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는 누이, 명철은 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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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저널=정이신 목사] 지혜는 누이, 명철은 친구 » 79회
육체에 쾌락을 제공하지 않는 유혹은 없다…
<7:6∼20>은 유혹에 빠지는 과정, <21∼27절>은 그 결과입니다. 그리고 결론은 <27절>입니다. 유혹에 빠진 결과로 다가오는 것은 천국이 아니라 ‘스올’입니다. 유혹에 빠지는 과정을 묘사한 <7:6∼20절>을 보면 유혹에 빠진 사람은 이것이 육체적인 쾌락을 줄 뿐이고, 최종적으로 자기 영혼을 팔아먹는 비극이 된다는 사실을 모릅니다…
사람이 무엇을 손가락에 맨다는 것은 약속하는 것입니다(7:3). 지금도 사람들은 중요한 약속을 할 때 손가락을 걸고 합니다. 또 부부가 결혼할 때 결혼반지를 손가락에 낌으로써 한평생 마음이 변하지 않도록 않겠다고 약속합니다. 외국인들은 결혼반지를 아주 귀하게 생각해서, 반지 빼는 것을 서로 헤어지자는 뜻으로 이해합니다. 그래서 웬만하면 결혼반지를 빼지 않습니다.
이처럼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과 손가락을 걸고 맹세해야 합니다. 또 하나님의 말씀을 평생의 반려자로 생각하고, 이 말씀으로 세상을 보겠다고 마음에 깊이 새겨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 판에 새기면 그때부터 이게 인생의 가장 중요한 목표가 됩니다.
또 하나님의 말씀을 아주 친근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친근하지 않는데 손가락에 맬 수 없고 가슴에 새길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반드시 지켜야 하는 명령으로 여겨야 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아주 가까운 친구처럼 생각할 수도 있어야 합니다. 가까운 친구에게는 손해를 끼치거나 거짓말을 할 수 없듯이 하나님의 말씀을 대할 때도 이런 자세가 필요합니다.
여자 동생은 오빠에게 가장 귀여운 존재이면서 또 가까운 사이입니다. <잠언>은 이처럼 지혜를 스스럼없이 가까운 사이로 생각하라고 합니다(7:4). <잠언>에서 제시하는 또 다른 관계는 친구인데, 이 둘을 종합하면 지혜를 가족처럼 대하고 명철을 친척처럼 대해야 합니다. 이렇게 했을 때 이것이 성적인 타락의 유혹에서 자신을 지켜 줍니다(7:5).
<7:5>은 인간이 부딪히게 되는 대표적인 유혹의 수단을 언급한 것이기에 굳이 성적인 유혹으로 국한해서 이해할 필요는 없습니다. 지혜와 명철을 얻어 자신이 어떻게 살아야 할지 알게 되면, 가지 않아야 할 곳에 가지 않을 것이고 그러면 자연스레 유혹에 빠지지 않게 됩니다.
“친구”로 번역한 ‘모다’는 ‘야다’에서 유래한 것으로 구약성경에 두 번 나옵니다(7:4). 단어의 용례를 고려했을 때 명철(비나)을 친구로 여기라는 말은 내게 무슨 일이 생겼을 때 이를 대신 갚아줄 수 있는 ‘친척으로 명철을 지니고 있어라’라는 뜻입니다.
<룻기 2:1>은 시어머니인 나오미를 따라 이스라엘의 베들레헴으로 온 모압 여자 룻에게 친척으로서 기업을 물려줄 수 있는 사람인 보아스가 있다고 했고, 보아스는 훗날 룻의 남편이 됩니다. 이처럼 <7:4>에서 친구라는 말은 내게 무슨 일이 생겼을 때 나 대신 그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는 수단으로 명철을 지니고 있으라는 뜻입니다.
시어머니를 따라 베들레헴으로 왔으나 보아스를 만나 결혼하지 못했으면 룻의 삶도 참으로 팍팍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잠언>은 지혜와 더불어 명철을 말합니다. <잠언>의 결을 따라 비유하면, 지혜는 같은 아버지에게서 태어난 누이고, 명철은 내게 무슨 일이 생겼는데 가족이 도움을 주지 못했을 때 대신 도와주는 친척 혹은 친구입니다.
<7:6∼20>은 유혹에 빠지는 과정, <21∼27절>은 그 결과입니다. 그리고 결론은 <27절>입니다. 유혹에 빠진 결과로 다가오는 것은 천국이 아니라 ‘스올’입니다. 유혹에 빠지는 과정을 묘사한 <7:6∼20절>을 보면 유혹에 빠진 사람은 이것이 육체적인 쾌락을 줄 뿐이고, 최종적으로 자기 영혼을 팔아먹는 비극이 된다는 사실을 모릅니다.
육체에 쾌락을 제공하지 않는 유혹은 없습니다. 이에 비해 바울이 말한 그리스도를 위해 고난받는 특권은(빌립보서 1:29) 성격이 다릅니다. 고난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특권이지만, 유혹은 값을 치러야 하는 멍에의 시작입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사고를 하는 사람은 육체의 유혹을 따르지 않고 고난의 특권을 받아들이는데, 이 특권은 성령님이 눈을 열어주시지 않으면 알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인간의 눈으로 봤을 때 고난이 특권이 된다는 말은 앞뒤가 맞지 않기 때문입니다. 오직 성령님이 주신 눈으로 봤을 때만 이게 진리임을 알게 됩니다.
사람이 창가에서 창살에 난 문으로 밖을 내다보는 것은 자신을 숨긴 채 밖을 보기 위함입니다(7:6). 만약 정당하다면 대문으로 나가 그를 맞이할 것입니다. 본문에 나온 여자는 정당하지 않은 성적인 범죄를 저지르기 위해 자신을 밝히지 않고 숨어서 창문으로 상대를 찾았습니다.
남자는 누군가가 숨어서 자신의 행동을 지켜보고 있다는 것을 모른 채 죄를 지으려고 그 여자가 기다리고 있는 곳으로 갔습니다(7:8). 본문에 나온 죄의 특징은 숨기지 않아야 할 것을 숨기는 것입니다. 정상적인 부부가 만나는 일이라면 이렇게 자신을 숨길 필요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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