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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가 되는 말
[새벽묵상] 기도가 되는 말 » 약 3:1-12 » 한은선 목사 » Ein Wort, das zum Gebet wird! 곧 좋은 말은 좋은 영혼에게서 나옵니다. 그러기에 말보다 마음을 먼저 고쳐야 합니다. 말의 문제는 소리의 문제가 아니라 심성의 문제요 겉 사람의 문제가 아니라 속사람의 문제입니다. 미움의 말 한마디가 사람을 죽일 수도 있고, 사랑의…
참부흥의 불길 타오르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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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수교 140년사의 근대문명 리뷰-13
[역사저널] 한미수교 140년사의 근대문명 리뷰-13 » 강석진 목사 » 이승만의 외로운 대미외교 활동과 시련 대한제국과 일본과의 을사조약(1905.11)으로 대한이라는 나라의 외교권은 사실상 박탈된 것이었다. 이러한 역사적 수모가 실행되기 4개월 전인 1905년 7월에 ‘가스라.테프트밀약’으로 미국은 사실상 일본이 대한제국의 지배를 묵인하였고 바로 이어서 주한미공사관을 폐쇄시켰다. 이 당시 영국과 미국은 일본이 1904년 러.일전쟁에서 승리하자…

한 여름 밤의 꿈

A-Midsummer-Night-s-Dream-Cover ◙ Photo&Img©ucdigiN

[문화저널=조기칠 목사] 한 여름 밤의 꿈 » F. Mendessohn(1809-1847)

A Midsummer Night’s Dream…

셰익스피어의<한 여름밤의 꿈>을 읽고 깊이 매료된 17세 소년 멘델스죤은, “내일부터 나는 ‘한 여름밤의 꿈’을 꾸기 시작할 것입니다!”라고 말하면서 네 손으로 연주하는 피아노 작품을 작곡하여 누나’파니’와 함께 즐겨 연주하였습니다. 1826년, 셰익스피어의 <한 여름 밤의 꿈>에 깊이 매료된 17세의 멘델스죤은 <한 여름 밤의 꿈>서곡으로 그의 꿈을 실현해 냅니다.

1. “바흐를 다시 꺼내다! – 멘델스죤”

F. Mendessohn ◙ Photo&Img©ucdigiN

음악사에 있어서 바흐(J.S. Bach)를 빼놓고서 음악 이야기가 되지 않을 정도로 바흐가 서양음악에 끼친 영향은 지대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바흐를 종교 음악가로만 이해하고 있지만, 그는 종교 음악 뿐 아니라 일반 세속 음악에도 지대한 영향을 끼친 사람이었고, 모든 음악의 기초를 놓은 분이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바흐를 가리켜서, ‘음악의 아버지’라는 말을 아주 자연스럽게 사용합니다.

그러나 바흐가 죽은 1750년부터, 이렇게 위대한 업적을 남긴 바흐였음에도 불구하고 일반대중으로부터 거의 잊힌 존재가 되어버립니다. 흔히 바로크 음악이 끝난 해를 1750년으로 보는데, 공교롭게도 1750년은 바흐가 죽은 해입니다. 음악 교과서나 음악학교에서는 바흐를 공부하고 그가 남긴 음악이론들을 연구했지만, 일반대중에게는 아주 생소한 이름이 되고 말았던 것입니다. 그러다가1802년에 발간된 한권의 책이 바흐를 재소환해서 재평가하게 되는 계기가 됩니다.

독일음악사 학자인, 포르겔이라는 분이 ‘바흐의 생애와 예술, 그리고 작품’이라는 책을 통해서, 바흐가 유럽사회에 대중적으로 알려지게 되는 계기가 됩니다. 이 한권의 책 때문에 바흐 사후 50여년 만에 전 유럽에 바흐 열풍이 몰아쳤으며 대중들의 바흐의 음악에 대한 재인식에 결정적인 계기를 제공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정작 바흐 사후에 이미 소실되어지고 팔려 나가버렸던 바흐의 악보들이 바흐 사후 80년의 시간이 흐른 1829년, 열렬한 바흐의 팬이었으며 바흐음악의 계승자였던 유대인 출신의 작곡가인 펠릭스 멘델스죤이, 바흐의 ‘마태수난곡’ 악보를 발견하면서 다시 한번 유럽에 바흐 열풍을 일으키게 됩니다.

바흐의 음악을 재발견하고 바흐 음악을 재평가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멘델스죤은 1809년 유대인 출신의 독일 음악가로써 대단히 부유하고 명망있는 집안에서 태어났습니다. 그의 할아버지 모세스(Moses)는 유대인이었지만, 가족들을 위해서 독일로 귀화한 후 루터교 신자가 되었고, 후에 독일 재무장관과 부총리를 역임합니다. 그는 독일의 소크라테스라고 불리울 정도로 대단히 유명한 철학자였고, 독일경제를 책임 맡은 재무장관을 역임할 정도였습니다.

또한 그의 아버지역시 국회의원을 역임했었고, 은행을 여럿 소유할 정도로 부와 명예를 다 갖춘, 지금으로 말하면 멘델스죤은 금수저를 물고 태어난 사람이었습니다. 독일화폐가 개혁되기 전의 동전에 그의 할아버지 초상이 새겨질 정도로 아주 유명함과 독일국민들로부터 존경을 한 몸에 받았던 대단한 집안 출신이었습니다.

멘델스죤은 아주 어렸을 때부터 천재로 불릴 정도로 학문에도 능통했으며, 5개 국어를 자유롭게 사용할 정도였고, 음악 분야에도 대단히 천재적인 탤런트를 가지고 있었는데, 6살 때 이미 오케스트라를 지휘할 정도로 음악에 탁월한 소질이 있었고, 소년시절에는 11개의 교향곡을 작곡했으며, 5개의 오페라를 작곡할 정도로 대단히 우수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독일초기 낭만파음악을 주도하면서 5개의 교향곡 등 수많은 음악들을 작곡해 냈는데, 그의 음악은 하나같이 밝고 따뜻한것이 특색입니다.

2 . 17세의 소년이 셰익스피어의 ”한여름밤의 꿈”과 만나다.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멘델스죤의 할아버지인 모제스(Moses) 멘델스죤은, 18세기 독일 계몽주의 철학자로 당시에는 독일인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았던 셰익스피어의 작품들을 출판하여 독일사람들에게 셰익스피어를 널리 알렸습니다. 할아버지 덕분에 멘델스죤은 어려서부터 셰익스피어 작품에 깊이 매료되었고, 셰익스피어의 희곡인 <한 여름밤의 꿈>을 작곡하게 된 동기가 되었던 것입니다.

셰익스피어의<한 여름밤의 꿈>을 읽고 깊이 매료된 17세 소년 멘델스죤은, “내일부터 나는 ‘한 여름밤의 꿈’을 꾸기 시작할 것입니다!”라고 말하면서 네 손으로 연주하는 피아노 작품을 작곡하여 누나’파니’와 함께 즐겨 연주하였습니다. 1826년, 셰익스피어의 <한 여름 밤의 꿈>에 깊이 매료된 17세의 멘델스죤은 <한 여름 밤의 꿈>서곡으로 그의 꿈을 실현해냅니다.

플룻과 바이얼린을 중심으로 하는 그 가볍고 경이로운 음향의 세계는 여태까지 그 누구도 상상해 볼수 없었던 신비스러운 마법의 소리였습니다. 목관악기가 연주하는 네 번의 코드가 긴 여운을 남기고 부드러운 현악기가 들려오면 갑자기 바스럭대는 소리가 귀를 간지럽힙니다. 요정의 날개 짓처럼 가벼운 바이올린 소리, 당나귀의 울음소리를 흉내 낸 금관악기 소리는 셰익스피어 희곡의 환상적인 분위기를 빼닮았습니다.

그로부터 16년후, 프로이센의 빌헬름 4세가 ‘한 여름 밤의 꿈’을 무대에 올리고 싶은 데, 거기에 맞는 음악을 작곡해 줄 것을 의뢰받은 멘델스죤은 이미 16년 전에 자신이 작곡해둔 서곡에 12개의 곡을 더 작곡하여 명실상부한 ‘한 여름밤의 꿈’을 완성시킵니다.

꿈같은 사운드로 담아낸 <한 여름 밤의 꿈>서곡 op.21은 여러 극음악을 거느린 진정한 완성된 음악으로 거듭나게 된 것입니다. (완성된 ‘한 여름밤의 꿈’은 작품번호가 op.61입니다.) 다시 한번 한 여름 밤의 꿈을 꾸기 시작한 멘델스죤은 서곡을 만들었을 때보다 두 배나 더 나이를 먹었지만, 그의 음악은 여전히 환상과 동심으로 가득했습니다.

3. 내용

셰익스피어의 희곡<한 여름밤의 꿈>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이곡은 특별히 ‘결혼행진곡’이 들어있어서 우리에게는 상당히 친숙한 음악입니다. ‘한 여름 밤’이란 일년 중 가장 낮이 긴 6월 24일 ‘하지’무렵의 ‘성 요한제’의 전야를 가리키는 것으로, 서양에서는, 그날 밤에 여러가지의 환상적인 일이 생긴다는 미신이 있었습니다. 원래는 이교도의 풍습이었으나 카톨릭 쪽으로 편입이 되어서 ‘성요한제’라는 이름이 붙여지게 된 것입니다.

셰익스피어의 원작인 ‘한 여름밤의 꿈’에서는 이 때를 시간적인 무대로 하여 요정들과 인간들 사이에 벌어지는 갖가지의 episode를 그 내용으로 하고 있습니다. 달이 휘영청 밝은 그리이스의 아테네 숲 속을 무대로 하여, 사랑하는 두 남녀와 요정의 왕인 오베론, 그의 아내 타타니아가 장난을 좋아하는 요정 팍의 착오 때문에 갖가지의 사건에 휘말리게 됩니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일이 순조롭게 해결되어 아테네의 대공인 테세우스와 아마죤의 여왕인 히포리타와의 결혼식으로 극은 Happy Ending으로 끝을 맺습니다.

멘델스죤의 ‘한 여름밤의 꿈’은 바이얼린 협주곡으로써는 유일하게 한 곡뿐인 그의 ‘바이얼린 협주곡’과 더불어 멘델스죤의 모든 작품 중에서 가장 유명한 곡이 되었습니다. 특히 이 음악에서, 그리고 셰익스피어의 원작에서 공히 가장 중요한 key word는 ‘결혼’입니다. 그만큼 이 곡의 ‘결혼행진곡’은 이 작품의 백미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낭랑한 트럼펫의 도입부에 이어서 행진곡 풍의 장려한 주제가 당당하게 연주되어지는 ‘결혼행진곡’은 중간부의 아름다운 멜로디를 거쳐서 다시 메인 부가 되풀이되어지는 형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멘델스죤이 17세에 작곡한 서곡과 나머지 12곡들은 17년이라는 시간차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사실이 전혀 거슬리거나 의식되지 않을 만큼 일관성 있게, 색체가 가지런하고 훌륭하게 하모니가 이루어진 명곡 중의 명곡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4.맺으며…

멘델스죤은 어렸을 때부터 여러 부류의 사람들과 깊이 교제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특히 12살 때 독일의 시성인 괴테와의 만남은 그의 인생에 많은 영향을 끼쳤습니다.

어느날 괴테가 어린 멘델스죤을 2주간 자기집에 초대를 하여 함께 지내게 되었습니다. 매일 아침마다 멘델스죤은 괴테를 위해서 음악을 한 곡씩 작곡하고 함께 기도하는 시간을 가졌는데, 괴테는 어린 멘델스죤의 지혜로움과 영성에 깊히 매료되었고 깊히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괴테는 어린 멘델스죤의 겸손함과 천재성을 칭찬하는데, “모차르트의 천재성이란, 멘델스죤에 비하면 유치한 어린아이 수준”이라고 말했다는 일화는 유명합니다.

괴테는 어린 멘델스죤에게 한편의 시를 써서 선물로 주었는데 시의 내용은 이렇습니다.
“너는 나의 다윗, 내가 아프고 슬퍼지게 되면 나의 사악한 꿈들을 너의 연주와 음악으로 물리쳐주려므나!”_괴테가 멘델스죤에게

오케스트라를 생일 선물로 받을만큼 부유했던 그는 분명히 ‘부잣집 도련님’이 맞습니다. 하지만, 38세로 그의 생을 마감한 사인이 과로였지 않았을까 싶을 만큼, 자신에게 주어진 능력과 재력, 인맥, 기회, 시간을 허투로 쓰지 않았다고 하는 사실입니다.

그 결과 유럽의 음악사는 멘델스죤의 열성으로 중요한 터닝포인트를 맞게됩니다. 멘델스죤은 독일에서 가장 오래된 라이프치히 음악학교를 설립했습니다. 그리고 슈만과 함께 음악교육에 힘을 쏟았으며, 쇼팽과 같은 유망한 음악가들을 알리는 일에 힘을 쏟았고, 경제적으로 어려운 음악가들을 후원하는 일을 게을리 하지 않았습니다.

또한 라이프치히 상인들이 탄생시킨 최초의 민간 오케스트라의 첫 번째 지휘자로 취임하여 세상을 떠날 때까지 12년간을 지휘하며 이 오케스트라를 명문 악단으로 키워냈습니다.

특히 그는 이 오케스트라와 함께 100여년 간을 묻혀있던 바흐의 작품을 연주해 그의 존재와 가치를 알린 것은 음악 역사를 바꿔놓은 위대한 사건이었습니다. 그리고 위대한 작품을 알아보았던 멘델스죤은, 바흐는 물론 베토벤과 슈베르트의 악보를 사비로 구입해 연주하고 알리는 일에 힘을 쏟았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단지 그가 유대인이었다는 사실 때문에 바그너가 멘델스죤의 사후에 그의 음악을 혹평하였고, 의식적으로 무시하였으며, 게반트하우스 앞에 세워져 있던 멘델스죤의 동상을 짓밟고 없애버렸던 일은 정말 아쉬움으로 남습니다.

특별히 그의 교향곡 5번은 ‘종교개혁(Reformation)’이라는 이름으로, 루터의 종교개혁 300주년을 맞이하여 작곡하고 자신이 초연한 곡으로, 이 작품을 통해서 그가 얼마만큼 종교개혁과 바른 신앙생활운동에 정열을 불태웠던 가를 알 수 있습니다.

그는 손위의 누나인 ‘파니’와의 사이가 아주 좋았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그 누나가 갑자기 지병으로 세상을 떠나자 멘델스죤도 시름시름 앓기 시작하더니, 누나가 죽은 뒤 6개월 만에 38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게 됩니다.

요한 세반스쳔 바하를 다시 꺼내든 위대한 작곡가 멘델스죤을 오늘도 다시금 기억하며 그의 음반 ’한 여름 밤의 꿈’을 턴테이블에 올려봅니다.

연주 영상 : https://youtube.com/watch?v=z85QVFf3-2M&si=wPBltcySdMvCDTcG

글: 조기칠 목사/ 클레식 음악 칼럼니스트

사진: https://namu.wiki/w/펠릭스%20멘델스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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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기칠 목사: 합동신학대학원과 Yale Divinity School에서, 선교학연구원(Research Schlor)을 지낸 후, 지금은 뉴욕과 뉴저지에서 일본어교회를 섬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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