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주를 생각만 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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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저널=한평우 목사] “구주를 생각만 해도…” »
클레르보 베르나르도 작곡 찬송가 85장
구주를 생각만 해도 내 맘이 좋거든, 주 얼굴 뵈올 때에야 얼마나 좋으랴. 만민의 구주 예수의 귀하신 이름은 천지에 있는 이름 중 비할 데 없도다. 참 회개하는 자에게 소망이 되시고 구하고 찾는 자에게 기쁨이 되신다. 예수의 넓은 사랑을 어찌 다 말하랴, 주사랑 받은 사람만 그 사랑 알도다. 사랑의 구주 예수여, 내 기쁨 되시고 이제로부터 영원히 영광이 되소서… [찬송가 85장]
나이가 들어가니 그럴까요?
나이를 먹어간다는 것은, 그만큼 죽음이 가까워짐을 뜻하고, 더 나아가서 주님을 뵈올 순간이 다가옴을 의미합니다. 그래서인지 요즈음에는 더욱 영적 은혜를 사모하게 됩니다.
60년대 만해도 은혜라는 단어가 풍성했었습니다. 교파 구분 없이 예배에 참석하면 풍성한 은혜를 경험할 수 있었고, 사방 모두가 은혜를 경험한 분들로 가득했습니다. 그래서 쉽게 공감하였고 대화 중에도 감동으로 가득했습니다.
그런데 요즈음에는 은혜라는 단어는 여전한데, 은혜의 내밀함은 찾아볼 수 없습니다. 이건 아닌데, 라고 의식하지만 정작 은혜의 세계는 먼 것만 같습니다. 아니 이방인의 소유처럼 낯설게 여겨지기도 합니다.
오늘 차를 운전하여 낯선 곳을 찾아갔습니다. 나이가 들어가니 운전하는 것도 날렵함을 잃어버린 듯합니다. 내비게이션에 의지하여 조심스레 탐험하듯 찾아갔습니다.
그러나 오는 길은 달랐습니다. 익숙하게 되니 자신감이 생겼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가사를 외우려고 기록하여 지갑에 간직했던 찬송가를 꺼내어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찬송가는 85장입니다. 사역할 때는 이것저것 설교에 맞추느라 가사를 제대로 외우지 못했는데 은퇴하고서 외우려고 힘쓰니 이제야 철이 드나 봅니다.
이 찬송가는 11~12세기를 풍미했던 수도원장 클레르보 베르나르도가 작사한 찬송가입니다.
930년이 지났는데도 저에게는 은혜롭기만 합니다. 그는 영성이 대단히 뛰어났던 분으로, 말틴 루터나 칼뱅도 존경한 분입니다. 그가 찬송 시를 썼는데 우리 찬송가에 세 편이 실렸습니다. 85장, 145장, 262장입니다.
▸구주를 생각만 해도 내 맘이 좋거든, 주 얼굴 뵈올 때에야 얼마나 좋으랴.
▸만민의 구주 예수의 귀하신 이름은 천지에 있는 이름 중 비할 데 없도다.
▸참 회개하는 자에게 소망이 되시고 구하고 찾는 자에게 기쁨이 되신다.
▸예수의 넓은 사랑을 어찌 다 말하랴, 주사랑 받은 사람만 그 사랑 알도다.
▸사랑의 구주 예수여, 내 기쁨 되시고 이제로부터 영원히 영광이 되소서.
지금 불러도 은혜가 넘칩니다. 물론 저의 개인적 고백입니다. 특히 운전하면서 4절을 부르고 또 불렀습니다. 부를수록 잊어버렸던 은혜의 샘물이 솟구쳐 오름을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영적으로 캄캄했던 시기에도 위대한 영적 리더들을 보내주셨습니다. 그래서 그들로 하여금 어두움의 세력들을 거두어 내도록 하셨습니다, 그런 저의 열심과 헌신은 유럽에 200군데의 수도원을 새롭게 설립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어쩌면 덜 중요한 일에 목숨을 걸고 있지는 않는가 싶습니다. 더 우선 되고 더 시급한 일들이 있는데 말입니다.
자꾸 세상은 우리를 헛된 일에 치심하도록 유혹하고 있습니다.그 결과는 육신의 열매를 맺을 뿐인데 말입니다. 성도 된 우리에게는 더욱 궁극적인 사명이 주어졌습니다. 그 사명을 이루기 위해 먼저 영적 은혜를 구해야 되겠다 싶습니다. 그 은혜가 회복되어야 비로소 바르게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곧 뵈옵게 될 주님의 얼굴을 고대하는 목마름…
“주 얼굴 뵈올 때에야 얼마나 좋으랴.”
글 한평우 목사/ 본지 목양저널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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