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자보다 나를 먼저
[교육저널=정이신 목사] 배우자보다 나를 먼저 » 67회
결혼생활에는 비밀이 있는데 이는 교회 생활과 비슷합니다.
결혼생활에는 비밀이 있는데 이는 교회 생활과 비슷합니다(에베소서 5:32). 우리가 결혼생활을 잘 유지하기 위해서는 교회 생활을 잘하기 위해 활용하는 것처럼 전략과 전술을 잘 구사해야 합니다. 결혼생활의 전략은 서로 하나님의 구원 계획을 이루기 위해 만났다는 것입니다. 그냥 그 사람이 좋아서 만나게 된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하나님의 구원 계획이 있었습니다. 그러니 그와 협력해서 선을 이뤄야 하고(로마서 8:28), 이를 위해 효과적인 전술을 구사해야…
초원에는 많은 짐승이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초원을 가장 평온하게 보이게 하는 짐승은 암사슴이나 암노루 같은 초식동물입니다. 이 짐승은 사납지 않고 겁이 많으며 예쁜 새끼들을 데리고 다닙니다. 그래서 <잠언> 기자는 젊은 시절에 안해로 맞이한 여자를 이 짐승에 비유했습니다. 그리고 그의 품을 언제나 만족스럽게 생각하며 그의 사랑을 언제나 사모하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내 안해가 암사슴이나 암노루라면 나도 그와 같은 초식동물이 돼야 그녀를 사랑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고 내 안해가 사자와 호랑이, 악어 같은 육식동물이면 나도 육식동물이 돼야 그녀를 사랑할 수 있습니다. 안해가 초식동물인데 나는 육식동물이 되면 그녀의 품을 만족스럽게 생각할 수 없게 됩니다.
자신은 육식동물인데 배우자가 초식동물이라서 사랑할 수 없다고 변명을 늘어놓는 사람을 만난 적이 있습니다. 그때 그 사람이 했던 말은 자신의 배우자가 그를 따라서 육식동물로 변할 줄 알고 결혼했는데, 아직도 초식동물로 만족하며 살고 있어서 답답하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때 제가 해줬던 말이 <에베소서 5:25>이었습니다. 예수님이 교회를 사랑하셔서 그분을 내준 것처럼 배우자를 사랑해 보지 않았으면서 자신의 배우자만 탓하면 안 됩니다. 어떻게 초식동물이 육식동물로 변합니까?
부부 상담을 하면서 그 사람이 이혼하겠다는 이유를 자세히 들여다봤더니 숨겨진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사실은 처음에 초식동물이라고 생각하고 배우자를 잡아먹으려고, 결혼한 후에도 자기 마음대로 살아 보려고 결혼했었습니다. 그런데 결혼하고 아이가 태어나니 배우자가 자기 마음대로 안 됐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배우자가 자기와 다른 초식동물이라고 이혼하겠다고 한 것이었습니다.
저런 사람들은 대개 이혼한 후 육식동물과 같은 다른 배우자를 만납니다. 그럼 과연 행복하게 될까요? 텔레비전에 나온 이야기처럼 문제가 아주 많은 남자가 가정을 깨뜨린 후 다른 여자를 만나 재혼했는데, 재혼한 여자는 남자에게 그런 일이 전혀 없다고 그를 변호하고 있었습니다. 이게 과연 정상일까요?
결혼생활에는 비밀이 있는데 이는 교회 생활과 비슷합니다(에베소서 5:32). 우리가 결혼생활을 잘 유지하기 위해서는 교회 생활을 잘하기 위해 활용하는 것처럼 전략과 전술을 잘 구사해야 합니다. 결혼생활의 전략은 서로 하나님의 구원 계획을 이루기 위해 만났다는 것입니다. 그냥 그 사람이 좋아서 만나게 된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하나님의 구원 계획이 있었습니다.
그러니 그와 협력해서 선을 이뤄야 하고(로마서 8:28), 이를 위해 효과적인 전술을 구사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때 전략과 전술을 거꾸로 사용하면 부부 싸움이 잦아지고 결국 이혼하는 경우가 생깁니다. 전술은 때에 따라 바꾸는 것이지만 전략은 바꾸지 않아야 합니다.
바꾸지 않아야 할 전략을 전술처럼 취급해서 그때는 이러해서 결혼했는데, 지금은 저러하다고 하면 안 됩니다. 그러면 자신의 삶에 불필요한 파열음이 생겨 고생하게 됩니다. 결혼생활도 자신의 인생을 바꾸기 위해 하는 것이기에, 자신의 인생을 바꾸지 못하는 결혼생활은 별다른 의미가 없습니다. 따라서 자신은 전혀 바꿀 생각을 하지 않고 배우자만 바꾸려고 하면 문제가 생깁니다.
반대의 경우도 있습니다. 부부로서 바람직하지 못한 행동을 육식동물 같은 배우자가 했습니다. 그는 초식동물 같은 사람이라서 성실하게 가정을 지켰고, 하나님의 말씀에 어긋난 행동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막상 세상의 법정으로 가보니 모든 고통을 자신에게 떠넘겼습니다. 문제는 상대가 일으켰는데 가정파괴로 인해 나타난 모든 고통은 자신이 떠안게 됐습니다.
이런 경우는 하나님이 그 사람을 보호하시기 위해, 욥처럼 그에게 고난을 주신 것입니다. 왜 그 사람에게 고난을 주셨는지 우리는 알지 못합니다. 다만 이때 초식동물처럼 살던 그가 ‘그래, 이번 기회에 나도 육식동물처럼 살아 보자’라고 강퍅한 마음으로 변화를 시도하면 문제가 더 꼬입니다. 내가 그에게 사기를 당해서 울분에 나도 그에게 사기를 쳤는데, 교도소는 그와 내가 모두 가는 게 아니고 나만 갑니다.
이때 사람은 하나님이 살아 계시는 않는 것이냐고 오해하지만, 그 사람에게는 주님이 준비하신 형벌이 따로 있습니다. 내가 그걸 보지 못하기에 오해하는 것입니다. 배우자가 어떻게 하든 나는 내가 하나님 앞에서 가야 할 전략적인 길을 가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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