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이 바뀌면 인생도 바뀐다!
[새벽묵상=한은선 목사] 생각이 바뀌면 인생도 바뀐다! » 빌2:1-5 »
Das Leben ändert sich, wenn man die Gedanken ändert!
내 마음의 집에 누가 살게 할 것인가? 마틴 루터는, “전에는 내 안에 내가 살았으나 지금은 루터가 이사를 가고 예수님이 사십니다.”라며 주님이 호주되심을 고백했다. 종교개혁보다 시급한 것은, 내 마음의 주인을 바꾸는 것임을 강조한 것이다. 내가 살면 내 집이고 주님이 사시면 주님의 집이다. 주님이 사는 자가 그리스도인이다.
‘뇌의 스위치를 켜라’로 저명한 인지신경학자 캐롤라인 리프는 자기에게 상담 온 자 모두에게 빌4:6-8절을 처방한다고 한다. “무엇에든지 참되며, 경건하며, 옳으며, 정결하며, 사랑할만하며, 칭찬할만하며, 염려 말고 감사함으로 간구하는 삶을 추구하라”는 것이다.
그렇게 뇌의 스위치를 겨면 뇌와 정신이 바뀌고 DNA와 유전자가 바뀌고 연쇄반응을 일으켜 정신질활 80-90%가 치유된다고 한다. 생각의 방향이 어디로 향하느냐에 따라 그 결과가 크게 달라진다는 주장이다. 성경은 이미 “무릇 지킬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고 권하고 있다.
▮마음과 생각을 지켜주시는 하나님
빌4:7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bewahre eure Herzen und Sinne” 성경에 “마음”이라는 단어가 무려 850회 이상 나오고 있는데, “마음”은 “카르디아” 독일어는 “Herz”로 신체의 중심기관으로 사용되었는데, 감정과 열정과 생각과 상상력과 의지를 담는 자리로 사용되고 있다.
“생각”은 “자카르” “사고, 정신, Sinne, Denken”으로 마음에서 일어나는 정신의 작업을 의미한다. “지키다 프루레오”는 “망보다, 감금하다, 보존하다, bewahre”는 “보호와 지켜줌”을 의미하는 것으로, 하나님은 감사함으로 아뢰는 모든 자들의 그 생각을 지키시고 보호하여 유지케 하신다.
▮마음의 밭
예수님은 우리의 마음을 네 가지 밭으로 비유하시면서 좋은 밭이 되어야 백배의 열매를 맺을 수 있다고 강조하셨다.
가륫인 유다가 주님을 좇았을 때 배신을 생각했던 것이 아니었다. 그도 진정한 제자가 되기를 갈망했으나 사단이 그의 마음에 예수님을 팔 생각을 넣자 거부하지 못하고 실행함으로 불행을 자초하게 되었다.
하나님이 노아의 홍수로 세상을 심판하신 이유가 무엇인가? 사람들의 생각이 항상 악했기 때 문이었다. 이 말을 뒤집으면, 항상 선을 생각하고 주님생각으로 가득차면 성령의 열매를 맺을 수밖에 없다는 다른 표현이다.
▮생각은 달라도 마음은 같아야 한다.
빌립보 교회의 유오디아와 순두게의 관계가 껄끄러웠던 것 같다. 이를 순화시키기는 과정에서 여러 가지 조화에 대한 말씀을 하신다.
교육부서가 하는 일과 성가대가 하는 일이 다르다. 봉사부와 예배부의 일 역시 다른 생각, 다른 방식으로 일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고 교회를 위해 섬기는 목적은 같다. 즉 각론은 다를 수 있지만 총론은 같다는 의미다.
▮겸손한 생각이 더 크고 높은 마음이다.
‘무슨 일을 하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남을 낫게 여기고’. 남을 칭찬하고 높이는 마음이 넓은 마음이다. 남을 인정하고 높일 수 있는 데까지가 그 사람의 됨됨이며 그릇의 크기다.
주님은 하늘에서 떨어지셨고 온갖 모욕과 심지어 침 뱉음까지 당하셨고 종내는 십자가에서 죽으실 만큼 낮추셨다. 그래서 높으신 분이고 하나님의 보좌 옆에 지금도 앉아계신다.
▮생각을 바꾸면 인생도 바뀐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여기서 마음은 원문에 “생각, 프로네오, Sinne”으로 되어 있다. 곧 예수님의 생각을 품으라는 뜻이다.
우리 마음에 담아두어야 할 주님의 생각은 무엇인가? 죄인인 우리를 위하여 “마음을 비우시고 낮아지시고 복종하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실 생각”이다.
바울 사도는 이런 주님의 생각과 삶을 담기 위해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라고 하셨는데, 수동태 완료형으로 기록했다. 이는 내가 죽은 것이 아니라 주님에 의해 내가 죽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니 나는 죽고 없어져야 맞다. 그런데 버젓이 살아있는 나는 누구인가?
바울 사도는 그 존재가 “구습을 좇는 옛사람”이라고 하신다. 여기서 “구습, 프로그램”이라는 뜻이 있다. 곧 오랜 시간동안 마치 프로그램 돌리듯이 “지금껏 살아온 육체적인 삶의 고착화된 옛 자아”인데 이게 쉽게 죽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처음엔 그런 자기를 자기가 ‘친다’고 하더니, 급기야는 날마다 ‘죽는다’고 고백했다. 그만큼 예수님의 생각으로 살아간다는 것이 버거운 일이지만 역설적으로 반드시 성취해야할 과제임을 강조하고 있다.
▮예수님의 생각으로 살아가는 주의 자녀들에게 주님은 자신의 삶을 통해 본을 보여주시고 그 결과에 대해서도 알려주셨다.
하나님은 그런 자를 “지극히 높여 뛰어난 이름을 주시고 그 앞에 무릎 굻게 만드시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으로 인도 하신다”는 것이다.
내 마음의 집에 누가 살게 할 것인가? 마틴 루터는, “전에는 내 안에 내가 살았으나 지금은 루터가 이사를 가고 예수님이 사십니다.”라며 주님이 호주되심을 고백했다. 종교개혁보다 시급한 것은, 내 마음의 주인을 바꾸는 것임을 강조한 것이다. 내가 살면 내 집이고 주님이 사시면 주님의 집이다. 주님이 사는 자가 그리스도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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