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 저런 사랑이 거룩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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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저널=정이신 목사] 65. 저런 사랑이 거룩한 것일까 »
마지막 때 자신이 돌아갈 곳 없다는 게 얼마나 슬픈 일일까…
마지막 때에 자신이 돌아갈 곳이 없다는 게 얼마나 슬픈 일입니까? 인간이 혹시 잘못했다고 하더라도, 돌아갈 곳으로 돌아가 회개하고 다시 새로운 삶을 사는 게 중요합니다. 자신이 돌이켜야 할 때 돌이키지 않으면 결국 회중 앞에서 부끄러움을 당하게 됩니다(5:14). 재난은 히브리어로 ‘라’인데 ‘나쁜 것, 악한 것’입니다. 사람이 귀를 기울여 들어야 할 일에 귀를 막으면 악한 존재가 됩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사람 중에 말도 안 되는 사랑을 하겠다고 우기다가 결국 온갖 스캔들로 범벅이 된 삶을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동안 해 놓은 일이 있기에 저들에게 남은 것은 대개 돈인데, 돈은 하나님 앞에 가져갈 수 없습니다.
내가 하는 사랑이 하나님이 허락하신 것이고, 주님의 계획이 담긴 것이라면 이것은 주님 앞에 가져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삐뚤어진 내 욕망에 휩쓸려 중독된 사랑은 하나님이 허락하신 게 아니기에 주님 앞에 가져갈 수 없습니다.
돈도 마찬가지입니다. ‘남은 건 돈뿐이다’란 말이 좋은 말 같아 보여도, <전도서>에 있는 솔로몬의 넋두리에서 볼 수 있듯이 엄청 쓸쓸한 사람의 고백입니다. 사람이 돈으로만 살 수 없는데, 자신에게 돈만 남으면 어떻게 됩니까? 성경은 이런 삶을 아름다운 것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저런 사랑을 했을 경우 영예(榮譽)가 다른 사람에게 넘어갑니다(5:9). 잘못된 사랑을 하고 자신이 한 사랑에 관해 책임을 지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진 순간부터 그 사람은 사회의 지도자가 되기 힘듭니다.
예전에도 우리나라에서 어떤 사람이 정치 지도자가 되겠다고 선거에 출마했다가, 전처에게서 낳은 아이에게 양육비도 제대로 주지 않은 사실이 들통나 낙마했던 적이 있습니다. 돈이 없는 사람도 아니고 유명 변호사 출신이기에 꽤 돈을 많이 번 사람인데도, 자기가 해야 할 일을 안 하고 있다가 결국 그의 딸이 아버지의 비리를 폭로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잠언>은 이를 “네 아까운 세월을 빼앗기는 것”이라고 했습니다(9절). 이런 행동을 했을 경우 아까운 세월 동안 공들여 쌓은 것을 다 빼앗기게 됩니다.
사람이 잘못된 사랑에 빠지는 것은 마치 물고기가 미끼를 덥석 물고 싶은 유혹을 느끼는 것과 비슷합니다. 물고기들은 낚싯줄에 매달린 지렁이를 맛있게 생각하고 덤벼듭니다. 낚시에 걸리지 않으려면 낚싯줄에 매달린 지렁이를 아예 멀리하고 가까이 가지 말아야 합니다.
꾀가 많은 물고기는 지렁이 주위를 돌면서 한 번씩 입으로 미끼를 건드려 보다가 지렁이만 낚아챕니다. 그러나 많은 물고기가 어느 순간에 유혹을 참지 못하고 미끼를 입에 삼킵니다. 미끼를 입에 삼켰으니 다음 순서는 말 그대로 매운탕이나 물고기구이의 재료가 됩니다.
사탄이 우리에게 주는 죄의 미끼와 잘못된 사랑의 미끼가 이것과 비슷합니다. 사람들은 잘못된 사랑을 하면서도 그 사랑이 영원히 계속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자신들이 지금 하는 사랑은 진실한 것이기에 영원히 행복할 것이라고 고집을 부리거나, 절대로 상대가 자신을 배신하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그런데 이런 주장은 미끼를 물기 전까지만 가능합니다. 일단 이런 주장에 속아 미끼를 물고 나면, 다음으로 그를 기다리는 것은 너무도 참혹한 현실입니다. 죄도 마찬가지입니다. 죄를 짓기 전까지는 이런저런 방법을 써서 사탄이 유혹합니다. 그러나 일단 죄를 짓고 나면 사람이 낚시에 걸린 물고기 신세가 되기에 죄에 끌려다닙니다.
그 사랑이 영원할 것 같았는데, 아니었다는 것을 알게 된 사람이 해야 할 일은 빨리 하나님의 품으로 돌아오는 것입니다(5:13). 자신에게 이런 일이 일어날 것이라고 가르쳐 준 스승이 있다는 것을 기억하고 있다면, 그 사람에게는 아직 희망이 있습니다.
마지막 때에 자신이 돌아갈 곳이 없다는 게 얼마나 슬픈 일입니까? 인간이 혹시 잘못했다고 하더라도, 돌아갈 곳으로 돌아가 회개하고 다시 새로운 삶을 사는 게 중요합니다. 자신이 돌이켜야 할 때 돌이키지 않으면 결국 회중 앞에서 부끄러움을 당하게 됩니다(5:14). 재난은 히브리어로 ‘라’인데 ‘나쁜 것, 악한 것’입니다. 사람이 귀를 기울여 들어야 할 일에 귀를 막으면 악한 존재가 됩니다.
<신명기 5:1>은 “들어라, 이스라엘아!”로 시작합니다. 고대 이스라엘에서는 율법을 낭독하는 사람의 말을 회중이 들었습니다. 종이가 귀했던 이런 문화적 속성은 ‘과실을 범했으면 즉시 거리낌 없이 고쳐야 한다(過則勿憚改)’라는《논어(論語)》의 가르침과 같은 부분도 있고, 다른 부분도 있습니다.
동양은 종이가 나오기 전에 죽간(竹簡)이 있었습니다. 대나무 조각이지만 나름대로 글을 써서 통용했기에, 죽간에 적힌 글을 보면서 자신의 잘못을 반성했습니다. 그래서 동양에서는 역사의 교훈을 읽고 자신의 잘못이 보이면 즉각 고치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고대 중동에서는 종이가 없었고, 스승에게 배울 때도 모래에 글을 썼다가 지우면서 암송하는 방식을 썼으며, 배우는 사람끼리 서로 토론을 즐겼습니다. 이런 문화인지라 귀를 기울여 듣는 것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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