 우리는 이런 운동을 시작하여야만 한다. 그리고 우리에게는 18세기 영국에서 있었던 그런 사역을 오늘의 세대를 위하여 할 수 있는 새로운 메소디스트의 세대(사람들)가 있어야만 한다.’
3. 이와 같이 미국의 자유주의자요 유대인인 민주당원과, 보수주의적인 공화당원, 그리고 복음주의자인 온건한 성공회 신자가 다 모두 한 목소리로 자기들의 국가를 구원하기 위하여 웨슬리안에게 기대를 걸고 있는 것은 놀라운 일이라 아니할 수 없다.
이는 한국에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여당이건, 야당이건, 진보파이건, 보수파이건 간에, 뜻 있는 지도자들은 오늘의 사회를 구원하기 위하여 과거의 웨슬리 운동의 재현에 관심을 갖게 될 것이다. 오늘의 한국의 상황에서도 우리가 기대할 수 있는 이보다 더 좋은 아이디어가 있겠는가? 학자들은 교회 갱신의 역사적 모델로서 요한 웨슬리의 신앙 운동을 들고 있다.
진실로 웨슬리 부흥운동은 교회부흥과 사회의 갱신을 가져왔다.
웨슬리 운동이 썩은 계란과 같은 영국사회를 갱신시킨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당시 영국사회의 민중은 가난했다. 음주와 향락으로 타락하고 있었다. 런던 거리의 1/4이 술집이었으며 범죄가 많이 일어나 감옥은 죄수들로 가득 차 있었다. 한편 교회는 무기력하여 일반 사회 인사들은 교회를 향하여 냉소를 보내었다. 이런 부패상은 이웃 나라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영국은 웨슬리의 각성운동을 통하여 교회와 사회가 새로워졌다. 역사가 렉키(Lecky)는 말하기를 ‘18세기의 영국에서 진정으로 새롭게 하는 혁명이 웨슬리를 통하여 일어났다. 이는 피트(Pitt)장군의 영도 하에 바다나 땅 위에서 얻은 그 어떤 승리보다 큰 것이었다.’고 하였다.
4. 여기에서 우리는 웨슬리 운동이 그런 놀라운 일을 하게 된 되는 그의 건설적인 신학과 선교 운동이 있었던 것입니다.
1) 성서적 기독교의 긍정으로 시작한 신학 운동: Orthodoxy
웨슬리의 올더스게이트에서의 성령 체험은 그로 하여금 성서와 성서적 기독교를 적극적으로 믿게 만들었다. 그리하여 그의 신학은 성서적 기독교를 긍정하는 운동이었다. 그는 성서에 입각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의 유일성을 강조하며 복음 증거에 나섰다. 와인쿠프(M.B.Wynkoop) 박사의 말대로 웨슬리는 정통신학의 내용을 그대로 견지하였다. 그러나 한편 웨슬리는 신학자요 동시에 전도자로서 신학을 전도의 도장에 개진하여 종교개혁자의 신학에 피와 살을 붙여 산 신학을 만들었다. (M.B. Wynkoop, A Theology of Love, Beason Hill Press, 1972, p.78)
전도에는 바른 신학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루터란 신학자 홀던(William Hordern) 지적한 대로 웨슬리의 설교에는 건설적인 신학이 뒷받침하고 있었기에 그의 설교가 힘이 있었던 것이다. 과연 웨슬리는 홀던이 지적하는 대로 능력있는 신학자였다. (William Hordern, “Recent Trends in systematic Theology,” Canadian Journal of theology, Vol. Vii (1961) No.2, p.87)
웨슬리는 151편 이상의 설교를 출판하여, 하늘나라에 이르는 바른 길을 가르치고 천명하느라고 노력했다.
2) 복음 선포와 행동으로 교회와 사회를 갱신 시키는 운동: Orthopraxy.
그와 같은 바른 신학과 성령 체험에서 나온 웨슬리의 사역은, 다음 장에서 살펴 보는 대로, 올바른 실천(Orthopraxy)이었다. 그것은 곧 온전한 복음을 증거하는 운동으로 교회 갱신 그리고 사회, 국가 개혁운동으로 나타났다.
3) 뜨거운 신앙체험에서 시작한 전도 운동: Orthopathy
웨슬리의 운동은 건전한 신학과 동시에 올바른 신앙체험에서 불 붙여진 운동이었다. 그리하여 그의 운동은 자연스럽게 전도활동으로 이어졌다.
웨슬리는 가슴이 뜨거워지는 성령 체험을 통하여 그 동안 품었던 구원에 대한 불확실성과 고민을 해결하고 복음에 대한 확신과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감격을 가지고 설교하게 되었다. 은혜에 대한 감격 없이는 보람 있는 사역을 할 수 없다. 오늘의 한국 교회에 전도의 열심이 없어져 가는 경향의 주요한 원인은 바로 이런 체험적인 신앙이 결여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5. 그러면 이 위대한 웨슬리안 위산을 들고 한국교회 아니 세계교회를 갱신할 오늘의 메소디스트가 여기에 모였습니다.
1) 이에 그의 부름에 응하여 한국의 웨슬리인 교회지도자들이 함께 모이게 된 것은 참으로 의의 있는 일이라고 생각됩니다. 이는 참으로 하나님이 기대하시며 기뻐하실 일이라고 생각되어, 이 모임에 축하와 격려의 말씀을 드립니다. 하나님의 새로운 감동과 축복 가운데, 이 모임이 놀라운 사역을 이룩하기를 기원합니다.
2) 이에 우리가 꼭 기억하여야 할 것이 있습니다. 곧 웨슬리는 후대의 메서디스크가 처음에 출발했던 그 기초적인 교리 위에 국건하게 서서 나가가기를 바랐습니다. 타이아멘 박사가 자족했듯이 ‘웨슬리는 단순히 웨슬리 뒤를 따르는 교회 사람들이 남아 있는 것에 만족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메세서디즘의 신학 위산이 살아가기를 바랐던 것입니다.” 왜냐 하면 신학이 없는 유산이나 운동은 영구성이 없으며 신학에 근거하지 않는 열심을 쉽게 변질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웨슬리를 찬양하고 존경하고 자랑 할뿐 아니라, 그의 건전한 신학에 서서 나가기를 기원합니다. 또한 그의 가슴속에 있던 불이 또한 우리 가슴속에 옮겨 붙길 원합니다. 웨슬리는 그의 생의 후반에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메서디스트라고 불리우는 사람들이 미국이나 유럽에서 사라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나의 염려는 그들이 단지 능력 없는 종교의 형태만 갖고 죽은 단체로서 존재하지 않을까 하는 것입니다. 메서디스트들이 첨음 출말할 때 가졌던 교리 (doctrine), 정신(spirit)과 그 훈련 (discipline),을 다 같이 지키지 않아서 필연코 그렇게 될까봐 염려하는 것입니다.” (Work xiii, 28).
3) 또 다른 한편, 이런 것을 명심하면서 앞으로 나아가겠지만, 그렇다고 과연 한국 교회가 새로워질 수 있을까’ 하고 비관하는 소리가 마음속에 생길지도 모르겠습니다. 오늘의 교회의 타락한 모습을 보고 너무나 실망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성경에서 엘리야 선지자가 당시의 상황에 절망하여 소망을 포기하려 할 때, 여호와께서 “나(여호와)를 위하여 바알에 무릎을 꿇지 아니 한 사람 칠천을 남겨 두었다” 하셨듯이, “이제도 은혜로 택하심을 따라 남은 자” (로마 11:5 )를 두시고, 그들을 통하여 하나님의 영은 지금도 역사하실 것을 믿어야 합니다. 거룩한 하나님은 ‘남은 자’를 통하여 역사하십니다. 그러기에 한국 교회의 타락을 걱정하는 웨슬리안들은 웨슬 리가 말했듯니 ecclesiole in ecclesia 곧 ‘작은 교회’와 성도가 있어 ‘남은 자’로써 성결의 누룩의 역할을 할 때 우리 교회는 새로워 질 것을 미도 나아가야 합니다. 역사 속에 있는 교회가 타락하고 있으나, 그 안에서 새롭게 하시는 성령의 역사는 더 강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웨슬리가 가졌던 믿음이요 신념이었습니다.
거듭 하나님의 인도와 축복이 새로 출발하는 웨슬리안 교회 지도자회 위에 함께 하시기를 기원합니다. 끝.
필자소개: Dr. 김태연 교수 (전 명지대 교수, 한국로잔위원회 총무 역임, 현. HK 경영위원회 부의장, 과학정책기술협회 초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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