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지혜와 인간의 지식
[교육저널=정이신 목사] 하나님의 지혜와 인간의 지식 » 93회
“지혜”가 “예수님” 통해 세상에 그 모습을 완전히 드러낸 사건이 십자가와 부활…
<8:22∼36>은 두 흐름으로 구분합니다. <8:22∼31>은 태초부터 있었던 지혜, <8:32∼36>은 이것을 받아들인 인간의 지식입니다. 태초부터 지혜가 있었어도 인간이 이것을 받아들일 줄 모르면, 표면에 있는 금맥만 찾고 땅속 깊은 곳으로 이어진 금덩어리를 놓치는 초보 광부가 됩니다. <잠언>은 지혜가 태초부터 하나님과 함께 있었다는 말과 함께, 그 지혜를 받아들여 백조의 몸이 물 위에 우아하게 떠 있을 수 있도록 제대로 물장구치는 법을 익혀두라고 이 두 흐름을 통해 말합니다…
하나님의 지혜가 가진 특성 때문에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주의해야 할 게 있습니다. 지구상에서 하나님을 경배하며 신앙생활을 하는 동물은 오직 인간뿐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신앙생활을 제대로 하기 위해서 인간의 지식을 무조건 거부하면 안 됩니다. 인간의 지식도 알아야 합니다. 다만 순서를 따질 때는 하나님의 지혜를 우선시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목사는 산에 가서 하는 기도와 더불어 도시에 있는 도서관으로 가서 책을 읽어 보고, 사람의 무늬를 고치고 마음을 바로잡는 방법을 연구해야 합니다. 태초 이후 무수하게 많은 시간을 보냈으면서도 인류가 여태껏 불의와 죄를 버리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인지, 호모 사피엔스가 계속 발전할 수 있는지, 지속 가능한 희망은 무엇인지 그 맥을 찾아내야 합니다. 수천 년 동안 저질러진 온갖 죄의 사례를 연구해서, 왜 그게 아직도 인간의 삶에서 퇴출당하지 않고 있는지, 죄의 유혹이 지닌 끈끈함의 비밀도 연구해야 합니다.
호모 사피엔스는 현재 지구에서 살고 있고, 이 땅에서 살 수 있도록 최적화된 상태로 몸을 가꿔 왔습니다. 따라서 인간답게 살아가려면 땅이 사람에게 준 마음이 뭔지 알아야 하고, 다른 사람의 무늬가 지닌 기하학적 형태를 이해할 줄 알아야 합니다. 이것을 모르고 내 주장만 높이 외치면 사람들 사이에 있는 섬에 갇히게 됩니다.
이 땅이 우리에게 제공하는 삶의 현장에서 예배와 교회가 물 위에 우아하게 떠 있는 백조의 몸이라면, 성도의 삶은 물속에서 죽을힘을 다해 물장구치는 백조의 발과 같습니다. 따라서 어떻게 물장구를 쳐야 하는지 알아야 합니다. 그렇지만 도서관에 가는 것을 기도하는 것보다 우선하면 안 되고, 물장구는 물장구의 한계가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아무리 물장구를 많이 쳐도 그건 물 위에 우아하게 떠 있는 몸이 아니기에, 땅 위로 올라와서까지 물장구를 치면 안 됩니다.
<8:22∼36>은 두 흐름으로 구분합니다. <8:22∼31>은 태초부터 있었던 지혜, <8:32∼36>은 이것을 받아들인 인간의 지식입니다. 태초부터 지혜가 있었어도 인간이 이것을 받아들일 줄 모르면, 표면에 있는 금맥만 찾고 땅속 깊은 곳으로 이어진 금덩어리를 놓치는 초보 광부가 됩니다.
<잠언>은 지혜가 태초부터 하나님과 함께 있었다는 말과 함께, 그 지혜를 받아들여 백조의 몸이 물 위에 우아하게 떠 있을 수 있도록 제대로 물장구치는 법을 익혀두라고 이 두 흐름을 통해 말합니다.
아이들이 아무리 똑똑하고 재능이 있다고 해도 부모는 아이가 어떻게 자랐는지 압니다. 그 아이가 자라서 사회의 유명인이 된다고 해도 그 아이의 어릴 적 모습까지 바꿀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부모는 그 아이가 가진 장점뿐만 아니라 단점도 압니다.
이처럼 지혜는 이 세상이 만들어지기 전부터,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만들어지기 전부터 우리를 알고 지켜봤습니다(8:22). 지혜에게 이런 면이 있기에 지혜는 인간 전체를 알고 있습니다. 인간이 어떻게 자랐는지, 어떤 경험을 했는지 지혜는 모두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아무리 날고뛰는 빼어난 두뇌를 인간이 가졌다고 해도 하나님의 지혜를 넘어설 수 없습니다. 태초부터 인간을 지켜봤기에 인간의 모든 행동이 지혜의 손바닥을 넘어서지 못합니다.
그런데 이 구절에 대한 해석에서 약간의 논란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지혜가 태초부터 하나님의 창조 사역에 동참한 것이니 이를 <요한복음 17:5, “아버지, 창세 전에 내가 아버지와 함께 누리던 그 영광으로, 나를 아버지 앞에서 영광되게 해 주십시오.”>, 그리고 <골로새서 1:15∼17>에서 언급한 성자 하나님을 지칭하는 것으로 해석합니다.
이 경우 구약시대에는 성자 하나님의 사역이 계시 된 적이 없다는 사실이 난제로 등장합니다. 구약시대 때 성자 하나님의 사역은 철저히 가려져 있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과 함께 태초부터 사역을 전개했던 지혜가 가장 충만하게 드러나신 분이 예수님이라고 보는 해석이 더 넓은 지지를 받고 있습니다.
이런 관점으로 보면 성경에서 말한 지혜를 얻는 것은 태초부터 하나님과 동행했던 이의 능력을 받는 것이기에 주님의 창조 능력을 물려받는 일이 포함됩니다. 그리고 이런 능력이 충만하게 나타난 분이 예수님이기에 지혜가 그분을 통해 세상에 그 모습을 완전히 드러낸 사건이 십자가와 부활입니다.
<새번역성경>의 각주를 보면 ‘하나님이 지혜를 소유했다’, ‘지혜를 낳았다’란 번역도 가능합니다. 이는 히브리어 ‘카나’의 뜻 때문입니다. 그래서 어떤 학자는 ‘하나님이 지혜를 낳았다’라고 이 구절을 해석합니다. 이런 해석의 결을 따라가면 산모가 고통 가운데 아이를 낳듯이, 하나님도 아주 많이 고심하고 연구하셔서 지혜와 인간을 만드셨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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