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명령과 어머니의 가르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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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저널=정이신 목사] 아버지의 명령과 어머니의 가르침 » 76회
아버지의 명령(미츠와)과 어머니의 가르침(토라) 언급…
<잠언> 기자는 <6:20>에서 아버지의 명령(미츠와)과 어머니의 가르침(토라)을 언급합니다. 목걸이는 <1:9>에도 나왔는데 아버지의 명령과 어머니의 가르침을 목걸이로 하고 다니면 <6:22>과 같은 일이 일어납니다…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면 부흥이 일어납니다. 그렇기에 교회에서 교우 사이를 이간질하는 사람은 궁극적으로 그 교회가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지 못하게 하는 걸림돌이 됩니다(6:19). 이런 일을 주도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보다 자신의 이야기를 더 우위에, 주님의 말씀을 따르면 이간질을 할 수 없기에 자기주장을 성경보다 더 높은 곳에 둡니다.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신약성경에서 유다의 배신은 예수님의 제자들이 복음을 전하는데 큰 훼방 거리였습니다. 예수님을 반대하던 사람들은 메시아인 그분이 자기 제자 하나도 제대로 가르치지 못했다고 놀렸습니다. 그리고 어떤 사람들은 제자도 믿지 않는 복음을 누가 믿겠느냐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유다의 배반에도 믿지 않는 사람만 예수님을 거부할 뿐 바울 같은 이는 오히려 그분의 십자가를 자랑하고 다녔습니다. 그러자 유다의 배신을 통해 복음 전파를 막으려 했던 사탄의 흉계가 먹혀들어 가지 않게 됐습니다. 사람들이 거짓 증거와 참된 증거를 분별하려고 했고, 이들에게 성령님이 역사하시자 오히려 예수님이 알려주신 복음이 널리 전파됐습니다.
거짓으로 증언하거나 친구 사이를 이간질하려는 사람이 기억해야 할 게 바로 이것입니다. 올바르지 못한 증언, 이간질,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일은 모두 유효기간이 짧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긴 안목으로 살기 위해서는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일을 하지 않아야 합니다.
<잠언> 기자는 <6:20>에서 아버지의 명령(미츠와)과 어머니의 가르침(토라)을 언급합니다. 목걸이는 <1:9>에도 나왔는데 아버지의 명령과 어머니의 가르침을 목걸이로 하고 다니면 <6:22>과 같은 일이 일어납니다.
<6:22>을 실제로 경험했다고 간증한 사람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우리가 자고 있을 때는 자신을 보호할 수 없습니다. 아무리 천하에 이름을 날린 명장(名將)이라고 해도 잠을 자는 순간만큼은 무방비 상태가 됩니다. 그러나 이런 목걸이를 하고 있으면 하나님이 잠자는 동안에도 공격당하지 않게 보호해 주십니다.
간증했던 사람은 기도한 후 잠을 자고 일어났더니 모든 일이 다 해결돼 있었다고 했습니다. 말도 안 되는 이야기 같지만 실제로 이런 방법을 쓰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리고 이처럼 잠잘 때 지켜주고 깨어났을 때 말벗이 돼주는 게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러나 사탄은 앞으로는 잘 자라고 안심시켜 놓고 뒤로는 얼굴을 바꾼 채 공격합니다.
낮에 등불을 켜는 사람은 없습니다. <6:23>에서 “하나님의 명령”을 “등불”이라고 한 것은 세상이 캄캄하다는 뜻입니다. 사람들은 세상이 캄캄한 줄도 모르고 날뛰다가 절벽에서 떨어지고 바위에 떨어져 중상을 입습니다.
그렇다면 왜 사람들은 세상이 캄캄한 줄 모를까요? 사람들이 밤에 속해 있거나 시각장애인이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 3:2>을 보면 니고데모가 예수님을 밤에 찾아왔습니다. 당시 유대 사회의 지도자였지만 그도 밤에 속한 사람이었기에 밤에 빛을 상징하는 예수님을 찾아왔습니다. 그가 예수님을 찾아와서 그분께 한 질문을 보면 영락없이 밤에 속한 사람임이 그대로 드러납니다.
하나님이 생명을 만드셨는데, 생명은 빛에서 나옵니다. 그래서 사탄은 생명을 못 만듭니다. 하나님의 명령은 등불, 가르침은 빛, 훈계의 책망은 생명의 길이라는 <6:23>의 구성은 이런 특징을 보여줍니다. 그런데 <6:23>을 보면 완전히 유유상종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대변해서 인간을 이끌어 가는 것끼리 모여 있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거룩함을 전파해서 부정한 것을 물리치라는 신약시대의 선교 지침과도 맥이 같습니다.
<6:24∼35>은 음란을 방지하는 일과 위에서 준 교훈을 연결해서 보게 합니다. <잠언>을 기록할 당시 인간을 유혹했던 가장 큰 사건은 음란이었습니다. 오늘날이야 권력ㆍ명예ㆍ재산이 성적인 유혹 못지않게 강렬합니다. 그러나 당시는 왕이 있었던 계급사회였습니다. 그런 환경에서 권력은 내가 누리고 싶다고 누릴 수 있는 게 아니었습니다. 또 명예ㆍ재산도 특정한 계층이 독과점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사회에서 가장 강력한 유혹의 수단은 성적 쾌락이었습니다.
<잠언>이 곳곳에서 성적 유혹에 대해 언급한 이유는 이 글을 기록할 당시의 사회 환경에서 발생한 문제가 반영돼 있기 때문입니다. 오랜 세월이 지났어도 ‘그 나물에 그 밥’이라고 여전히 <잠언>에서 경계한 성적인 문제는 인간 사회에서 강력한 유혹의 수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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